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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이스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에서 탄생한 고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완결

히아이스
작품등록일 :
2020.05.11 12:53
최근연재일 :
2020.08.11 19:41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28,485
추천수 :
502
글자수 :
383,659

작성
20.05.14 18:00
조회
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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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13쪽

요단강의 손님들 -2-

DUMMY

노인은 말없이 긴 노를 젓고 있었다.

진영은 이틀째 계속되는 밤이 답답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생활이 바로 지옥인 것 같다. 특별히 형벌을 받지 않아도 이렇게 떠도는 것 자체가 괴롭다.’


진영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에 갑자기 멀리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다. 강의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때 목소리는 더 커졌다.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게 노만 젖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이 목소리는 세라의 목소리였다.

배 밑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얼굴을 내밀어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달빛에만 의지해서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아빠. 살려주세요.”


진영은 애가 탔다.

이 목소리는 딸이 부르는 소리가 확실했다.

배 안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찾아도 목소리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왜 오지 않으세요. 저를 버리실 건가요?”


목소리는 드넓은 강에 울려 퍼졌다.

물안개가 피어있는 강에는 물살도 없었고 오직 노가 움직일 때만 작은 물결이 일었다.


“세라야!”


진영은 배 옆으로 몸을 빼서 강 속을 자세히 보았다.

희미하게 세라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물에 빠진 건가?’


진영은 희미하게 보이는 소녀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그때 갑자기 소녀가 눈을 뜨고 진영의 손을 잡아끌었다.

진영은 그 손에 이끌려 물에 빠지고 말았다.

지옥의 강은 차갑지 않았다. 마치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소녀는 세라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전혀 다른 눈빛이었다. 얼굴만 사람 모습이고 몸은 생선 비늘로 덮여있었다.


‘이게 세이렌인가?’


신기한 것은 물속에 들어왔는데도 숨이 쉬어진다는 것이다.

진영은 소녀가 잡은 손을 빼려고 했지만 소녀는 놓지 않았다.

소녀의 얼굴은 점점 비늘로 덮여 눈이 생선처럼 변해버렸다.

진영의 냄새를 맡고 여러 마리의 세이렌이 달려들었다.


“히히히. 오랜만에 살아있는 인간이다.”

“낙인이 없어. 정말 먹어도 되는 걸까?”

“살아있는 인간은 어떤 맛일까? 얼른 맛보고 싶은데.”


세이렌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러자 진영은 주머니에 있는 구슬 하나를 꺼냈다. 진영은 구슬을 달려드는 세이렌의 입안에 처넣었다.

그러자 구슬에서 빛이 나면서 몰려오던 세이렌들이 겁을 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빛은 눈을 못 뜰 정도로 강했고 빛이 닿는 곳에 있던 세이렌들의 살이 녹기 시작했다.


“으악!”

“넌 누구지? 어떻게 이런 힘을?”



세이렌들은 비명을 질렀고 팔다리가 녹아떨어졌다.

잠시 뒤 빛이 사그라지자 진영도 눈을 뜰 수 있었다.

강물 속엔 온통 생선 뼈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 녀석들 원래 죽은 물고기인데 내 살을 얻으려고 날 유혹한 거구나.’


진영은 얼른 수면 위로 올라갔다.

나룻배는 아직 멀리 가지 않았고 천천히 강 위에 떠 있었다.

헤엄쳐서 나룻배까지 간 진영이 배 끝을 잡자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

밤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진영은 손을 잡았고 배 위로 올라왔다.


배에 올라와 보니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분명 배를 탈 때는 없었던 사람이다.

그는 하얀 양복을 입고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어두워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키가 큰 남자였다.


“고맙습니다.”

“아니요. 뭘. 이 강에서는 항상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요. 세이렌 둘은 마음이 여린 사람을 노린답니다. 세이렌에게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처음 보는군요. 대단한 의지를 가진 분인 것 같습니다.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한진영이라고 합니다.”

“네. 저는 가브리엘이라고 합니다. 우리 둘 다 배를 무사히 타고 가는 게 목적이니까 서로 믿고 돕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당연하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가브리엘은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옆에 있던 네모난 가방에서 색소폰을 꺼냈다.

달빛에도 번쩍일 정도의 황금빛 색소폰이었다.

그는 색소폰에 입을 대고 천천히 불었다.

어떤 곡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재즈풍의 곡이었다.


‘지옥에서 색소폰이라니. 이해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구만.’


진영은 다시 배 끝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몸은 물에 젖어 축축했다.

한 곡이 끝나자 가브리엘은 색소폰을 내려놓으며 진영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시는 중이죠?”

“강 건너서 달이 있는 방향으로 갈 겁니다.”

“절대 그리로 가면 안 됩니다. 거기엔 사악한 마귀할멈 키마이라가 살고 있습니다. 그 할멈은 지나가는 여행객을 잡아먹는다고 하죠.”


가브리엘은 진영의 얼굴 가까이 와서 손을 대고 귓속말을 했다


“지금 저기 배를 모는 노인이 그 키마이라의 남편입니다. 이 배를 되돌려야 합니다. 저와 함께 저 노인을 죽이는 게 어떻습니까?”


진영은 깜짝 놀랐다. 멀쩡한 노인을 죽이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저는 여기 살인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당신의 말도 백 퍼센트 믿을 수 없고요.”



가브리엘은 조금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쩔 수 없죠. 저 혼자 할 수도 없고. 당신이 나중에 어떻게 되어도 전 모릅니다.”


가브리엘의 이 말이 끝나고 조금 있다가 학 한 마리가 배 위로 날아왔다. 보통 학보다 훨씬 컸다. 가브리엘은 색소폰이 든 가방을 어깨에 메더니 학의 다리를 잡고 날아갔다.


“마지막 기회를 걷어차다니 참 어리석은 사람이군요. 지옥에서 기회는 두 번 오지 않습니다. 하하하”


거대한 학은 남자를 매달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진영은 불안에 잠겨 뱃사공 노인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노인은 무표정하게 계속 노만 저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진영은 이 배가 어디로 가는 건지 궁금했다.


‘이 강이 얼마나 넓길래 아직도 반대편이 보이지 않는 거지? 정말 제대로 가고 있긴 한 건가? 아무것도 보이질 않으니 알 수가 있었어야지.’


달도 구름에 들어가고 물안개 핀 강은 나침반 없이는 방향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방이 똑같았다.


‘떠나온 곳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꽤 멀리 온 것 같은데···.’


진영은 노인을 보며 주머니에 있는 구슬을 만지작거렸다.


‘지금 써야 하나? 아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자. 분명히 본색을 드러낼 때가 올 거야.’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진영은 깜빡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진영은 세라의 얼굴을 보았다.

세라는 묶인 채로 감옥에 갇혀 있었고 바닥에는 온갖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아빠! 구해주세요!”


진영은 세라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손으로 입을 만져보았는데 입이 막혀있었다. 입술도, 혀도 없고 입 자체가 없었다. 세라의 옆에는 양의 뿔을 달고 있는 타나토스가 검은 정장 차림으로 여유 있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안돼! 세라야!’


소리치다가 잠에서 깬 진영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은 이미 밧줄로 꽁꽁 묶여있었다.

노인은 등을 돌린 채 무심하게 노만 젖고 있었다.

조금 뒤 진영이 타고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나룻배 하나가 다가왔다.

정반대 방향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 배에도 뱃사공이 있었는데 승객은 없었다.


‘역시 가브리엘의 말이 사실이었나?’


진영은 구슬을 꺼내려고 했지만 손이 묶여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입에는 재갈을 물려 소리칠 수도 없었다.

가까이 온 배에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아무리 몸부림쳐도 반응이 없었다.

두 배는 서로 교차했고 점점 멀어졌다.


지나간 배가 보이지 않자 노인은 노를 내려놓고 진영에게 다가왔다.



“어디 보자. 세이렌도 없고 하니까 내가 가져도 되겠지?”


그는 허리춤에 찬 칼을 꺼냈다. 넙적하고 뭉뚝하게 생긴 칼이었다.


“이야. 이거 오늘은 낙인 없는 사람을 먹을 수 있겠구먼. 그동안 썩은 영혼들만 처리하느라 힘들었는데 이렇게 횡재하는 날도 있군. 하하.”


노인은 칼날을 칼집에 쓱쓱 문지르더니 진영에게 다가왔다.


“어디 이 하얀 팔부터 먹어볼까?”


그때였다! 노인이 진영의 팔에다 칼을 내리치려고 할 때 무언가 날아와 노인의 오른팔에 꽂혔다.


“악! 뭐야? 웬 놈이냐?”


노인은 칼을 놓치고 찡그린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까 학을 타고 날아간 가브리엘이 다시 학을 타고 나타나 배 위로 뛰어내렸다.


“여. 형씨. 역시 예상대로 위기구먼.”


진영은 눈을 크게 뜨고 이 상황을 보고 있었다.


“이놈. 내 식사를 방해했겠다?”


노인은 팔에 꽂힌 표창을 뽑아내고 칼을 잡은 다음 크게 휘둘렀다.


“두둑!!”


노인의 팔에서 뼈 소리가 나면서 칼은 잡은 팔이 길어졌다.

칼을 잡은 손이 곧바로 가브리엘에게 향했고 가브리엘은 허리를 뒤로 젖히며 칼날을 피했다.


“노인네. 이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구만.”

“하하. 얌전하게 내 먹이로 들어오지 그래?”


노인의 팔은 마치 뱀처럼 휘어지며 움직였고 가브리엘은 간발의 차이로 칼날을 피했다.


‘이제 슬슬 결판을 내야겠군.’


가브리엘은 재킷 주머니에서 톱니 모양의 표창을 여러 개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 노인의 칼날을 피해 뛰어오르며 힘껏 던졌다.

표창은 노인의 눈에 꽂혔고 그러자 노인의 팔은 다시 줄어들었다.


“악! 내 눈이.”


노인의 눈에서 피가 흐르고 몸을 비틀거리고 있을 때 학이 날아와 노인을 낚아채 갔다.

학은 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노인을 던져버렸다.

첨벙거리는 노인은 소리를 질렀다.


“살려줘! 여긴 세이렌이 있는 곳이란 말이야. 어서!”


가브리엘은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미소를 지었다.


“잘 가시오. 뱃사공 양반. 매번 먹이를 주다가 본인이 먹이가 된 기분이 어떤지 한번 느껴보시오.”


강 표면에서 물살이 일기 시작하더니 사방에서 세이렌들이 몰려왔다.


“피 냄새다. 오랜만에 만찬이야!”

“신선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해.”


세이렌들은 노인을 물속으로 끌어당겼다.


“안돼! 날 놓아줘. 내가 죽으면 너희에게 먹이를 줄 사람도 없어진다고. 살려줘! 제발!”



첨벙거리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노인은 금방 물속으로 사라지고 조용해졌다.

물속에서는 붉은 피가 진하게 올라왔다.


“쳇. 별것도 아닌 놈이.”


가브리엘은 배 구석에 묶여있는 진영을 풀어주었다.


“고맙습니다.”

“아이. 뭘. 처음 보는 날 믿으라고 한 내가 잘 못 한 거지. 오늘만 두 번 구해준 거 잊지 마쇼.”

“잊지 않겠습니다.”
 “그나저나 저 노인을 죽였으니 키마이라가 난리 칠 텐데 큰일이구만.”

“키마이라가 그렇게 대단한가요?”

“뭐 마력이 강한 건 아닌데 아주 능글맞고 잔인해서 지옥에선 유명하지. 그런데 정말 이 강을 건널 거요? 생각이 바뀌지 않았냐는 말이오.”

“저는 꼭 구해야 할 사람이 있어서 건너가야 합니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무리는 하지 마쇼. 어디서나 목숨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오. 죽은 다음엔 다 필요 없거든. 어차피 지옥에서 죽으나 사나 괴롭긴 마찬가지지만.”


가브리엘은 노인 대신 노를 잡고 저었다.

몇 번 젓더니 이상한 듯 고개를 저으며 노를 물 밖으로 꺼냈다.


“역시. 이 노인네. 요망하군.”

“아니. 무슨 일이라도?”


가브리엘은 노의 아랫부분을 진영에게 보여주었다.


“이거보슈. 노는 편평한 면이 있어야 배가 앞으로 나가는데 이건 우동 면발처럼 동그랗지 않소. 어차피 한참 전부터 제자리였다는 얘기지.”

“그럼 아까 지나간 배는?”

“그 배는 아침에 나루터로 출발했던 배의 환영이오. 이 강은 시간이 섞여서 공존하기 때문에 과거의 것들을 볼 수가 있소.”


가브리엘은 옆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 노의 끝에다 대고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그러자 둥근 노가 두 조각이 나면서 갈라졌다.


“이건 나무젓가락 쪼개는 거랑 비슷하지. 이제야 쓸만하구만.”


가브리엘은 직접 노를 잡고 저었다. 배는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원래 노 보다야 좀 느리겠지만 이대로 하면 얼마 뒤에는 도착할 거요.”


진영은 한숨 놓고 강 저편을 바라보았다.


‘저기엔 뭐가 있을까? 가브리엘의 말처럼 내가 저기서 죽게 될까?’


이렇게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노를 잡고 있는 가브리엘 뒤로 노인이 올라왔다.

진영과 가브리엘 모두 배가 나가는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어서 보지 못했다.

노인은 가브리엘이 던졌던 표장으로 가브리엘의 목을 찔렀다.


“윽!”

“안돼!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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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키마이라의 집 -3- 20.05.17 923 19 12쪽
7 키마이라의 집 -2- 20.05.16 1,001 20 12쪽
6 키마이라의 집 20.05.15 1,128 17 11쪽
» 요단강의 손님들 -2- 20.05.14 1,293 19 13쪽
4 요단강의 손님들 20.05.13 1,720 24 14쪽
3 새로운 세계 -2- +2 20.05.12 2,301 31 13쪽
2 새로운 세계 +4 20.05.11 2,838 42 14쪽
1 운수좋은 날(프롤로그) +1 20.05.11 3,588 7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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