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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양이 님의 서재입니다.

본격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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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양이
작품등록일 :
2020.11.23 20:44
최근연재일 :
2021.07.07 01:44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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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7,199

작성
20.11.2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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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카페에서의 커피 소동

DUMMY

무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더위를 피하러 도망친 것만 같다.

주변을 둘러보자 카페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시원한 곳을 찾아 카페에 들어갔는데, 예상대로 자그마한 카페는 시원한 바람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카페 안은 붉은 조명으로 채워져 있는데, 깔끔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마음에 든다.

"잘 오셨습니다. 손님."

보통 어서 오세요 아닌가?

특이한 인사말이라고 생각했다.


"여기는 어떤 메뉴가 인기 있나요?"

"찾아주시는 분들이 바닐라라떼를 아주 좋아합니다."

구수한 분위기를 풍기는 카페 사장은 커피 맛에 자부심을 가진 듯, 넉넉한 미소를 보였다.

"바닐라라떼 시원한 거로 부탁드립니다."

진동벨을 받고 빈 테이블로 갔다. 벨이 울리기까지는 1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뭐 이렇게 빨라.

주문대에 가보니 카페 사장이 오랜 시간 기다렸다는 듯이 인심 좋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옆에는 뜯어진 맥신커피가 한껏 쌓여 있다.

설마 믹스커피를 5,500원에?

성급한 판단은 언제나 독이 되는 걸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커피 맛에 자부심이 느껴지는 저 얼굴을 믿어보자.

속으로 다짐한 나는,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홀짝 한 모금 감상하고, 난 당장에 알 수 있었다. 동사무소에 가면 항상 먹는 커피, 이건 100% 맥신 믹스커피라는 것을.

내가 호록 불어가며 마시는 모습을 보는 카페 사장의 눈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흐뭇한 미소를 짓는 사장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옆자리 손님들도 모두 바닐라라떼, 즉 맥신 믹스커피를 호록 마시고 있었다. 이들의 얼굴에는 속았다는 것에 대한 분함이 서려 있었다.

사장의 농간에 모두 당한 것인가?

더 볼 것도 없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성큼성큼 사장에게 향했다.

“이걸 왜 5,500원이나 받은 거죠?”

“맛있게 먹고 만족하지 않았는가?”

팔짱을 낀 채 당당하게 헛소리를 말하는 사장을 보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기 싸움에서 지면 말짱 헛일이다.

“만족은 개뿔. 이거 믹스커피잖습니까?”

“모르는 소리. 바닐라라떼와 믹스커피는 한 핏줄 형제와도 같은 걸세. 커피 역사도 모르는 자네와 무슨 얘기를 하겠는가.”

믹스커피를 5,500원이나 받아놓고, 커피 역사는 왜 뜬금없이 말하는 건가? 이거 개당 100원밖에 안 하는 거잖아.

“할인해주시죠.”

나를 응원하는 눈길이 뒤통수에서 느껴졌다. 나는 다른 손님들의 자존심을 걸고 나온 것이다. 내가 밀리는 것은 모두가 지는 것을 의미한다.

“자네만 할인해주면 다른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노련한 사장님이다. 협상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소동을 일으키면 자신이 곤란하니, 조용하면 나만 할인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좋습니다. 저도 소란이 일어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빨리 할인해주십쇼.”

나와 사장은 일부러 시간을 질질 끌었다. 손님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예상대로, 기대에 가득 찼던 손님들의 실망한 시선은 곧 제각기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때를 기다렸다.

나는 결제 카드를 슬그머니 건네고는 환불되길 초조하게 기다렸다. 바싹 입술이 말라왔다.

“이제 다 되었네. 총각.”

띠링.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환불 200원이 정상 처리되었습니다. – 사랑과 정이 넘치는 카페]

빠직. 나도 모르게 순박한 시골 아저씨 인상의 사장 멱살을 잡을 뻔했다.

“좀 더 할인해 주시죠.”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지금까지 할인해준 적은 젊은이가 처음이었네. 이쯤 되면 충분했으니 그만하고 돌아가시게.”

나는 허를 둘렀다. 사장의 말솜씨는 흡사 노련한 정치인의 그것과 같았다.

마지막 대화만 놓고 보면, 내가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았다. 흡사 사장은 해줄 만큼 해준 건데, 손님이 억지를 부리는 상황.

이를 어쩐다.

난처함을 느꼈지만, 200원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한 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이, 이. 젊은 사람이 왜 이러는가! 이거 어서 놓으시게!”

사장의 멱살을 쥐었다. 이런 일은 난생 처음이라는 듯, 순박한 사장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장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일까.

아까까지만 해도 나와 한 편이었던 손님들은 어느새 웅성거리며, 사장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멱살은 아니지.’

‘저 친구가 심했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거야.’

남들 눈에는 공포에 질린 사장이 보였겠지만, 눈앞에 있는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 있었다. 무섭다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말과는 달리, 그의 입은 히죽 웃고 있는 것이.

사장의 눈길이 일순간 위를 향했다. 동그란 CCTV가 계산대 위에 모든 상황을 찍고 있었다.

아뿔싸. 사장은 이런 상황에 수없이 단련된 사람이었다. 순진했던 나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고, 사장의 농간에 그대로 당해버렸다.

“당신.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거지?”

간신히 분노를 억누른 채 신사답게 말했다.

“요즘 같은 험악한 시대에 내 몸 지키기 위한 수단 아니겠는가? 최소한의 장치일세.”

“내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생각해보도록 하지. 우선 이 손부터 놓지 그래?”

쥐었던 멱살을 스르륵 풀었다. 사장은 턱을 매만지며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해야 할지 고심하더니, 곧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저 사람 미소가 원래 저렇게 음흉했던가?

“나도 신사답게 해결하길 원하네. 소란이 이는 것은 원하지 않아. 커피나 좀 더 팔아주시게.”

“무슨 말입니까?”

사장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보아하니 회사가 주변 같은데, 힘들게 일하는 동료들 커피를 포장해 가시게. 방금 자네가 맛있게 마신 믹스 커피 8잔 말이야.”

이어지는 말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하지만 내 체면이 많이 구겨졌어. 생판 처음 본 젊은이한테 멱살을 잡히면서 말이야. 내가 먼저 200원 할인해줬으니, 자네에겐 특별히 500원씩 더 받겠으니 6,000원씩 내시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저 멀리 손님들에게 들릴 리는 없었다. 사람들의 눈에 사장은 흡사 너그러운 부처님의 모습이었다.

멱살까지 잡힌 사람이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차분히 말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았으니.

“그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참. 이걸 깜빡할 뻔했구먼.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사과하시게. 손님들에게 다 들리게끔. 내가 참지 않았다면 오늘이 굉장히 고된 하루가 됐을걸세.”

얘기를 듣고 멈칫했지만, 대안이 없다. 사장은 능글맞게 웃으며, 전화기를 꺼내 112에 전화 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밉상도 저런 밉상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할인금액이 너무 적다고 따지는 입장이었는데, 상황은 100% 역전되어 있었다.

헛기침하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모두에게 들리게끔 “죄송했습니다. 사장님.” 외치자 사장은 예상 못 했다는 듯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길-게.’

벙긋거리는 사장의 입 모양을 보니, 틀림없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물의를 일으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사장은 아무 말 않고, 내 어깨를 부드럽게 매만지며, 어느새 나를 격려하고 있었다.

뒤에서 환호와 함께 박수 소리, 휘파람 소리가 우레와 같이 들려왔다.

‘정말로 통 큰 용서야!’

‘사장님을 보니 천사가 따로 없구먼!’

‘나 같으면 당장 경찰을 불렀다고!’

찰칵 사진을 찍으며, 언뜻 감동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상황을 간직하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

터벅터벅.

등이 축 처진 나는, 카페를 나와 힘없이 걸었다.

내 양손에는 카페 사장의 자부심이 담긴 8잔의 바닐라 라떼가 들려있다.

백수인 나는 커피를 줄 회사 동료는 없었다.

그래도 서비스라며 아이스로 주셨어.

맛있는 바닐라 라떼를 좋은 가격에 샀다는 듯, 끝없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눈물을 삼켰다.


작가의말

가벼운 분위기로 쓴 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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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고아원으로부터의 독립 20.12.15 4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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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엘프족과의 결혼 20.12.10 70 0 17쪽
10 시골 화장실 20.12.09 81 0 8쪽
9 연예인의 반전 20.12.08 39 0 14쪽
8 외계인 20.12.07 47 0 8쪽
7 인기 스타의 실종 20.12.02 44 0 14쪽
6 재개발지역 20.12.01 63 0 8쪽
5 폰팔이와의 싸움 20.11.30 55 0 8쪽
4 붉은 우산 20.11.26 43 0 7쪽
3 시골에 잠입한 간첩 20.11.25 53 0 8쪽
2 늦은 나이의 첫사랑 20.11.24 61 0 15쪽
» 카페에서의 커피 소동 +2 20.11.23 151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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