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better butter 안녕, 베터버터

불타는 불행의 맛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베터버터
작품등록일 :
2022.05.13 01:55
최근연재일 :
2022.06.09 00:13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1,249
추천수 :
206
글자수 :
176,057

작성
22.06.06 00:19
조회
13
추천
1
글자
11쪽

첫 싸움

DUMMY

***


조금씩 걷던 버스가 어느새 동네에 도착했다.

무심코 표지판을 보다가 깜짝 놀라 후다닥 내렸다.

내가 환생한 이유,

꿈꾸던 가족을 만나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 벅찬 건 맞았다.

분하고 슬프고 아팠지만,

재회 그 자체만으로도 실은 충분히 기뻤다.

다만, 이렇게 매번 정신을 놓고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도착지를 놓칠 뻔했다.

내년 2월이 되면 이 세상에서 사라질지 계속 살 수 있을지

그 운명을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살아야 했다.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업이 남았으니까.

풀린 고삐를 조여 맬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괜찮잖아.’


오늘은 그냥 취하련다.

앞으로 남은 날은 꽤 있으니까 말이다.

엄마 아빠의 냄새가 지워지기 전에

모든 걸 머금고 취하고 싶었다.

보통 사람들처럼 좋은 일이 있으면 그저 기분에 빠지고 싶었다.

단, 하루라도.


동네에 접어드는 초입에 드니

막 문을 닫는 약국이 보였다.


‘엄마는··· 괜찮은 걸까?’


식탁 위 약봉지에 정신이 팔렸다.

발은 땅을 딛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이미 아까의 집에 머물러 있었다.

멀리서부터 경적을 울리는 소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가까이 들리기 시작한 후 뒤돌아봤을 땐 이미 늦었다.

바로 내 바로 앞까지 자전거가 매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바닥으로 넘어졌다.

가방은 바닥으로 내팽개쳐졌고,

들고 있던 휴대폰은 궤도를 그리며 날아갔다.


“안 돼!”


필사적으로 휴대폰을 따라 몸을 뻗었다.

무서웠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그 모습인 것만 같았다.

그때의 소리와 장면이 오버랩 되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가족사진이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휴대폰은 땅에 맞아 두세 번을 튕기고는 떨어졌다.

막 달려가려는데, 누군가 날 잡고 있었다.


“으···.”


뒤돌아보자 온성이었다.

나를 안은 채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어? 지온성.”

“아···.”


그제야 주위를 살펴보았다.

온성은 나를 대신해 쿠션처럼 받쳐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받치고 넘어지느라 얼굴에 쓸린 상처가 났다.


“어떻게 된 거야···.”

“휴대폰은 괜찮냐? 빨리 가서 챙겨.”


일어나 휴대폰을 살폈다.

아···.

액정에 금이 생겼다.

휴대폰을 켜자 가족사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서리 쪽이 깨져

우리 가족의 얼굴은 지켜낼 수 있었다.


“야.”


온성은 그제야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 미안해.”


온성의 손을 잡았다.

아뿔싸, 그의 손등도 바닥에 쓸려 한껏 벗겨져 있었다.

아마도 안아 감싸느라 나의 등 대신 생긴 상처 같았다.

너무 미안했다.

사고가 잠시 멈췄고,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내가 다쳤더라면 좋았을 텐데, 난 정말 괜찮은데.


“어떻게 해. 아···. 미안해.”


그는 나를 잡고 일어섰다.

다리를 절뚝이더니 이내 털어버리곤 두 발로 섰다.

머리카락을 툭툭 털고 잠시 정돈하던 온성은

나를 내려다 보았다.


“자전거가 오는데 마냥 걸으면 어떻게 해.”

“못 들었어. 미안해서 이걸 어째···.

병원, 병원 가자.”

“됐어. 까진 정도 가지고.”

“어디 보자. 또 어디 다쳤어.”


속상했다. 나도 모르게 말이 빨라졌다.

온성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또 폐가 되었다.

미안한 마음에 손가락으로 얼굴 상처를 들여다보려니

홱 돌려버리는 온성이었다.


“하지 마. 괜찮다니까.”

“보자구! 덧나면 안 되니까.”

“괜찮다니까! 하지 말라고.”

“뭐 어때! 어딜 다쳤는지 확인해야 할 거 아니야.”

“이미 다친 걸 확인해서 뭐가 달라져! 됐다고.”


갑자기 온성의 언성이 높아졌다.

다친 게 민망한지, 나 때문에 다쳐서 화가 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사과조차 하지 못하게끔 다가가지도 못하게 하는 그에게

나도 따라 목소리가 커져 버렸다.


“누가 구해주래? 누가 나 대신 넘어져달래?

네 맘대로 잡아서 넘어져 놓고는 왜 나한테 화풀이야?”

“내가 언제 화냈어? 하지 말라는데 계속 한 건 너잖아.”

“미안하니까 그런 거지. 그럼 모른 척하고 그냥 가는 게 맞는 거야?

그걸 원한 거야?”

“왜 자꾸 불안하게 다니냐고! 어디 나사 빠진 사람처럼.

저 큰 자전거 경적 소리를 못 들을 정도면 문제 있는 거 아니냐?”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그냥 넘어지게 냅두지 그랬어!”


이내, 화를 내버렸다.

실은 교통사고 비슷한 것을 경험하며

과거의 그것이 떠올라 무척이나 불안한 상태였다.

게다가 액정까지 깨져버렸다.

나 또한 예민했다.

그런 나에게 온성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처음엔 미안하고 고마웠지만

점점 분노로 치닫기 시작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화를 낼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너 때문에 넘어질 자전거는 생각 안 해?”

“···그래! 내가 다 모자라고 잘못이야.

그래! 내가 사는 게 민폐고 내가 죄다. 알아! 나도 알아!

나도··· 나도! 잘 알아!”


나도 모르게 목이 메였다.

나라는 존재는 조용히 불행만 먹고 사라져야할 사람.

이 세상에 필요가 없어서 인지 죽었던 사람.

나도 잘 안다.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어! 너는 항상 모자라고 잘못이야.

그냥 좀 다른 사람들처럼 잘 안 보이게 살 순 없어?

꼭 이런 일로 신경 쓰게 해야 해?”


다른 사람들처럼···.

나는 평범할 수 없으니까.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보통 사람들처럼 단 하루만 살자고 다짐했던 마음이

사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고 싶지 않아 눈물을 꾹꾹 참아 누르며 소리쳤다.

나도 모르게··· 악을 지르고 있었다.

한이었다. 마치 죽은 이의 한이었다. 그것은 마치.


“그래! 나도 그러고 싶다!

나도 집에 가면 가족이 있고! 나도 그러면 좋겠다.

보통 사람들처럼! 그게 대체··· 왜 내 잘못이라는 거야?

왜 나만의 잘못이라는 거야.

어째서 자꾸 그러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우리의 소음에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었다.

목소리가 극에 달하자 온성은 화를 눌렀다.


“세상엔 사는 규칙이 있는 거야.

내가 걷는다고 다 마냥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라고.”

“그래, 그런 규칙 몰라서 미안하다.

맞아. 넌 처음부터 그랬어. 싸가지 없고 부탁을 거절할 줄만 알고.

이제 동네 친구 아니니까 신경 안 써줘도 돼.

좋지? 편하게 늘 살던 그 대단한 규칙대로 살면 되니까.”


어느새 사람들이 우리를 꽉 둘러쌌다.

흥분한 나머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악을 지르는 나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다.

한 명, 한 명.

모두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이곳의 이방인이었다.

우리 동네라고 생각했던 이곳에서 나는 동네 사람 치고는

별난 사람이었다.

뒷걸음질하듯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마치 환생 집행관에게 심판을 받는 듯했다.

순간, 겁이 났다.

나는 누굴까. 환생이란 무엇일까. 나는 왜 이곳에서 이렇게 화를 내며,

이 사람들에게 심판받고 있는 것일까.


어둠 속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점점 공황이 찾아왔다.

사고 회로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이내 판단하는 것을 멈췄다.

동공이 풀려가고 나는 점점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온성이 내 손을 잡았다.

인파를 헤치며 거칠게 걸었다.

온성의 손은 많은 인파 속에서 나를 놓지 않겠다는 듯,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온성을 따라 나는 군중 밖으로 빠져나왔다.


***



어딘지 모르게 우리는 걷고 있었다.

어느덧 인파가 없는 거리에 다다랐다.

한껏 쏟아내고 나니, 의외로 후련했다.

그곳에 닫고 나서 온성은 말했다.


“자꾸 걱정되게 하지 말라고.”


뚝뚝한 말투였지만 온성의 성격에 비추어 봤을 때

걱정이 가득 담긴 말투였다.

꽤 걷고 나니 분노도 가라앉아 있었다.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안하다고, 나도. 나도 잘 아니까.”

“나도 뭐. 미안.”


작은 소리로 목소리를 구기는 온성이었다.


“너는 뭐가 미안해.”

“이래저래. 내가 화를 돋웠네.”

“상황이 그렇게 됐지, 뭐. 원인은 내가 제공했으니까. 미안.

병원비는 청구해. 줄테니까. 같이 가는 건 싫을 거고.”

“병원비···. 그런 걸 요구하려고 그랬겠냐.”

“다치면 병원을 가는 거지. 그게 뭐 이상한가.

넌 어쩜 한 번을 약하려고 하질 않아?”

“유소단.”

“···왜.”

“싸우려고 여기 온 거 아니야.”

“···그니깐 미안하다고. 사과 좀 받아주면 안 되냐.”


그제야 알았다.

아직도 우린 손을 잡고 있었다.

감정에 집중하느라 잡은 손도 잊고 있었다.

어쩔 땐 물리적 접촉은 정신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자극이었다.

멋쩍은 듯 손을 놓았다.


“아.”


온성도 그제야 알았다는 듯 손가락을 모두 펼쳤다.

얼마나 오래 힘있게 잡고 있었는지

그새 열기에 젖은 손이었다.

공기를 만나자 시원한 바람결이 느껴졌다.


“화는 좀 풀렸냐?”

“···내가 뭐. 화낼 상황도 아니었지.”

“동네 친구··· 아직 유효하냐?”

“그게 뭐 별거라고.”


나는 실없는 온성의 말에 픽, 웃어버렸다.

그에게 동네 친구란 꼭 필요한 존재인 듯했다.

마치 꼭 셋이서 몰려다녀야만 제 모습을 발휘하는

꼬마 경찰관 삼총사처럼 말이다.


“어?”

“응. 대신, 약속.

꼭 치료하기.”


나는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이라는 말은 공중에 기화되기 십상이니

손가락을 걸어 서로의 몸에 기억되게 저장하는 장치의 하나였다.

온성은 나의 새끼 손가락에 본인의 손가락을 걸었다.


“너도 약속해. 제발 다치지 마.”

“약속··· 할게.”


우리는 비로소 엄지를 마주 닿았다.

그리고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상처는 벌어진 다음에야 더욱 단단히 아무는 법.

비로소 상처 따위에 찢어질 우리가 아니란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


“넌 괜찮냐?”

“나는··· 상당히 괜찮네.”

“그럼 됐다. 간다.”

“배달?”

“아니. 공주 할머니네. 장 좀 보러.”


오늘은 혼자 있고 싶지 않은 그런 날.

괜스레 온성을 따라가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화해의 여운 또한 나름 달콤했다.


“같이 가도 돼?”

“굳이?”

“서운하게 그렇게 말하냐. 뭐 싫음 말고.”

“그럼 가. 같이.”


온성의 보폭을 따라 걷기 위해선 조금 빠르게 걸어야 했다.

종종걸음으로 그의 옆을 따라잡으려 열심히 걸었다.

보통의 온성이라면 속도를 맞춰 걸어주곤 했다.

오늘은 달랐다.

그가 가진 보통의 보폭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던 온성은 경보하듯 걸어오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싸가지가 없어?”

“어?”

“내가. 아까 그랬잖아.”

“아니··· 뭐 그냥.”

“뭐 생각은 자유긴 한데.”

“처음엔··· 그랬지.”

“지금은?”

“아니···지.”

“확실하냐?”

“성격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뭐.”

“너한테.”

“아···. 지금은 아니야. 나도 화가 나서 그랬던 거지.”

“뭐가 문제야?”

“무슨 의미야.”

“너가 느끼기에.”

“문제 아니야. 그냥 첫인상.”

“고칠까 해서.”

“고치지 마. 그냥 잊어도 돼.”

“어렵네. 이거 참.”


온성은 자신의 무뚝뚝한 성격이 문제란 것을 알면서도

고치기 힘들어하는 듯했다.

그러나 고칠 필요는 없었다.

말투와 달리 그는 친절하고 따뜻했다.

온성의 말처럼,

적어도 ···나에게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불타는 불행의 맛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를 잠시 쉬겠습니다 22.06.10 8 0 -
33 삶은 중독이다 22.06.09 11 0 13쪽
32 모든 걸 잃어야 죽음을 얻는다 22.06.07 14 0 12쪽
» 첫 싸움 +2 22.06.06 14 1 11쪽
30 안녕 +2 22.06.05 18 2 11쪽
29 커지는 욕망 +2 22.06.04 20 2 11쪽
28 과일 가게 딸이 되었다 +2 22.06.03 20 3 12쪽
27 두 장의 이중 계약서 22.06.02 16 1 11쪽
26 서로의 심장에 찍은 빨간 지문 22.06.01 25 2 12쪽
25 이중 계약과 이중 오해 +2 22.05.31 22 4 11쪽
24 너에게 동생이 되기는 싫어 22.05.29 20 1 12쪽
23 아파트가 만든 그늘 끝에 지어진 집 22.05.29 22 3 12쪽
22 알에서 깨기 위해선 세계를 무너뜨려야 한다 22.05.28 23 2 12쪽
21 사이보그와 낭만주의자 22.05.27 19 2 12쪽
20 뒷좌석 안전벨트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22.05.26 27 2 11쪽
19 목숨을 건 스파이가 되다 22.05.25 35 0 12쪽
18 걸음도 배워야 뛴다 +2 22.05.24 22 1 12쪽
17 아빠를 보았다 +2 22.05.22 26 3 12쪽
16 엇갈린 화살표 22.05.22 24 2 12쪽
15 부자의 맛 22.05.20 22 0 12쪽
14 동네 친구 22.05.20 23 2 11쪽
13 큰 소리를 낸 사람은 크게 진다 22.05.18 26 2 11쪽
12 모든 초대장엔 의도가 있다 22.05.18 25 2 12쪽
11 변주곡 (變奏曲) 22.05.17 22 1 12쪽
10 이 골목의 총잡이 22.05.17 35 3 12쪽
9 우동과 갈비 만두 +2 22.05.16 26 3 12쪽
8 검은 눈동자 22.05.16 24 3 13쪽
7 빨래 22.05.15 35 3 12쪽
6 줄다리기 22.05.14 42 5 12쪽
5 너와 나의 첫 인상 22.05.13 49 8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