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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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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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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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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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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DUMMY

잠시간 멍한 표정을 지은 하령이 곧바로 되물었다.


“대체 왜?”

“몸에 진기가 하나도 없을때나 써볼 수 있는거라 말입니다. 완성하고 실험해보려 했다가 이렇게 된겁니다. 진기의 반발 때문에.”


백연이 천으로 얼굴을 다시 슥 문질렀다.


그가 말한대로였다. 분명 무공의 구결은 완성에 이르렀다. 그걸 통해서 엮어낸 일검(一劍)도 완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반동이 막대했다. 태허를 기반으로 삼았기 때문일까.


‘외려 온전한 상태로 펼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야.’


하지만 백연은 한편으론 무공의 끝없는 가능성을 느끼고 있었다. 삼봉과 천마의 무공 의념을 동시에 손에 쥘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대가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랬구나. 난 또 인신공양이라도 해서 술법무공을 펼치려는 줄 알았잖아.”

“술법무공을 말입니까?”

“피는 강력한 매개니까. 네 정도 피면 충분하지.”


어깨를 으쓱인 하령이 생긋 미소지었다.


“여튼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 비급이랑 일기장은 들고 왔어?”

“들고오긴 했습니다. 헌데 암야서고 밖으로 가지고 가도 되는 건가요?”

“물론이지. 이제 그건 네 물건이야. 나는 자유로워졌는걸.”


그렇게 말하며 소매를 펄럭거리는 모습이 정말로 후련해 보였다.


“바다를 못 본지가 벌써 기백년이었는데.”

“......바다를 못 본지가 그리?”

“응. 대부분의 시간은 암야서고의 수호를 위해 자리에 머물렀고, 간간히 바깥에 나가는 경우는 문주의 소집 이외에는 거의 없었지. 마교가 날뛸때조차 나는 여기에 있었으니까.”


흐리게 웃은 하령이 덧붙였다.


“외려 마교를 상대로는 반드시 암야서고를 수호하는게 옳긴 하다만.”

“그건 교주 때문입니까?”

“맞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천마신교의 최우선 목적은 역시 천마 본인의 위세를 다시 한번 이 땅에 강림시키는 거야. 간단히 말하면 천마의 재림(再臨).”


하령이 말했다.


“그 형태는 두가지 중 하나가 되겠지. 마교주 본인이 진정 천마의 재림이라 인정받을 만큼 유례없는 일신의 무(武)를 이루거나, 그게 아니라면......”


말하며 스스로의 몸을 힐끗 내려다본다.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혼백 전이의 무공이 문득 생각난듯이.


“천마 무연 본인을 정말로 다시 불러내려 할지도.”


그 말에 백연의 표정이 굳어들었다. 소년이 손가락으로 검파를 톡톡 두들겼다.


“전에 비슷한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래? 어디서?”

“참월대주......천살문의 종자와 신강에서 만났다 했지요.”


하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놓은 가능성 낮은 추측이었습니다. 모산파의 잔당 몇이 혈교의 술법을 빌어 알 수 없는 의식을 치르고 있었는데, 그것이 어쩌면 귀혼대법(歸魂大法)과 연관되어 천마를 재림시키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


하령의 눈썹이 휘어들었다. 그에 백연은 덧붙였다.


“가능성은 낮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없지는 않았죠. 우선 그 모산파의 일원이었다는 두 무인이 신강에서 진입하려 한 장소가 천마의 무덤이었습니다.”

“......무연의 무덤? 그런곳이 있어?”

“그렇게 알려졌었습니다. 제가 일전에 무덤이 있다고 알려드린 그 장소인데, 어째선지 천마의 무덤이라는 말이 공공연한 사실처럼 나돌고 있더군요.”


아-하고 하령이 입을 벌렸다.


“어째서 검귀의 무덤이 천마의 무덤이라고 알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중요한 것은 그자들의 행동.”

“천마의 무덤이라 알려진 장소에 진입하려 했다......”

“그렇죠. 그리고 나서 그자들이 행한것이 혈교와 함께 엮어낸 술법무공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피를 매개로 거대한 술법을 펼쳤는데......”

“뭐?”


한순간 하령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혀졌다. 동시에 찰나동안 어린 성화방주의 몸을 따라 칼날같은 기세가 일어났다.


“어린 아이의 피?”

“네.”

“찢어죽일 놈들이.”


서릿발 같은 음성이 귓가를 스친다. 한순간 소매 아래로 드러난 하령의 손끝을 따라 수없이 복잡한 형태의 진기가 번뜩이는 백금빛 광채를 엮어내며 회전. 다채로운 문양과 알 수 없는 상고(上古)의 문자를 엮어내며 일어나려던 순간-


“하령.”


백연이 하령의 손목을 붙잡았다. 직후 눈을 크게 깜빡인 하령이 작게 입을 벌리고는 손을 가볍게 털었다.


츠츳.


길다란 소맷자락 아래로 휘돌던 진기가 급격하게 소멸했다.


“미안.”


중얼거리는 하령의 음성이 시무룩하게 가라앉았다.


“괜찮습니다.”

“......감정에 동해서 술법이 일어나버렸네. 아직 이 몸이 완전히 통제가 안되는건가. 유달리 반응이 빠른게.”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머리를 쓸어넘긴다. 그러고는 백연을 돌아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자세히 들려줘봐.”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신강의 마을에서 벌어졌던 사건. 그리고 모산파에 한때 속해 있었던 두 무인의 일과 혈교의 술법으로 일깨워졌던 자색 눈동자의 아이에 관한 이야기까지.


“......시체가 일어났다?”

“시체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본래 생명이 없던 존재인 것만은 확실했습니다.”

“그렇겠지.”


하령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려진 초점 너머로 하령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어 고개를 기울인 하령이 입을 열었다.


“너를 도왔던 그 새외의 무인. 혈교로 갔다고 했나?”

“예.”


파계한 새외 천룡사의 비구니, 화율.


일신의 무위가 강력하던 여인이다. 맹인이라곤 한들 백연은 그녀의 무위에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혈교라. 우리쪽도 눈을 두고 있긴 할텐데. 아마 지금은 할아범이 맡고 있나.”

“할아범은 누굽니까?”

“총영방주(摠營幇主). 칠방을 관리하는 할아범인데, 아마 새외나 외도의 잡 문파들에 대한것은 그가 맡아 관리하고 있을거야. 무슨 일이 생기면 그의 작전과 결정을 우선해 하오문 칠방이 움직이지.”

“한 방주가 그리 큰 권한을 가집니까?”

“문주의 책사이자 대리같은 역할이니까. 대신 총영방은 방 자체로써의 힘은 더 약하지만.”


중얼거린 하령이 문득 손을 뻗었다. 직후 허공 어디선가 종이 한장이 나풀거리며 날아와 그의 손아귀에 착지.


“우선은......”


하령이 손가락을 입에 물고 살풋 깨물자 피가 종이 위로 뚝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하령의 피는 종이에 닿자마자 흔적을 남기기는 커녕 눈 녹듯이 흡수되어 사라졌다.


“이렇게.”


직후 하령이 종이 위로 손을 가볍게 휘저었고.


[보면 연락해. 할아범. 혈교에 대해서 물을게 있어.]


짤막한 붉은 글씨가 순간 종이 위로 물결처럼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이어 하령이 손을 가볍게 까딱임과 동시에 종이도 서서히 바스라지더니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됐다. 연락이 오겠지.”

“......뭘 한겁니까?”

“이 스승님의 힘으로 총영방주에게 연락을 취했느니라.”


소매를 나풀거리며 생긋 웃는 모습에 백연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전에는 먼 거리에 연락을 취하려면 힘이 많이 든다 하시더니.”

“본래라면 그렇겠지만, 할아범이 가지고 있는 총영방의 기물이 좀 신통방통한 법보라 말이지. 문하일필(門下一筆)이라고 하는 붓인데, 그 노인네가 가진 가장 무서운 힘이야.”

“그럼 하령의 힘이 아닌......?”

“에잇. 내 피도 썼잖아.”


볼을 부풀린 하령이 이윽고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 중얼거렸다.


“여튼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 혈교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 모산파에 대한 견제 또한 들어가고 있지만......역시 혈교의 술법은 위험하니까.”

“하면 하령은 참월대주의 말이 터무니없다고 느끼지는 않나 보군요?”


백연의 물음. 그에 하령이 고민하듯 턱을 두들기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니, 사실 엄청 가능성이 높아보여.”

“가능성이 높다? 그 정도입니까?”

“아이들의 피를 쓴다는 것부터 그랬는데, 그 생기를 모아 육신을 되살리는 혈교의 술법과 혼백을 이끄는 모산파의 술법이 합쳐지면 무엇이 가능할지 몰라.”

“......”

“무엇보다.”


하령이 백연을 힐끗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눈동자를 유심히 살피듯이.


“그렇게 잠깐 살아났던 아이. 자안(紫眼)을 지니고 있었다 했지?”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백연의 머릿속에도 무언가 선명한 장면이 하나 스쳤다.


일기장을 보던 마지막 순간, 그에게 말을 걸듯 꿇어앉아 중얼거린 무연. 그때 일렁이는 물가에 비쳤던 하나 남은 눈동자의 색은 분명......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며 마주쳤던 수많은 사람들 중, 네가 말한것 만큼 선명한 자안을 지녔던 것은 단 한 사람뿐이었어.”


자수정처럼 시리도록 투명한 보랏빛의 눈.


“무연. 그의 눈이 그러했지.”


하령이 과거를 회상하듯 말했다.



※※※



자안. 흔치 않은 빛깔의 눈이다. 아니,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봐도 좋았다. 백연 또한 전생과 현생을 합쳐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 중에 평시에 자안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보지 못했으니까.


청안, 녹안, 금안, 적안......전부 희귀하나 존재한다. 서방에서 온 색목인(色目人)들이나 북방의 무인들은 특이한 눈 색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꽤 있다. 특히 새외 무림의 기인이사들은 평범한 흑안을 지닌 이를 찾기가 더 어려운 바.


허나.


“자색(紫色)은 귀하지.”


하령이 말했다. 백연도 동의했다. 하령의 말은 맞았다. 다른 의미에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귀한 색이지요. 그러나 황실의 색이 된 것 아닙니까?”


그 빛을 내기가 극히 어렵다. 청적황백흑의 오방색이나, 푸르른 신록(新綠)의 빛깔. 또는 길가에 피어나는 수많은 꽃의 색은 쉬이 취할 수 있다. 오랜 돈과 노력을 들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자색만큼은 아니다.


“만드는 것 부터가 어렵고, 아무 곳에나 쓸 수도 없지. 황궁에서도 귀히 취급되니.”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황색(黃色)과 더불어 가장 고귀한 빛깔이다.


애초에 사람에게는 없는 색이라 봐도 좋았다. 무공의 진기가 색을 지니는 경지에 이르러 그것이 발현되지 않는 이상에야.


“화산의 자하신공 정도밖에 없죠.”

“맞아. 그리고......”


하령의 시선이 백연의 눈을 마주쳤다.


“네 눈도.”

“......처음 발현된 색이 자색이었을 뿐입니다. 그 색과 공능을 합쳐 자령(紫玲)이라 부른 것인데.”

“네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

“그렇죠. 아마 적양공과 현음공을 섞어 만든 무학이라 우연히 그리된 것일지도 모릅니다만.”

“나는 술법을 다루는 몸으로써 여러 학문을 익히고 다루는 몸이야.”


하령이 중얼거렸다.


“적어도 나는, 완벽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운명에 관한 이야기라도 되는 겁니까?”

“......천간(天干)이 흐르고 별이 움직이는 것은 하나의 이치야. 쉬이 보아넘길 수는 없지.”


어깨를 으쓱인 그가 덧붙였다.


“그 자령안은 너를 선택한 이유중 한가지였기도 해. 물론 그보다 다른 이유들이 훨씬 중요했지만. 소소한 계기가 된 것은 맞아.”


백연은 무의식적으로 눈매를 매만졌다.


그렇잖아도 눈이 자색으로 물들고 있다 들었다. 처음에는 완벽한 흑안이던 지금의 몸. 어떠한 영향을 받은 것일까.


‘천마도 어렸을 적부터 그랬을지는 모르는 일이야.’


자연적인게 아닐수도 있는 노릇이다. 어찌되었든 지금 그가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만약 일기장을 펼쳐 다시 한번 비슷한 경험을 통해 과거의 무연에 대해 알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왠지.’


그가 생각하는 대로 일이 풀릴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나는 대로 읽어봐야겠다.’


무언가 관련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여하간 내가 혈교를 견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야.”

“천마의 재림을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군요.”

“응.”


단호하게 답하는 하령. 그에 백연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헌데, 다른건 제쳐두더라도 천마의 재림은 걱정할 필요가 있습니까?”

“응?”

“하령은 무연에 대해 알고 있었지요. 적어도 제가 일기 속에서 본 천마는, 그 힘으로 세상에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닌 듯 보였습니다만.”


그 말에 하령이 고개를 느릿하게 저었다.


“네 말은 맞으나, 틀려.”

“그건 무슨......?”

“혼백을 되살리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야. 나는 무연의 성정과 그의 드높은 이상, 그리고 상냥함을 믿었지. 하지만 그와 별개로 되살아난 무연이 과연 생전의 그와 같을까?”


툭 던지는 의문. 그에 백연이 눈을 깜빡였다.


“......당사자의 혼백을 되살리는데 다를 수가 있는 겁니까?”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백연 자신 또한 검귀 유백연이 되살아난 존재이기에. 하령의 말이 유독 다른 울림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성화방주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크게 다를 것이라곤......”

“한 사람은.”


사박.


옅은 바람결과 함께 하령이 백연의 앞에 다가섰다. 바짝 들이댄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정기신으로 이루어져 있지. 육체와 기운, 그리고 영성이 합쳐져 하나의 존재를 이뤄. 헌데 그 중 둘이 사라지고, 하나만이 오랜 세월을 건너......”


툭.


하령의 손가락이 백연의 가슴팍을 가벼이 찔렀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마치 빛바랜 낙엽처럼 흐리게 일렁인다.


“이 자리에 당도했다면, 그것을 같은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

“나는 모르겠어.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와 같은 사람인지도.”


생긋 미소지은 하령이 몸을 휙 돌렸다. 뒷짐을 진 어린 성화방주의 뒤로 길다란 소매가 나풀거렸다.


“여튼, 그런 이야기야. 그리고 만약 아무런 문제 없이 무연이 생전의 성정대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어도, 나는 그가 그것을 원치 않으리라고 생각해. 망자(亡者)의 안식은 그 자체로써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니까.”


백연은 침묵했다.


뒤돌아선 하령의 등이 유독 쓸쓸해 보였기에. 그리고......


‘......나는 같은가?’


문득 머릿속에 들어찬 한가지 의문 때문에.


그렇게 잠시간의 침묵이 내려앉았고.


“흐아암. 백연......?”


한껏 졸린 눈으로 고개를 들어올린 소홍에 의해 침묵은 깨졌다. 눈을 비비며 비급 사이에서 몸을 일으키는 사형을 보고 백연이 미소를 지었다.


“피곤해?”


지난 며칠간 쉴새없이 달려왔으니 그럴법 했다. 백연의 말에 느릿하게 고개를 젓는 사형. 흔들리는 고갯짓 하나에도 피곤이 묻어 있었다.


그에 하령이 손을 휘저었다.


“올라가서 쉬어. 방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으니까.”


촤르륵.


바닥에 널브러진 비급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사방으로 흩어지며 제자리에 가 꽂힌다. 드넓은 암야서고를 간단한 손짓 하나로 정리한 하령이 말했다.


“백연 너도 올라가서 이야기 하자.”

“좋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암야서고를 벗어나 문 앞으로 나왔고.


쿠구구구궁-


굉음과 함께 다시 한번 거대한 철문이 닫혔다. 하령은 후련한 듯, 아쉬운 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제서야.”


옅은 음성을 뱉은 하령이 암야서고의 문을 힐끗 바라보곤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외쳤다.


“야, 같이 가! 스승에 대한 예의가 없네 이거.”


몸에 기파를 휘감은 하령이 훌쩍 걸음을 내딛었다. 어느새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고 있는 백연과 소홍의 사이를 향해서였다.


“생각보다 느리십니다?”

“너도 이 나이 먹어봐라. 삭신이 쑤시거든?”

“아하하.”

“웃어?”

“즐거워서 말입니다.”

“뭐가 그리 즐거워?”

“왠지-”


백연이 중얼거렸다.


졸면서도 옆에서 걷고 있는 사형과, 입술을 비죽거리며 그를 쏘아보는 하령. 지금의 인연들이 곁에 있기에 그러할까. 잠깐동안 그의 머릿속에 돌던 고민이 금방 흩어져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검귀와 같건 아니건.’


어쩌면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지금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죠.”


소년의 흐린 웃음이 암야서고의 야명주 아래 별빛처럼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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