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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 butter 안녕, 베터버터

불타는 불행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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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버터
작품등록일 :
2022.05.13 01:55
최근연재일 :
2022.06.09 00:13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1,246
추천수 :
206
글자수 :
176,057

작성
22.05.29 00:15
조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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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아파트가 만든 그늘 끝에 지어진 집

DUMMY

*** 


주택가 골목 입구에 자동차는 멈춰 섰다.


“감사합니다. 안쪽은 이런 큰 차가 들어오시기 힘드실 거라···.

내일 뵙겠습니다. 아휴,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빠는 문을 열고 내렸다.

내린 후에 허리를 반으로 숙이곤,

일어나 척, 경례를 해보였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동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아빠는 뒤돌아 골목 사이로 들어갔다.

재윤은 가려는 자동차를 멈춰 세웠다.

티슈를 꺼내 몇 장을 건넸다.


“안 나가 봐도 돼요?”

“···고마워요.”


나는 휴지로 눈을 훔치며 자동차에서 내렸고,

아빠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먼 곳에서 지켜보았다.


잊지 않고 휴대폰을 켜 이곳 주소를 꾸욱 입력했다.

아주 오래된 주택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곳.

가장 비싼 아파트의 그림자가 만든 이곳.

나는 드디어 아빠를 만났다.

그리고, 머지않아 엄마를 만날 날을 고대했다.


***


나는 자동차 앞에 섰다.

창문을 노크하자,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요?”

“창문! 창문 내려봐요.”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


“꽈배기 먹을래요?”

“뭔 꽈배기?”

“내려봐요들. 일단.”


마침 주차된 자리 맞은 편에

꽈배기 가게가 있었다.

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퍼지고 있었다.


재윤은 쭈뼛쭈뼛 차에서 내렸다.

에일린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무님은 이 음식을 드시면 안 되세요.”

“엥? 왜요?”

“전무님은 항상 정해진 시간에 준비된 식사만 하시거든요.”

“정말이에요?”

“뭐, 예.”

“왜요”


가게 앞에서 대화하는 우리를 마중나온 가게 아주머니가

응대했다.


“어서오세요~ 뭐로 드릴까.”

“에일린은?”

“저는 먹을 수··· 아, 그러면···

전무님 혼자 못 드시네요. 저도 괜찮습니다.”

“에이, 오늘 내가 너무 고마워서 사려는데 누구라도 하나 먹어주지 그래요?”

“들어요. 에일린은.”

“아저씨는 정말 안 먹을 거예요?”

“크흠.”

“설마, 한번도 안 먹어 본 건 아니죠?”

“어렸을 때 꽈배기 안 먹어 본 사람 있나?”

“근데 왜 망설여요?”

“굳이 먹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죠.”

“간식을 필요 있어서 먹는 사람도 있나요?”


가만히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채근하기 시작했다.


“튀기려면 시간 걸리니까 어여들 고르셔. 몇 개 드려.”

“세 개 주세요.”

“아니 전 됐다니까.”

“세 개 해야 천 원이에요.”

“아니 근데 총각. 혼자 안 먹어? 왜. 섭섭하게.”

“아뇨, 저는···.”

“응?”


아주머니와 나, 에일린의 눈이 그에게 쏠리자

재윤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대답했다.


“저, 저도 하나 주세요, 그럼.”

“전무님···.”

“설탕 묻혀? 안 묻혀?”

“묻혀야죠.”

“아가씨가 먹을 줄 아네, 그려.”


막 튀겨진 따끈한 꽈배기에 설탕 옷이 반짝이며 묻었다.

우리는 흰 종이를 장갑 삼아 꽈배기를 하나씩 들었다.


“으응. 그거 차에서 먹으면 안 돼요!”


나는 막 꽈배기를 뜯으며 차로 걸어가는 재윤을 말렸다..


“길에서 먹으라구요?”

“추울 때 먹어야 맛있는 거예요.

그거 들고 타면 비싼 옷에 설탕 다 떨어집니다?”

“나도 알거든요.”


재윤은 주변을 슥 돌아보더니 이내 한 입 베어 물었다.


“전무님! 진짜 드···. 셨나요···?”

“어때요. 맛이?”

“···맛은 있지. 뭐.”


재윤이 꽈배기를 연달아 크게 베어 물며 먹자

그제야 에일린도 한 입 먹기 시작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소단 님.”


우리는 연기가 폴폴 피어나는 골목 앞 꽈배기 가게에서

달콤한 시간을 나누어 먹었다.

가장 먼저 다 먹은 종이를 구긴 건 재윤이었다.


“속도 좀 맞춰 주시지. 혼자 그렇게 빨리 먹어요.”

“너무 달아.”

“볼 터지겠구만.”


생각보다 맛있었던 꽈배기에 심히 놀란 재윤이었다.

세 입 만에 먹어 치워 놓고선 괜히 민망한지 달다며

트집을 잡고 있었다.


“아직 타지 마요. 나도 거의 다 먹었으니까.”

“또 왜요?”

“목 안 말라요?”

“차에 물 있어요.”

“으응. 꽈배기 먹은 다음에는 시원한 에이드죠.”


내가 앞장서 걸으니 이젠 군말 없이 잘 따라오는 재윤이었다.

바로 근처 있는 값이 싸면서도 용량이 큰 음료를 파는

카페로 향했다.


“음. 나는 청포도 에이드!”

“전무님은··· 커피 정도로 하시는 게···.”

“나도 청포도 에이드.”

“네? 전무님이 그러하시다면 그, 그럼 저도···.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이렇게 나온 것도 기념이니 한 번 먹죠, 뭐.”


맛있는 음식은 지친 심신을 치료하는 특효약이었다.

음식은 위로 간다지만,

실은 심장에 제일 먼저 닿는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알 테지.

함께 나누는 음식만큼 맛있는 선물은 없었다.

갇혀 사는 그에게 보다 넓은 세상의 맛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청포도 에이드에 빨대를 꽂고 자동차로 돌아왔다.


“오늘 고마워서요.”


운전대를 잡은 재윤은 그 말을 듣고 살포시 웃었다.


“나와보니 재밌네. 덕분에 바깥 공기도 마셔보구요.

뭐, 나도 좋았어요.”


도로에 빨간 신호가 켜질 때마다,

멈춰 서서 청포도 에이드를 비워내는 그였다.

빨대에 입을 대고 멍하니 바깥 풍경을 내다 보았다.

갑자기, 어깨에 닿은 손길이 느껴졌다.


“네?”


시선은 정면에 둔 채, 내 어깨와 등을 토닥이는 재윤이었다.

아무 말없이 나를 토닥이는 그였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재윤을 향해 바라보았다.

에일린이 들을까 입 모양으로 웅얼거렸다.


“고마워요. 정말.”


그러자 재윤은 입술을 살짝 벌려 입모양으로 대답했다.


“나도.”


뒤를 흘끗 살피며 에일린이 창밖을 보고 있는 걸 확인하자,


“잘해봐요. 우리.”


나를 따라 입 모양으로 대답하던 재윤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어 보였다.


“에일린 오늘 정말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덕분에 맛있는 간식도 감사히 먹었습니다.”

“에일린은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 거예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습니다.”

“대단하네요. 준비를 오래 했나 봐요.”

“이곳은 추천으로만 입사할 수 있어요.

추천 덕분에 이처럼 좋은 곳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에일린은 상냥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대답했다.


“추천이라면···?”

“그건,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요.”


물론, 그녀 또한 그쪽의 사람이었다.


“어쨌든 오늘 일은 비밀, 알죠?”

“명심하겠습니다.”


자동차는 어느덧 재윤의 집을 지나고 있었다.


“내려줘요. 혼자 갈 수 있어요.”

“오늘 피 뺀 거 잊었어요? 오늘 무리하면 안 돼요.

그냥 있어요. 데려다줄게요.”

“괜찮아요.”

“실은 나도 간만에 하는 운전이라 연습 좀 하려고 그럽니다.”

“···저기. 전무님. 더 시간을 오래 소비하시면 의심을 살 것 같습니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났어요.”

“돌아가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운전대를 돌릴 생각이 없어 보이는 재윤에게

다시금 만류했다.


“만날 날이 길 텐데, 벌써부터 꼬이면 곤란할 거예요.

그만 돌아가세요. 전 괜찮습니다.”

“···저 또한 난감해질 테구요···.”


에일린의 울상 어린 표정을 살피고서야 자동차는 멈췄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재윤도 따라 내렸다.


“아이 괜찮아요. 들어가세요.”


나는 장난스레 웃으며 그의 친절을 기분 좋게 거절했다.

재윤이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왔다.


“또 봐요. 그럼.”


가까이서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입가에 설탕 가루가 총총히 흩뿌려져 있었다.


“···설탕.”


그의 입가를 가리키며 알려주었지만, 그는 좀처럼 알아듣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입가에 묻은 설탕을 떼어주었다.

재윤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얼굴을 가렸다.

순간, 어색한 흐름이 우리를 감쌌다.


“설탕, 묻어서. 들키면 안 되니까요.”

“아, 내가 할게요.”

“갈게요! 들어가세요.”


재윤은 그제야 뒤돌아 걸어갔다.

에일린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혹시 설탕 또 묻었나요?”

“아니요, 전무님. 이제 없어요.”


하며 그들은 미로 속으로 사라졌다.


***


나홀로 이 거대한 단지 앞에 남아버렸다.

이상할만큼 지나가는 택시가 한 대도 없었다.

무작정 택시가 보이는 곳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몇 대의 택시를 흔들어 불러보았지만 놓치고 말았다.

괜찮은 척했지만 무리한 헌혈로 온몸의 피가 많이 빠진 상태였다.

긴장이 풀리자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구두 때문에 아파오는 발까지 모든 것이 불편했다.


나는 휴대폰을 켜고 온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그 이름.


“지온성. 혹시 휴대폰으로 택시 잡는 방법 좀 알려줘.”

“··· 괜찮냐?”

“···응.”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힘이 없네.”

“그냥 피곤하네.”

“메시지로 보내놓을게.”

“응. 고마워.”

“···주소가 어떻게 되는데?”

“왜?”

“···갈까?”

“아니야. 여기 멀어. 지금 한창 일할 시간 아니야?”

“뭐 그럼. 알았어. 보내놓을게.”

“고맙다~”


근처 버스 정류장에 앉아 다리를 토닥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성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의 말을 따라 어플을 깔았다.

29년 전, 아빠가 거리로 나가 직접 팔을 흔들어 잡아야 했던 택시는

오늘날 주소만 찍으면 알아서 데리러 와주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말 택시는 친절하게도 바로 내 앞으로 도착했고,

나는 겨우 동네로 갈 수 있었다.


“···저기 아저씨.”

“네?”

“가시다가 큰길에서 그냥 세워주세요.”

“그러면 내리실 때쯤 알려주세요. 일단 네비 대로 가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


택시에서 내려 신발가게에 들렀다.

실은, 나의 구두가 아니어서인지 나에게는 작았다.

까진 뒤꿈치가 쓰려왔다.

나는 절뚝이며 걸었다.


언젠가 이런 깔끔한 구두는 신게 될 날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나에게 맞는 구두를 사기로 했다.


신발가게에 들러 깨끗한 검은색 구두를 샀다.

그리고 문득, 온성의 신발이 떠올랐다.


“20대 남자가 신을 신발 보여주시겠어요?”

“사이즈가 어떻게 되시죠?”

“아, 그게···.”


이런, 온성의 신발 사이즈는 알지 못했다.


“그니까 음. 키가 이정도로 큰 편인데요.

사이즈는 잘 몰라서···.”

“일단 키 큰 남성분들이 많이 신으시는 270 가져가 보세요.

안 맞으시면 영수증이랑 같이 가져오시면 교환해드릴게요.

그러면 됐죠?”

“아, 네!”

“구두는 버려드릴까요?”


나에게 맞지 않는 이 구두를 버리는 게 맞을까?

나는 아저씨의 질문에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일 년간 잠시 빌려 사는 건 나였다.

나는, 빌린 인생이었다.

업에 빚진 인생이었다.

고민 후 결정했다.

구두를 다시 제자리에 놓기로 말이다.


“아니요. 챙겨주세요.”

“새 신발로 신고 가실 거죠?”

“네.”


그렇게 나는 새 구두를 신었다.

빚진 인생에 나를 맞게 구겨 신는 건,

피부가 벗겨질만큼 고통스러웠다.


***


“여보세요. 지온성!”

“응?”

“나 족발 가게 앞인데, 올래?”

“한 사이클 돌고 갈게. 먼저 가 있어.”

“미리 시켜 놓는다~”

“맛있는 걸로 골라 놔.”

“그리고 이번엔 내가 사는 거다?”

“흐, 그래.”


빨개진 뒤꿈치가 아려왔지만

절뚝이더라도 열심히 걸어 족발집으로 들어섰다.


“여기 족발 중자 하나 주세요.”

“몇 분이세요?”

“한 명 더 올 거예요.”

“네~ 편한 곳에 앉으세요.”


나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익숙한 동네에 도착하니 그제야 피가 도는 것처럼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이곳이라면 쓰러지더라도 안심이었다.

수저를 세팅하며 신발이 담긴 봉지가 눈에 띄었다.


‘좋아할까? 맘에 안 들어하면 어쩌지···.’


신발 박스를 열어 그가 신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온성에게 줄 신발이 괜히 쑥스러워 의자 밑으로 감춰버리는 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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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불행의 맛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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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를 잠시 쉬겠습니다 22.06.10 8 0 -
33 삶은 중독이다 22.06.09 11 0 13쪽
32 모든 걸 잃어야 죽음을 얻는다 22.06.07 14 0 12쪽
31 첫 싸움 +2 22.06.06 13 1 11쪽
30 안녕 +2 22.06.05 18 2 11쪽
29 커지는 욕망 +2 22.06.04 20 2 11쪽
28 과일 가게 딸이 되었다 +2 22.06.03 19 3 12쪽
27 두 장의 이중 계약서 22.06.02 16 1 11쪽
26 서로의 심장에 찍은 빨간 지문 22.06.01 25 2 12쪽
25 이중 계약과 이중 오해 +2 22.05.31 22 4 11쪽
24 너에게 동생이 되기는 싫어 22.05.29 20 1 12쪽
» 아파트가 만든 그늘 끝에 지어진 집 22.05.29 22 3 12쪽
22 알에서 깨기 위해선 세계를 무너뜨려야 한다 22.05.28 23 2 12쪽
21 사이보그와 낭만주의자 22.05.27 19 2 12쪽
20 뒷좌석 안전벨트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22.05.26 27 2 11쪽
19 목숨을 건 스파이가 되다 22.05.25 35 0 12쪽
18 걸음도 배워야 뛴다 +2 22.05.24 22 1 12쪽
17 아빠를 보았다 +2 22.05.22 25 3 12쪽
16 엇갈린 화살표 22.05.22 24 2 12쪽
15 부자의 맛 22.05.20 22 0 12쪽
14 동네 친구 22.05.20 23 2 11쪽
13 큰 소리를 낸 사람은 크게 진다 22.05.18 26 2 11쪽
12 모든 초대장엔 의도가 있다 22.05.18 25 2 12쪽
11 변주곡 (變奏曲) 22.05.17 22 1 12쪽
10 이 골목의 총잡이 22.05.17 35 3 12쪽
9 우동과 갈비 만두 +2 22.05.16 26 3 12쪽
8 검은 눈동자 22.05.16 24 3 13쪽
7 빨래 22.05.15 35 3 12쪽
6 줄다리기 22.05.14 42 5 12쪽
5 너와 나의 첫 인상 22.05.13 49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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