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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전 님의 서재입니다.

대공가의 괴물 3공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난전
그림/삽화
혼잣말장인
작품등록일 :
2024.02.21 16:28
최근연재일 :
2024.03.05 16:35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1,853
추천수 :
45
글자수 :
82,241

작성
24.02.25 14:36
조회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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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5화

DUMMY

제국의 북단에 위치한 아이온 성은 사시사철 눈이 내리는 곳이다. 그 말은 항상 영하를 유지한단 소리였지만, 거인의 피를 이은 몸뚱아리는 생각보다 추위를 타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버티기 힘든 날씨기에 북부인들은 1위계 이상의 마나사용자가 대다수다. 마나를 발출가능한 2위계에 비해 부족하지만, 숙련된 1위계는 신체강화만으로 일반인 수십을 때려잡는다.


참고로 마이민이 언급한 3위계는 마나의 유형화가 가능한 경지. 쉽게 말해 검기사용자를 말하며, 인간도살자라 불린다. 어디가서 나 좀 싸워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단계이기도 하다.


"3공자님. 따뜻한 차 한잔 드시지요."


하녀가 건네준 컵을 손에 쥐고 마치 밖으로 보이는 거리를 눈에 담는다. 골목을 휘몰아치는 바람과 옷깃을 여미고 밤새 쌓인 눈을 치우며 아침을 여는 사람들. 북부인들은 마나와 두터운 털옷으로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내지만, 쌓이고 쌓여 언덕을 이룬 눈은 얘기가 좀 다르다.


아이온 성엔 따로 제설만 담당하는 부서가 있지만 사람이 자연을 이기기엔 역부족. 그나마 곳곳에 설치된 온열마법진이 거리의 눈을 녹여주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다행히 내가 탄 마차는 제설차처럼 눈을 밀고 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편리하다.


"대공가의 마차다!"


눈을 쓸던 사람들이 마차에 꽂힌 깃발을 보고 다가오다, 창문에 턱을 괸 내 모습을 보고는 황급히 멈춰선다.


덜컹-.


동시에 무슨일인가 창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얼굴을 집어넣고, 엄마들은 아이를 업어들고 최대한 벽쪽으로 붙어선다. 대를 걸쳐 북부를 수호해온 대공가는 존경받지만 3공자는 그 대상이 아닌 모양.

활기차던 거리가 조용해지고 눈치없는 거리의 잡귀들이 이 타이밍에 귀곡성을 울려댄다.


휘오오오-.


바람소리와 귀곡성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합주에 주민들이 몸을 구기며 움츠러든다.

안 잡아먹어, 이사람들아. 3공자를 보고 얼어붙은 주민들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거친 자연과 마주하는 사람들일수록 미신에 민감하다. 바다와 북부를 끼고 사는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하지만 이같은 대우도 온갖 무시와 멸시를 당하던 이방인 때보다 낫다.


그때는 동네 거지도 나를 무시하고 돌을 던졌었지. 그래도 이들은 혹여나 눈이라도 마주칠까 시선을 피하지만 단체로 따돌리거나 괴롭히진 않는다. 잡귀를 부린단 소문에 겁을 먹었을 뿐, 지금도 내가 궁금한지 흘끗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나저나 이제 막 수도에 소환되어 적응하고 있을 옛 동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그쪽의 대우는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온 용사보다 징용병에 가깝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 적당히 쓸만해지면 최전선으로 보내지는 고기방패 신세다.


"이봐. 내 이름으로 선물같은 거 보낼 수 있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수도로 쿠키랑 빵 좀 보내줘. 그 대소환된 이방인들에게. 아, 왠만하면 초코로 보내주고."

"네. 수도에 있는 식솔들에게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크, 사람들이 좀 무서워 하면 어떤가. 권력이란 이렇게 좋은 것인데. 내 한마디에 의문도, 절차도 없이 바로바로 수행되는 이 상황이 좋다. 이방인때는 택배 하나 시킬때도 테러 방지라는 명목으로 온갖 검수를 받아야 했다.


"사유는 격려차원이라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뺑이치라고도 전해줘."

"네? 그게 무슨 뜻인지요."

"힘내라는 뜻이야."


회귀 초반에 나를 제일 서럽게 했던 것은 거지같던 훈련병 생활보다 같은 지구인들의 차별이었다. 낮선 환경에서 같이 으싸으싸하기보다, 편을 가르고 특성별로 은연중 등급을 만드는 것은 지구인 본연의 종특인듯 싶다.


물론 그중에 좋은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빨리 죽어 친분을 쌓을 새도 없었달까. 같은 지구인이지만 같이 소환된 자들한테 별로 정도 없다. 정들 새도 없이 정신없이 굴려지기도 했고.


"3공자님을 뵙습니다."


의도치 않은 광역침묵을 시전하며 아이온 성을 지나오다 보니 어느새 동문에 도착했다. 간단한 확인절차를 거치고 정문으로 프리패스.


거친 눈바람을 맞으며 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질시어린 시선을 만끽하며 동쪽숲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런 3공자를 주의깊게 쳐다보는 가사입은 이들이 있었다.


"왔느냐."


노인이 오라한 곳은 동쪽숲 초입에 위치한 작은 오두막. 넓은 공터와 뒤에 위치한 작은 절벽이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늦었구나."

"죄송합니다."


더 일찍 출발하려 했으나 샐리의 일로 조금 지체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늦지도 않았는데 깐깐하다.


"바로 수업을 시작하겠다. 일단 여길 오르거라."


노인, 이제는 스승이라 불러야 할 자가 절벽을 가리킨다. 작다고 말하긴 했지만 고개를 90도로 꺽어야 끝이 보이는 가파른 절벽. 타고 오를 홈마저 얼음으로 뒤덮여 어딜 짚고 올라가야 할지 모르겠는 이 절벽을 오르라고?


"저기...스승님?"

"위에서 기다리겠다. 참고로 마나는 사용금지다."


스승의 주문에 극악이던 난이도가 헬급까지 상승했다. 순수 악력으로 저길 어떻게 올라가? 하지만 노인은 어느새 절벽위로 몸을 날렸고 시종들은 저 멀리서 나몰라라 하는 상황.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일단 등반을 시도했다.


주르륵-.


어거지로 2m쯤 올라갔을까. 미끄러운 얼음에 손이 흘러내리고 날카로운 고드름이 있었는지 손바닥이 시큰거린다. 바람이 심한 북부는 고드름도 제멋대로 뻗어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도끼 두개만 줘. 이왕이면 작은걸로."


호위들에게 손도끼를 얻어 다시 절벽을 오른다. 지지대가 없으면 만들면 될 일. 마나를 쓰지말랬지 도구를 쓰지말라곤 안했으니 반칙은 아니리라.


팍-. 팍-.


지지할만한 곳을 뒤덮은 얼음을 부셔가며 조금씩, 하지만 꾸준하게 위로 올라간다. 거센 바람에 한번씩 미끄러질 때도 있지만, 5살도 성인남성의 근력과 맞먹게 만드는 거인의 피는 어찌어찌 추락을 버텨낸다.


거인의 후손치고 3공자의 키가 작다곤 하지만 일반인들에 비해서 작은 것도 아니다. 대공가 사람들이 너무 큰거지. 나는 이대로 적당히 컸으면 좋겠다. 2m가 넘어가면 조금 징그러울 것 같거든.


휙-.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도끼를 휘두르는데 찍는 감각이 없다. 멍때리며 올라오다보니 어느새 절벽 위로 다 올라온 것. 절벽등반쯤은 회귀를 거듭하며 졸업한지 오래라 심장이 쫄깃하거나 그런건 없다. 단지 얼음절벽은 처음이라 당황했던거지.


그래도 절벽은 절벽이라, 온 몸에 열이 오르고 근육이 시큰거린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거친 호흡을 가라앉히며 중앙에 정좌한 스승에게 다가갔다.


"왔으면 앉거라."


절벽 위에도 공터가 존재했다. 사실 공터라기보단 누군가 주먹을 날려 구멍을 뚫은 듯 굴곡지고 울퉁불퉁한 동굴이었다. 그나마 바닥은 평평하고 눈 한점 없이 정갈하다. 눈앞에 있는 스승의 작품인 걸까?


"가문의 무학에 대해 아는게 있느냐?"

"신체능력을 활용한 강격의 무공이라 들었습니다."

"맞다. 우리 로스만 가의 근간은 강인한 신체에 있다. 하지만 너는 너무 작다."

"네? 하지만 저도-."

"아니. 너는 작다."


스승은 그 말과 함께 동굴 안쪽으로 주억을 날렸다.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그 손짓에 공기가 빨려가며 바닥에 박힌 바위조차 끌어당기는 광풍이 불더니, 굉음과 함께 동굴을 확장시킨다.


"네. 저는 작습니다."


마나 한점 없는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만 이뤄낸 패도적인 기예에 나는 기가 죽고 말았다. 저거 뭐야, 무서워.


"따라오거라."


자리에서 일어난 스승은 동굴을 빠져나와 하늘을 가르켰다. 스승의 손이 향한 곳에는 짙은 눈보라에 가려진 거대한 절벽이 있었다. 내가 기를 쓰며 올라온 절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만큼 높게 솟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올라가보면 여기처럼 동굴이 하나씩 있다. 매일 한칸씩 거리를 늘리거라. 물론 마나는 쓰면 안된다. 참고로 위로 올라갈수록 도끼가 들지 않을게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스승은 나의 의문에 동굴을 눈짓했다. 그러니까 도끼보다 단단하게 신체를 연마해서 절벽을 깨면서 올라가라는 거구나. 그것 참 신박하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비고의 출입을 금한다."

"...!"

"내가 못할거라 생각하지 마라. 그정도 권한은 있으니. 대신 약방을 개방해주마."


예상치 못한 조건에 당황했지만 약방이 개방되면 할만하다. 약방은 각지의 온갖 약초를 모아놓은 창고이자 연단소. 내 머릿속엔 하루만에 상처를 완치하고 뼈와 피부를 강건하게 하는 수만가지 조제법이 남아있다. 고생이야 하겠지만 하다보면 언젠간 절벽도 정복하겠지. 이참에 희귀약초들을 다 거덜내버리겠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여기까진 준비연습이었다는 듯 말하며 스승은 다시 오두막으로 내려갔다. 똥개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이지?

근데 등반보다 내려가는게 어렵다. 물구나무로 내려갈수도 없기에 잠깐 고민하다, 양손에 손도끼를 붙잡고 절벽을 긁어내리며 하강했다.


끼이이익-.


무사히 땅으로 내려오긴 했지만 양팔이 후들거린다. 근데 6살짜리한테 이걸 시키는 게 맞는거야? 이정도면 아동학대를 넘어서 죽으라고 떠미는 게 아닌가 싶지만, 스승은 이정도는 당연히 해내야지 하는 표정이다.


"3위계에 올랐으니 마나의 유형화는 가능하겠지? 마나를 최대한 넓게 펼쳐봐라."


스승의 주문에 영력을 주변에 흩뿌렸다. 마나나 영력이나 용어와 용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세상을 구성하는 기운이란 점에서 동일하다.


"그 상태로 원을 만들어 눈을 짓눌러 보거라."


스승의 요구는 나름 까다로웠다. 넓게 펼치려면 평평해야 했고, 무게감까지 실으려면 두께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마나는 몸에서 멀질수록 제어가 힘들다.


"이정도면 되나요?"


겨우겨우 피자반죽처럼 넓게 다진 마나를 짓눌러 반경 1m의 눈을 1센티정도 가라앉혔다. 이것도 나라서 바로 한거지 못하는 3위계도 많을 것이다.


"지금 장난치는 것이냐?"


스승이 한심하단 표정으로 마나를 개방해 원반모양으로 크기를 늘려간다.

10m, 20m, 100m, 1km정도까지 늘어진 원반은 마치 스승처럼 흔들림없고 탄탄했다.


"더 늘리면 성까지 피해가 가니 여기까지 하겠다."


그리고 땅으로 내려앉는 스승의 마나. 사람과 나무를 제외한 모든사물이 짓눌리며 황토빛 바닥이 모습을 드러낸다. 입이 쩍 벌어지는 괴물같은 마나장악력과 운용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이 앞으로 네가 해야할 과제다. 목표는...아이온 성에 하루라도 눈이 쌓이지 않게 하는 것 정도가 좋겠군."


순간, 입에서 욕설이 나오려는 것을 꾹 내리눌렀다. 아이온 성은 대공가가 거주하는 만큼 작은 성이 아니다. 직경 10km는 훌쩍넘는 대도시. 그정도 너비의 눈을, 사람과 건물을 피해 제거하는 것은 초능의 영역에 가깝다.


"차리리 염력을 각성하라 그러십니까?"

"극에 이른 마나운용은 염력과 같다. 이게 1단계니 빨리 완수하도록."


이정도 수준이 1단계면 다음단계는 어느정도일까.


"도대체 뭘 가르치려는 겁니까?"

"키 크는 무공이다."

"네?"

"너는 너무 작아. 그러니 잔말 말고 배워라."


그 말을 끝으로 스승은 나를 내쫒았다.



#



수련을 빙자한 지옥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내가 생각한 수련은 이게 아닌데. 지금이라도 물려야 하나 싶지만 괜스레 오기가 치솟는다. 이까짓 것 못할 게 무어있나.


그래도 이 지친 몸으로 환단이나 만들 수 있을까 싶다. 약초를 배합해 영약을 만드는 연단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고된 노동이다. 누가 대신 만들어 줬음 좋겠는데. 약초탕까지 만들어주면 더 좋고. 그렇게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오는데,


"잘 지내셨습니까. 도련님."

"안녕하십니까! 신입 집사로 배정된 데일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때마침 좋은 노예가 들어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주말이라 조금 일찍 올려봤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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