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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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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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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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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2)

DUMMY

※※※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하늘 아래 가장 드높은 무인이 누구냐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갈린다. 허나 그렇다곤 해도 각자의 의견들은 대저 너덧 정도로 수렴하기 마련.


특히 검왕이 쇠락한 작금의 무림에 이르러, 정파 무림인들중 정사마를 통틀어 천하제일을 논할 수 있는 것은 둘이라고 들었다.


신승(神僧) 혜종대사.


그리고 선극(仙極) 현려진인.


눈앞의 노인이다. 마교주와 혈교주, 사마외도의 온갖 괴력난신들이 횡행하는 중원에서 천하제일을 공공연히 논할 수 있다는 점으로 그 아득함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적어도 백연의 인지를 벗어난 경지에 이른 것만은 확실했다. 검왕의 심상에서 보았던 전성기의 검왕조차 그가 인지에 담을 수 있는 수준은 되었음에도 그렇다.


앉은뱅이 방장 스님도 마찬가지였는데,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느껴진다. 두 사람의 시선 앞에서는 스스로가 여래(如來)의 손아귀에 놓인 돌원숭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기에.


그런 이가 뜬금없는 말을 입에 담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도 안가는데.’


그와 이리 소탈하게 대화하고 있는 것부터 심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다. 지고한 무위에 비해 언행이 무겁지 않은데, 가끔은 꼭 마음씨 좋고 약삭빠른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몇번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그리 느껴졌다. 그렇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백연의 무례에 가까운 말을 듣고서도 허허 웃으며 되묻는 것조차 그렇다.


“싫다? 참으로 맹랑한 소년이로고.”

“......”

“그리 말할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또 새롭구나.”


쥐고 있는 검을 툭 놓는다. 허나 주름진 손이 검에서 떨어져 수염을 쓸어내리고 있음에도 검은 공중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허공이 강철로 된 받침대라도 되는 듯이.


“노부의 일검(一劍)을 견식하고자 수많은 이들이 무당산을 오른다. 그간 무당의 수없이 많은 기재들은 노부에게 한합을 받는것을 필생의 목표로 삼기도 하였노라.”


백연은 가만히 선극을 응시했다. 오만한 발언이나 저 노인의 입에 담기면 오만한 말이 아니게 된다. 그저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


주기적으로 무당산 위로 펼쳐지는 태극혜검의 경파를 보고 깨우침을 얻었다 하는 검객들도 많다. 때문에 호북에는 무림인들의 발이 끊이지를 않는다고. 숭산의 범종(梵鐘)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고자 걸음하는 이들과 마찬가지이다.


그저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에 다다갈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네가 노부의 제안이 어느 정도의 무게인지 모르지 않을 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백연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선극께서 제게 그리 제안하실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른건 제쳐 두더라도 무당파 장문인의 직전제자......차기 무당의 장문인이라는 공표와 같다 알고 있습니다. 헌데 외인에게 어찌?”

“외인으로 남겠느냐?”


가벼이 운을 떼는데, 백연은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눈을 깜빡여야 했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생각도 못한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였던 까닭에.


직후였다.


“저는.”


소년의 음성이 북풍한설마냥 내리깔렸다. 맑은 목소리에 냉기라도 깃든 듯이.


“곤륜파의 사람입니다.”

“적(籍)을 둔 곳은 세월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 법이 아니겠느냐. 네가 곤륜에 입문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들었건만.”

“혹자는 그리 가벼이 바뀔 수 있는 세월을 보냈을지 모르지만, 제 한해는 그들의 수십보다 무겁습니다.”


선극의 눈매에 주름이 접혔다.


“삼청(三淸)의 진리에 닿을 수 있다 해도 말인고?”

“남이 알려주는 것이 진리입니까?”


백연이 코웃음을 흘렸다.


“제가 곤륜을 등지고 무당파에 들어갈 일은 죽어도 없습니다.”


그 말에 선극이 느릿한 웃음을 흘렸다.


“죽음을 입에 쉬이 담는 이들은 그 무게를 잘 알지 못하노라. 너는 알고 있더냐.”

“선극께서는 죽어보셨습니까?”


백연의 시선이 선극과 마주쳤다. 한없이 지고한 무인의 꿰뚫는 듯한 시선이 백연을 응시했다. 잠시간 의문을 표하듯 그를 쳐다보는 선극. 백연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저는 보았고, 느꼈습니다.”

“......어린 아해가 그 눈으로 무엇을 보았는지 궁금하구나.”


흐르듯 중얼거리는 음성이 낙엽같았다. 그리 잠시간 백연을 응시하던 선극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 너는 진정으로 곤륜의 무인이로구나. 부럽고 또 부럽지 아니한고.”

“......”

“인정하겠노라. 노욕(老慾)이 과했구나. 노부가 바라왔던 자질을 눈앞에 둔 탓에.”


허허로이 웃으며 말한다. 백연은 입을 다물었다.


이 또한 예상하지 못했다. 선극은 진정으로 백연 자신을 원했던 것인가. 무슨 자질을 바랐기에.


“자질이라 하면, 무당의 뛰어난 무인들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네가 방금 말했지 않았더냐. 남이 알려주는 것이 진리냐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던진다. 잠자코 기다리자 선극이 시선을 돌렸다. 무연봉 너머로 떨어지는 시선이 한없이 깊었다.


“무당이 추구하는 무(武)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는고.”


백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에 선극이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삼봉 진인께서는 수많은 무학의 갈래를 남기셨지만, 결국에 모든 줄기는 하나의 뿌리로 수렴하게 된다. 삼청의 힘이 그것이니라.”

“도가 삼청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허나 삼봉께서 등선하신 이래 어떤 무당파의 무인도 그 근원에 이르지 못했다. 노부 또한 그랬으니.”


그리 말하며 천천히 허공을 따라 검을 그어내는 선극.


‘언제?’


검은 돌연 나타나 있었다. 여상히 뻗어낸 손끝에 들린 것은 나무로 된 낡은 목검(木劍) 한 자루였는데, 언제 뽑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애초에 저런 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옥청(玉淸) 구성(九聖).”


그 순간이었다.


찰나, 검이 비스듬히 하늘을 갈랐다. 인지를 벗어난 검격은 어느 순간 그 자리를 스쳤다. 동시에 백연의 감각에는 아득한 검의 흔적이 새겨졌다. 하늘 전체를 따라서.


‘무슨......?’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이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돌연 흐릿하게 일렁이는데, 한순간 모든 푸른색이 조금 더 푸르게 느껴진다. 맑은 하늘을 통째로 그러모아 시린 청광(淸光)으로 엮어낸 양.


“상청(上淸) 구진(九眞).”


화아아악-!


곧바로 이어서였다. 직전의 검격만으로도 백회가 타버릴 듯한 감각을 느끼고 있던 백연의 눈 앞에 돌연 횡격이 현현했다. 어느 순간 소년의 시야에는 지평이 들어왔다. 무당산을 넘어 저 아래 평야와 하늘의 경계가 코앞에 다가오기라도 한 듯이.


아니었다.


누르스름한 빛으로 물든 지평은 검격의 여파였는데, 한순간 새로이 지천의 경계를 정립한 듯 보이기까지 했다. 그 범위가 한없이 아득한 까닭이었다.


직후였다.


후우욱.


갑작스레 시야를 채우던 거대한 경파가 바람처럼 크게 일렁이더니, 선극의 손짓 한번에 그대로 녹아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듯 했다.


‘어떻게?’


그 또한 신기였다. 본래 한번 발출시킨 경파는 저렇게 소멸하듯 없앨 수 없는 법. 기운이란 흐름이기에 그렇다. 파도의 첫 자락을 일으키는 것은 무인의 무공이나, 그 끝은 세상의 법칙을 따른다.


이 또한 선극의 알 수 없는 무공 때문일까. 백연이 그에게서 느끼는 허(虛)가 그저 느낌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게 어느샌가 검을 거둔 선극. 이어 흘리는 음성에는 무언가 옅은 감정이 묻어 있었다.


“옥청과 상청. 노부는 미숙하게나마 깨달음을 얻어 두 힘에 닿았노라. 삼봉께서 남기신 무당의 뿌리중 둘을 손에 쥔 격이니 달리 경지에 닿았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허나 지닌 자질이 부족한 탓에 이 다음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 다음 말입니까?”

“태청(太淸)이 그것이다.”


도가 삼청이라 했다. 순간적으로 백연의 뇌리에 태청신공이 스쳤는데, 크게 연관은 없을 것이었다. 같은 어구라 해도 무학을 만든 사람에 따라 글귀에 담아내는 의념은 다르기에.


곤륜 또한 도문. 태청을 의념의 기반으로 삼고 무학을 엮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선극이 언급하는 태청은 전혀 다른 무학이라 봐도 무방할 터.


고개를 끄덕인 백연이 답했다.


“구선(九仙)의 태청이군요. 그 셋이 하나에 이르면, 삼봉께서 엮어내신 무공의 근원이 된다. 지금 말씀하신 것을 저는 그리 이해했습니다만.”

“맞다. 허나 동시에 틀리다. 노부는 인간의 몸으로써 삼청의 완성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있으니.”


그리 말하며 수염을 쓸어내린다. 어느새 목검은 그의 허리춤에 걸려 있었는데, 집중해 보지 않으면 인지하기도 어려운 수준의 존재감이었다.


“노부가 제자로써 스스로 깨우치는 자질을 찾으려 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리 말하며 다시 백연을 돌아본다. 이어 덧붙이는 말이 가벼웠다.


“그리고 네게서 그런 자질을 보았다. 분광뇌풍검이라 했더냐. 기어코 무당산에서 신공을 완성시키고 가는 자질이 드높구나. 눈이 즐거웠도다.”


말끝에 아쉬움이 깃들어 있었다. 감정이 선연히 느껴진다.


드문 일이었다. 지고한 경지에 오른 이들은 좋든 싫든 감정을 다스리는 것에 능해지는데, 기운의 흐름은 감정에 영향을 받는 까닭이었다. 그럼에도 선극의 어투에 깃든 아쉬움은 매우 진했다. 감출 생각도 없는 듯 했다.


이어서 물어오는 질문이 그러했다.


“네게 무당으로의 입적은 더 이상 권하지 않겠다. 허나 다른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른 제안이라면......”

“노부에게 검을 배우지 않겠더냐.”


백연이 습관적으로 검파를 매만졌다. 여휘가 지잉-우는 듯한 진동이 손끝에 느껴졌다. 그의 감정에 기파가 동한 탓일까.


한숨을 살풋 내쉰 백연은 담담히 답했다.


“거절하겠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느냐?”

“두가지 때문입니다. 첫째로 그런 가르침은 응당 무당파의 무인이 받아야 하는 것.”


외인이 함부로 전수받을 것이 아니다. 그것이 선극 개인의 선택이라 해도 그랬다.


“제가 끼어들 자리가 아닙니다.”

“과거, 삼봉께서는 소림의 무학을 익히신 적이 있다. 알고 있느냐?”

“예......?”


처음 듣는 소리였다. 백연이 의문을 표하자 선극이 미소를 지었다.


“금세에 와서 각 무문에서 무공을 폐쇄적으로 전수한다 하나, 그것은 지금의 이야기. 본래 가르침은 교류였다. 송(宋)과 원(元)의 시대를 거쳐온 소림의 무학은 뿌리가 되어 사방으로 퍼졌다 봐도 무방하다.”


무학의 교류를 논한다. 묘하게 논점을 비트는 듯한 이야기였지만 일리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물론 네가 무당에 입문하지 않는 이상 무당의 무공을 전부 전수할 일은 없다. 허나 노부의 깨달음 몇가지 정도는 같은 검도(劍道)를 걷는 검객으로써 나눌 수 있으니. 무당파와 별개로 노부의 제자가 되지 않겠더냐.”


백연이 선극을 응시했다.


‘......이건 좀 끌리는데.’


정말로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선극은 지고한 무인이었고, 그에게 전해듣는 몇마디는 말 그대로 천금의 가치가 있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제 검은 곤륜파의 것.”


지금 자신은 오롯이 길을 엮어내야 하는 처지다. 선극의 제안 자체는 좋았으나, 그 향방이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방금 전에도 스스로 욕심이 있다고 인정한 바.


삼청의 완성에 대해 욕심을 내었기에 그에게 무공을 전수하려 하는데, 그 길을 가게 된다면 백연 스스로의 무학을 만드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곤륜파의 검은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었다.


설령 선극에게 배우는 것이 더 지고한 무학으로 향하는 길이라 해도, 백연은 그 검도에 오를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곤륜의 검으로만 우뚝 서야 합니다. 삼청은 곤륜의 길이 아니지요. 이것이 두번째 이유입니다.”

“허허.”

“비무제전의 상품으로는 과분한 제안......감사드립니다만, 제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러 주셨으면 합니다.”


그의 말에 선극이 수염을 쓸며 고개를 저었다. 감탄과 아쉬움이 섞인듯한 헛웃음과 함께였다.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기 위함이라. 그 자질과 성품이 선재(仙才)이며 선재(善哉)라. 그렇기에 더욱 아쉬울 따름이로다.”


끌끌-혀를 차며 중얼거린 그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아직까지도 허공에 걸려 노닐던 검이 선극의 손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이 찰나였다.


턱.


검을 쥔 그가 백연을 돌아보았다.


“받거라.”


천마의 검.


백연은 홀린듯이 손을 뻗어 그것을 쥐었다. 선극의 주름진 손에서 검을 건네받는 순간이었다.


우웅-


“음......!?”


한순간 검이 바르르 떨리듯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저 착각이 아니었다. 옷자락 끝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바람 한점 불지 않았음에도.


그러나 이윽고 검은 빠르게 조용해졌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한 검 마냥 가만히 잠들어 있는 모습. 백연은 검을 쥔채로 잠시 그것을 가늠했다.


무게가 한없이 가벼웠다. 과거의 묵령검은 물론이고 여휘보다도 배는 가볍다 느껴졌다. 길이 또한 평균적인 검신에 비해 삼분지 이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천마의 몸에 맞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이런 검이어도 충분했기에 이렇게 만든 것일까.


‘선아와 살펴봐야겠어.’


백연은 검을 그 자리에서 바로 뽑지 않았다. 예의가 아니었을 뿐더러, 함부로 꺼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드느냐?”

“......예.”

“천마의 검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렇더냐.”


선극이 웃음을 흘렸다.


“누군가는 마검(魔劍)이라 하여 거리낄 물건일지도 모르는 것을.”

“검은 물건입니다. 사이한 영성이 깃들었다 해도 휘두르는 이의 자질이 먼저지요.”

“그 말 또한 옳다. 네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을 보니 나쁘지 않은 상품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허나.”


선극이 운을 떼었다. 백연이 의아한 시선으로 올려다보자 그가 주름진 웃음을 지었다.


“네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검이 아닐 것이다. 곤륜의 길을 만든다 했으니.”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따라 오거라. 네게 줄 것이 있다.”



※※※



화아아아아악-!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태연히 뒷짐을 지고 걸어가는 선극. 일보(一步)를 내딛는 것이 보이지도 않는다. 분명 가만히 서 있는것 같은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저 멀리 앞에 가 있다. 축지법이라도 익혔는지.


‘분명히 똑같은 보신경인데.’


제운종.


초월의 경지에 다다르면 저리 되는 것인가.


백연은 바삐 발을 놀리면서 그리 생각했다. 점잖게 뒷짐을 지고 걷는 것이 조금은 얄미워 보인다고.


쿠르르르릉.


섬전처럼 산맥을 헤쳐나가는 백연의 걸음이 뇌기를 휘감고 번뜩였다. 용형보로 긴 거리를 내달리는 중이었는데, 진기 소모가 상당하다.


‘역시 경공은 따로 엮어야겠어.’


산맥 너덧개를 넘는것만 해도 내공을 물처럼 써댄다. 기본적으로 공간 장악의 기예를 품고 있는 탓이었다. 그 속도 또한 빠르다곤 하나 오래 유지할 것은 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품고 내달리기를 한참.


후우우욱!


어느 순간 사방을 에워싸던 나무들이 사라지며 전방의 시야가 탁 트였다. 한순간에 높다란 봉우리 아래로 거대한 구름의 물결이 파도치듯 펼쳐졌다.


그 앞 꼭대기에 멈춰선 선극.


“여기다.”


한참 뒤에서야 옆에 번뜩이는 뇌기를 휘감고 도착한 백연을 향해 넌저시 말을 건넨다. 붕우리 너머로 보이는 운해(雲海)를 향해 고갯짓을 하며.


“후......여기는 어디입니까?”


숨을 가다듬은 백연이 물었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신비로웠다. 빽빽하게 시야를 가리던 봉우리는 어디가고, 한없이 널찍한 공간을 가득 채운것은 구름뿐이었다.


지금 발 디디고 서 있는 봉우리를 기점으로 산맥이 둥그렇게 늘어선 탓이었다. 그 범위가 그야말로 장대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꼭 봉우리들로 만들어진 호수와도 같아 보였다.


그 속에 물 대신 구름을 품고 있는, 거대한 호수.


‘방향이 익숙한데......?’


문득 그가 내달려온 길의 위치가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잠시.


선극이 조용히 입을 열었고.


“이곳은 무당파의 오랜 비처(秘處)중 하나. 평시 출입이 금해진 장소이니라.”

“예? 그런곳에 어찌 제가.”

“이곳의 출입이 금해진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장소가 위험한 까닭이다. 때문에 진법으로 봉하고, 노부를 비롯한 몇몇의 문도들이 관리하고 있으니.”


이어 툭 내뱉는다.


“이곳은 삼봉 진인의 무흔(武痕)이 깃든 장소이다.”


그제서야 백연은 깨달았다.


‘술법무공을 펼치려 했던 범위의 중심이......!’


하령이 보내왔던 술법무공의 해석. 이 장소를 중심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저 소문이 아니었던 것인가.


그리고 선극이 그를 여기에 데려왔다는 소리는 그렇다면.


“어떠하더냐.”


입매에 웃음을 건 노인이 그를 돌아보며 말한다.


“네 무도(武道)를 엮어낼 새로운 영감을, 이곳에서 쟁취해 보겠느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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