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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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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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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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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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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칠룡(2)

DUMMY

“거절하지요. 여기서는.”

“......뭐라?”


그런 답변이 나올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팽악의 얼굴이 순간 멍한 표정으로 변했다. 백연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사람이 왕래하는 대로를 전부 부숴 놓을 생각입니까. 창천 남궁세가의 장원에 이르는 길을 비무를 한답시고 박살내어 놓으면 남궁의 가주께서 퍽이나 기뻐하겠군요. 그렇잖아도 팽가의 도(刀)는 파괴력이 강하다 아는데.”

“용봉지회에 초청된 무인이 비무가 겁나 꼬리를 말고 도망칠 심산인가?”

“비무는.”


백연이 검파를 매만졌다. 일순 그의 몸을 타고 운연동공의 기세가 훅 피어올랐다. 그때까지 갈무리하고 있던 내공 경파가 대기를 따라 옅게 흔들리며 퍼져나왔다. 바람을 어깨 위에 장포처럼 휘감은 듯 했다.


일순 팽악이 미미하게 움찔할 정도의 내공 기예였다. 차가운 시선으로 팽악을 응시한 백연이 말을 맺었다.


“천주산에 도착해, 그곳의 연무장에서 하도록 하지요. 이곳의 모든 눈이 공증입니다.”



※※※



“소가주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천주산 남궁세가의 장원이었다. 객들을 위해 준비된 전각이 수백칸에 이르렀는데, 개중에서도 특히 커다란 전각위의 지붕에 완연한 녹빛의 장포를 입은 청년이 길게 드러누워 있었다. 옆으로 늘어뜨린 한쪽 손에 들린 것은 작은 술병이었다.


그것을 막 입에 대려던 당소하가 한숨을 내쉬며 인상을 구겼다.


“왜 부르는거지.”

“또 거기에 올라가신 겁니까? 남궁세가의 사용인들이 알면 무어라 하겠습니까. 부디 체통을 지키십시오.”

“체통은 우리 형님들이나 좀 지키라 하라고.”


말투에 불퉁한 불만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응대하는 상대는 전혀 그 말에 기죽지 않았다.


“현 당가의 소가주는 엄연히 당소하님이십니다. 고로 당가의 격은 소하님의 어깨에 달린 것입니다. 자중하십시오.”

“그래 그래. 자중하지. 딱 이것만 마시고......”

“소가주님!”


날카로운 목소리를 무시하며 병을 입에 가져다 대던 당소하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눈을 가늘게 뜬 그가 장원 저편을 응시했다. 남궁세가의 대문이 자리한 방향이었다.


남궁의 장원은 더없이 넓었다. 그 넓이가 거의 하나의 작은 성도라 봐도 무방할 정도의 크기. 그러했기에 당소하가 머물고 있는 전각과 대문은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안법을 돋워 보아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쪽에서 퍼져나오는 기파를 느끼지 못할 수가 없었다. 독룡이라는 별호는 허투루 얻은 것이 아니었고, 그에 더해 저편에서 느껴지는 기파가 익숙하면서도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광도룡(狂刀龍)? 팽가의 미친개가 벌써 온건가. 그런데 이 기파는 또 무슨.”


찢을듯이 날카로운 팽가의 도기(刀氣). 익숙한 기운이었다. 허나 그 사이 섞여있는 다른 기파는 자주 접하지 못한 기운이었다. 그럼에도 왠지 반가운 감각이 들었다.


“보러 가야겠군.”


지붕에서 벌떡 일어난 당소하가 병을 닫아 품속에 챙기고는 기운을 일으켰다. 당가 특유의 고요한 경공 기파가 그의 발치에서 일었다.


“어디 좀 다녀오겠다.”

“예?”

“용봉지회 시작 전부터 난리를 치는 놈들 얼굴은 보고 와야지.”


퉁.


말과 동시에 가볍게 구른 발끝에서 기파가 퍼져나갔다. 한순간에 길게 늘어진 당소하의 신형이 소란의 근원지를 향해 날듯이 달려갔다.


그곳까지 도달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걸음을 내딛으며 기파를 거두는 순간, 그의 눈앞에 가득 모여든 인파가 나타났다.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우선적으로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잔뜩 모여들어 수군거리는 사람들이었다. 빠르게 오가는 목소리에는 하나같이 내공이 실려 있었다. 모여든 이들 중 어느 하나 무인이 아닌 자가 없었다. 그럼에도 다들 믿지 못하겠다는 목소리를 내는 중이었다.


“보면서도 믿기질 않는구려.”

“저 연배에 팽가를 상대로 동수를 가져가는 괴물이 칠룡 외에도 또 있단 말이오?”

“본 적 없는 무공이다. 보법 묘리가 신묘해.”

“격발 단타로 가져가는 내공 수법인가. 일견 화산의 암향과도 닮아 있는데.”

“외모가 더없이 미려하군. 북경의 귀공자라도 되는가.”


그 소란 사이에서 당소하의 시선 끝에 걸려든 것은 청강석으로 이루어진 연무장 위, 미친 것처럼 도를 휘두르고 있는 팽악의 모습이었다.


인파 너머로도 드러나는 거대한 거구. 거칠게 휘어지는 도법 연격이 무시무시했다. 쪼개지는 도광(刀光)이 흩어지며 다섯 줄기의 도기로 화했다. 그것을 본 당소하가 미간을 좁혔다.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의 초식. 이런 비무에서 쓸 도법이 아니다. 살초라 봐도 좋을 거친 도기가 상대를 찢어버릴 듯이 뻗어나갔다. 그것을 본 순간 주변 무인들의 호흡이 흔들렸다. 모두가 위험한 공격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즉시 당소하가 손을 펼쳤다. 소매 속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온 비도를 날려 도법을 끊어내려는 순간이었다.


“불꽃......?!”


모여든 무인 사이에 경악성 비슷한 것이 터졌다.


동시에 당소하의 시선 안에 사방을 수놓는 짙은 적색의 검로가 들어왔다. 한순간에 사방 모든 공간을 일제히 베어낸 듯 했는데, 시간을 괴리시켜 검을 휘두른 것 마냥 신묘했다. 허공에 일일이 새겨지는 검로가 수십에 달했다. 찰나에 베어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지독한 쾌검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화악-!


허공에 새겨진 검로가 일제히 불꽃의 선으로 화했다. 거대한 한줄기의 화염으로 이루어진 폭풍이 범의 발톱같은 다섯 줄기 도기를 집어삼키며 팽악의 몸을 뒤덮었다. 일순 팽악이 한걸음 뒤로 물러날 정도로 강력한 일격. 그가 황급히 왼손을 펼치며 앞으로 내쳤다.


콰앙!


다급히 펼쳐낸 장법 경파가 화염과 부딪히며 상쇄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순간 공세를 잃어버린 것은 팽악이었다. 그가 빠르게 뒤로 보법을 밟으며 이어져 들어올 연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즉시 따라 들어왔어야 할 연격은 오지 않았다.


“......뭣 하는 것이냐.”


으르렁 대며 목소리를 낮추는 팽악. 그가 숨을 몰아쉬며 눈앞에 선 소년을 응시했다.


“비무 아닙니까. 생사결도 아닐진데.”


그렇게 말하며 검을 가볍게 털어내는 백연.


그에 팽악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계속해서 그의 도법 공세를 가볍게 받아내는 모습에 분노해 살기를 담은 오호단문도의 초식을 날렸다.


그것마저 받아친 것이다. 그리고는 이 대결은 생사결이 아니라며 비꼬고 있다. 달리 말하면, 생사결이었다면 방금 자신은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치였다. 저딴 이름도 없는 검객에게, 팽가의 소가주인 자신이 당할것이 아니란 말이다.


으득.


팽악의 손이 도를 움켜쥐었다. 그의 체내에서 강대한 기파가 꿈틀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잘 짜여진 신체를 기반으로 오호단문도의 극성에 달한 일격 구결이 서서히 짜여져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열양지기를 쓰는 검객이라 하면 몇 없는데. 저 소년이?”

“설마 저자가 섬서의 암화인가.”

“하지만, 저리 어린 소년이......”


주변이 소란했다. 이어진 불꽃의 검격이 모두의 시선을 잡아끈 직후였다.


백연은 침묵 속에서 가만히 여휘검을 늘어뜨렸다.

눈앞의 팽악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천주산에 올라와 갑작스레 시작된 비무. 팽악은 도법으로 자신을 찍어눌러 죽이지 않는 선에서 중상을 입히려 한 듯 했다. 허나 그의 도법은 아직 강맹하기만 한 경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검룡과 비교하면 한참 부족한 공격들이다. 자연히 그가 삼원검으로 펼치는 방어초를 뚫어내지 못했다.


‘마지막은 조금 달랐는데.’


오호단문도. 팽가의 비전 무공이다. 가문의 직계들만 익히는 도법이라 했다. 그 기세가 과연 앞선 공격들과는 달랐다. 살기가 실려있는 공격인지라 결국 적화검류로 받아쳤다. 만약 재차 그런 공격을 한다면 이번에는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가 검을 멈추고 기회를 주는 것은 한번까지 였으니까.


그때 누군가의 인영이 그들 사이로 훅 떨어져 내렸다. 소리없는 보신경이 날렵했다. 시야 사이로 흩어지는 녹빛 장포가 가을 바람 아래 진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무승부로 끝내는 것이 어떤가 하는데.”


날카로운 눈매가 주변을 훑었다.


차가운 분위기의 청년이 한없이 여상한 말투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발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파가 허공에 맴도는 검과 도의 기파를 뭉개 지우고 있다.


절세 보법이었다. 걸음으로 기파를 지워내는 신공. 그것 하나로 그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이상 가면 남궁의 가주께서 그닥 좋아하지 않으실지도 모르겠군. 못다 나눈 검은, 대회가 시작되면 재차 겨뤄보는 것이 어떤지.”

“독룡? 네놈이 언제 이곳에.”

“한참 전에 왔지. 갑자기 소란스럽길래 와 봤더니.”


당소하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그가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화. 간만이군.”

“그런가.”

“오자마자 칼부림을 하고 있을줄은 몰랐는데. 심지어 팽가놈과 말이야.”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다 보니.”

“......암화? 그대가 섬서의 그 암화인가.”


곱씹듯 되묻는 팽악에 백연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게 부르더군요.”


짧은 대화 사이, 곤두세운 기감에 서서히 잦아드는 팽악의 기파가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짓쳐 들어올듯 넘쳐 흐르던 것이 호흡 두번에 갈무리된다.


“그래......마지막의 불꽃. 인상 깊었다. 독룡의 말대로 대회가 시작되면 재차 겨뤄보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말하며 도를 거두는 팽악의 모습이었다. 처음 보았던 광기서린 눈빛과 달리 순순히 도를 멈추고 기세를 잠재우는 것이 이상했다.


암화라는 별호 때문인지, 아니면 남궁세가의 가주를 들먹인 당소하의 말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독룡 당소하 본인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기 어려웠다.


“마찬가지군요.”


백연은 담담히 말하며 검을 거뒀다. 끌어올린 기운을 아직 완전히 잠재우지 않으면서였다. 만에 하나 기습적으로 출수할 것을 대비하는 것이었다. 검귀의 습관이었다.


‘팽가의 도법은 쾌속하고 예리하다 아는데.’


직접 마주하니 정말 그랬다. 순간적으로 마주한 오호단문도의 초식은 빠르고 예리했다. 다섯 갈래로 짓쳐 들어오는 도기 하나 하나가 절세의 일초였다. 팽악의 경지가 더 높았다면 쉬이 막아내기 어려웠을 정도로.


공격 일변도의 초식. 적화검류는 방어에 적합하지 않은 검법이다. 상대의 강맹한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는 더 강한 공격으로 집어삼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너무 비효율적이야.’


방어초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아직 전신에 두를 호신강기를 엮어낼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으니, 검으로써 갑옷을 대신해야 한다.


“가자. 남궁의 가주께 인사를 올리러 가야겠다.”


그 사이 기세를 완전히 갈무리한 팽악이 몸을 돌려 연무장을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발걸음을 따라 이는 기파가 요란했다. 뒤를 따라 팽가의 사람들이 움직였다. 그들이 전부 연무장에서 빠져 나갈때까지 백연은 가만히 서 있었다.


“이야, 거하게 일을 쳐 놓았군 그래.”


옆에 선 당소하가 중얼거렸다. 헛웃음 섞인 목소리였다.


“어찌하면 오자마자 팽가의 미친개랑 싸움이 붙을 수 있는거지?”

“미친개?”

“그래. 놈의 별호를 아나?”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룡이라 하던데.”

“하핫. 그것도 맞긴 하다만, 팽악을 아는 사람들은 전부 이렇게 부르지. 광도룡, 또는 광룡이라고.”


미칠 광(狂). 정파의 무인에게는 극히 드문 별호였다. 그만큼 부정적인 뜻이 담긴 말이다. 정파 무인에게 가져다 대었다가는 아무리 점잖은 이라도 칼부림 나기 딱 좋은 별호인 것이다. 그런 별호가 본인의 뒤에서 공공연히 돌 정도라니.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그나저나 너. 본신 무공을 완전히 꺼내지 않았군.”


그를 쳐다보며 당소하가 말했다. 그의 시선이 백연을 위아래로 훑었다. 몸에 서려있는 화기가 처음 객잔에서 보았을때 만큼 뚜렷하지 않았다. 전력으로 무공을 전개하지 않은 것이다.


당소하의 기억에는 몇 주 전, 객잔에서 무인들을 난자하던 화염의 검로가 선명했다. 오늘 보여준 검은 분명 놀라웠지만 그때만큼은 아니었다. 그러고도 팽악을 손쉽게 상대한 것이다.


“죽일 생각이 없었으니까.”


백연이 담담히 답하자 당소하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약간은 놀란 듯한 얼굴. 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백연의 검은 언제나 생사결에 임할때 가장 날카로워진다. 목숨이 걸린 순간부터 사람은 많은 계산을 하게 된다. 그것이 목숨을 내놓고 산다는 무인일지라도 그렇다.


그 속에서, 가장 아슬한 줄을 타고 몸을 내던지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강했다.


‘아직은 부족해. 한참.’


백연은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시선을 돌리자 주변에 가득한 기척들이 눈에 들어왔다. 팽가가 완전히 시야에 사라지고 나자 그를 향해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몸에 서린 기도가 강맹한 젊은 남녀들. 이번 용봉지회에 참여한 후기지수들의 무리였다.


‘정파 무림의 무맥들. 다양한데.’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거대 정파가 아닌, 중소 문파의 기도들도 다양히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드는 이들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감탄이 가득했다. 일부는 질시도 섞여 있었는데, 백연은 가만히 못본 척 했다.


“본 무인은 산서 현가(玄家)의 현오(玄烏)라 하오. 그대의 소문은 몇번 들었소. 섬서에서 금안나찰을 격살했다 들었는데, 오늘 보니 허언은 아니었나 보구려!”

“휘주 황산파(黃山派)의 위소선(魏小善)이라 합니다. 마지막에 보여주었던 검격. 보고 개안한 기분이었습니다. 혹 여건이 되면 향후에라도 둘이서 논검(論劍)을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요.”

“암화라는 별호만 들었는데. 혹 사문이 어디인지 물어도 되겠소이까?”


모여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부 그에게 사방에서 말을 걸어온다. 백연은 얼굴에 옅은 미소를 걸며 포권으로 각각에 예를 갖추었다. 적으로 돌려 좋을 것이 없다. 인사 한번씩 하는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너는 이런 일에 익숙한가 보군.”


정작 질린 표정을 하는 것은 곁의 당소하였다. 명문 세가의 소가주임에도 사람들을 일일이 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듯 했다.


“그냥 하는거지.”

“그러고 보니, 술 한잔 사준다 했던 것 같은데.”

“그랬지?”


그에 당소하가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


“약속한 술, 지금 먹으러 가도 되겠나? 여긴 좀 어지러워서.”


슬슬 그도 입꼬리가 아파오던 찰나였다. 그를 향해 쉴새없이 말을 걸어대는 무인들이 많았다. 구파나 세가의 일원은 없었지만, 중소 방파의 뛰어난 후기지수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암화라는 존재에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마침 시야에 단휘가 들어오고 있었다. 저편에서 그의 비무를 지켜보다가 인파를 헤치고 오는 사형의 모습이다. 그것을 확인한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자.”



※※※



“산골에 없는게 없네.”


남궁세가의 장원에서 살짝 벗어난 천주산 길목. 대로변 너머에 걸친 자리에 커다란 주루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층수가 낮지 않았는데, 한눈에 보아도 돈깨나 들 법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루에는 사람들이 가득 가득 들어차 있었다.


“방문하는 대상이 세가와 문파의 무인들이니. 그들의 주머니를 겨냥한 장소다. 장사가 잘 될수밖에.”


바깥까지 늘어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백연과 단휘, 당소하는 얼굴을 비추자마자 삼 층으로 안내되었다. 당소하의 얼굴을 알아본 주루의 사람들 덕분이었다.


“당가의 소가주는 다르군요. 이게 명문 세가인지.”


단휘의 말에 당소하가 피식 웃었다.


가벼이 잔을 쥔 그가 병에 든 술을 따라냈다. 시중을 들겠다는 주루의 사람들을 전부 물려버린 후였다.


“이게 절강의 소흥주(紹興酒)다. 마셔본 적 있나?”

“아니. 이렇게 중원 동쪽까지 올 일은 없었어서.”


절강의 명주는 중원 서편에서 구하기 어려운 술이었다. 검귀때는 당연히 본 적도 없었고, 이번 생에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도 않았다.


천관이 장문인과 마셨던 술이라고 했던가.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기억을 되새기며 백연이 잔을 받아들었다.


술은 금새 사라졌다. 부드럽고 은은한 향이 일품이었다. 그리 독하지도 않아 자칫하면 물처럼 마셔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칠룡이라고 들었어. 그게 궁금한데.”


소흥주를 재차 시키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이었다. 백연의 질문에 당소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칠룡(七龍). 말 그대로 일곱명의 뛰어난 후기지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칠룡과 더불어 구봉(九鳳)도 존재하지만 아무래도 한끝발 낮지. 우선 내가 칠룡중 하나인 독룡이고.”


당소하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광룡은 방금 만났고. 아참, 섬서에 갔었지. 화산과 함께 싸웠다면 검룡도 만났겠군.”

“맞아. 검룡 유성. 매화검법이 뛰어나던데. 절세의 검객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 괴물이 또 성장했었나?”


당소하가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안 그래도 괴물이었는데. 이번에 용봉지회에 안 나오는게 다행이라 해야할지.”


이번에는 백연이 미간을 좁힐 차례였다.


“검룡이 용봉지회에 안나온다고? 초청을 받지 않았을 리는 없을텐데.”

“음? 모르고 있었나?”


당소하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검룡은 폐관(閉關)에 들어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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