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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하는 천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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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포라
작품등록일 :
2023.10.03 19:16
최근연재일 :
2023.10.07 18:28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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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글자수 :
150,522

작성
23.10.0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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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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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DUMMY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최상현에 대해서 대부분의 원로는 긍정적인 반응을 토해냈다.


그 말은 부정적인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미리 양해를 구했으나 그럼에도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런 감정이 경단처럼 뭉치더니, 친목과 미래를 위한 호텔 방 모임에서 거론되는 주제로까지 번졌다.


"아니 또 최상현. 그놈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입니다."


"어허,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라는 뜻 아니요. 행패만 부리지 말고 진지하게 임해보시오."


"그쪽 켄지로가 이미 누르려고 하다가 오히려 사태가 더 커진 거 아닙니까. 그림 한 점 도쿄에서 소개하고 끝날 거 미술관 하나를 통째로 빌리게 되었어요."


"결국 그림은 팔려야 합니다. 그런데 최는 그림을 안 팔고 있죠. 이걸 이용해서 대여만 계속해서 돈 불린다는 소문을 냅시다. 어설프게 돈만 보는 어린애라는 제목 괜찮지 않습니까? 중요한 건 언론에서 매장할 수 있는지입니다."


"언론? 부총재가 지랄하지 말라고 압박 중 상황에서요?"


"그건 정치 분야이고 미디어는 아니에요."


"두 개를 따로 떨어뜨리는 게 가능합니까? 유착되어 서로 물고 빠는 한 몸이라는 거 다아는 마당에."


언성이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문이 벌컥 열렸다.


일부러 발을 구르며 쿵쿵 소리를 터트리며 걷는 한 남자.


야차.


당연히 이름은 아니다.


그가 살아오면서 벌였던 행동들을 본 이들이 지은 별명이었다.


야차는 대뜸 소파를 걷어차며 폭소했다.


"푸하하하하하. 나 살면서 이렇게 재밌는 일은 처음이야. 외국에서 온 꼬맹이가 미술 시장 거래 규모를 80년대 수준으로 되돌리고 있어."


머리를 잡고 바닥을 뒹굴더니 소파 위에 다리를 척 올려 거꾸로 물고선 자세로 눈깔을 뒤집었다.


그 모습이 어딘가 아프거나 귀신 들린 것 같았으나 평생을 이리 산 할배라는 걸 모두가 알기에, 말리지 않게 엮이지 않으려고 자리만 비켜주었다.


"근데. 이렇게 재밌는데 밖에 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


'재능을 떠나서 꺼림직한 기분이 들어.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일으킨다는 말도 있으니.'


'내가 혐한 극우는 아니지만, 다른 나라 사람을 굳이 우리 돈 들여서 키울 이유가 없어.'


입술을 삐죽 내밀고 억지 성대모사를 하는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추하게 보였으나 나서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방을 훑어본 야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끼에에에엑, 새 몸통 차에 부딪히는 비명을 내질렀다.


콰직.


그러고는 유리컵을 손으로 깨트렸다.


박살한 유리들이 피를 머금고 바닥으로 토도독 떨어지더니, 조명까지 머금어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야차는 피가 흐르는 손으로 모여있는 화가들을 한 명씩 짚었다.


자신이 성대모사를 했던 이들이 주 타깃이었다.


"야. 너 30년 전에 미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흙탕물은커녕 물에 둥둥 떠다니는 이끼만도 못할 거라는 소리 들었지. 그런데도 기어코 맨해튼 길거리 노숙하다가 총 맞고, 다리 병신 되는 고생하면서 이름 석 자 박아 넣었어."


한 명.


"그리고 너는 인마. 권총이 아니라 대전차 로켓 판저파우스트 맞은 이토 히로부미 머리통 펑 터지는 해괴한 그림으로 떴지?"


두 명.


···


떠든 이 대부분이 저격을 먹었고 맞는 말에 대꾸하지 못하며 헛기침만 내뱉었다.


"크흠."


야차는 지혈해 주는 문하생에게 지폐를 꽂아주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어이가 없네. 다들 왜 이렇게 늙어버린 거야?"


그리고는 다시 킥킥 웃었다.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 있고 반대쪽은 축 늘어져 있어 구안와사가 왔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나는 너희들처럼 살고 싶지 않아. 시기, 질투. 그런 감정도 젊었을 때처럼 오로지 붓에만 담아낼 거야. 아, 설레지 않아? 꼬마 신발 밑창에 깔린 껌딱지가 된 이 느낌으로 표현한 그림이 도대체 어떤 모양이 될지!"


쾅!


반쯤 붕대를 감은 손으로 탁자를 내리쳐 온갖 곳에다가 피를 흠뻑 뿌리더니 자기 머리카락을 붙잡고 뜯어내면서 고개를 크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키기기긱. 너무 즐거워. 너무 즐거워. 너무 즐거워. 너무 즐거워. 역시 안 뒤지고 그림에다가 욕정 하며 이 나이 처먹도록 살기를 잘했어. 저승에서는 이런 쾌감은 못 느낄 거야. 너무··· 즐거워어아어어어어!"


제 할 말 다 쏟아내더니 다시 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갔다.


야차를 따라다니는 문하생들도 고개 숙여 인사하자마자 뒤따라 나갔다.


야차가 나가고 조용해진 내부.


입 다물고 있던 원로 중의 한 명이 눈썹을 크게 꿈틀거렸다.


"저놈은 도대체 누가 초대한 거야?"


"아무도 안 불렀는데 난입한 게 백이십 일곱 번째야."


"그걸 다 세고 있었나?"


"징글맞게도 수십 년 동안 십 달러 보니 나도 정신이 붕괴하더군."


한숨이 늘어지고 다들 멋쩍게 입술만 달싹이는 가운데, 조용히 있던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저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결국 화가는 그림으로 승부를 봐야 하죠."


야차 다음으로 이 남자가 시선을 독차지했다.


그 역시 한국에서 유명한 화가였는데 집안이 일본과 깊은 인연이 있어 이 자리까지 초대되었다.


"이 전시는 아카리를 필두로 하는 전시회 아니었습니까. 그럼, 그의 작품으로 대답해야죠."


일어나서 단추를 하나 잠그더니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던 방 안 구석에 있던 천을 잡더니 천천히 걷어 올렸다.


"그쪽이 추상을 시도한다고 했죠? 농간에 휘둘리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응수해 줍시다. 추상! 그 영역 안에서 붙어보자고요."


가림막이 사라지고, <과일 변주>라는 제목 달린 캔버스가 일동에게 나타났다.


그 그림을 본 원로들은 동시에 한쪽 눈을 구기거나 입술을 깨무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이게 아카리가 만든 작품이란 말인가?


"확실히 그의 붓 터치야. 그런데 느낌이··· 이전과는 달라.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진화. 화가로서 한층 진화해 머릿속에서 입체적으로 재구성되는 그런 느낌이 들어."


다가오는 관중들을 보며 입가에 깊은 호선을 그린 남자가 손을 살짝 움직였다.


그 모습은 마치 인간을 조종하는 지휘자와 같았다.


"삿포로에서 밀려나고 칼을 가는 심정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이런 작품 소개를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하는 모습에 다들 의아해하다가 이내 한 가지 추측을 하였다.


'또 다른 한국인이 아카리에게 무언가를 했다.'


어떤 수작인지 모르겠으나, 여기 모임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언론으로 찍어 누르거나, 실질적인 협박을 하는 게 아닌 정말 순수한 그림 경쟁이다.


이상하게 올라오는 찝찝한 기분 따위는 품고 값어치가 없었다.


시선이 주목되고 관심이 끌린 이 상황.


남자는 익숙하다는 듯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한 발을 앞으로 뻗었다.


"자, 사람들의 시선을 돌려봅시다. 도쿄에서 오사카로. 최상현에게서 아카리에게로."


그리고는 호텔 직원이 가져다준 샴페인 병을 땄다.


부글거리면서 솟아오르는 거품은 순식간에 분위기를 경직에서 부드럽게 풀어버렸다.


무리는 알코올이 만들어 내는 승리의 분위기에 도취하여 간다.


걱정은 녹아서 카펫이 되고 그 자리가 흥분으로 채워져 이성이라는 끈을 잠시 내려놓았다.




신칸센을 타면서 열차 도시락을 몇 개 샀다.


맛은··· 솔직히 말해서 온도감이 나으니까 초밥 빼고는 그다지 입에 붙지는 않았다.


맛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보온 상태로 따끈하게 먹는 김만 있는 밥이 더 당긴다는 이야기다.


"전자레인지에 2분 데우고 싶었어."


"나도."


마지막 남은 흰살생선 돌돌 말린 초밥을 입 안에 넣고 꼭꼭 씹었다.


워낙 빠르기로 유명한 기차라 풍경이 보이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빠르게 넘어가기만 할 뿐 전경을 보기에는 충분했다.


그 속도감도 조금 있으면 끝났다.


2시간 30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만에 동에서 서로 가로질러 오사카에 당도했다.


아저씨, 김수연 두 사람과 함께 가는 여행길은 이동 시간이 워낙 짧다 보니 이제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는 처음 와보는데··· 심각하게 볼 게 없네."


"그러게. 그냥 사람만 많다."


서일본의 중심지, 한국인들이 밀려드는 도시 오사카.


그래서 기대를 머금었는데 역은 보잘것없었다.


말 그대로 기차가 멈추는 용도이고 상업시설 하나 없었다.


아주 조금 실망하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시계를 보니 11시, 체크인 시간은 멀었지만, 비싼 방을 잡았기에 짐을 맡아준다고 들었다.


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를 찾고 있으니, 아저씨가 말을 붙였다.


"그래. 일정이 어떻게 되는가?"


"체크인한 다음 바로 전시회장으로 갈 거예요. 2박 3일 짧은 일정이라서 머뭇거리면 아쉽죠."


"그렇군."


"지난번에 말했던 르네. 그 대가의 그림을 보러 가는 거야?"


"그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줄 서야 해. 오늘은 일본의 기라성들이 전성기에 창조해 낸 작품들을 감상하자고."


"응!"


택시에 타면서 포옹하는 두 부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부족하지만, 실마리 같은 영감이 일렁거렸다.


사랑이라는 언제나 좋은 소재이고, 하물며 지금 내가 그리는 추상 에피소드의 중심 감정이지 않은가.


사이가 좋은 두 사람이 소곤거리며 이야기하고 서로를 보며 까르륵 웃음을 터트리는 장면을 캔버스 위에 수놓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왕 실을 잡은 김에 좀 더 구상을 이어가고 싶었으나···


"손님 도착했습니다."


역이 보잘것없는 대신 시내 근처에다가 지어놓았는지 15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도쿄에서 머물렀던 호텔과 똑같은 브랜드에 머무르는 게 재밌었다.


나중에 해외에 여행가도 또 여기 브랜드에 머물 것 같은 불길··· 아니, 복잡한 예감이 들었다.


어쨌거나 짐을 맡긴 다음 가벼운 몸으로 다시 호텔에서 나왔다.


아까 수연이에게 말했듯이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에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했다.


"자, 여기."


"고마워."


그녀는 잠깐 사이에 얼음을 사 와서 건네주었다.


이마와 목에 올려서 외출할 때 몰아치는 열기에 대비했다.


선크림은 이미 도쿄에서부터 분장 수준으로 하얗게 칠해놓았기에 더 빠를 필요가 없었다.


"이거 일할 때보다 더 바쁘게 움직인 것 같아."


허탈하게 웃는 아저씨가 잡아놓은 택시에 올라탔다.


차 안에서 물을 들이켜고 있던 기사님이 환하게 웃으면서 반겨주셨다.


"어디로 가십니까?"


"오사카 시립 미술관으로 가주세요."


르네의 작품은 따로 공간을 만들어 특별 전시를 하고, 일본인들의 작품은 1936년 개관한 오사카 시립 미술관에서 열린다.


우습게도 나는 여기에 개관 기념 작품을 그려낸 적이 있었다.


나치가 넘긴 걸 내가 위조하는 작업을 해서 걸렸었지.


부끄러운 과거, 협박을 당했으나 그린 건 결국 내 손이라는 점을 떠올리다가 크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가는 길에 궁금증 하나 해소하자는 생각이 들어 몸을 조금 앞으로 당겼다.


"궁금한 게 있는데 오사카분들은 총을 쏘는 흉내를 내면 억하고 쓰러진다고 들어서요. 진짜인가요?"


"아, 그거 요즘은 안 합니다. 거의 20년 전 유행이었어요."


"아쉽네요."


"요즘은 기관총 정도는 돼야 응수해 줍니다."


일본어로 된 농담에 피식 웃고 두 부녀에게도 통역해 주었다.


아저씨는 껄껄 웃으셨지만, 수연이는 억지로 웃는 게 보였다.


나름 유쾌하게 택시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미술관에 도착하자, 내리면서 피쳐폰을 꺼내 들었다.


통신기기는 마약과도 같았다.


이제는 이 녀석이 품 안에 없으면 불안 증세까지 왔다.


세상과 연결하는 소통 창구가 독방에 하나 있는 창처럼 느껴지니 이게 중독이 아닐까.


만져서 혹시나 울릴 수 있으니, 소리를 죽여놓는다.


그렇게 기계가 지르는 비명에 살인 예고를 던지고 전시회장으로 들어가려는 그때, 길게 늘어선 줄이 내 시선을 끌었다.


원로들 그림이 그려진 방향이 아니다.


다른 쪽.


익숙한 이름을 가진 화가 전시 공간에 길게 줄이 서 있었다.


들어가는 사람은 기대감을 머금고 나오는 사람은 환하게 웃음을 짓는다.


여름의 더위가 주는 습하고 불쾌함 따위는 전혀 찾을 수 없는 기묘한 모습이 가부키 연극과 같아 시선을 쉬이 거둘 수가 없었다.


결국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대열에 합류하며 모자를 눌러썼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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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23.10.03 84 0 13쪽
17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23.10.03 76 0 11쪽
16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23.10.03 68 0 12쪽
15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23.10.03 75 1 13쪽
14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3 23.10.03 79 1 11쪽
13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23.10.03 102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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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pisode 1-오명 23.10.03 79 1 12쪽
10 episode 1-오명 23.10.03 83 1 13쪽
9 episode 1-오명 23.10.03 86 1 12쪽
8 episode 1-오명 +1 23.10.03 91 1 15쪽
7 episode 1-오명 23.10.03 96 1 15쪽
6 episode 1-오명 +1 23.10.03 112 2 15쪽
5 episode 1-오명 +2 23.10.03 132 2 13쪽
4 episode 1-오명 23.10.03 161 2 11쪽
3 episode 1-오명 23.10.03 210 3 20쪽
2 episode 1-오명 +2 23.10.03 296 3 15쪽
1 episode 1-오명 23.10.03 354 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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