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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곰Q 님의 서재입니다.

엘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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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곰Q
작품등록일 :
2019.04.03 11:55
최근연재일 :
2019.05.31 07:29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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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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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수 :
151,280

작성
19.04.1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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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006. 소녀와 유령 : 소녀, 좌절하고

DUMMY

엘레오놀의 어머니가 병을 앓고 있는 건 747은 물론이고 엘레오놀도 알고 있었다. 얼굴을 마주할 수는 없지만 벽 너머로 들려오는 기침 소리는 날이 지날수록 심해져 가고 있는 것도.

배급되는 식사와 감옥 환경을 돌이키면 이런 날이 오는 건 예견된 미래나 마찬가지였다. 747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리고 아마도 엘레오놀도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소녀가 놀란 건 그 날이 이리도 빨리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리라. 아니, 아슴푸레 알고 있었지만 직시하고 싶지 않았겠지.

불안스레 흔들리는 녹색 눈이 747을 향했다.


 “유ㄹ..”


747을 부르다 말고 입을 다문다. 여기서 그녀를 부르는 게 상책이 아니라 생각했다. 제아무리 엘레오놀의 유령이 박학다식하다 해도 이번엔 어떻게 할 수 없음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만약 알고 있다면 상냥한 그녀의 유령은 벌써 가르쳐 주었을 거였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젊은 간수를 따라 문밖으로 나가는 엘레오놀은 747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쫓아가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떤 구조인지는 모르나 747은 현재 위치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움직일 수는 있지만 그 순간 주변이 인식 불가능할 정도로 변화했다. 그를 알아챈 건 엘레오놀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한때 747은 소녀를 위해 바깥 –주로 왕궁의- 정보를 알고자 움직인 적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건 무리였다. 왕궁의 위치를 알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저를 유지하는 것도 겨우인데 움직인다는 행위가 어불성설인 탓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현 상태의 747이 의사를 가지고 움직이는 건 몹시도 힘들었다. 어쩌면 연습 혹은 노력으로 어찌 될런가 싶기도 하나 차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건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마저 747의 의도를 아득히 벗어나기 때문이었다.

처음 움직였을 때 엘레오놀의 감옥으로 돌아오는 것도 고행이었지만 돌아온 순간, 엘레오놀이 울음을 터트렸다. 듣자 하니 747은 약 보름간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747의 감각으로는 고작 1시간 남짓이었는데. 육체를 지닌 이와 육체가 없는 이의 시간은 다른 걸까. 존재 형식이 다르기 때문인가? 생전 알고 지내던 미친 연구원이라면 희희낙락하며 가설들을 늘어놓을 주제다. 그러나 747에겐 이유보단 알게 된 사실이 더 중했다.

그 뒤로는 더 시도할 수가 없었다. 시도한 순간 다시 소녀를 만나는 게 언제가 될지 모르는 모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엘레오놀.]


육체도 없는데 마음을 술렁인다. 엘레오놀의 감정이 변화하는 게 느껴진다. 거기에 747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슴이, 있을 리 없는 심장이 조여든다.

아랫배에 묵직한 것이 내려앉으며 신물이 올라온다.

우스운 일이다. 지금 자신은 육체가 없는데 마치 육체를 갖고 있을 때와 같은 감각이 747을 압도한다.


숨을.. 쉴.. 수가 없어.


내장이 뒤틀리는 거 같아.

엘레오놀이 있다면 자신의 이러한 상태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저가 겪고 있는 [감정]의 이름을.

한심한 이야기지만 엘레오놀보다 배의 시간을 –아마도- 살았을 자신보다 엘레오놀 쪽이 훨씬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에 관해 눈치채고 표현하는 걸 잘했다. 대화 도중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고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물어보면 열심히, 그리고 신중하게 대답해 주곤 했다. 물론, 엘레오놀은 어리다.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게 정답이고 올바를 거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747에게 이정표의 역할 정도는 해주었다.


 ‘엘레오놀.’


지금쯤 옆방에서 엄마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을 엘레오놀을 상상하며 한번 더 아랫배가 죄어들었다. 얼른 돌아와줬으면 하는 한편으로 그녀가 돌아온다는 건 그녀의 –아마도- 유일한 육친의 죽음을 의미하기에 바람을 생각하는 것조차 주저되었다.


 - 생각해.


문득 떠오른 상관의 말. 그녀의 말은 언제든 747에게 다음 행동을 위한 지침이 되었지만 솔직히 지금만큼은 그녀의 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게 임무라면 훨씬 편했을 텐데.

임무는 임무. 좋다 싫다의 감정을 품은 적 없었으나 지금 같은 상황이 되고 보니 임무 쪽이 훨씬 좋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할 일이 분명한 상황은 해야 할 것도 분명해서 잡생각을 할 틈도 없다.


 ‘죽어서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 한번도 없건만.’


지금만큼은 재고하지 않을 수 없네.

자신이 이렇게 생각 많은 이였던가. 엘레오놀과 만난 이후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상, 관념들을 차례차례 돌이키게 된다. 지금 제 상황이 엘레오놀 이외의 존재와 접할 수 없기에 그런 거려나.


 ‘하아···.’


익숙지 않은 감정과 상태를 지속하는 건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아니, 이미 정신체만 있는 상태인데 이리 말하는 것도 우습다.


 ‘······.’


왜 이렇게 된 걸까.

이미 몇 번이고 돌이켰던 질문을 다시금 던진다. 어차피 답이 돌아오지 않으리란 건 알면서 반쯤 습관처럼 던졌다.

언젠가 알 날이 올까? 막연한 희망을 품어 보면서.



 [~~~!!!!]


몇 밤인가는 분명 지난 어느 날, 느닷없이 들려온, 747이 있는 감옥까지 울린 울음소리. 마치 단말마를 연상시키는 음색은 틀림없는 여성의 것이었다. 이 감옥 전체를 돌아보진 못했으나 여성 죄수가 많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비명의 주인공은 추측하기 쉬워진다.


 ‘엘레오놀!’


소녀가 분명했다.

필경 그녀의 하나 남은 육친이 세상을 뜬 거겠지. 그건, 아마도 슬픈 일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게 얼마만큼 슬픈 일인지 747에겐 짐작이 가지 않지만. 전부터 생각했지만 자신은 어딘가 –특히 감정적인 부분에서- 결락된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아까 전 울음소리도 오히려 이로 인해 엘레오놀이 이제 이곳으로 돌아오겠구나, 라는 생각을 먼저 했던 스스로에게 자조하며 747은 흔들흔들 기다렸다.


엘레오놀이 돌아온 건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철컹, 끼익.

문이 열리고 젊은 병사의 안타까운 시선을 받으며 들어온 엘레오놀은 방을 나서기 전보다 훨씬 수척했다. 당연한 소리겠지. 비트적거리며 옥 안에 들어온 소녀는 젊은 간수가 나가기 전에 자그맣게 감사를 입에 담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예전 침대 –로 쓰는 널빤지- 에 몸을 뉘이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


엘레오놀은 그 이후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잤다. 꿈쩍도 하지 않고 자는 통에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라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확인하고 싶어도 실체가 없는 데다가 자신의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747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 그리 생각한 건 저만이 아니었던지 식사를 가져오는 게 젊은 간수일 때는 그가 엘레오놀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곤 했다. 그가 안도하며 나갈 때마다 747도 함께 안도했다.


 [······.]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엘레오놀이 저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에 자그맣게 마음이 놓여 홀로 있을 때와는 달리 조금 느긋한 기분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유령 씨, 아직 있죠?”


드디어 잠에서 깬 엘레오놀이 일어나 한 첫마디는 747을 찾는 것이었다. 기쁜 한편으로 여전히 어두운 엘레오놀의 표정에 목소리를 죽인다.


 [응.]

 “······.”


소녀가 몸을 일으킨다. 구석에 굴러다니는 돌조각을 집어 여태까지 새겨 넣어왔던 자국들 앞에 서서 멈춰 있던 다음을 이어 새기기 시작한다. 드득, 드드득, 투박한 소리가 감옥 안에 울린다.


 “있잖아요, 유령 씨.”


엄마의 간호를 하느라 새기지 못했던 날들을 마저 새겨 넣은 뒤 소녀가 747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가르쳐 주세요.”

 [······.]


처음이었다. 엘레오놀이 자신에게 이야기 이외의 것을 부탁한 건.

의외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소녀는 죽고 싶어하진 않았으나 살고 싶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밝게 행동했어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어딘가 한구석 어쩔 수 없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극히 정상적인 반응.

실은 747이 가장 우려했던 일은 엘레오놀이 엄마의 죽음으로 생을 포기하게 되는 거였다. 돌아온 엘레오놀의 상태를 고려하면 자신의 생각이 썩 빗나가지 않은 듯했다.

그랬는데 설마 살기 위한 방법을 물어올 줄이야.

육친의 죽음이 그녀에게 무슨 변화를 가져온 걸까.


 [우선은···.]


말을 꺼내는 747의 음색이 떨리고 있었다.


작가의말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 부분..이랄까 엘레오놀하고 747 얘기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어요.. ㅇ<-<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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