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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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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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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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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2)

DUMMY

※※※



달랐다.


이전의 경기들은 항시 빠르게 시작되고 마무리 되었다 하면,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정파 무림의 가장 거대한 축제. 그것을 마무리 짓는 최종적인 무대인 까닭일까.


“흐읍!”


기합성과 함께 수십자루의 검이 일제히 허공을 가른다. 무당파의 태극검이 희끗한 기파를 휘감고 전진, 춤추는 듯한 검로를 엮어내며 경기장 위를 가득 채워낸다.


흩날리는 도포자락에 매달린 기운이 하나같이 커다랬다.


소림의 나한(羅漢) 무승들. 그리고 화산파의 매화검수들과 더불어 강호 무림을 횡행하는 가장 강대한 검객들. 무당현검(武當賢劍)이라고 했던가.


배분을 가리지 않고 무위와 태극검의 성취만을 따져 뽑는다고. 송문고검은 무당현검들의 상징이기도 했다.


“재밌네.”


백연이 중얼거렸다.


경기에 앞서 길다란 행사가 이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무당현검들이 이리 단체로 검진을 펼치는 모습까지 과시하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태극검의 물결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검이 펼치는 무공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합격진의 형태가 한두번 연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제아무리 강대한 무인이라도 홀로는 상대하기 힘들지 않을련지.


쿠웅.


보법을 딛을때마다 기파가 둔중하게 떨려왔다. 유운신법의 기파가 일제히 움직이니 자욱한 운무가 장중하게 내려앉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비무제전은 중원에서 제일 큰 무(武)의 제전이라더니.’


그 말을 증명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백연이 경기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그것을 눈에 담았다.


결승전에 참가하는 입장으로써 객석이 아닌 아래 자리에서 보고 있었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한층 높은 곳에서 일제히 검을 펼치는 것이 꽤나 장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백연의 뇌리에 스치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생각이었다.


“화산에서는 매화검수들이 저리할테고......”


소림에서 비무제전이 열리면 나한진을 볼 수 있을터다. 저것은 문파의 힘과 역사, 그들이 지닌 깊은 뿌리와도 같은 것.


단순히 홀로 툭 튀어나와 강해진 이 하나로는 저러한 광경을 연출해낼 수 없다. 그렇기에.


‘언제고.’


곤륜산에서 비무제전을 열 수 있게 된다면.


‘저런 것이 가능할까.’


어느 순간 백연의 눈에는 무당파의 태극검이 보이지 않았다.


운연(雲煙)같은 기운을 두르고, 시린 뇌광을 휘감은 검객들. 일검으로 곤륜의 산세를 그려내고, 일보로 구름 위의 운룡(雲龍)마냥 거닐면 그 또한 장관이지 않을련지.


모두가 뇌풍을 두르고 검을 떨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정말로 꿈만은 아닐 일이다.


그리 멍하니 상상을 펼치던 백연이 이윽고 눈을 깜빡이곤 피식 웃었다.


“갑자기 감상에 젖어선.”


근래 문득 문득 느끼고 있었다. 본래의 그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었건만. 문파와 사형들을 위해 미래를 계속 생각한 까닭일까. 가끔씩 그의 성정이 많이 감상적으로 변했다고 느껴졌다. 지금처럼.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다만 무언가 달라지는 듯한 느낌일 뿐.


‘육체는 생각을 이끈다고.’


어린 아이의 몸이 되어버린 것이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 지금의 그는 약관도 한참 남은 소년이기에.


‘......헌데 비무제전을 열려면 문파 건물들을 확장이라도 해야? 아직 좀 좁은데.’


또다시 스치는 생각이었다.


그때쯤 현검들의 부드러우면서도 끊이지 않는 검진은 점차 그 기세를 거둬가고 있었다.


결승이 다가온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암화. 이제 이쪽으로 와주겠나.”

“예.”


백연이 발걸음을 돌려 옆으로 향했다. 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아래. 무당파의 도인들이 부산스레 움직이며 오간다. 그 사이로 지긋한 외양의 노검객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가?”


허허로이 웃으며 물어오는 것이 가벼웠다. 백연은 가만히 어깨를 으쓱였다.


“별 생각 없습니다만.”

“헛허. 그래 보이는군.”

“검룡은......”

“장문사형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걸세. 두 사람이 친한것은 아네만, 그래도 경기 전이니 말이지.”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습관적으로 눈앞에 선 노검객의 기척을 헤아렸다.


“그대는 오늘따라 더 헌앙하군. 누가 예쁘게 단장이라도 해준겐가?”

“아, 사저들이......”

“그런 것이었나? 문파의 사람들이 서로 우애가 좋으니 보기 좋네.”


살필수록 아득했다.


허허 웃음을 흘리며 가벼운 기세로 서 있음에도 빈틈이 없다. 작금의 무당에서 검으로 선극에 이어 가장 지고한 경지에 오른 무인인 까닭이다.


무당검선 현궁진인.


“그간의 활약은 잘 보았다네. 노부만큼 그대의 검을 자세히 본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야. 그렇기에 오늘이 더욱 기대가 되는군.”


그 말대로다. 백연의 검을 누구보다도 눈앞에서 자세히 보고 관찰했을 인물. 비무제전의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을 도맡았던 사람이기에 그랬다.


검에 관해서는 경지를 이룬 인물인데, 그랬기에 백연은 툭 던지듯이 물을 수 밖에 없었다.


“검선께서 보시기엔, 어땠습니까?”


그의 검이 저 노검객의 눈에는 어찌 비쳤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에 현궁진인이 잠시 고민하듯 수염을 한번 쓸고는 입을 열었다.


“노부가 보기에......그대는 검(劍)이더군.”

“......”

“꼭 베어야 할것만을 베어내게. 무뎌지지 않도록.”


흘리듯 건네는 조언. 백연은 가만히 귀담아 들었다. 뒤이어 입꼬리를 끌어올린 현궁진인이 덧붙였다.


“그리고 자네의 검은 매번 놀랍더군. 끝이 어디인지 궁금할 정도로.”


그때였다.


밖에서 요란한 함성소리가 파도처럼 터져나왔다. 사람들의 육성이 허공을 따라 거대한 진동이 되어 파문을 그리며 흐른다. 경기장 전체를 뒤흔들고 대기에 가벼운 떨림을 일으킬 만큼.


그에 백연이 시선을 번쩍 들어올렸다.


“올라갈 시간이군. 좋은 경기 되기를 바라겠네.”


현궁진인의 가벼운 격려를 뒤로하고, 백연은 걸음을 옮겼다.


사박.


걸음이 계단을 스쳤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햇살이 시야 가장자리를 물들이고.


‘이건 시작이야.’


결승이 끝난 직후부터 바쁘게 돌아갈 일들이 많다. 결승이 끝났다 해서 마무리되는 것은 없다. 당장 패흑련의 움직임부터, 혈선을 쫓으러 간 검성, 수라궁의 움직임, 만금장의 모략, 하령의 호출까지도.


이 결승은 격랑을 앞에 두고 선 잠시간의 평화일 뿐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진심으로 임할 생각이었다.


탁.


소년의 걸음이 청강석 위에 닿았다. 무연봉 위에 세워진 거대한 경기장 아래, 사람들의 목소리가 거대한 음공마냥 해일같은 압박으로 화해 떨어지는 자리다.


지금 이 순간도 그랬다.


와아아아아아!


쏟아져 내리는 환호 소리가 실재하는 압박같은 기류가 되어 몸을 짓누른다. 하지만 백연은 그것을 느끼면서도 입꼬리를 가만히 끌어올렸다. 여휘의 검파에 손을 가벼이 올리고 눈을 내리감은 채였다.


“하아.”


손끝이 저릿하게 떨리고 호흡이 조여든다. 긴장감이었다. 그에게는 기분 좋은 감각이었다.


마치 전장에 들어서기 직전 항시 느꼈던 그런 감각. 허나 긴장이 되는 이유는 보는 눈이 많아서나 이것이 결승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지그시 내리깔았던 눈을 떴을때, 반대편에 서 있는 한 인영.


오늘 그가 검을 맞댈 상대가 그였던 까닭에.


화산의 검은 무복을 가볍게 걸쳐입고 검을 늘어뜨린 모습. 이쪽을 슬쩍 쳐다보며 평소와 같은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다.


검룡 유성.


과연 그는 오늘 무엇을 준비해왔을까. 지금의 그가 닿은 검의 끝은 어디일까.


‘끝까지 가보자.’


백연은 생각했다.


오늘만큼은 그가 검을 먼저 멈추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었다.


그때였다.


“기나긴 겨울의 여정을 지나.”


문득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언제 그 자리에 나타났는지 모를 상석의 선극. 외팔을 뒷짐진 채로 따스한 시선을 하고 주변을 굽어본다.


“이제 두 검(劍)만이 봄의 첫 자락에 남았소.”


사방을 따라 스며드는 음성은 들어도 들어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의 무공 근간이 궁금해질 정도였다. 단순히 경지에 오른다고 저리 되는 것이 아닌데.


“그간 비무제전에 참가해 대회를 빛내준 이들을 치하할 말을 늘어놓자면 끝도 없겠으나, 늙은이의 긴 말로 좌중의 기대를 어그러뜨리지 않으려 하오.”


허허로이 웃는 선극. 이어지는 어투도 가벼웠다.


“해서 결승에 이른 두 무인에게 심심한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싶으며, 동시에 오늘 홀로 우뚝 설 이에게는 무당파에서 큰 상을 준비해두었다는 소식을 전해드리겠소. 그리고.”


선극이 옆을 쳐다보았다. 그와 함께 자연스레 걸어나오는 인영.


익숙한 얼굴이다. 하지만 일전과 복식이 조금 달랐다. 본래 한없이 짙푸른 청포를 입고, 왕(王)의 위세를 드러내던 인물.


이번에는 아니었다. 금실로 장식이 되어 있으나, 그 형태는 한없이 무림인의 무복에 가까운 흑의(黑衣). 밤에 녹아든 것 마냥 짙은 묵빛의 장포를 두르고 올라선 사내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나른한 눈매를 휘면서.


“그간의 모든 경기, 전부 잘 보았다. 한없이 무지한 눈에도 강호 무림의 미래가 밝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 자리에 모여 제전을 빛내준 모든 이들에게, 본인의 이름을 걸고 경의를 표하고 싶다.”


백연이 눈을 깜빡였다.


무언가가 달랐다. 유왕의 태도와 언행은 언제나와 같은데, 묘하게 바뀐듯한 느낌. 대체 무엇이지.


“그대들의 검이 민생을 수호하는 기치가 되어 드높이 오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 결승이 그 방점이 되리라는 것도.”


어째서 옷을 바꿔 입었을까. 그것부터 의아했다. 본래 황가의 인물들은 공식적인 자리에 나설때 반드시 황실의 복식을 입어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는데.


유왕이 입었던 용이 새겨진 푸른 도포란 그런 의미였다. 그의 지고한 신분과 위치를 상징하는 물건.


허나 지금 저 복식은......


‘강호인의 옷인데.’


“해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겠다. 이 자리에서 결승의 열기를 더하고자 일전에 약속했던 보상을 미리 공표하고자 한다.”


툭. 가벼이 내뱉은 유왕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오늘 승리한 이에게는 본인과 독대할 권한을 선사하겠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상품이 될 수 없겠지. 강호 무림의 검은 북경의 관리들이 아니기에.”


백연이 고개를 기울였다.


‘본인?’


그렇게 머릿속으로 의문을 가질때쯤, 유왕의 말이 이어졌고.


“독대한 이에게, 왕(王)의 이름으로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하나 들어주도록 하겠다. 이것이 본인이 내거는 약속이자 비무제전의 우승자에게 주어질 상품이다.”


직후였다.


와아아아악!


즉각적인 반응과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만큼 말도 안되는 내용이었던 탓이었다. 왕의 이름으로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는 말의 의미.


정말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면 안되겠지만, 적어도 저 말대로라면 왕의 자리에서 얻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것이 천고의 영약이건, 황실의 무공비급이건, 아니면 천하에 둘도 없을 신검(神劍)이건 간에.


허나 정작 백연은 다른 것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왕. 본인. 이제 알겠다.’


언제부턴가 유왕은 스스로를 본왕이라 칭하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의문이 소년의 머리를 채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유왕이 금새 다시 아래로 내려가고.


“허면 지금부터.”


다시 입을 연 선극의 목소리가 내리깔렸다. 삽시간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백연 또한 생각을 거두고 다시 호흡을 정리했다.


그의 의문과 별개로 적어도 지금만큼은,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해야 했으니까.


“화산파의 검룡(劍龍) 유성과 곤륜파의 암화(暗火) 백연. 두 무인의 비무제전 결승전을......”


선극의 음성이 무연봉 위에 깃털처럼 내려앉았고.


“시작하겠소.”


결승전이, 마침내 시작되었다.



※※※



쿠구구구궁!


땅거죽이 뒤집히고 파도치며 무너진다. 일순 한 인영이 바람을 휘감은채로 진각을 내리찍는 것과 동시였다.


[대체 어디서부터......!]

“조심하게! 위!”


다급한 신개의 음성이 끼어드는 순간이었다. 풍백의 머리 위로 검은 빛살이 돌연 현현. 막대한 기파를 휘감은 채로 묵빛 낙뢰(落雷)마냥 허공에 한줄기 선을 새겨내었다.


그 순간 풍백의 신형이 흩어지듯 일렁였고.


쩌저저저정!


이검(二劍)이 삽시간에 열댓번에 달하는 검로를 허공에 교차. 묵빛 궤적을 두동강낸 풍백이 그대로 신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네. 자네 몸뚱이 간수나 잘......”

[그럼 혹시 보이십니까? 활잡이의 위치가 필요합니다.]


키잉-


그 말을 듣는 것과 동시에 신개의 눈에 강대한 안법 기파가 발현되었다.


천하제일쾌(天下第一快).


가장 빠른 이는 무릇 멀리 볼줄 알아야 한다. 때문에 이 순간 신개의 눈에는 보였다. 지난 며칠간 두어번 보았던 사내, 궁귀의 신형이.


“동북. 십리(十里:4km)일세!”

[십리? 무슨 천뢰시(天雷矢)도 아니고.]


풍백이 기가 찬듯 뇌까리는 그 순간.


후욱.


바람 소리가 먼저였다. 신공 풍신이 극한까지 몸을 부풀린 여파였는데, 신개가 안법을 거두고 있을때쯤 풍백은 이미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들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다섯 줄기의 묵빛 선을 향해서.


소리는 없었다. 살아있는 것 마냥 제각각 다른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는데, 하나같이 소리를 앞질렀다. 그 안에 담긴 기파가 압도적인 추력으로 화살을 가속시키는 까닭에.


동시에 기괴했다. 각기 다른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는 것도 모자라 조금씩 그 속도가 다르다. 일부러 어긋내기라도 한듯이.


[수작을.]


그때였다. 풍백이 중얼거림과 동시에 두자루의 화살이 급격하게 가속. 허공에 파문을 그리며 정확히 풍백의 신형을 앞뒤로 감싸내었고.


돌연 흐릿한 바람이 인지를 뛰어넘은 속도로 풍백의 주변을 따라 회전. 어느 순간 앞뒤로 투명하게 흐르는 검(劍)의 형태가 형성되었다. 직후 귀청을 찢어내는 듯한 바람 소리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며 주변을 휩쓸었다.


파아아아아앙!


가공할만한 속도로 짓쳐오던 화살 두자루와 바람으로 이뤄진 무형검(無形劍) 두자루가 충돌. 양쪽 모두 가루처럼 부서져 소멸하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파장이 동심원을 그리며 발 아래 대지를 뒤집어 엎었다. 그 여파로 자욱한 분진이 바람에 휘감겨 위로 상승했다.


‘무형검이 저리 단번에?’


신개의 눈동자에 경악이 스쳤다. 궁귀의 무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은 지난 며칠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저것은 풍백의 절기중 하나. 저리 쉽게 부서질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분진을 뚫고 솟아오른 풍백을 따라 화살 세자루가 급격하게 궤적을 뒤틀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이 풍백을 쫓아 궤적을 뒤바꾸는 화살들. 그새 허공에서 몸을 뒤집은 풍백의 이검이 번뜩이며 전진했고.


쩌저저저정!


굉음과 함께 화살들이 전부 뒤틀려 바닥에 처박혔다.


쿠르르릉.


그 발경력 여파로 대지가 다시한번 신음했는데, 그때까지도 화살의 소리는 이 자리에 도착하지 못했다.


직후 휘파람 같은 쐐액-소리가 도달. 이미 풍백이 착지해 숨을 고르기 시작한 뒤였다. 전부 한호흡 안에 이루어진 싸움이었다는 방증이었다. 저편 멀리에서 쏘아진 화살의 소리가 이제서야 귓가에 스칠 만큼.


[안되겠습니다. 저자를 잡아야겠군요.]

“위험하네.”

[가만 두는게 더 위험합니다.]


가면 아래로 예리하게 번뜩이는 연푸른 눈이 차갑게 가라앉고 있었다. 가볍게 뱉어내는 숨결에 흐린 운무(雲霧)같은 빛이 담겼는데, 그 속에 내가중수법을 해소하는 묘리가 깃들어 있었다.


[어르신, 조심하십시오. 제가 못 지켜드리겠군요.]

“내 자네한테 지켜달라 할 몸은 아니지 않나?”

[그럼.]


고개를 끄덕인 풍백이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의 발치를 따라 파문처럼 일어나는 바람이 점차 거세지며 몸을 휘감았다.


직후 그가 한걸음을 내딛었다. 동북쪽을 향해서였다.


신공 풍신(風神). 궁신탄영(弓身彈影)의 장.


투웅-!


문득 풍백의 신형이 퉁기듯 사라졌다. 압도적으로 압축된 기파가 삽시간에 그의 몸을 가속. 풍백이 단숨에 공간을 잘라내어 건너뛴 듯이 궁귀를 향해 거리를 좁히려던 그때.


“허어. 안되지.”


탄식하는 듯한 목소리가 풍백의 귀를 파고들었다. 동시에 그의 시야 사선으로 왠 백색 잔영이 스쳤고.


쩌어어엉!


반사적으로 치켜든 검에 압도적인 기파가 충돌. 전진하던 풍백의 신형이 돌연 화살을 맞은 새매마냥 바닥에 날아가 처박혔다.


[커헉......!]


기침을 뱉은 풍백이 시선을 치켜드는 순간 코앞에 나타난 것은 검은 화살이었다. 일순 즉각적으로 휘두른 검과 화살이 충돌.


쿠구구구궁!


다시 한번 땅거죽이 뒤집히며 대지가 흔들렸다. 압도적인 발경력 여파가 풍백의 팔을 저릿하게 만들며 그의 무릎을 반쯤 땅에 처박았다.


“헌데 이상하구나. 그 무공을 익힌 다른 사람이 이제 남지 않았을 것인데. 이 늙은이가 아는 한에는 한명 뿐인 것을.”


직후 그 앞에 내려앉은 것은 한 검객이었다. 새하얀 수염과 그보다 더욱 새하얀 백의(白衣) 장포.


검집에서 꺼내지도 않은 검을 껴안고 수염을 쓸어내리는 노검객의 눈은 허옇게 멀어 검은 부분이라고는 존재하질 않았다.


그 얼굴을 본 풍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추혼.]


짓씹듯이 내뱉은 어조에 노인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기괴한 미소를 지은 혈선이 웃음기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반갑다는 듯이.


“간만이구나. 제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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