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운명 제7화
"지연아.."
"어.."
"배 안고파??"
"오빠 미안한데.. 나 지금 정신 없으니까 짜장면 시켜먹자."
"그.. 그래.."
"난 볶음밥으로 시켜줘.."
"어.."
* 그러니까.. 박대리님이 잘 체크 하셨어야죠. 아 진짜.. *
"............"
* 팀원들 다 전화해서 회사로 들어오라고 하세요. 당연하죠. 오늘 아니면 언제 할 꺼에요? *
"............"
* 네 알았어요. 저도 지금 출발 할 테니까 기다려요. 아.. 영미씨한테 DB자료 다시 뽑아놓으라고 해요. 네.. *
"회사 가봐야 돼?"
"어.. 급한 일이라 좀 가봐야 될 거 같애.."
"바쁘네.."
"미안해 오빠.. 모처럼 만났는데.."
"아.. 아냐.. 괜찮아. 주말에 보면 돼지.."
"그래.. 그럼 먼저 가볼께. 밥 잘 챙겨 먹구."
"그.. 그래.. 조심해서 가.."
............
* 아저씨.. 아까 주문했던 XX빌라 310호인데요. 볶음밥 취소해 주세요. 그래요? 네.. 알았어요.. 그냥 둘다 갖다 주세요.." *
"아저씨?"
"어? 어.."
"또 뭔 생각해?"
"아.. 아냐.. 그나저나.. 안 무겁냐?"
"어. 괜찮아.."
"그래? 그럼 이것 좀 들어라.. 왜케 무겁냐 이거.."
"............"
그녀에게 짐을 건낸 후.. 담배를 하나 꺼내 든다.
"뭐야.. 나한테 짐 떠 넘기고 아저씨만 피기야?"
"넌 웬만하면 끊어라. 나이도 어린게 뭔 담배냐.."
"이씨.. 진짜.."
"내가 딴건 사줘도 담배는 안 사줄거다. 끊던지 돈 벌어서 피던지 알아서 해.."
"흥!! 치사해서 안펴.."
".........."
그녀에게 연기가 갈까 살짝 떨어진 채로.. 집을 향해 걸었다.
"야 똑바로 좀 들어봐.."
그녀와 함께 창고처럼 쓰는 방을 정리중이다.
"알았어.. 아.. 근데 그냥 나.. 큰방서 자면 안돼? 침대 밑에서 자면 돼잖아.."
"시끄러.. 얌전히 들기나 해"
".............."
흠..
뭐 이 정도면 자는 데는 문제 없겠지?
적당히 그녀가 잘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후
걸레를 빨아 방 여기저기를 닦으며 청소를 마무리 했다.
"아저씨.. 옷걸이 남는 거 하나도 없어?"
내 방에 들어와 사온 옷들을 정리하면서 그녀가 묻는다.
"글쎄다.. 하나도 없냐?"
"어.. 없네.."
"그럼 내꺼 티셔츠 몇개 빼서 거기에 걸어. 내꺼야 그냥 안걸어도 되는거니까.."
"알았어.."
"야.. 그나저나.. 헛.."
또 내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벗고 있는 그녀.
"어 왜?"
"아.. 아니 그게.. 야.. 너 옷은 이제 니 방 가서 갈아 입어야지.."
민망함에.. 말을 더듬고 만다.
"뭐 어때.. 아무데서나 갈아 입으면 돼는거지. 근데 왜? 혹시 신경 쓰여?"
"그걸 말이라고 하냐? 어디 여자애가 함부로 옷을 훌러덩 벗고.."
"그런가? 알았어. 앞으론 조심할께.."
...............
그래도 말은 고분고분 잘 듣는군..
"그나저나 너 좀 씻어야 되는거 아니냐?"
"어.. 안그래도 오면서 목욕탕 봤어. 좀 다녀 올려구.. 아저씨도 갈래? "
사들고 온 츄리닝을 꺼내 입고선 나에게 묻는 그녀..
"어? 어.. 나도 씻긴 해야 되는데.."
"그래 그럼.. 아저씨도 빨리 챙겨."
"어.."
"자.. 잠깐.. 나도 옷 좀 갈아입고.."
"어.. 그래.."
"............"
"왜?"
...........
아.. 이거 난감하네..
내 앞에서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녀..
"나땜에 그래?"
"아.. 아냐.."
그냥 옷을 벗어 버린다.
뭐.. 그녀도 벗은판에.. 내가 민망할게 뭐있어..
그녀보단 좀 빠르게.. 후다닥 츄리닝으로 갈아 입어버리는 나..
"후훗.. 아저씨 운동좀 해야겠다. 똥빼가 남산만해.."
"............"
"가자.."
"어.."
그녀와.. 집을 나와 목욕탕으로 향했다.
"야.."
목욕탕으로 내려가는 길에 그녀를 슬쩍 부른다.
"어.."
"너 진짜 몇 살이냐?"
"스물 한 살.."
헐.. 진짜?
근데 왜 이리 동안처럼 생겼지?
"대학생?"
"아니.. 대학은 안갔어.."
"그럼?"
"그냥 공장 다녔어.."
"아.. 그래? 근데 지금은 왜 안 다녀?"
"그냥.. 짜증 나서.."
".........."
"그런 아저씨는 몇 살이야?"
"나? 몇 살 같냐?"
"마흔?"
"우씨.. 어딜 봐서.."
"농담이야.. 후훗.. 서른 세 살이지?"
"어? 딱 맞추네? 어떻게 알았냐?"
"아까 민증 봤어.. 이름은 김봉구고.."
"..........."
"아저씨 이름은 안 까먹을 꺼 같애.. 봉구.. 후훗.."
"우씨.."
"봉구씨.. 우리 잘해봐요.."
"장난 그만.."
"아.. 알았어.."
"야참.. 니 이름은 뭐야?"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나?"
"어.."
"설희야.. 백설희.."
"서리? 겨울에 내리는 거?"
"아니.. 눈 설에.. 기쁠희.. 설희.."
"아.. 그래? 근데 왠지 서리로 들린다.."
"사람들도 다들 그냥 서리로 부르긴 해.."
"흰 눈 올 때마다 기쁘냐?"
그냥 썰렁한 농담 한 번 해본다.
"어?"
"백설희라며.. 흰 눈 올 때마다 기쁘냐고.."
"유치해.."
"............."
..............
우씨.. 왜 이렇게 안 나와..
목욕을 마치고 문 앞에서 그녀를 한시간째 기다리는 중이다.
나도 제법 오래 목욕을 안했던지라 한 시간 정도를 하고 나온 건데..
지금 그녀는 이런 나를 1시간이나 더 기다리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저씨 뭐해 여기서?"
잉?
목욕탕이 아닌 거리 쪽에서 나를 부르는 그녀..
어라?
그런데..
그녀의 모습이 뭔가 좀.. 새롭다.
목욕을 마친지 얼마 안되서 그런가?
왜 이렇게 이뻐 보이지?
게다가..
딱 달라붙은 츄리닝 속 실루엣에..
물기가 채 마르지도 않은 헝클어진 머릿결이 합쳐지니..
이젠 아예 섹시해 보이기까지 하네?
.............
"뭐야? 너 탕에 있던 거 아니었냐?"
애써 평정심을 찾으며.. 그녀에게 묻는다.
"나야 한참 전에 끝냈지. 아저씨 안 나오길래 먼저 간줄 알고 집에 갔다 왔잖아.."
"..........."
"오래 기다린 거야?"
"어.. 한 시간 정도. 근데 넌 뭔 목욕을 그렇게 빨리 끝내냐? 보통 여자들 탕에 들어가면 2시간은 기본이던데.."
"난 답답해서 오래 못 있어. 후다닥 때만 밀고 나오지.."
"............."
"암튼 가자. 밥 해 놨어.."
"밥?"
"어.. 밥 먹어야지 이제.."
"반찬은?"
"냉장고에 많던데? 아저씨 은근 생활력 있더라.."
"............."
유진이가 가져다 놓은 것인데..
정신이 없어 신경도 못쓰고 있던 터였다.
"딱히 반찬 안 해도 몇 일은 먹겠어. 가는 길에 찌개 거리나 사가자.."
"그.. 그래.."
그녀가 나를 이끌고.. 집 앞 슈퍼로 향한다.
"흠.. 제법이네.."
그녀가 끓인 김치찌개를 맛보고 있다..
"말했잖아.. 나 요리 잘한다고.."
"그러게.. 근데 지난번 북어국은 어째 그랬냐?"
"그땐 술이 덜 깨서.."
".........."
"그나저나 아저씨 집엔 할게 아무것도 없네.."
"뭐가?"
"티비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딱히 필요가 없었어.."
"하긴 뭐.. 고시생이었으니.."
"............."
"밥 먹고 뭐하지?"
"그러게.."
"뭐 재미난 일 없을까?"
"재밌는 일?"
"아저씨 그냥 일단 나가자.."
"나가서 뭐하게?"
"에이 여기서 할 일 없이 있는 것보단 낫잖아.. 바람이나 쐬는 거지 뭐.."
"난 방에 있는 게 더 좋은데.."
"............"
"정 심심하면 아래에 피씨방도 있고 만화방도 있으니까.. 놀다 와.."
"싫어.."
"그래? 그럼 그냥 자자.."
"이씨.. 아직 해도 안졌는데 무슨 잠을 자?"
"하긴.."
"아.. 우리 영화 보러 가자.."
"영화?"
"어.. 나 영화 보고 싶어.."
"그럴까 그럼? 나도 극장 가 본지 좀 오래돼서 땡기긴 하는데.."
"잘됐네.. 빨리 먹고 가자.."
"오케이.."
"어이 설! 언능와"
그녀와 함께 극장을 가려고 길거리로 나섰다.
"설? 나 부른 거야 방금?"
"어.."
"설희라니까.."
"귀찮아. 그냥 설로 해.."
".........."
"상관없잖아?"
"뭐 그렇긴 한데.. 그럼 나도 뽕! 이렇게 불러도 돼?"
"장난해?"
"..........."
그녀와 극장에 도착했다.
공부하면서 가끔씩 혼자 오긴 했지만..
여자.. 아니 누군가와 같이 온 건 몇 년 만이다.
사실 이곳은..
지연이와의 많은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었기에..
올 때마다.. 괜시리 뭉클한 느낌을 안고 영화를 감상해와야 했다.
"앉아서 잠깐 기다려.. 표 끊어 올 테니까.."
"어.."
그녀를 의자에 앉힌 후.. 매표소로 향했다.
"2장이요.."
"여기 있습니다.."
표를 받고서.. 잠깐 팝콘을 사러 향한다.
나야.. 팝콘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녀는.. 뭐라도 하나 쥐어줘야 얌전히 영화나 볼 거 아닌가..
아직도 미스테리긴 한데..
도대체 여자들은 왜 이 맛도 없고 비싼 팝콘을
꼭 하나씩 사 들고 들어가야 직성이 풀리는지를 모르겠다.
다 먹지도 못하고 반은 남기더만..
..........
"저기요.. 제일 작은 걸로.. 아.. 아니다. 제일 큰 걸로 주세요.."
"네.. 만2천원입니다"
애가 좀 먹성이 있는 거 같던데..
작은 걸로 샀다가 괜히 원성만 사지..
"어? 팝콘도 사왔네?"
"자.. 너 다 먹어.."
"나 팝콘 별로 안 좋아하는데.."
"..........."
이런 젠장..
싼 거 살걸..
"아저씨 많이 먹어.. 난 괜찮아.."
"나도 팝콘 안 먹어. 우씨 진작 말을 해야지.."
"물어봤어야 말을 하지.."
".........."
"환불 해야겠다. 줘봐.."
그러더니 팝콘을 들고.. 판매대로 향하는 그녀였다.
.............
흠..
팝콘 싫어하는 여자도..
있긴 있었군..
뭐 자주는 아니겠지만..
헹여라도 같이 영화 볼 일 생기면..
돈이 많이 들진 않겠어.. 훗..
"자.. 여기"
팝콘값을 받아온 그녀..
"이걸로 좀 있다가 술이나 먹자.."
"그래.."
..........
얘도 술 매니아 인가 보네..
표정이 왜 이리 밝아져?
"야.. 재미 없었냐?"
상영관에서 내내 잠만 자던 그녀..
"어.."
"............"
"에이 돈 아까워.."
"............."
"아저씬 재밌었어?"
"나.. 나야 뭐 원래 아무거나 좋아해서.."
"그래? 영화 좋아하나 보네?"
"어.. 좀 많이 좋아하지.."
"나도 옛날엔 좋아했는데.. 나이 드니까 취미도 바뀌나 봐.."
몇 살이나 살았다고 나이 타령은..
"..........."
"에휴.. 어릴 때가 좋았는데.."
"..........."
그녀의 투정 섞인 농담을 들으며 극장을 나오고 있었다.
"야.. 잠깐.. 나 화장실 좀 다녀 올께.. 기다려"
"어.."
상영관에서 내내 참았던지라.. 후다닥 화장실로 향했다.
.............
우씨.. 얘는 어딜 간 거야..
볼일을 보고 나왔더니 그녀가 안 보인다.
화장실 갔나?
잠시 기다려 본다.
몇 분이 지나도 안 나오는 그녀..
후아.. 연락도 안되고.. 답답해 죽겠네.
이거 집에 가다가 핸드폰이라도 개통하던지 해야지 원..
톡톡..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건드린다.
설희일 거란 생각에 소리부터 지르며 고개를 돌리는 나..
"야.. 너.. 어디 갔.. 헛.."
헉..
너.. 넌?
"오.. 오랜만이야.."
지.. 지연이?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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