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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샌드 님의 서재입니다.

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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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샌드
작품등록일 :
2013.12.3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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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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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9,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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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1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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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도시 외곽. 킹 크랩. (2)

DUMMY

“쓸데없는 짓을 하셨더군요, 케이먼씨.”


조나단 사일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케이먼을 노려보는 그의 안광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케이먼씨께서는 그동안 약속된 바를 성실하게 이행하셨고, 저희 역시 이에 대단한 만족을 표해 왔습니다. 그런데, 저희의 약속된 호의를 채 기다리지 못하고 케이먼씨께서 이렇게 부적절한 처신을 보여주신데 대해 저희는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만든 것입니까?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조급함이라는 악덕에 무릎을 꿇도록 만든 것입니까?”


조나단 사일러스의 목소리에는 놀라울 정도로 중후한 위엄이 서려있었다. 그는 잠깐 숨을 가다듬고 케이먼에 대한 비난을 계속 이어갔다.


“사업적인 관점에서 저희와 케이먼씨는 이미 합의를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케이먼씨 역시 두 눈으로 ‘사원’의 증거를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기에 지금까지의 투자를 아까워하지 않으셨던 것 아닙니까? 저희는 케이먼씨에게 약간의 투자, 약간의 위험과 이에 따르는 확실한 영광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니 케이먼씨...”


조나단은 좌중을 두루 둘러보며 힘주어 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명확한 조치를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케이먼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은 마치 금방이라도 그 시선이 미치는 누구라도 찢어발길 듯 타오르고 있었고, 굳게 다문 입은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사일러스. 당신네 패거리야말로 내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소. 당신네들의 공허한 수사에는 이미 넌덜머리가 난지 오래요.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하고 싶군. 나는 이미 수천만 달러를 쏟아 부었소. 당신들이 내 목을 조르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 기실 나의 주머니에서 야금야금 끄집어 낸 것이지 않소? 그런데도 지금까지 당신들이 내게 보여준 것이라고는 그 빌어먹을 ‘사원’의 껍데기뿐이오. 사업적 관점? 나는 나의 돈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해 보고받을 권리가 있소. 그리고 미래가 불투명한 사업에 대해서 언제든지 나의 투자를 철회할 권리도 있지. 요즘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있는 생각이 뭔 줄 아시오? 나, 빌어먹을 UPX 이사회 회장 앤드류 케이먼이, 제것들이 마치 은자 피에르와 십자군이라도 된 듯이 구는 칸과 그 미치광이 집단의 광대놀음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죽다 살아나는 짓을 반복하고 있구나 라는 것이오.”

“이제 며칠만 지나면 동기화가 완료됩니다. 칸께서 직접 그 결과물을 케이먼씨에게 전달드릴 것을 약속했습니다. 케이먼씨가 바라는 모든 것이 눈앞에 있는데, 막판에 일을 망치시겠습니까? 냉정하게 말씀드리지요. 저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사원’이 우리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거나, 우리가 그 응답을 제대로 듣지 못할 가능성이 아닙니다. 저희가, 그리고 칸께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케이먼씨의 눈이 머는 것입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를 마주할 때 생겨나는 인간적인 탐욕, 인내의 결여에 말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로 저희와 케이먼씨가 이미 합의하지 않았습니까.”

“하! 안전장치라. 사일러스, 그 빌어먹을 안전장치를 먼저 제거한 것은 당신이오. 작금의 사태에 대해 누구보다도 책임이 있는 것은 바로 지금 내 앞에서 일장 설교를 늘어놓고 있는 조나단 사일러스, 바로 당신이란 말이오. 당신 아들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인해 라이언 회장이 움직이기 시작했소. 지금 이 순간에도 노위스 라이언, 그 작자의 끄나풀이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지 모른단 말이지.”


케이먼이 자신의 아들을 거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나단 사일러스의 표정에는 한 치의 변화도 일지 않았다. 케이먼은 격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 아들, 그리고 그 메시지 말이오. 이제는 나로서도 그 능구렁이 같은 라이언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도무지 예측을 할 수가 없소. 게다가 이제는 보안국까지 끼어들었지. 내가 당신에게 빚이 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지금 이 사태를 보면 오히려 빚을 진 것은 당신이오. 그리고 당연하지만, 나는 그 빚을 탕감해줄 생각이 추호도 없소.”

“제이콥에 대해서는 이미 당신과 저 사이에서 셈이 끝났을 텐데요, 케이먼씨. 그 건에 대하여 이미 저희는 케이먼씨의 노고에 보답하고자 충분한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다만, 그 호의를 악용하여 저희와 케이먼씨 사이의 안전장치를 제거하려 한 것은 케이먼씨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요. 케이먼씨, 이제 곧 있으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라이언 회장은 기회를 잡지 못할 것입니다. 애초에 그를 상대하는 책무는 당신에게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UPX 내부의 이권 다툼에 개입할 생각이 없습니다. 보안국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할겁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저를 압박한다고 해서, 칸과의 계약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케이먼씨가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데커드는 조나단의 차가운 어조에 사뭇 놀라며, 고개를 돌려 케이먼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케이먼 역시 자신의 아들에 대하여 조나단이 이렇게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데 대해 놀라는 듯 했다. 그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잠깐 생각을 가다듬는 척했으나, 데커드는 멀리서도 그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겨우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칸에게 전하시오. 이렇게 당신네들의 광대놀음에 함께 해주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다음 예정일까지 나를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하면 당신들도 댓가를 치르게 될거라고.”

“그 말씀 분명히 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케이먼씨의 전폭적인 지원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조나단은 비록 정중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어조는 여전히 차가웠다. 케이먼은 손사래를 쳤다.


“이제 그런 형식적인 말은 그만 듣고 싶군. 나는 당신들의 요구 조건을 모두 지켰으니 내 몫의 '물건'이나 가져오시오."


케이먼의 말이 끝나자마자 조나단은 열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대오 사이로 한 남자가 끌려나왔다. 유난히 큰 머리를 덮고 있는 붉은 머리,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는 대오를 벗어나자 자신을 붙잡고 있는 밀무역자의 팔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사지 멀쩡하게 데려오다니 꽤나 놀랍군."


케이먼이 이죽였다. 붉은 머리의 남자는 케이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케이먼은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이것으로 오늘 케이먼씨와 저희의 셈은 끝난 것 같군요. 그럼 케이먼씨, 기억하십시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나단 사일러스와 밀무역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을 지어 공장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한 마리의 쥐새끼처럼 어둠 속에 숨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데커드를 제외하면, 공장 안에는 이제 케이먼과 그 수하로 보이는 무장한 남자들, 그리고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붉은 머리의 남자만이 남아 있었다. 주변이 침묵에 휩싸이자 케이먼은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여전히 붉은 머리 남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괜히 어설프게 변명하려 하지 마! 나는 지금 당장에라도 자네를 쏴서 시체를 제이콥 그놈 처럼 UPX 로비의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리고 싶으니. 나, 앤드류 케이먼이 너 같은 놈 때문에 저 인간 말종들 앞에서 이런 모욕을 당했단 말이야."


남자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케이먼씨, 그래도 제이콥 건은 원하시는 대로 처리되지 않았습니까? 가는 길에 저도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만 그 정도라면 충분히..."

"그 얘기는 꺼내지도 마! 빌어먹을, 내가 자네의 멍청한 아이디어 따위를 믿는게 아니었어. 보안국 놈들은 애초에 모든걸 대충 덮을 생각만 하고, 기자 놈들 돈이라도 받아 처먹었는지 시시껄렁한 연예 뉴스나 써대는 상황에서 정작 라이언과 웨이 린 그 망할년은 눈 한번 깜짝 안 하고 있단 말이야. 애초에 라이언이 그런 하찮은 수작에 걸려드리라 생각한 나도 바보였지."

"죄송합니다. 케이먼씨, 일이 그렇게 되었군요..."


케이먼은 이제는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과장된 손짓으로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던져버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조용히 제이콥 건을 마무리지었어야 했어. 제이콥에 대해서 어설프게 잔꾀를 부리는 바람에 내가 회장쪽의 주의만 잔뜩 끌어버리게 되었단 말이지. 저 망할 놈들이 점점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게 느껴지는 마당에, 라이언 회장까지 이제 '사원'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을거라고."

"라이언 회장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겁니다. 알아낸다 해도 그 때는 너무 늦겠지요. 방법이야 어찌되었건 저희가 빨리 손을 쓴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케이먼씨께서는 저를 비난하시지만 그래도 저의 측에서도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붉은 머리 남자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일이 쉬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케이먼은 몸을 돌려 붉은 머리 남자를 노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사원에 대해 알아낸 것이라도 있는거야?"


남자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제 예상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 '사원'에 직접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케이먼씨의 돈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놈들의 시스템에 대한 접속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더군요. 그렇게 방대하면서도 또 거의 완벽에 가깝게..."

"그래서?"

"네. 어쨌든, 저는 놈들의 메인프레임에 접속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다행히 불완전하나마 그 쪽의 시스템에 대응할 수 있는 장비를 가져갔기 때문에, 아주 일부지만 그들의 시스템 로직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전환 로직을 설계한 경험이 있는 저였으니 망정이지 만약 제가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자네에게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군."

"죄송합니다. 어쨌든 저는 기본적인 비츠 암호계를 큐비츠 연산으로 전환하는 로직을 찾아내어 그 쪽으로 흘러들어가는 데이터 스트리밍의 일부를 가로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스템 전체가 방대한 연산을 통해 특정 데이터를 둘러싼 불확정성과 오류를 제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요. 다시 말해..."

"요점만 말해!"


쉴새없이 지껄이는 남자에게 케이먼이 역정을 냈다. 케이먼의 호통소리에 남자는 비로소 흥분을 가라앉힌 듯 했다. 그는 숨을 고르더니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한 단어를 입에 올렸다.


"프락시스(praxis)."


프락시스. 처음 듣는 단어였다. 케이먼 역시 그 의미를 모르는 듯 했다.


"프락시스?”

"그건 저도 모릅니다. 교차 암호계를 분석하던 중 놈들이 들이닥쳤으니까요. 그리고 그 이후에는... 케이먼씨도 잘 아시겠지요."

"나는 아직도 왜 놈들이 본보기로 자네의 목을 매달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놓지 않았는지 궁금하군. 만약 그래만 주었다면 지금의 내 기분이 이 정도로 불쾌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마냥 화내실 일만은 아닙니다, 케이먼씨. 의외로 해답은 꽤나 가까운 곳에 있을 듯 합니다."


케이먼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가능한 모든 가능성을 검토했고 조사했어. 지금 와서 프락시스라는 이름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나?"

"모든 가능성은 아니지요. 저희는 그 때 방대한 데이터중 사원 자체와 관련이 있을거라고 저희가 지레짐작한 일부분만을 검토했고, 아시다시피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했지요. 사실 그 작업도 그나마 회장 쪽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수박 겉햝기 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하지만 지금은 최소한 그 대상과 범위가 비교적 명확해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만약 제 추측이 맞다면, 다시 한 번 강조드립니다만, 그것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분명히 있어요."


붉은 머리의 남자는 이를 드러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칸과 조나단, 그놈들이 쫓고 있는 것이 미치광이의 허상이 아니라면, 결국 승리는 저희의 것이 될겁니다. 케이먼씨."


데커드는 혼란스러웠다. 그들의 대화에서 미루어보건데 케이먼과 의문의 붉은 머리 남자가 제이콥의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제이콥을 죽인 것이 그들의 소행일까? 그들과 조나단 사일러스 사이의 수상쩍은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조나단의 뒤에 숨어있는 '칸‘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은 또 누구인가? 라이언 회장 역시 이 일에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그들이 말하는 ’사원‘과 ’프락시스‘는 또 무엇인가?

점점 머리가 아파왔다. 어둠 속에 숨어 데커드는 생각을 고르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그는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갔던 홀로비전 서커스의 기억을 떠올렸다. 빛과 어둠이 섞여 만들어낸 온갖 기기묘묘한 형상들이 번쩍이며 데커드를 둘러쌌다. 곧 우스꽝스러운 광대와 서커스 동물들의 모습이 찢어지는 듯한 웃음 소리를 내며 점점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빛을 견딜 수 없었던 데커드는 애써 어둠을 바라보려 애썼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하나의 희미한 형상이 서서히 다가왔다. 곧 단정하게 빗어올린 금발 머리 청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제이콥 사일러스. 데커드가 청년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려는 순간…….

데커드는 둔탁한 파열음에 놀라 눈을 떴다. 그의 발치에는 홀로패드가 떨어져 있었다. 무의식중에 안주머니에 권총과 함께 넣어두었던 홀로패드를 떨어뜨린 것이다. 데커드는 재빨리 떨어진 홀로패드를 주워들었다. 그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장 전체에 울려퍼졌다.


“쥐새끼가 숨어 있었군!”


케이먼이 소리쳤다. 즉시 무장한 남자들이 케이먼을 둘러쌌다.


“드론이건, 사람이건 간에 샅샅이 수색해서 조금이라도 수상한 구석이 있으면 즉각 처리해!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


케이먼은 큰 소리로 지시를 내리고는 붉은 머리의 남자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케이먼의 지시를 받은 남자들이 라이플을 앞세우고 곧바로 데커드가 숨어있는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난감한 일이었다. 데커드는 품 안에 손을 집어넣어 권총 손잡이에 손가락을 감았다. 최악의 상황을 예상한 그가 로봇팔 뒤에 은폐한 채, 상대방의 대략적인 위치를 가늠하고 있을 때였다.

작은 원통형의 물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데커드가 숨어있는 로봇팔쪽으로 날아왔다. 데커드가 몸을 숙이는 순간 그 조그만 물체에서 눈부신 플라즈마가 순간적으로 데커드가 숨어있는 방향을 향해 직선형으로 뿜어져 나왔다. 플라즈마의 섬광을 본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기계를 등지고 바짝 엎드렸다. 곧이어 쇠가 서서히 일그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거대한 로봇팔이 무너지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때렸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데커드는 재빨리 로봇팔 잔해의 그림자를 따라 바로 옆의 가이드레일 기둥 뒤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는 몸을 잔뜩 웅크려 자욱한 먼지와 그림자 속에 다시 몸을 숨겼다. 그의 등 뒤로 말소리가 들려왔다.


“봤지? 아무것도 없다니까? 지나가던 쥐새끼가 뭘 잘못 건드려서 생긴 소리일거라고. 항상 그렇듯이 케이먼씨는 이런쪽에 너무 예민하게 군다니까.”

“너 지금 쥐 한 마리 때문에 여기를 이 꼴로 만들어 놓은 거야?”

“케이먼씨는 이렇게라도 해놓지 않으면 우리 얘기를 믿지 않을걸? 어차피 밀무역자 놈들도 곧 떠날테고, 어차피 낡아빠진 고철덩어리일 뿐인데 뭐.”

“그냥 네가 스트레스도 풀 겸 해서 한 번 쏴보고 싶었다고 말하지 그래? 아무튼 귀찮게 여기저기 뒤적거리지는 않아도 되니 다행이지 뭐.”


데커드는 남자들이 공장을 모두 빠져나간 뒤에야 웅크린 몸을 폈다. 그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숨어있었던 기계팔을 할퀴고 지나간 흔적을 유심히 눈여겨보았다. 플라즈마가 스쳐지나간 곳은 마치 메스로 도려낸 듯 깨끗이 파여 있었다. 문득 한참동안 그 상처를 눈여겨보던 데커드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데커드는 처음에 그것이 땅에 착지하지 못하고 공기를 떠도는 먼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데커드는 곧 그 물체가 데커드의 눈 앞에서 희미한 빛을 발하며 인위적인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의문의 물체가 데커드의 눈앞에서 힘을 잃고 땅에 떨어졌을 때, 데커드는 오늘 밤 은밀한 모임의 불청객이 오직 자신 혼자만은 아닐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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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도시 외곽. 킹 크랩. +2 14.01.12 338 7 20쪽
7 도시 하층부 홍등가. 여관 골고다. +2 14.01.05 380 10 14쪽
6 연방 보안국. 나흘 후. (2) 14.01.05 268 11 18쪽
5 연방 보안국. 나흘 후. +2 13.12.31 351 11 14쪽
4 UPX 사옥. 113층. (2) 13.12.31 330 9 10쪽
3 UPX 사옥. 113층. 13.12.30 376 11 8쪽
2 UPX 사옥. 로비. 13.12.30 620 9 9쪽
1 프롤로그. 13.12.30 685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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