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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하는 천재 화가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메타포라
작품등록일 :
2023.10.03 19:16
최근연재일 :
2023.10.07 18:28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28
추천수 :
26
글자수 :
150,522

작성
23.10.03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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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DUMMY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이완용 애비는 불구가 틀림없다, 조금이라도 건강했다면 완용이가 광산에다 팔았을 거다.」


삐이이이익.


"아이씨. 최 형! 오늘 순경들 왜 이리 빨리 뜨는 거요?"


"몰라! 넌 글이라도 한 소절 남기기라도 했지. 난 붓 한번 못 놀려봤다고!"


내선일체를 미화하던 향상회관 담벼락에다가 탈모 걸린 이완용 그림을 그릴 원대한 계획을 실행하려던 날, 새벽 무렵인데도 졸지도 않는 순사에게 딱 걸렸다.


아는 동생과 나는 경성부 은평면을 벼락처럼 질주하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헉··· 헉··· 저놈들은 지치지도 않나?"


"글쟁이에··· 그림쟁이보다··· 군인이 체력 좋은 게 당연하지."


삐이이이익.


"거기 서라아아아아아! 빌어먹을 조선인!"


점점 거리고 좁혀지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대로 가다가는 잡혀서 고초를 당할 게 뻔해지던 그때, 한 가게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손 하나가 몸을 팍 끌어당겼다.


달리던 힘 때문에 동생과 동시에 안으로 구른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숨을 죽이시오."


일본어에 의구심이 들긴 했으나, 일단 시키는 대로 헐떡이는 입술을 막았다.


남자는 다시 문을 걸어 잠그더니 우리와 같이 몸을 숙였다.


삐이이이익.


밖에서 들리던 호각 소리가 아주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기 시작했다.


대신 안쪽에서 새로운 인물이 나왔는데 졸리는지 연신 눈을 비비는 꼬마였다.


"괴물!"


"아야세,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작은 목소리로 호통치고는 품 안으로 끅 꿇어앉았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아닙니다. 덕분에 저희가 구명의 은혜를 입었는데 더한 모욕을 하신다고 해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저는 일본어는 잘 못하지만, 감사하다고 마음이라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최 형. 이 맥락이 맞소?"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두리번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순사는 보이지 않으나, 혹시 모르니 30분 정도 앉아있다 가십시요. 물 한 잔 내어드릴 테니 숨도 돌리시고."


다시 감사를 표현하기도 전에 남자는 안으로 들어갔고, 꼬마 아이만 멀뚱히 우리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색해서 시선을 돌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파는 물건을 관찰하게 되었다.


일본 귀부인들은 다도와 꽃꽂이를 주로 한다더니, 각종 다기와 꽃병 등을 파는 가게로 보였다.


중국에서 들어온 청자들은 깨질까 봐 고개만 빼꼼 내밀어 구경하고 있으니, 아이가 다가왔다.


"흐음."


품 안에 꼭 껴안고 있는 인형은 삼배 안에 짚을 넣은 형태였는데 유난히 낡고 형태를 알 수 없으나, 아이에게는 소중한 보물인지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는 내 바로 앞 두 발짝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괴물이라고 불렀던 게 미안했던 걸까?


아니면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일까?


나 또한 눈을 마주하고 한참을 그렇게 있으니, 시간이 좀 걸린 남자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가져갈 수 있게 단단한 병에 담은 물과 10원을 챙겨 주었다.


그때 당시에는 100전이 1원이었고 빈민층이 하루 10~20전으로 생활하던 때였다.


어림잡아 1원이 지금이 7~8만 원 정도였으니 상당히 거금이었다.


"이게 무슨 돈입니까?"


"지금 시대가 뭔가 이상합니다. 남의 나라를 무단으로 점령했는데 내부에서 반대 의견이 나와도 죄다 묵살당하고 있어요. 저도 떠난 아내가 조선인이었기에 나라 잃었다는 원망을 이해합니다. 그래도 이 돈을 독립자금으로 사용하시며, 열도의 모든 이들이 인간 가죽 벗어 던진 건 아님을 기억해 주십시오."


거절하려는 내 손을 잡고 꽉 쥐여주는데, 쉽사리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돌아갔다.


나중에 은혜를 갚기 위해 그 가게를 찾아갔을 때, 남자와 딸은 변사체로 죽어있었다.


삼배 인형이 데구루루 굴러 발치에 닿았을 때 소름이 돋아 뒷걸음질 쳤다.


가게에 붉은 글자로 적힌 이지매의 흔적들, 조선인과 결혼한 칙쇼라는 그런 글자들을 보던 동생과 나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아는가?


그들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거다.


주변 왜인들에게 그 남자의 이름이 무엇 있는지 물어봐도 다들 침묵하거나 꺼지라며 구정물을 퍼부었다.


그리하여 나는 은인의 이름을 영영 모르게 되었다.


1914년 6월 29일.


지구 반대편에서 사라예보 사건이 터지고 하루 뒤의 일이었다.


동생과 나는 실로 두렵다는 감정을 느꼈다.


우리가 단순히 일제와 싸우는 게 아니구나.


우리는 다들 미쳐가는 광기의 시대와 싸우고 있구나.


독립을 향한 투쟁이 길고도··· 길고도··· 아주 길 거라는 예감을 동시에 느꼈다.




"와··· 천재라는 뉴스 봐도 안 믿겼는데 진짜 대박을 터트렸구나. 사람 엄청나게 많다."


김철은 자기 딴에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나는 녀석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예의를 차리기 위해 무스로 머리를 잔뜩 올려둔 모양새였는데, 80년대 유행하던 코미디언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래도 옷은 나름 멋지다고 할 수 있었는데 고급 정장인지라 잘생긴 외모를 받쳐주고 있었다.


"카페에서는 소리 좀 높아도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해도 되."


"아, 그래? 그림 구경할 때는 다들 숨죽이고 있는 분위기라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는데. 물론 네 그림은 지루하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이해해. 소란과는 거리가 먼 환경이지."


김수연이 방학도 아닌데 일찍 찾아왔다면, 김철과 문유아 선배는 방학식 끝나자마자 날아왔다.


둘 다 부잣집인지라 보호자 없이 일본 건너오는 건 익숙한 모양이었다.


동네 놀이터 가듯 일본까지 와준 동아리 회원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도··· 최상현의 인맥이 그다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통틀어 또래 친구가 세 명 뿐이라니.


"상현아. 전시 잘 봤어. 기차에서 지워진 유리창 흔적이 아쉬웠는데, 실제로 보게 되니 더 대단하다는 느낌만 올라오더라."


"고마워요. 선배."


"헤헤. 난 이번이 세 번째인데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어. 집으로 사가고 싶어질 정도야."


마지막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김수연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그녀가 발을 휘청거리는 바람에 뺨에 살짝 닿게 되었다.


"조심해야지."


"아··· 순간적으로 미끄러워서 실수했어. 미안해."


기울어진 몸을 일으켜주고 어깨를 한번 두드려주었다.


관람 전 공원에서 여름 햇살을 잔뜩 즐기고 왔는지, 냉방 장치 돌아가는 공간 안에서도 살갗에 열감이 묻어있었다.


김수연이 몸을 비틀면서 한 발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문 선배가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너 철이하고 수연이한테 예술의 길을 같이 걸어보자고 제안했다면서?"


"그렇게 우아한 표현은 아니었지만, 맥락은 비슷해요. 아직 진로 안 정했으면 같이 복합 미술 작품 하나 남기지 않을까 하는 제안이었죠. 말 나온 김에 선배도 문학에 재능있으시니 함께 하시지 않으실래요."


"난 의사라는 확정적인 진로가 있어서. 그리고 문학이라면 수연이가 더 뛰어나."


"네? 전혀 몰랐는데요."


"동아리 보고서만 봐도 아주 흥미로운 모험담을 적어온다니까.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왜 위험한 폐가 활동을 용인하고 있겠어. 다 그 글 보고 홀려서 그런거지."


다른 친구들이 못 듣게 가까이 붙어서 속삭이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상당히 재밌는 반전이었다.


"그래도 1년 반 동안 같이 있었는데 아예 모르고 있었다는 게··· 미안하네요."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어. 네가 그림에 재능있는 줄 아예 모르고 있었잖아."


좀 더 깊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신 입으로 호선을 그었다.


음악가는 모든 사물을 음표로 본다는 말이 있다.


길을 걷다가도 두둥실 떠올라 오선지를 그린다고.


나 같은 경우는 모든 사건을 색감으로 분류했다.


유난히 반짝거리는 머릿결의 검은 광택이나 창문에 살포시 얹어진 하늘의 푸름을 보면 잊지 못할 장면으로 기억 액자에 넣어두는 것이다.


지금 친구들과 나누는 시간은 아주 밝은 파랑으로 와 닿았다.


그만큼 내 가슴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좋네. 만 리까지는 아니지만, 천 리는 넘는 타국에서 친구들과 있으니 정말 좋아."


"응? 만 리가 몇 KM야? 수연아 너는 알아?"


"으음··· 4천이라고 알고 있어. 서울에서 도쿄가 천··· 하여튼 그쯤이니까 상현이 말대로 몇천 리 타국이야."


"역시 천재!"


"하아··· 철아. 넌 얼굴은 잘생겼는데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많이 모자라 보여···"


"참, 이번 방학 때 동아리 활동 계속할 거야?"


"네. 여기도 그 활동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있어요. 새로운 환경은 언제나 환영이죠."


"그렇다면 우리도 최대한 안전하면서 무서운 장소로 알아볼게."


"서로 상충하는 분야 아니었나요?"


"학교 이름을 빛내는 화가님을 위해서라면 보완할 방도를 찾아봐야겠지."


대화를 나누면서도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 이 순간을 잊고 싶지가 않아 스케치로 남기는 거다.


그림 사이사이에는 물감 색을 적어두었다.




전시 일주일.


근교 미술관 인근 주차할 자리가 없어 난리가 날 만큼 「최상현 개인전」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발을 내밀 때는 '중학생이 이런 표현 기법을?' 이런 감상평을 뱉으려고 왔던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보고 난 다음에는 '이런 표현 기법을?' 이라며 감탄하곤 했다.


다만 이런 화재의 중심에 오르다 보면, 단순히 경외감만 품지는 않는다.


어떻게든 넘어뜨리기 위한 질투가 시작되는 거다.


나는 도쿄 협회 내부에서 투닥거림이 있었다는 걸 전해 들었기에, 시기의 씨앗이 그쪽 계파에서 발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협회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예상 범위에서 넘어갔다.


"오사카에서 움직였어요."


사흘 뒤, 유망한 신진 아카리를 필두로 일본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전시전을 깜짝 발표했다.


나, 최상현에게 쏠린 관심을 비틀어보겠다는 내용의 도발 문구를 첨부한 덕에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이건 일종의 도전장을 대문에다가 던진 것과 같았다.


'타국의 졸개가 된 놈들아! 너희 천하가 영원할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어디 한번 승부를 걸어보자!'


여기에 반응한 도쿄 협회가 '나나 코노' 같은 화가들을 필두로 도시 오만 곳에다가 전시회를 벌이고 있었다.


"켄지로 씨가 얄미운 성격인데다 자기 잇속 챙기려는 게 눈에 보이긴 하지만, 이건 협회 차원에서 맞대응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오사카에서 작가님 전시회에 쏠린 시선을 뺏어가겠다고 하니, 저희는 도쿄 전체에 미술 패키지 투어를 만들고 요코스카 관광 상품을 포함 시킬 겁니다."


미술계에서 21세기 「세키가하라 전투 関ヶ原の戦い」의 서막이 열리는 것이다.


나름 참모 자리에 앉아있는 최형수가 적진에서 기독교 사제를 발견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지들도 용병 쓰네."


벨기에 왕립미술관, 마그리트 재단 및 컬렉터들에게서 르네 마그리트 그림들을 가져왔다는 소식이 첨부된 팸플릿이 펄럭거렸다.


"이건 급하게 할 수 없는 거예요."


"하지만 어떻게? 작가님 메인이 르네의 느낌이 충만하다는 건 알려고 하진지 얼마 안 되었잖아."


전시회는 일주일 전에 시작했다.


<오명>이 공개된 기간 또한 그러하다.


"내부유출도 가능성도··· 희미하고요."


설령 그리는 기간을 포함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거장의 작품을 움직이려면 반년에서 일 년 전에 조율해야 한다.


그러니까 오사카가 '최상현.' 이름에 발작했다는 증거까지 더하면 요코스카가 확정된 겨울철에, 벨기에로 사람을 보냈으리라.


"우연일 겁니다."


"네?"


"세상에는 믿기 힘든 경우에서 인연의 실이 닫는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다른 미술관에서 대여 기간이 끝나는 날이 지금과 겹친 거장이 르네였던 거죠."


"우연···"


협회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동안, 커피를 마시며 수염이 없는 턱을 만졌다.


팜플렛을 보니 <골콩트>를 소유한 더 메닐 콜렉션이 참여하지 않았으나, <사람의 아들> <연인> 등 작품은 들어오니, 관람할 재미는 차고 넘쳤다.


시간을 내서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머금고 있을 때 옆에서 팔을 툭툭 건드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다들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억울하지는 않습니까?"


"제가요?"


"일이 이리되면 '요코스카 최상현 전시회'가 오사카와 도쿄 미술 분쟁이라는 화두에 부품으로 전락할 겁니다. 원래라면 스포트라이트를 좀 더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 걱정에 피식 웃었다.


"일주일. 그리고 오사카의 특별 전시는 사흘 뒤니 합치면 열흘. 이미 폭발은 시작했어요. 막으려면 진작 막았어야지, 이미 늦었습니다."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원래는 오사카도 전시회 발표를 중간쯤에 터트리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예상보다 내 작품의 파급력이 컸다.


'장군! 상대가 이미 진영을 구축한 상태입니다!'


적의 참모가 예상한 것보다 내 이름이 달린 칼이 깊이 들어간 상태였다.


단순히 삿포로 대회에서 우승한 신진 작가이니 입소문 퍼질 때까지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한 모양인데, 통렬한 오판이었다.


누누히 말하지만 나는 이미 전생에서 열도 그림쟁이들을 자괴감에 괴사시키고 붓을 부러뜨리게 한 경험이 있었다.


그걸 모르는 이들이 주먹 날리다가 자빠져 코가 깨지는 건···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로 보였다.


"어쨌거나 이건 화가의 일은 아니니, 전 일어나보겠습니다."


노트와 연필을 들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본에 있는 동안 입에 달고 산 북해도산 우유가 효과 있었는지 성장통에 몸이 욱씬 거렸다.


골방에서 구타당한 기억 덕분에 이 정도 통증은 아무렇지 않아서 다행이다.


"데려다드릴게요."


하유루가 차 열쇠를 들고 뒤를 따라왔다.


창 밖으로 쏟아져 내리는 일본 풍경은··· 글쎄, 더 그리고 싶지가 않았다.


친구들 방문처럼 좋은 사람들을 담고 싶은 순간의 배경이라면 모를까.


그게 중심이 되는 건 에피소드 1의 세 작품만으로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주제는 뭐로 할까.


고민 한 줌을 등에 짊어지고 차에 몸을 실었다.




우우웅.


요코스카에서 도쿄로 왔다 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보니, 이제는 길도 낯이 익었다.


그런데 오늘은 저기 앞에서 추돌 사고가 나는 바람에 다른 길로 돌아서 가게 되었다.


"음? 여기 공원에는 학생들이 모여있네요."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도 보였고 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단순히 노는 게 아니라 담배를 뻐금거리거나, 날붙이를 흔드는 위압적인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소꿉장난 범위를 지나친 모습인데, 지나가는 어른 중에 이걸 말리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저 친구들은 왜 저리 떠돌고 있는 겁니까?"


"음···"


협회 명의로 된 차라 긴장하면서 운전하던 하유루는 어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눈을 살짝 찌푸렸다.


"한국인들은 자국 비판을 자주 한다고 하죠?"


"네."


"일본은 그렇지 않아요. 불만은 침묵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런데 그런 일반적일 때를 넘어설 정도로 심각한 경제 침체가 왔어요."


거대한 도시다.


하지만 20년 동안 바뀐 게 없기도 했다.


"한국이 IMF를 겪은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도 경제 체급이 커서 곁으로는 버티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저런 아이들이죠."


"가출 청소년 말입니까?"


"아직은 가출 집단은 아니에요. 야쿠자도 남아있고. 맞벌이로 지쳐있지만 기다리는 부모님도 있긴 하니까요. 저렇게 일탈을 즐기다가 안식처로 돌아가요."


"그렇군요."


"문제는 이게 지속할 거라는 거죠. 결국은 저 아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야쿠자의 자리를 대신할 거라는 예측이 많더라고요. 그러니까 일본의 어둠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문뜩 밤을 설치게 한 꿈이 떠올랐다.


'광기의 시대는 진정으로 하켄크로이츠와 욱일기가 불타며 끝났는가?'


어려운 주제이지만, 실마리를 풀어가다 보면 제법 재밌는 그림이 나올 그런 구상이 보였다.


"냄새나는 것은 뚜껑을 닫고 숨긴다."


물론 남의 나라 이야기만 할 수는 없으니, 한국의 문제도 같이 엮는 거다.


IMF와 경제 침체.


맞벌이 부부가 늘어남에 따라 방치되는 아이들.


아, 이 모든 걸 엮어낼 기법이 머릿속에서 점멸하며 떠올랐다.


추상!


선과 점으로 이루어진 미술로 80년대까지는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극사실주의와 팝아트 도래로 돈을 벌지 못하는 싸구려로 전락해버린 옛 영광.


일본에는 추상의 대가들이 넘쳐났다.


그들은 이리 말한다.


젊은이들이 구상 예술에만 빠져있다고.


실존하는 사물 표현도 좋지만, 유토피아에 대한 탐닉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고.


"오사카에 전시되는 기라성들 중에 추상화로 유명한 이들도 많은가요?"


"네. 한때 세계적으로 흐름을 타고 일본의 미술이 알려졌던 시기를 대표하는 게 따뜻한 추상화들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열기가 식었지만, 그 값어치는 여전합니다."


"제가 그 원로들을 정면승부로 꺾는다면 표정이 어떨 것 같아요?"


"네?"


하유루의 반문을 들으면서 손가락을 까닭거렸다.


추상!


분화구가 터지고 있었다.


공책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영혼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나이도 있고 고생도 했으니, 점잖게 살려고 했으나 본디 짓궂은 성격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돌아간다.


영감이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며 용솟음쳤다.


'자네도 죽은 건가?'


결국 터져 나와 흐르는 용암이 막혀있던 죽은 이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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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23.10.03 68 0 12쪽
15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23.10.03 75 1 13쪽
14 episode 2-우리는 행복합니다 +3 23.10.03 7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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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pisode 1-오명 23.10.03 79 1 12쪽
10 episode 1-오명 23.10.03 83 1 13쪽
9 episode 1-오명 23.10.03 86 1 12쪽
8 episode 1-오명 +1 23.10.03 91 1 15쪽
7 episode 1-오명 23.10.03 96 1 15쪽
6 episode 1-오명 +1 23.10.03 112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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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pisode 1-오명 23.10.03 161 2 11쪽
3 episode 1-오명 23.10.03 210 3 20쪽
2 episode 1-오명 +2 23.10.03 296 3 15쪽
1 episode 1-오명 23.10.03 354 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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