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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일산

천재 화가가 세계를 그림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산일(山日)
작품등록일 :
2023.08.28 11:36
최근연재일 :
2023.09.24 12:2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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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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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
글자수 :
168,306

작성
23.09.0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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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회식

DUMMY

몇십 분 후.


“...”


생각을 마친 시현이 방을 빠져나왔다. 모든 생각이 정리된 건 아니었다. 그저 어느 정도 결정을 내렸을 뿐.


정윤아는 아직도 1층 거실에서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시현을 발견한 정윤아가 입을 연다.


“고민은 끝났니?”


시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해보려고요, 미술.”

“......!”


시현의 대답에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건, 시현의 부모님이었다.


“드디어... 우리 아들이... 미술을... 시작하는구나...!”


어릴 적부터 시현을 봐온 두 사람이다. 오랜 시간 동안 시현을 본 만큼, 두 사람은 시현의 재능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무리 못 그리는 척을 해도, 오랫동안 봐오면 알 수 있는 법이다. 심지어 두 사람은 미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었고, 또 시현을 미술계로 데려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물론 시현의 격렬한 반대로 마음을 접어둔 상태였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맙소사... 맙소사...!”

“...”


호들갑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기쁨에 절어 계신 두 사람을 놓고, 시현은 차분하게 식탁으로 돌아왔다.


“미술, 하긴 할 건데 깊게 할 생각은 없어요.”

“깊게 할 생각은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그냥 그런 거죠. 뭐랄까... 미술을 하려면 보편적으로 걷는 길이 있잖아요.”

“아, 예고나, 예대 말하는 거지?”

“예. 그런 곳은 딱히 갈 생각이 없어요. 별로 도움이 안 될 거 같거든요.”


시현은 예고, 예대를 갈 생각이 없었다.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예고가 무슨 도움이 될까.’


그림을 많이 그릴 수 있는 환경은 조성할 수 있지만, 시현에게 그런 환경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시현에게 있어 그림은 언제 어디서든 그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찮잖아...’


예고 생활은 여러모로 귀찮을 것 같았다. 도움도 크게 될 것 같지 않았고.


“으음... 뭐, 맞는 말이지. 너 정도 실력이면 굳이 예고나 예대에 갈 필욘 없겠지. 가면 이래저래 좋은 일은 있겠지만.”


정윤아는 시현의 뜻을 이해했다.


“그럼 이건 어때. 내가 네게 일거리를 들고 와줄게. 대신 내 말을 조금 들어줘.”

“언론 플레이 같은 건가요?”

“그런 거지. 요즘 세상은 초인을 바라고 있거든. 그리고 너는 그 조건에 딱 들어맞고.”


아직 대외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시현의 정체가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박중현 화백의 대작을 증명해낸 16살 소년. 그 명칭 하나만으로도 시현은 대한민국 미술계에 우뚝 설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널 귀찮게 할 생각은 없어. 어때, 괜찮지 않아?”

“뭐... 나쁘지 않네요. 언론에 막 나설 생각은 없지만.”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말하면, 적당히 도와주겠다는 것 아닌가. 대충 이해했다.


‘기획전 같은 걸 기획하려는 건가? 그래도 일단은 내 그림부터 그리고, 남는 시간에 도울 수 있으면 도와줘야지.’


정윤아가 입을 연다.


“좋아. 그럼 오늘은 이쯤에서 이야기를 마쳐볼까? 뭐, 다른 이야기는 없지?”

“딱히 없죠. 굳이 따지면... 저녁 뭐 드실지 이야기하는 것 정도?”

“저녁?”


예상외의 물음에 정윤아가 피식 웃었다.


“난 뭐든 좋은데. 넌 가리는 거 있니?”

“글쎄요. 딱히 없는 거 같은데.”

“그래? 애들답지 않네. 실력도 입맛도.”

“자주 들어요.”


두 사람은 실없는 이야기를 나눴고, 시현의 부모님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


‘그래서.’


정윤아와 저녁 식사를 마친 시현은 다시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내가 다시 미술을 하게 됐다는 거네?’


본인이 결정한 일이지만, 여전히 낯선 기분이 들었다.


‘미술... 미술이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과거처럼 열정은 솟아오르지 않는다. 열정적으로 하기엔 시현은 깎여버린 인간이었다.


세상에게, 그리고 인간에게. 시현에게 열정이란 더 이상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래도...’


한다면 최선을 다하리라.


우웅-!


시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정윤아로부터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어, 시현 학생.


몇 번 봤다고 친근하게 말하는 정윤아.


“편하게 부르셔도 되는데.”

-아, 그래? 그럼 시현아.


정윤아는 털털한 성격이었다.


-저녁 먹고 이렇게 바로 전화해서 미안한데, 혹시 저녁에 시간 좀 되니?

“무슨 일인데요?”

-그게 말이야.


정윤아가 설명한다.


-오늘 저녁에 협회에서 회식이 있다고 하네? 어쨌거나 일 끝낸 기념으로 의견 교류회 같은 걸 하나봐. 거기에 네가 참석하면 좀 좋을 거 같은데.

“협회라면... 누나가 있는 그 협회요?”

-누나...!


누나라는 단어에 정윤아가 흠칫 놀랐다. 시현과 정윤아의 나이 차이는 16살. 이모나 아줌마라는 소리를 들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 차이였다. 그런데 누나라니. 정윤아는 묘한 감각을 들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어, 문화예술전시협회라는 곳인데 아무래도 이번에 일이 크게 터졌잖아. 그래도 뭐 어찌어찌 좋게 끝난 모양이야. 그래서 네가 그 자리에 참석하면 여러모로 그림이 완성된다고 할까.


시현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래요? 그럼 가보죠, 뭐.”

-진짜?

“가짜로 갈 순 없잖아요. 데리러 오실 거죠?”

-그래야지.

“그럼 부모님께 말씀드려놓을게요.”

-그래그래. 늦어도 12시 전에는 들어올 거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말씀드려.

“네에.”


시현은 가볍게 전화를 끊었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문화예술전시협회라.’


있을 법한 협회긴 했다. 요즘 전시회가 한두 개도 아니니.


‘근데...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으려나?’


정윤아가 자신을 나쁜 의도로 부른 건 아닌 것 같다. 정윤아의 말대로 시현이 참석해야 그림이 완성된다. 누가 뭐라 해도 시현은 이번 사태를 해결한 일등공신이었으니까. 대외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거기 있는 사람들은 대작 검증한 게 시현이라는 걸 알고 있다.


‘모두가 날 반기진 않겠지.’


그 말은 곧, 시현은 누군가의 영웅이자, 누군가의 적이라는 걸 의미했다. 영웅이라고 해서 모두의 영웅이 될 순 없다. 영웅은 결국 누군가의 목을 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벌써부터 걱정할 필욘 없겠지.’


시현은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 머릿속에서 내용들을 지워버렸다. 필요한 것은 그때그때 하면 된다.


.

.

.


잠시 후.


“도착했다.”


시현은 정윤아의 차를 타고, 강남으로 이동했다. 시간은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상태였다.


“오호.”


강남의 사무실에서 진행되는 회식이었다. 격식이 막 느껴지는 자리는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개발자들이 회식을 진행하는 느낌이었다.


‘옛날하고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


시현은 과거 생각을 떠올렸다. 온갖 드레스와 정장으로 치장하고, 술을 나눠마시며, 서양 화가들에 이야기를 나누던 화가들이 떠오른다. 그들 중 이름을 남긴 사람이 얼마나 있지? 거의 없던 걸로 기억한다.


‘대부분 어중이떠중이였으니까.’


그 때에 비하면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시대가 변했다는 걸 의미했다.


“그러니까 고전주의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거야. 현대 미술이 듣는 소리가 뭔데. 저딴 게 미술품이냐는 소리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현대 미술을 떼어버릴 순 없잖아. 괜히 현대 미술이야? 현대를 주름잡으니까 현대 미술인 거야!”

“...”


들려오는 내용은 전생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다들 자기만의 주관이 있었고, 그에 맞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머. 이 꼬마는 누구지?”


그때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왔다. 정윤아가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아, 사모님. 안녕하셨어요?”

“안녕? 안녕 못했지.”


후후후, 웃는 여자. 처음보는 여자인데, 어쩐지 얼굴이 익숙하다.


“아버지 그림이 그렇게 됐는데 안녕할 수 있겠어?”

“...”


대화를 통해 시현은 유추했다.


‘박중현의 딸인가?’


시현의 추측이 맞았다. 시현에게 다가온 여자는 박중현의 딸인 ‘박승연’이었다. 박승연이 계속해서 말한다.


“그래서 이 꼬마는 누구야?”

“그게 말이죠...”


정윤아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박중현을 몰락시킨 기념으로 이야기를 교류하고자 만든 회식 자리인데, 박중현의 딸이 올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


시현이 입을 연다.


“윤시현이요.”

“윤시현? 처음 듣는 이름인데.”

“이렇게 들으면 아실걸요?”


시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박중현 씨 그림 대작 증명해낸 사람이요.”

“......!”


박승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이해 못 하셨어요?”

“너...”


박승연의 놀란 눈에 곧 분노가 담긴다. 짝-! 박승연이 시현의 뺨을 때린다.


“미쳤어?”

“......!”


박승연의 행동에 모두가 놀란다. 아무리 박중현네 집안이 막장이라는 건 알았지만, 모두 앞에서 뺨을 때리는 건 너무한 처사이지 않나. 심지어 박중현은 지금 자리에서 가루가 될 정도로 까이고 있다. 박승연의 행동은 분명한 실책이었다.


시현은 잠시 고민했다.


‘때릴 만하지. 아버지 그림을 욕보인 건데.’


생각해보면, 그게 박중현 그림도 아니지 않나.


‘그림이 아니라, 자기가 부끄러워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


웃음이 터져 나올 거 같았다. 부모나 자식이나. 세상에 견부호자는 없는 모양이었다.


시현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뻐억-! 발로 박승연의 정강이를 강하게 찼다.


“......!”


박승연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진다. 시현은 아무렇지 않았다. 폭력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맞고도 가만히 있고 싶진 않았다.


특히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야! 너 진짜 미쳤...!”

“아줌마.”


시현이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아줌마가 누군지, 나는 정말로 관심이 없어요. 대충 누군지는 알겠는데, 이런 자리에는 안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너 지금 말...”

“아뇨, 아직 말 다 안 했어요. 어디서 배웠길래 그렇게 틀에 박힌 말만 하시나.”


시현이 에휴,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당신 아버지 그림 위작, 대작 증명했어요. 그래서요. 나한테 따지려고요? 거짓말쟁이라고? 누가 누구한테 거짓말쟁이라고 하려는 거에요, 어이가 없어서 정말.”

“너... 너어...!”

“뺨 때린 거? 이해는 해요. 나 같아도 화날 거 같긴 해. 근데 이건 아니잖아. 아니면 경찰서라도 가볼까요? 누가 유리할까요? 아줌마? 아니면 미성년자인 나?”


미성년자를 방패 삼을 생각은 없지만, 이런 상황에는 써야 한다.


“그러니까 더 이상 일 귀찮게 만들지 말고 서로 할 거나 하자는 겁니다. 뭘 그렇게 사람 귀찮게 만드시나.”

“...”


냉정해도 너무나 냉정한 시현의 한마디에 박승연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미친놈이 다 있어, 진짜!”


박승연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회식 장소를 빠져나갔다.


“...”


협회 사람들은 멍한 얼굴로 시현을 바라봤고, 이내 누군가가, 짝- 짝짝- 짝짝짝짝- 하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협회 사람들이 시현을 향해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박승연은 여러모로 협회의 골치거리였다.


‘이 사람들도 미쳤나.’


미성년자하고 아줌마가 싸움이 났는데, 그걸 말리긴커녕 박수나 치고 있으니.


예술을 하는 놈들 중엔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더니만, 그게 딱 맞는 말이었다.


‘에휴.’


시현은 주위 사람들을 보며 조용한 한숨을 푹 내쉬었고, 씁쓸한 마음에 음료수를 들이켰다. 탄산의 맛이 기가 막혔다.


#


시현이 그렇게 회식에 참가할 때였다.


“네가 윤시현이구나?”


많은 사람이 시현에게 관심을 가졌다. 시현은 사실상 이번 행사의 주인공이었다.


“이야... 생각보다 평범하게 생겼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달이었다.


그 한 달 동안 박중현 화백은 영혼까지 털리고 있었고, 한국 미술계에 대한 관심도도 유례없이 높아진 상태였다.


그 일들의 주역이 시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아까 일도 그렇고. 듣던 대로 재밌는 친구네요.”


조금 젊은 남자 목소리에 시현은 고개를 돌렸다.


“어라?”


시현도 아는 얼굴이었다. 남자가 다가와 시현에게 인사한다.


“반갑습니다. HK그룹 부회장 성한수라고 합니다.”


HK그룹.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 그룹이다.


작가의말
한 대 맞으면 한 대 돌려주는 게 이 바닥 상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86 수피
    작성일
    23.09.04 19:52
    No. 1

    미술을 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자기그림을 그릴생각을해야지, 어중간하게...'.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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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미술대전 23.09.07 1,448 24 12쪽
12 내가 사는 세상 23.09.06 1,473 2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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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식 +1 23.09.04 1,630 3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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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검증 23.09.03 1,696 40 12쪽
7 당해봐라 +4 23.09.02 1,701 44 12쪽
6 대담 +1 23.09.02 1,682 34 12쪽
5 썩 나쁘지는 않다 23.09.01 1,692 38 12쪽
4 전시회 +1 23.08.31 1,749 3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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