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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이스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에서 탄생한 고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완결

히아이스
작품등록일 :
2020.05.11 12:53
최근연재일 :
2020.08.11 19:41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28,519
추천수 :
502
글자수 :
383,659

작성
20.05.11 13:07
조회
3,595
추천
71
글자
8쪽

운수좋은 날(프롤로그)

DUMMY

“야 승진자 발표 떴다!”


퇴근 시간을 20분 앞두고 사내 게시판에 기습적으로 공지사항이 떴다.


“한진영 차장 이번에도 승진이네.”

“대단하네. 동기 중에 제일 먼저 승진이고 39살에 벌써 부장이야.”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모니터를 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진영은 이번 결과발표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남 잘된 거에 군침 흘리지 말고 자기 일이나 열심히 하지. 불쌍한 놈들. 평생 그러고 살겠지.’


진영은 승진자 명단을 보지도 않았다.


“부장님. 축하드립니다.”


벌써 인사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책상 위에 있는 전화기도 계속 올렸다.


‘당연한 걸 두고 호들갑은.’


축하 전화가 오는 중에 딸 세라에게 메시지가 왔다.


“아빠. 오늘은 일찍 오세요?”


진영은 생각해보니 딸아이랑 저녁 먹은 지도 오래된 것 같아서 오늘은 일찍 간다고 답하려 했다.

그런데 때마침 단체 공지 문자가 왔다.


“금일 6시 30분 영업본부 회식.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 바람.”


진영은 어쩔 수 없이 딸에게 못 간다고 답을 했다.


“자 다들 갑시다. 장소는 늘 가던 풍년삼겹살 집입니다.”


직원들은 벌써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영도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생각해보니 딸과 저녁 식사를 한 게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진영은 그것이 마음에 걸려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이해해주겠지.’


진영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얼른 뛰어나가 직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날 회식은 유난히 길었다.

최연소 승진을 한 진영은 부서마다 다니며 승진 축하를 받았다.

오후 11시가 되어서 회식은 끝났고 진영은 완전히 취한 상태였다.

그래도 정신 차리고 본부장과 선배들을 깍듯이 모시고 택시까지 태워 보낸 후 한숨을 놓았다.

몇 시인지 보려고 핸드폰을 꺼내 보니 여러 통의 전화가 와있었다.


‘또 축하전화인가?’


진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팀원들이 모두 집에 간 후 진영도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는 큰길에서 내려 골목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세라야. 그때까지만 기다려주렴.’


진영은 가로등이 켜진 골목길을 올라가다 동네 놀이터 옆 풀숲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자세히 보니 풀숲에 뭔가 있고 한 녀석이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하얀 여자 다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나 원 이사를 하든가 해야지. 저 양아치 새끼들.’


신음이 새어 나오는 걸 들었지만 모른 척했다.


‘저런데 휘말리면 괜히 골치 아프니까 얼른 가자.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그것만 생각하자.’


진영은 힐끗 보면서 지나갔지만 분명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앞에 서 있는 놈이 망을 보면서 이상한 눈길을 보내자 진영은 고개를 돌려 못 본 척했다.


‘요즘 젊은 애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진영은 서둘러 골목길을 올라갔다.

집 앞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었는데 불이 꺼져있었다.


‘벌써 자나?’


거실 불을 켠 진영은 세라의 방문을 노크했다.

문을 살짝 열어보니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네. 학원에서 이미 왔을 시간인데. 어디 뭘 사러 갔나?’


진영은 핸드폰을 다시 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부재중 통화 가운데 세 통은 세라에게 온 전화였다.

승진 축하 전화가 많이 와서 가려져 있었다.


‘뭐지?’


진영은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어 크게 숨을 내쉰 뒤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세라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세라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여러 번 전화를 걸자 잠시 후 전화기가 꺼져버렸다.


‘어디 간 거야. 도대체. 이 녀석 들어오기만 해봐라.’


진영은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아까 본 녀석들이 생각났다.


‘설마 아니겠지. 괜히 나쁘게 생각하지 말자.’


억지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그냥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진영은 재빨리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섰다.

일단 확인해보는 게 우선이었다.


‘제발. 무사했으면!’


진영은 뛰었다.

술에 취해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지만 무조건 뛰었다.

골목에서 내려오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났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절뚝거리며 골목을 내려왔다.

진영이 놀이터에 도착했을 때 주변은 조용했다.

그는 아까 남자들이 있던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풀숲은 조용했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세라가 지금 이 시각에 여기 나올 이유가 없잖아.’


시간을 보니 이미 12시가 넘었다.

진영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돌아서 나오려고 했는데 보도블록에 피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한두 방울도 아니고 주르륵 떨어져 있었다.

핏자국은 놀이터 화장실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뭐지?’


진영은 핏자국을 따라 놀이터 화장실로 걸어갔다.

핏자국은 여자 화장실로 나 있었다.

밖에서 여자 화장실 안쪽을 확인하려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진영은 한참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긴 핏자국은 화장실 첫 번째 칸으로 나 있었다.


쿠쿵.

쿠쿵.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천천히 화장실 문을 열자 세라가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었다.


“세라야!”


진영은 재빨리 뛰어들어 세라를 안았다.

세라는 아직 숨이 남아있었지만 겨우 헐떡이는 정도였다.

하얀 블라우스는 빨간 피로 젖어있었고 무언가로 찌른 듯 배 쪽이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찢어진 부위에서 피가 계속 솟아 나왔다.


“안돼. 세라야!”


진영은 피를 멈추려고 상처를 막았지만 손가락 사이로 피는 계속 빠져나왔다.

그는 재빨리 119에 전화를 했다.


“빨리 좀 와주세요. 우리 세라 좀 살려주세요.”


진영은 세라가 떨고 있는 게 느껴져 꼭 안았다.


“세라야. 아빠 왔어. 이제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아빠···나 추워···.”


세라의 떨림은 점점 커지고 입술도 파랗게 변했다.

잠시 후 구급대가 도착하고 세라는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거친 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새벽 응급실은 세라로 인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세라가 수술실로 들어간 후 복도에 앉은 진영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개를 숙였다.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한참 후 의사가 마스크를 벗으며 수술실 문을 열고 나왔다.

이마에선 땀이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죠?”

“죄송합니다. 응급실에 온 지 5분 만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피를 워낙 많이 흘려서 전신 쇼크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응급조치를 다 취해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다른 건요?”

“죄송합니다.”


의사는 기진맥진해서 복도 의자에 앉았고 진영은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수술실로 들어갔다.

평소보다 하얀 얼굴로 누워있는 세라의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진영은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걷어주면서 뺨을 어루만졌다.

유난히 하얀 세라의 볼은 마치 냉장고 속 고등어를 만지듯 차갑고 딱딱했다.


“세라야.”


할 말이 없는 진영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간호사들이 그를 일으켜 주었지만 일어설 힘도, 의지도 없었다.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인 줄 알았는데 가장 운수 나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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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키마이라의 집 -2- 20.05.16 1,001 20 12쪽
6 키마이라의 집 20.05.15 1,129 17 11쪽
5 요단강의 손님들 -2- 20.05.14 1,293 19 13쪽
4 요단강의 손님들 20.05.13 1,723 24 14쪽
3 새로운 세계 -2- +2 20.05.12 2,305 31 13쪽
2 새로운 세계 +4 20.05.11 2,844 42 14쪽
» 운수좋은 날(프롤로그) +1 20.05.11 3,596 7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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