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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선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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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무대선
작품등록일 :
2022.05.17 13:44
최근연재일 :
2022.06.29 19:40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3,090
추천수 :
234
글자수 :
355,085

작성
22.06.1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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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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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우승자 - 1

DUMMY

우승자 - 1


왕비는 마치 연설하듯이 그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목청이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왕비는 더 이상 숨길 것도 없다는 듯이 말을 했기 때문에 어투는 담담하고 목소리는 침착하였다.

왕비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똑똑히 다 들을 수 있었다.

무투대회의 경기장에는 거의 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있었다.

멀리 있는 사람들은 왕비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니 왕비의 발언에 대한 즉각적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반응은 마치 전염병이 번져가듯이 나타났다.

왕비의 발언은 왕비의 말을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 사람이 저 사람에게로 저 사람에게서 또 다른 저 사람에게로 번져 나갔다.

수군거림이 예사 말소리가 되고 예사 말소리가 웅성거림이 되고 여기저기서 자기들끼리 말다툼이 벌어져서 슬슬 언성이 높아지다가 나중에는 고함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왕이 공주를 죽이라고 했다구?”


“뭔 헛소리야. 잘못 들은 것 아닌가.”


“멧돼지에게 죽었다던 공주가 갑자기 되살아온 것이 이상하긴 했어.”


“왕비가 자기 죄를 숨기려고 거짓말을 한다!”


“계모가 다 그렇지. 뭐.”


“어느 놈이 그런 소리를 했어! 입을 찢을라!.”


이 사람 저 사람 개구리떼 마냥 와글와글 하는 중에 이런저런 소리가 아무렇게나 마구 터져 나왔다.

이런 혼란 속에서 마틴은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자기 머리는 가만있는데 머리 위의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들었다.


‘이 미친년이 무슨 소리를...’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거짓말을 하라고 화관을 바친 것이니 왕비가 거짓말을 한다고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더라도 이런 거짓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공주를 죽이려고 한 것이 그 친아버지인 선왕이라고 하다니....


“미친 거요?”


말소리를 낸 것은 아니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체 고개를 젖혀 왕비를 쳐다보며 거의 입 모양만으로 중얼거린 것이었다.

하지만 왕비는 마틴의 그 중얼거림을 알아 들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입 모양을 읽은 것일지도...


“맞아요.”


왕비의 눈이 핏발이 서 시뻘겋게 되어 있었다.

마틴은 그것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왕비의 뒤에는 아덴 가문의 기사들이 있었다. 왕의 기사들이 아니라 왕비가 에르페스에서 시집 올 때부터 따라온 사람들이었다. 왕비의 말 한마디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왕비의 말 한마디면 나는 이 자리에서 육편이 된다.’


왕비의 기사들의 눈빛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지금의 분위기를 보면 왕비가 명을 내리지 않더라도 육편이 될 가능성마저 있었다. 벌써부터 살기 띤 눈빛으로 칼자루를 쓰다듬는 자들마저 있었다. 특히 왕비를 보좌하고 있는, 왕비의 기사들의 우두머리인 에크하트 경은 이미 절반 이상 결심한 것 같았다.

에크하트의 수염끝이 파르르 떨리는 모습이 마틴의 눈에 들어왔다.

마틴은 깨달았다.


‘이대로 멍하니 퍼질고 앉아 있다가는 확실한 죽음이다.’


마틴은 무릎 꿇은 자리에서 무릎을 펴 일어섰다. 왕비의 핏발 선 시선이 그의 몸을 따랐다.

에크하트 경의 엄지 손가락이 칼자루에 가 닿았다.

마틴은 투구를 옆에 낀 체 등을 돌려 관람석 아래로 내려왔다. 경기장에서는 알피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말고삐를 쥔 체 서 있었다.

소년은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 모르는 지 혼란에 빠진 경기장을 당황하고 겁먹은 인상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틴이 말없이 말에 올라타고 아수라장이 된 경기장 뒤로 한 체 말을 몰아 나왔다.

경기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 구경을 하던 동료들이 말없이 마틴에게 따라 붙어 함께 말을 달렸다.


“아롤젠으로 돌아갑니까?”


누군가가 옆에 붙어 이야기 하는데 처음에는 아롤젠에서 같이 온 기사인줄 알고 돌아보았더니 뜻밖에 전에 보았던 아덴 가문의 서자 피츠로이 였다.


“자네가 왜 여깄어?”


“경을 따르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나는 거절하겠다고 말했잖아.”


“거절한 게 아니죠. 조건을 붙였던 거지.”


“그래서 그 조건을 성공했단 말이야?”


마틴이 믿기 어렵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건 아직 두고 보아야 알죠. 낚시 던진다고 물고기 올라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피츠로이가 유들유들 하게 말하는 것을 마틴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돌아보았다.


“뻔뻔하기 짝이 없군. 자넨 무능한 자야. 생선을 내놓기로 약속을 했다면 낚시를 하든 물에 뛰어 들든 생선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야. 결과가 없이 변명만 늘어놓는 것은 무능한 자들이 일쑤 하는 짓이지.”


“섭섭한 말씀을 하시는 군요.”


“섭섭해? 우리가 친구 였던가? 우린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나는 길이야. 자네의 기분 같은 건 내 알바가 아니란 말이야.”


“윌리엄경은 그냥 궁중에 남겨두고 있는 것이 좋아요.”


“왜?”


“마틴경, 저도 왕비가 한 말을 방금 들었습니다만 그 말이 황당한 것은 둘째 치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제 전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경께서 이리 도망치는 것도 그래서 그런 거잖습니까.”


“전쟁이 벌어지면 뛰어난 기사들이 많이 필요해. 저쪽 편에 윌리엄이 있는게 더 좋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걸.”


“마틴경, 오토대공이 왜 강한지 아십니까?”


“커다란 성과 영토, 강한 군대, 많은 돈.”


“하나 빠졌습니다.”


“마법 거울 말인가?”


“예, 마법의 거울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압니다. 크고 강한 영주는 오토대공 말고 사람들도 있고 저마다의 거울을 가지고 있기도 하겠지만 오토 대공에게 있는 것 같은 마법의 거울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때껏 농담 따먹기 비슷하게 이야기하던 마틴이 피츠로이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

마틴은 얼굴이 굳어져 오는데 피츠로이는 여전히 빙글거리는 얼굴이었다.

마틴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것을 다 아는데 나를 따르겠다고? 전쟁이 벌어지는데 나를 따른다? 그게 죽는 길인 줄 모르나?”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목소리가 무슨 유령처럼 음산하게 나왔다.

하지만 피츠로이는 별스럽지도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알죠. 이대로 계속 경을 따라간다면 확률적으로 죽는다고 따져서 죽는다고 봐야 겠지요.”


“난 미심쩍은 자는 필요 없네. 자살자는 더더욱 필요없지.”


“자살이라니 너무 말씀이 심하시군요. 목숨 한번 안 걸고 역사에 남는 것을 바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패배해서 비참하게 죽은 사람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네.”


“마틴경, 전 대학 졸업자 입니다.”


“갑자기 학력 자랑이 왠 말인가?”


“저는 검술은 그렇게 뛰어나지 못하지만 책은 웬만큼 읽었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난 역사를 보면 수많은 영웅이 등장하죠. 영웅들은 영웅이라 불릴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능력이 있지요.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더군요. 역사책을 공부하다보면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나 싶은 우연에 우연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 정도는 나도 알아. 그리고 행운에 목숨 거는 건 멍청한 짓이라는 것도 알지.”


“그 말씀은 여기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은 경 자신이란 말씀입니까?”


유들유들하게 웃는 피츠로이의 면상에다 대고 마틴이 물어 뜯으려는 개처럼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잖아. 내가 미쳤지.’


그렇다고 해서 피츠로이를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자라고는 하지만 그는 어쨌든 아덴 가문 사람이었고 오토 대공의 긴 팔은 잘 아는 사람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인데 잘 알지도 못하고 아덴 가문의 피를 가지고 있는 이 자를 믿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이 자는 자기가 서자라서 아덴 가문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지만 자기 입으로 대학까지 나왔다고 했고 서자라고는 해도 좋은 무구와 군마, 그리고 기사 작위까지 가지고 있었다.

서자라서 상속권이 없을 뿐 집안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았다는 의미였다.

피츠로이와 대화를 시작할 때에 말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속보는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속도를 더 줄였다.

대화를 하려고 속도를 줄인 건만은 아니었다. 장거리를 빠르게 가기 위해서는 말을 혹사해서는 안 된다.


“우린 쉬지 않는다. 말 위에서 먹고 자야 할지도 몰라. 그렇게 작정하고 있도록 해!”


마틴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피츠로이가 얼른 다시 말했다.


“제 질문해 답을 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무슨 질문 말인가?”


“아롤젠으로 돌아가시는 거냐고 물었는데 아직 대답을 안 해 주셨습니다.”


“내 행지를 자네에게 가르쳐 주면 자네가 배신하려는 기미만 보여도 죽여야 돼.”


“행지를 안 가르쳐 주시면 배신해도 안 죽일 겁니까?”


“하기는 그렇군. 그래 맞아 아롤젠으로 돌아갈거야. 그것 말고 달리 뭐가 있겠나.”


“아롤젠으로 가기는 가야겠지만 너무 급하게 가는 것은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왜?”


마틴은 무심결에 대답해 놓고 황급히 뒤를 돌아다 보았다. 이미 뒤를 따르는 부하들도 경계의 눈초리를 하고 칼자루를 잡고 있었다.

마틴 일행의 저만큼 뒤에서 따라오는 한떼의 무리가 있었다.

마틴은 피츠로이를 경계하기는 했지만 이깟 놈이 나를 어쩌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때껏 분위기는 그리 험악하지 않았다.

하지만 뒤를 따라오는 자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되자 얼굴빛이 달라졌다.


‘이 녀석이 이런 저런 헛소리를 해놓고 덩치들을 준비해서 나를 치려고 하나.’


마틴은 옆에 있는 피츠로이를 바로 찔러 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지만 피츠로이는 도리어 반색을 했다.


“오, 역시 왔군.”


“아는 자들인가.”


좀 전과는 다르게 마틴의 목소리가 살기까지 띠며 음산하게 나왔다.


“평소에 알던 사람도 있고 그저 안면이 있는 사람도 있고 처음 보는 사람도 있네요.”


피츠로이는 마틴이 자기를 죽일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소리가 자못 명랑하게 나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마틴경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나를 따른다고? 아직도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걸.”


“저들 중에는 저 같은 서자도 있고 귀족 이름만 걸쳐놓은 가난한 기사,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일곱째나 여덟 번째 아들이거나 하여간 뭐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에 불만이 많은 자들이 대부분이겠지요. 뭐 속된 말로 세상이 한번 뒤집히길 바라는 자들입니다.”


마틴은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가 저자들을 꼬신 모양이군.”


“꼬시다니 말씀이 과하시군요.”


“술과 창녀와 거짓된 약속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술과 창녀는 뭐, 그렇다치고 저는 약속 같은거 한 적 없습니다. 제안을 했을 뿐이죠. 재상의 아들이자 선왕의 오촌조카인 마틴 윈즐로가 무투대회에 참가했다. 8년 전에 죽었다는 공주가 다시 나타났고 그 공주의 오른팔이 되었다. 이런 사람이 뭐하러 이곳에 나타났겠는가. 소문을 들어서 알 것이다. 고귀하신 공주께서 아덴 가문의 왠 똘마니와 결혼을 하려고 한다고 말이다. 마틴경은 틀림없이 무투대회에서 우승해 이 늑혼을 세상에 알리고 막으려고 할 것이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구만.’


하지만 다 맞는 말도 아니었다.


“마치 생각대로 다 된 양 지껄이는군.”


마틴은 그 생각만 하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았기 때문에 아예 생각을 안 하려고 했는데 피츠로이가 입을 여는 바람에 다시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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