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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이스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에서 탄생한 고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완결

히아이스
작품등록일 :
2020.05.11 12:53
최근연재일 :
2020.08.11 19:41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28,496
추천수 :
502
글자수 :
383,659

작성
20.05.20 13:46
조회
584
추천
9
글자
13쪽

지옥의 문 -3-

DUMMY

출렁다리를 이어준 밧줄들은 마치 실밥이 뜯어지듯 하나씩 끊어져 출렁다리가 한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나머지 두 줄도 곧 끊길 것 같았다.


“젠장. 어떻게 하지?”


출렁다리는 점점 더 기울어지고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한나. 밧줄 잡고 넘어와. 곧 다리가 끊어질 거야. 중간에 있으면 더 위험해. 빨리 이쪽으로 넘어와!”


툭!


밧줄 하나가 또 끊어졌다. 이제 한나와 카뮈는 외줄에 매달려야 했다.

가브리엘과 진성이 하나 남은 밧줄을 잡고 있었지만 이미 여러 군데가 썩은 상태라 오래 버티기 힘들었다.

한나는 카뮈를 먼저 건너가게 했다. 몸집이 가벼운 카뮈는 생각보다 외줄을 잘 탔다.

문제는 한나. 바비큐 통닭처럼 거꾸로 매달린 그녀는 팔에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앞으로 나갔다.


“한나! 조금만 힘을 내.”


한나가 2/3지점을 넘어서는 순간 뒤쪽에서 ‘툭’하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 남은 밧줄이 끊어졌고 출렁다리는 양쪽 벽으로 강하게 부딪혔다.

한나는 하마터면 줄을 놓칠 뻔했지만 간신히 버텼다.

이제는 암벽 등반 하는 것처럼 줄을 잡고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줄도 언제 끊어질지 몰랐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플린트 선장. 가서 한나를 구해줘.”


가브리엘이 나섰다. 사람만 태우지 않는다면 날아서 가브리엘이 있는 곳으로 올 수 있었다.


한나는 올라오기는커녕 매달려 있는 것도 힘들었다.


“한나 지금 내려가요. 조금만 참아요.”


까마귀가 큰 날갯짓을 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바람 때문에 안정적으로 날 수는 없었지만 절벽에 바짝 붙어서 천천히 내려갔다.

한나는 까마귀의 발을 잡고 매달렸다. 까마귀는 힘껏 날갯짓을 하며 위로 올라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휘청거렸지만 한나는 꽉 잡았다.

까마귀가 지상으로 올라오자 가브리엘과 진영은 한숨을 놓았다.


“녀석. 정말 너 없으면 어떡할 뻔했냐?”

“다행이야. 살았군.”


잠시 후 출렁다리의 남은 기둥도 뽑혀서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이제 혼자 힘으로 이곳에 올 수 있는 사람은 없겠군.”


가브리엘은 바닥이 깜깜한 절벽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진영의 일행은 잠시 쉬었다가 흙먼지가 날리는 황무지를 따라 계속 길을 갔다.

한참을 가다 보니 넓은 모래사장이 있고 강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그곳에는 삿갓을 쓰고 낚시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강태공이었다.


“당신은 그 낚시꾼?”

“여기저기 낚시를 하다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지. 그래 살아 있는걸 보니 강은 무사히 건넜나 보군. 내 구슬이 도움이 되었나?”

“당연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이 준 구슬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영은 강태공에게 환한 얼굴로 대했지만 가브리엘은 의심스러운 눈빛이었다.


“이 사람은 누구야?”

“강태공이라는 사람인데 나도 잘은 모르지만 우리가 강을 건너는 걸 도와줬어. 한나도 이 사람 도움을 받았고.”


진영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지만 가브리엘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쳇. 지옥에서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무도 믿지 마.”


진영은 웃으며 강태공 옆에 앉았다.


“여긴 어떻게 오셨죠?”

“나야. 사는 곳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낚시를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니까.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지. 자네들을 여기서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네. 그런데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온 겐가?”

“패륜의 지옥이라고 팻말을 보았습니다. 혹시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알지. 지옥은 아홉 개의 실개천이 합쳐져 나중에 바다로 이르는데 여기 강을 통해 영혼이 들어오고 있지. 이곳은 지옥의 외곽에 해당하네. 지옥의 문에서 이곳으로 배치받으면 용이 물어다 이곳에 던져놓지.”

“그렇군요.”

“여긴 패륜의 지옥이기 때문에 관계에 관한 형벌을 주지. 여기 온 사람들은 가족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이네. 그래서 형벌도 아주 세다네. 끊임없는 형벌의 윤회를 거치는 거지. 프로메테우스처럼 말이야.”

“지독하군요. 그럼 여길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죠?”

“나는 답을 가르쳐 줄 수 없다네. 이 시련은 자네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난 그저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 자네들의 길을 안내할 뿐이네.”


가브리엘은 뒤에 있다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거. 노인네. 알고 있는 것 있으면 좀 가르쳐 주지. 되게 뻣뻣하게 구네.”


한나는 가브리엘의 손을 끌어당기며 다시 자리에 앉혔다.

강태공은 미소를 잃지 않고 낚시를 계속했다.


“나는 자네들처럼 지옥을 여행하는 자를 많이 봐왔네. 그들을 안내해주는 게 내 역할이지. 지옥에서 뭘 얻고 뭘 잃을지는 자네들이 결정하는 거야.

지옥의 문에서 보았던 영혼의 행렬에 섞여 지옥 생활을 하든 위험을 무릅쓰고 여행을 하든 다 자네들 선택이네. 지옥은 끊임없는 선택과 위험을 강요하지. 그것이 인간에겐 가장 큰 고통이라네.”


진영은 큰 밀짚모자를 쓰고 하염없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강태공이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뭐 하시는 분이길래 지옥에서도 이렇게 여유로운 거죠?”

“뭐. 특별한 사람은 아니네. 나 역시 지옥의 여행자지. 이렇게 사는 게 지옥이 내게 내린 형벌일 수도 있지. 지옥은 책에서 본 것처럼 고문을 하는 곳만은 아니네.

형벌의 종류가 다양하지. 육체를 찢는 것만이 고통이 아니라 세월에 던져지는 것도 고통일세. 지금 이렇게 방황하는 게 자네에게 주어진 형벌인지도 모르지. 누구의 뜻인지는 모르지만···.”


진영은 처음으로 새벽하늘이 밝아오는 것을 보았다. 지옥의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여명 직전이었는데 오랜만에 해가 뜨고 있었다.


“해가 뜨는 군요.”

“그렇지. 이제 자네가 비로소 지옥으로 들어왔다는 뜻일세. 여기서부터는 갖가지 세계가 펼쳐질 거야. 어떤 세계를 만나더라도 지옥이라는 걸 잊지 말게. 그래야 자네 딸도 만날 수 있을 걸세. 다음 마을이 있는 곳까지는 내가 안내를 하지.”

“네. 감사합니다.”


강태공과 진영의 일행은 강 옆에 나 있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참 길을 걷는데 멀리서 작은 목제건물이 보였다.

그곳에서는 마당에 식탁이 몇 개 놓여있고 어떤 중년 남자가 청소하고 있었다.


“잠시 이곳에서 쉬었다 가세.”


강태공이 먼저 길에서 내려와 건물이 있는 곳으로 향하자 나머지 일행도 뒤따랐다.

오두막처럼 생긴 건물은 작은지만 깨끗하고 튼튼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편한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청소하던 남자가 밝은 표정으로 나왔다.

강태공은 입구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은 3명씩 앉을 수 있었는데 강태공과 진영이 같이 앉았고 나머지 세 명이 따로 테이블에 앉았다.

주인은 메뉴판을 가져왔는데 강태공이 거절했다.


“다른 건 됐고 여기 차를 좀 내오게.”

“아···. 네.”


진영은 강태공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게 많았지만 타이밍만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차가 나왔고 강태공은 주전자로 차를 잔에 담아 향을 맡았다.


“음··· 이건 결명자차가 아닌가?”

“아이고. 바로 아시네요. 결명자가 주변에 많이 있어서 그걸로 차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군.”


가브리엘은 차를 맛보고는 주인을 불렀다.


“여기 궁금한 게 있는데 마을로 가려면 이쪽으로 가면 되는 겁니까?”

“마을? 아. 할키스 마을을 얘기하는군요.”

“할키스 마을이라고 합니까? 초행길이라.”

“여긴 다들 초행길이지요. 이 길로 계속 가시면 마을이 나올 겁니다.”

“주인분께서는 어떻게 여기 오게 되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진영도 관심이 생겨 주인에게 물었다.


“오랜만에 오신 손님이니까 얘기해드리지요. 원래 저는 잘나가는 대기업 사장이었습니다. 신입으로 들어와 사장까지 올라간 첫 번째 사례였죠. 그만큼 모든 걸 걸고 열심히 했습니다.

두 딸아이 태어날 때 한 번도 옆에 있어 주지 못했고 1년에 6개월은 출장을 다녔지요. 저처럼 일하지 못하는 부하직원들을 다그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쓰러졌고 그게 끝이었죠..”


진영은 자기 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지옥의 문을 거쳐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여기 이 강을 보면서 여기도 숙박업을 하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요. 살아서는 실패했지만 여기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신이 절 지옥에 보내려다 잘못 보낸 것 같습니다. 여긴 저한테 천국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주인은 어느새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사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 모양이었다.


“이젠 가족이나 다른 것 신경 쓰지 않고 사업만 생각하면 되니까 더 좋은 상황이죠. 손님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돈을 받으면 금방 큰돈을 벌게 될 겁니다.

집은 아직도 내부 수리 중입니다. 제가 왔을 때는 쓰러져 가는 폐가였는데 밤낮으로 수리해서 이 상태까지 왔죠.”


주인은 지옥에서도 행복해 보였다.


“지옥에서도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은 처음이군. 정말 자기가 천국에 온 거로 착각하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나도 한때는 저렇게 살았으니까.”


가브리엘은 지옥을 천국처럼 생각하는 주인의 생각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영도 이야기를 듣고 주인의 모습에 왠지 동질감을 느꼈다.


‘저 사람도 나처럼 살았군. 나도 세라가 없었으면 계속 저렇게 살았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왜 나는 저 사람처럼 바로 이곳으로 오지 않고 지옥의 외곽을 떠돌게 되었을까?’


진영은 의문을 가졌다.


‘이 사람처럼 나도 이렇게 지옥을 헤매는 것이 형벌이 아닐까?’


몇 번이고 되물어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저 사람이 그렇게 큰 죄를 지은 건가요?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게 죄는 아니잖아요?”


진영은 강태공에게 물었다.

강태공은 덥수룩하게 난 수염을 만지며 진영에게 말했다.


“지옥에서 무죄인 사람은 없다네. 저렇게 지옥에서도 다시 사업을 할 생각할 정도라면 뉘우칠 때까지 한참 시간이 걸릴 거야. “


강태공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영이 주인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여긴 지옥이에요. 이런 거 다 소용없다구요. 저희랑 같이 가실래요? 위험하긴 하지만 영원히 지옥에 있는 것보단 나을 거예요. 환생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구요.”


주인은 피식 웃었다.


“손님. 저는 이곳이 제일 잘 맞습니다.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또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일에 전념하기 힘들 겁니다. 여러분들에겐 지옥일지 모르지만 저에겐 이곳이 천국입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진영은 한숨을 쉬었다.


“자. 가지.”


강태공이 먼저 일어나자 나머지 일행도 따라 일어섰다.

강태공은 손가락만 한 은 두 덩어리를 주인에게 주었다.


“이거 너무 많은데요.”

“사업하는 데 보태 쓰시오.”

“아이고. 고맙습니다.”


일행이 나가자 주인은 다시 열심히 청소를 시작했다.


“저분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아주 행복해 보이는데.”


진영은 길을 가면서 오두막 주인의 모습을 계속 보았다.


“지옥이란 자네들이 생각하듯이 유황 냄새나고 무조건 찢어 죽이는 곳이 아닐세. 지옥의 모습이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지. 저 사람은 아직 그걸 못 깨달은 걸세. 살아서 명성을 올렸지만 가족은 파괴되었지.

두 명의 딸들은 유학을 하러 갔지만 외로움 때문에 마약중독자가 되었고 나중엔 갱단의 여자가 되었지. 저 건물을 다 짓고 나면 망가진 두 딸의 삶을 보게 될걸세. 그 뒤의 선택은 뻔하지.”

“죽는 건가요?”

“지옥에서 죽음이란 없다네. 기억을 잃고 다시 깨어나겠지. 그리고 또 같은 선택을 반복하게 되겠지. 저 집도 수천 번 지은 것이라네.”

“그걸 어떻게?”

“나는 여행자를 안내하고 있으니 알 수밖에.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도 가끔 보인다네.”


진영은 강태공의 말이 섬찟했다.


‘이 사람도 형벌로 여기 오게 된 것일까? 과연 나에게 내려진 형벌은 무엇일까? 이렇게 방황하는 게 벌일까?’


의문은 지워지지 않았지만 강태공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하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해 잠자코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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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키마이라의 집 -2- 20.05.16 1,001 20 12쪽
6 키마이라의 집 20.05.15 1,129 17 11쪽
5 요단강의 손님들 -2- 20.05.14 1,293 19 13쪽
4 요단강의 손님들 20.05.13 1,721 24 14쪽
3 새로운 세계 -2- +2 20.05.12 2,303 31 13쪽
2 새로운 세계 +4 20.05.11 2,840 42 14쪽
1 운수좋은 날(프롤로그) +1 20.05.11 3,590 7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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