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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전 님의 서재입니다.

대공가의 괴물 3공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난전
그림/삽화
혼잣말장인
작품등록일 :
2024.02.21 16:28
최근연재일 :
2024.03.05 16:35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1,850
추천수 :
45
글자수 :
82,241

작성
24.02.24 16:30
조회
149
추천
6
글자
13쪽

4화

DUMMY

"3공자님 확인되셨습니다."


샐리에게 내려진 저주를 파주하고 들어온 로스만 가의 비고. 본성 동쪽의 위치한 비고는,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7위계의 대마법이 떡칠된 살벌한 공간이다. 7위계는 대공과 같은 초월자 또는 반신이라 부르는 경지. 허가받는 자가 들어오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한줌 먼지가 되어 사라질테지. 물론 3공자인 나는 피 한방울 인증하고 프리패스였다.


"가주님의 허가가 있으셨으나, 아직 위계가 낮아 1관밖에 개방하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얼굴에 나 깐깐함이라고 써붙인 듯한 냉막한 관리자가 그외 주의사항을 설명해 주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시길."


관리자의 설명을 듣고 마침내 들어선 1관은 생각보다 넓고 깔끔했다. 확장마법이 걸린 듯 대형 경기장만한 크기에, 온도와 습도도 조절하는 듯 쾌적했다. 2관부터는 크기가 줄어들고, 질적으로 향상된다 들었지만 별 흥미가 일진 않았다.


1관은 북부뿐 아니라 아스라벨 행성의 비사나 야사, 그외 잡기서적이 배치되어 있었다. 특이한 점은 저항력이 강한 거인의 후손답게 마법이나 술법서적을 잡기로 취급하며 1관에 배치해 놓았다는 것. 비전서를 뺏긴 마탑과 술사들이 보면 땅을 치며 억울해 할 일이었다.


그 외엔 가신들과 북부 소속에게 공개된 일반서고와 다를 바 없어보이지만, 비고에는 외부에 공개하기 힘든 타세력들의 무공이나 비밀들이 보관되어 있다. 쉽게말해 대외비가 보관된 장소란 소리. 눈앞에 보이는 <슈피테르 황제는 왜 밤마다 후궁전 담을 넘을까?>같은 잡지가 밖으로 유출되면 3대쯤은 참하지 않을까.


이런 비고의 특성은 2관부터 더욱 두드러진다. 2관에는 황궁을 비롯한 세력들의 비전무공이, 3관에는 신공절학과 금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들리는 얘기론 운한거신의 계승자만 들어갈 수 있는 4관이 있다는데, 내가 혈계전승으로 초월자가 될 일이 있을까 싶다.


그건 그렇고 이책, 한번 보고 싶다.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지 확인한 후, 나는 조심스레 <슈밤후>를 집어들었다. 요란한 잡화가 실린 잡지에는 기대와 달리 쓸데없는 찌라시들만 가득했고, 마지막 부분에나마 짧막하게 제목과 관련된 내용이 젹혀있었다.


[우리는 슈피테르 황제를 오래도록 관찰한 결과, 그에게 은밀한 취미가 있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황제가 매월 보름달이 뜨는 밤, 황궁에서 제일 어린 후궁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황제가 찾은 후궁은 다음날, 항상 전날보다 성숙해져 나타난다. 말이 좋아 성숙해졌다는 것이지, 필시 강제로 노화되었음이 확실하다. 황제는 수명을 흡수하는 괴물인 것일까, 아니면 그저 정력이 좋은 것일까? -<루안 카스텔>]


뭐야. 그냥 가십거리였네. 야설인줄 알았는데 자극적인 단어를 짜집기한 가십이였다니, 실망이 크다.


"어린놈이 벌써부터 밝히는구나."

"...!"


낮선 목소리에 깜짝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내 어깨에 고개를 내민 노인이 있었다. 쪼그려 앉았음에도 내 키를 훌쩍 넘는 장대한 거구. 로스만 가문 특유의 은빛 머리칼. 주름 한점 없음에도 군데군데 섞인 백발과 쉬어버린 목소리가 나이를 짐작케하는 기이한 노인이었다.


"아니면 감이 좋은거려나. 영안을 개안했다니 그럴수도 있겠군."


내가 쳐다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노인.


"누구십니까?"

"비고의 관리자다. 그리고 네놈에게 무공을 가르칠 사람이기도 하지. 쥬에테가 말 안해주더냐?"


정체를 묻는 질문에 답하며 노인, 앞으로는 스승이라 불러야 할 거구가 육중한 몸을 일으킨다.


"우어..."


거의 3m에 가까워 보이는 키에 법학책 빰칠 거대한 손바닥이 절로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대공을 친구부르듯 말하는 걸 보면 배분도 꽤 높은 모양. 아무리 <슈밤후>에 정신이 팔렸대도 기척을 놓친 걸 보면 최소 6위계. 왕국 기사단장이나 마탑주랑 맞먹는 실력자다.


"가주의 부탁을 받았으니 들어줘야겠지. 내일부터 동쪽숲으로 나오도록."


노인은 제 할말만 하고는 어느새 모습을 감췄다. 굉장히 마이웨이인 성격으로 보이는데, 수련이 평탄하지 않을 것같은 예감이 드는건 기분탓이겠지? 몰려드는 불안감을 애써 날려버리며 다시 비고를 탐색했다.


하지만 한번 크게 놀란 탓인지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하필 제목만 보면 야설로 오해할 잡지를 보고 있을 때 걸리다니, 오늘 저녁 이불킥을 날려도 부족하다. 비고는 꼭 직계만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너무 방심했다. 방계 혹은 북부 소속이어도 능력을 입증하고 걸맞는 전공을 세우면 비고에 들어올 수 있다.


물론 이방인은 예외다. 전생에 구국의 전공을 세웠지만, 제국은 고작 황궁비고 최하층을 보여주곤 생색이란 생색은 다 냈더랜다. 그래도 그때당시 황궁비고를 열람하고 초월자로 가는 단초와 북부가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빙의를 해서라도 북부의 비고로 들어오려 했던 것이고. 아직 이렇다할 소득은 없지만 꾸준히 찾다보면 얻는게 있겠지. 그렇게 집중이 깨진 바람에 잡생각에 빠진 도중,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 지금은 황궁비고에 들어갈 자격이 되네?'


로스만 가는 무려 대공가문이다. 황제 아래 다음가는 권력자이자 독립령을 소유한 대귀족. 그 말은 즉, 대공가는 지난 700년간 황태자와 맞먹는 1등 신랑감이자 신부들의 워너비였다는 소리. 당연히 황실의 공주들이 여럿 시집왔고, 황실과 피가 섞인 로스만 가는 황제와 친인척 관계다.


자연스레 내가 몸을 차지한 3공자도 황위계승권이 존재한다. 물론 밑에서 세는 것이 빠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황실의 일원이라는 것. 그런데 이놈의 세상은 없는 이방인 서럽게 왜 이리 혈통을 중요시하는 거야. 전회차에 차별받으며 서러웠던 기억이 떠오름에 투덜대며 서적을 둘러보던 중,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제목은 <아스라벨인과 피의신>. 흥미가 가는 제목에 책장에서 꺼내어 펼쳐보았다. 설화에 가까운 이야기로 보였으나 서문은 음울하게 시작했다.


[아스라벨인의 고향은 본래 신들의 낙원이었다. 하지만 신들조차 용납못할 끔찍한 죄를 짓는 바람에 낙원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지상으로 추락하며 울부짖는 아스라벨인들을 가여이 여긴 생명의 신께서, 그들의 피에 표식을 새겨 다른 인간들과 구분지으셨다. 아스라벨인들은 다시 낙원으로 돌아갈 그날을 위해 자신의 혈통을 오염시키지 않고 있다. ...(중략)...]


책에 쓰인 내용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신성제국의 황제가 낙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북부를 집어삼키려는 걸 보면 그냥 지어낸 이야기는 아닐지도 몰랐다.


낙원에서 추방당한 일로 시작한 이야기는 그들이 적당한 행성을 탐색하는 과정을 그리다, 3인칭에서 1인칭 일기형식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죄를 짓고 추방당한 우리와는 다르게 제발로 낙원을 뛰쳐나온 신들이 있었다. 그들 중 대표적인 신이 로스만과 라프케 부부였다. 우리와 함께한 신들은 아스라벨인들이 낮선 행성에 정착하도록 갖은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고마운 신들이다.

그들은 아스라벨인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리라. 하지만 로스만 부부를 놓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정말 ### 보였는데.]


여기까지가 서책에 쓰여진 마지막 페이지.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지워진 저 글자는 무엇을 의미했던 거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아는 것이 너무 적다. 회귀를 거듭하면서도 한번도 접해본 적 없는 창세신화와 로스만 가의 시조로 보이는 신의 이야기.


끝없이 이어지는 상념을 끊어내며 비고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흘끗 훝어보기만 했지만 <슈밤후>나 <아스라벨인과 피의 신>과 같은 제목부터 흥미를 끄는 책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제목없는 책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지구의 좌표를 찾겠단 목표를 생각하면 열심히 뒤져야한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단서가 나올 수도 있었으니까.


그나마 한바퀴 돌며 건진 거라곤 <이동요새>라는 책이 전부였지만 읽다보면 언제가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발견할 수 있겠지. 조금 아쉽지만, 지금쯤 제국수도에서 선별을 마치고 의미없이 굴렀을 전회차보다 100배는 나은 시작이다.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참아가며 몇권의 서적을 대여하고 비고를 빠져나왔다.



#



다음날 아침, 샐리가 새벽 댓바람부터 찾아왔다. 머리속에 포화상태인 영력을 소화시키며 잡귀들을 흡수하던 사이, 샐리가 가슴팍에 파고들며 어린양을 부린다. 의지로 기를 운용하는 영력이 아니었다면 주화입마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이지만, 우중충한 샐리의 표정을 보고 화를 가라앉혔다.


애초에 호위나 하녀들이 막아섰어야 하는데, 영력은 기의 발현이 뚜렸하지 않아 시종들도 제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는게 문제다. 하필 집사가 내가 시킨 일을 수행하느라 자리를 비워 시종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느낌이다. 어서 괜찮은 수족들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

"또구나."


어제 샐리를 저주를 반전시키고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싶었는데 밤사이 또 저주를 달고왔다. 찐빵같은 얼굴을 부풀리고 인상을 찌푸린 샐리의 모습에 마음이 아려온다. 이 쪼그만 녀석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괴롭히는 것일까.


품에 안긴 샐리의 머리를 토닥여주며 밤새 쌓인 저주의 기운을 뽑아낸다. 어제 혹시몰라 거름막을 하나 씌워두고 비고에 갔기에, 저주는 샐리의 몸을 완전히 파고들지 못하고 겉도는 상태였다.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부의 마음으로 하나도 남김없이 싹싹 끌어모아 술사에게 다시 되돌려주자.


저주반전 비기

[천반(天反)]


괘씸한 마음에 나도 저주를 걸어줄까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저주는 남을 해하는 동시에 자신도 해하는 양면적인 주술. 그렇기에 악독하고 지독하며 질척거린다. 술사는 자신이 지불해야 할 대가를 남에게 전가하는 식으로 반동을 회피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그러니 대신 축복을 빌어주자.


[행 복 하 라]

[건 강 하 라]

[만 사 평 안 하 라]


허공에 언령을 새긴 다음, 저주술사에게 돌아가려는 천반에 꾹꾹 눌러담아 '전송'시켜 주었다. 언령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메세지. 본래 나의 특성인 전송에 적용가능하다.


저주술사에게 축복이라니. 음차원의 마나를 기반으로 하는 녀석들에게 축복은 물고기에게 소금을 뿌려주는 것과 다름없는 잔인한 짓이다. 어디 한번 매운 맛좀 보라지.


하지만 왠만한 녀석들은 천반 한방에 떨어지는데, 잘 버티는 걸 보면 고위술사거나 조직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일 터. 만약 둘 다이면 조금 골치 아파진다.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던 도중, 마침 도움이 될 사람이 나타났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3공자님. 위급하셨다고 들었는데 괜찮아 보여 다행입니다."


5위계 영능력자, 마이민 추페라. 동부밀림의 제사장 중 하나인 그녀가 돌아왔다.


"그런데 이건 도련님의 작품입니까?"

"어. 누가 샐리한텨 저주를 걸었더라고."

"이것들이 그새를 못 참고 또..."


고위 영능력자답게 방안에서 무슨일이 벌어진지 순식간에 파악한 그녀는, 천반이 이동한 자취를 보며 손에 쥔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지팡이를 중심으로 무채색의 파동이 동심원을 그리는 동시에, 그녀의 등 뒤로 전통의상을 입은 조상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영령강림(英靈降臨) 사자추계(使者追啓)

[천벌(天伐)]


양팔을 움켜쥔 조상신이 기이한 동작을 취하며 하늘을 찌르자, 지팡이에서 영기의 벼락이 쏘아지더니 천장을 뚫고 자취를 감췄다.


'저건 좀 아프겠는데?'


들이는 영령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인 강림술은 익히기 까다롭고 한계가 명확하나, 저점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마이민이 모시는 조상신은 딱 봐도 생전에 고위술사였던 것처럼 위압감이 장난 아니니, 그녀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저주술사도 고생 꽤나 해야 하리라.


"요즘들어 수작부리는 횟수가 심해졌군요. 소공녀는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보다-."


마이민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잠이 든 샐리를 넘겨받으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고위 영능력자인 그녀가 혹시나 뭔가 눈치챘나 싶어 살짝 긴장햇지만.


"위급하셨다더니 신열이었나 보군요. 3위계에 오르신 걸 축하드립니다."

"어...그, 고마워."


다행히 잘 넘어간 것 같았다.


"당분간 3공자님께 신경 못 써드릴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샐리나 잘 돌봐줘."


과도한 관심은 이쪽도 부담스럽다.


"그럼 저는 이만."


샐리를 품에 안은 마이민이 떠나가자 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스승이 될 노인을 만나러 가야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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