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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하는 천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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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포라
작품등록일 :
2023.10.03 19:16
최근연재일 :
2023.10.07 18:28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30
추천수 :
26
글자수 :
150,522

작성
23.10.05 17:16
조회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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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DUMMY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아버지는 넥타이를 당기시며 '아이고, 김부장 말 더럽게 많네. 저거 자르든가 해야지' 말을 뱉으며 들어오시곤 했습니다.


잔뜩 피곤해 보이는 모습은 일상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달려가 꼭 안겼어요.


조금씩 자랄수록 나의 작은 포옹이 큰 힘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삭막한 사회 이름을 가진 얼음 바다에서 탈출한 생존자가 구명정 위에 올라타면 따뜻한 담요를 찾듯이 온기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요」


김수연은 전에 자신이 썼던 글을 잠시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포시 들어 작은 키에 걸맞지 않게 근엄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최상현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전에 적었던 아버지의 모습과 같은 반 친구 모습이 찰싹 겹쳤다.


한 번 더 확인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을 흔들었다.


"상현아."


자신도 모르게 작게 나온 목소리.


다행히 상대는 바로 알아차리더니 고개를 들고 굳어있던 표정에서 한줄기 미소를 머금었다.


"또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네."


"아니야. 내려온 지 얼마 안 돼."


이건 사실이었다.


아버지랑 시간을 보내다가 아직도 최상현이 호텔로 귀가하지 않은 걸 알게 되자, 조용히 로비로 나와 공책을 꼭 쥐고 삶을 필기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김수연이 진실하게 볼을 부풀린 모습을 보이자, 최상현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 앉았다.


중학생 남자 손에는 어울리지 않게 흑연이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들고 있는 공책 또한 손때가 많이 묻어 뻣뻣하지 않고 부드러운 질감으로 와닿았다.


자신이 들고 있는 글 쓰는 용도의 공책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을 텐데 이상하게 크고 무거워 보여,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조금 옆으로 몸을 당겼다.


"그림 그리는 거 재밌어?"


"음?"


"그냥 궁금해서."


"네가 볼 때는 어떤데?"


"모르겠어."


"재밌어. 그러니까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붓을 놓지 않고 있는 거지."


"정확히 어떤 부분이 재밌는데?"


"사람들이 내 그림에 탄성을 내뱉는 거."


"그러면 그림이 아니라 반응을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겠네. 표현하는 과정보다는 결과에 흥분하는 거지. 나는 누군가 내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며 빠져나가지 못하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


중학생 화가는 눈을 깜박였다.


거장이 되리라.


그 목표로 달려왔는데 오늘 두 번 제동이 걸렸다.


하나는 불길한 표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깊게 찌르고 들어온 질문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게 재밌는가.'


입과 다르게 머리는 즉답을 뱉지 못했다.


위작을 그린 시간이 억울해서, 영원히 기억될 그림을 남기고 싶어서.


이 두 가지 동기는 떳떳하게 최상현 이름 그대로 걸린 그림을 본 관중들이 탄식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게 재미가 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지 물어본다면 답이 엉켜 복잡한 호선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응? 뭐가."


"수연이 너랑 있으면 늘 좋은 결과가 따라와. 행운의 네잎클로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다행이네."


김수연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어깨에 기대었다.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하품하는 건 부가적인 요소였다.


다행히 최상현은 밀어내지 않고 조용히 신체를 나무 기둥처럼 쓰라고 빌려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로비 밖 오사카 풍경이 달무리도 지워지는 심야가 될 때까지 같이 호흡했다.




짧은 오사카 일정을 즐길 수 있는 희소한 날.


해님이 떠올랐다! 외치기에는 조금 초라하게 산등성이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을 때, 특별하게 마련된 공간 앞에는 인파가 방파제 없이 마구잡이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대에 이름을 남긴 거장의 작품에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설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우리 일행은 VIP 표를 끊어두었기에 덩치 큰 경비들 뒤에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다행히 낮이 도래하지 않은 데다가 내부라서 더위를 버틸 수 있었고, 일행에게 감상할 때 주로 눈여겨봐야 하는 포인트를 알려주다 보니 개장 시간이 되었다.


"이거 원래는 관심 없던 영역이었는데 덕분에 새내기 미술 학도가 된 기분이야."


"한 번 입문하면 빠져나가기 힘들 매력을 지니고 있죠."


어찌 보면 아저씨는 그냥 딸이랑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그림이 아니라 그냥 늘어진 잡초 더미라도 행복해하지 않을까.


살짝 웃음을 짓고 내부로 발을 들이밀었다.


초입부터 이어지는 르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든 감성은 오길 잘했다는 점선이었다.


그와는 그렇게 긴 시간을 같이 있었던 게 아니다.


부잣집에서 여유롭게 붓을 놀리고 있을 때, 이야기를 몇 번 나누던 일종의 귀빈이었다.


아, 물론 여기서 귀하다는 뜻이 아니라 귀신이라는 뜻이고.


이러다 보니 작업실에 늘어진 캔버스는 많이 보았는데 번듯하게 걸려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으로 전시장과 어우러지는, 폭발적인 거장의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는 거라 흥미 가득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요즘 그림은 액자와 전시장에서 결정된다고 하더니. 신경 많이 썼네요."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분위기를 표현하자면 신선의 나라에 발을 들이민 듯 신비로웠고, 기존의 개념과 법칙이 부서지면서 비처럼 후드득 떨어졌다.


이런 공간을 산책하고 있으니, 시간의 흐름이 부서져 내렸고,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나갈 시간이 되었다.


약간 아쉬움을 가지고 팔짱을 낀 상태로 밖에 나오는데,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마주했다.


"앗, 작가님. 여기서 뵙네요."


작지만, 다부진 체구를 한 남자는 미술 잡지 기자였다.


유명한 곳에서 일하는 만큼 능력도 있었고, 예의도 있으며 조잡한 기사 따위는 쳐다보지 않는 언론인이기도 했다.


몇 번 만난 적은 없으나, 만날 때마다 좋은 인상이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인사를 받자마자 나도 웃으면서 손을 내밀고 반겨주었다.


"여기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화가로서 머나먼 선배 그림을 보러 왔는데, 기자님은 어쩌다 오사카까지 오셨습니까? 도쿄에서 일어나는 일만 신문에 담아내시는 줄 알았는데요."


"하하. 담당이 갑자기 아프다고 해서요. 본인도 기대한 모양인데 감상은 가능해도 글을 쓸 힘이 없다니 제가 급하게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아, 작가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혹시 감상평 말씀해 주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


"르네 마그리트에 관해서라···"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전의 기억을 다시 한번 더듬게 했다.


'난 항상 붓을 쥘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 혹시 어머니 눈에도 이런 세상이 보이지 않았을까. 이런 풍경이 남들과는 다름을 안겨주어 결국 현실에서 완전히 밀어낸 게 아닐까.'


그는 좋은 집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나, 그 범위에 어머니는 없었다.


남들에게는 잘하지 않는 정신병으로 자살한 어머니에 대한 탐구를 이미 죽었던 나에게는 중얼거리듯 뱉어내고는 했다.


'사과를 좋아하셨다면 이렇게 사람 얼굴 위에 사과가 얹어진 풍경을 보셨겠지. 사과가 아니라 체리였다면 체리로 보였을 것이고.'


그에 대해 나는 이런 답을 내놓았고 붓을 움직이다가 피식 웃으며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더니, 오늘 작업은 여기까지라 외친 다음 나와의 대화를 더 길게 이어가곤 했다.


긴 상념에서 깨어나 기다리고 있는 기자를 보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저에게는 우정입니다."


이런 표현은 농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기자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재치 있는 답변 감사합니다."


이렇게 짧게 말하면 날조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믿을 수 있는 기자니까.


답변했으니, 이만 가봐도 되겠냐고 물어보았다.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한쪽 눈썹을 들어서 입술을 삐죽였다.


"예. 시간 뺏어서 감사합니다."


고심 끝에 스르륵 흘러나온 어설픈 한국에서 피식 웃었다.


정정해 주니 그도 멋쩍게 웃었다.


"최 상과 인터뷰하려면 더 많이 연습해야겠네요."


"지금은 일본에서 활동하지만 결국 고국으로 돌아갈 건데 그때 기회 되면 초대할게요."


"그동안 더 열심히 공부해 두겠습니다."




하유루는 촉새는 아니었다.


다만 최형수와 있었던 일은 자신의 고용주와 관련 있었기에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머금었을 뿐이다.


시대에 이탈한 사람 같다는 그 이야기를 들은 고용주는 씩 웃었다.


"확실히 제가 성격이 독선적이긴 하죠. 틀릴 말 하나 없네요."


"그런가요?"


"어쩌겠습니까. 현대 미술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내 재능이 개화한 건 평면 유화 세상에서 몸부림치는 천사를 마주했을 시기인 것을."


후르르릅.


"영향을 받고 따라가고 싶은 이들 모두 모더니즘 시대를 살았으나, 따라서 모던 보이가 되는 모양입니다."


쭈욱.


다행히 이 학생은 그 발언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오사카에서 돌아와 조용히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던 소년은 쓰던 붓을 만지며 콧노래를 흥얼거릴 뿐이었다.


햇살이 작업실 안으로 기어들어 와 코끝을 간지럽히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상한 나비가 창밖에 붙어 날갯짓한다.


작게 한숨을 쉰 하유루는 작업실을 살펴보다가 이전과 달라진 모습에 입을 작게 벌렸다.


원래도 여기 공간이 단정하긴 했으나, 오늘 보니 쓱 닦은 걸레까지 정돈되어 있었다.


호텔은 치우는 사람이 있을 테니 깔끔하겠지만, 여기는 계속 작가 혼자만 쓰던 임시 작업실이다.


"작업실이 강박적일 정도로 정리되어 있네요."


"추상에 그리면 곧은 선을 자 없이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더군요."


"아···"


"말 나온 김에 작품 하나 보여드릴게요."


쓰윽.


앞에 있던 천을 거두자 가려져 있던 캔버스가 드러났다.


"어떻습니까?"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요. 이 작품은 제목이 어떻게 되나요?"


"지금까지 그림 중에 제목은 가장 길어요."


<추격을 피해 화병 가게 안으로>


어두웠다.


흑, 청을 중심으로 유사색으로 칠해놓은 추상은 어두웠다.


동시에 이상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오른쪽에 네모난 문으로 추정되는 사각형, 그리고 사람으로 보이는 막대기 두 개가 황급하게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 뒤로 작은 동그라미는 추격자를 암시하고 있었다.


이게 추상에서 나올 수 있는 감정인가?


그저 도형일 뿐인데 머릿속으로는 하나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올랐다.


제목에서 이미지가 떠오른 탓도 있겠지만, 그냥 그림 자체가 친절했다.


그녀는 눈그늘 진 두 눈을 깜박였다.


좋았다.


최상현이 시대에서 이탈하고, 괴상하고 그런 인물인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그의 손가락에서 만들어지는 그림들이 그저 좋을 뿐이었다.


파랑새가 캔버스 위에서 녹아내린 듯한 풍경이 안구에 맺히고, 숨을 길게 내쉬면서 점점 더 깊게 빠져들어 갔다.


"행운이에요. 이런 그림을 먼저 볼 수 있다는 건."


최상현은 이미 나간 뒤였다.


오로지 혼자 남아 다른 이들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명작을 독차지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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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23.10.04 77 0 12쪽
20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1 23.10.04 73 0 13쪽
19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23.10.03 79 0 13쪽
18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23.10.03 84 0 13쪽
17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23.10.03 76 0 11쪽
16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23.10.03 68 0 12쪽
15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23.10.03 75 1 13쪽
14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3 23.10.03 79 1 11쪽
13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23.10.03 103 1 18쪽
12 episode 1-오명 +1 23.10.03 86 1 13쪽
11 episode 1-오명 23.10.03 79 1 12쪽
10 episode 1-오명 23.10.03 83 1 13쪽
9 episode 1-오명 23.10.03 86 1 12쪽
8 episode 1-오명 +1 23.10.03 92 1 15쪽
7 episode 1-오명 23.10.03 96 1 15쪽
6 episode 1-오명 +1 23.10.03 112 2 15쪽
5 episode 1-오명 +2 23.10.03 132 2 13쪽
4 episode 1-오명 23.10.03 161 2 11쪽
3 episode 1-오명 23.10.03 210 3 20쪽
2 episode 1-오명 +2 23.10.03 296 3 15쪽
1 episode 1-오명 23.10.03 354 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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