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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샌드 님의 서재입니다.

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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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샌드
작품등록일 :
2013.12.30 22:07
최근연재일 :
2014.10.27 01:03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16,169
추천수 :
262
글자수 :
229,460

작성
13.12.30 22:13
조회
620
추천
9
글자
9쪽

UPX 사옥. 로비.

DUMMY

스캐너 드론이 다가오자 보안국 요원 랜스 데커드는 몸을 돌려 잠시 비켜서야 했다. 드론은 3차원 광학 스캐너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치 유리조각처럼 깨어진 채 붉은 혈흔에 잠식당한 대리석과 자잘하게 부서진 검은 조각들, 그리고 그 만큼 처참하게 부서졌을 남자의 주위를 선회했다.


“목격자 몇 명과 이야기를 해 봤는데 폭발음이 들린 후 먼저 저 파편들이 떨어지고 나서 남자가 떨어졌다는군요. 파편에 맞은 사람들도 있는데 다행이 조각들이 다 작고 또 빗맞아서 그런지 가볍게 긁히는 정도로 끝났답니다. 오늘 같이 관광객들이 많은 날에 이 정도인게 다행이죠. 만약 누군가 크게 다치기라도 했다면 더 골치 아파졌을 텐데요.”


드론을 가져온 수사관의 말에 데커드는 고개를 들어 그들의 머리 위로 까마득히 솟은 원추형의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원추의 중심이 회전하며 응시자를 빨아드리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에 그는 곧 시선을 거두었다.


“까마득하군.”

“113층이랍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봐도 어지러운데 그렇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니. 간도 크지.”

“다른 건 몰라도 제 목숨 버리는건 확실하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다시 시신을 바라보았다. 눈 앞의 남자가 입은 허름한 갈색 가죽 자켓과 빛바랜 청바지, 그리고 낡고 헤진 구두는 주변의 풍경과 너무나도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완전히 짓이겨져 바닥에 늘러 붙어 있었고 튀어오른 피가 짧은 금발 머리를 적시고 있었다.


“데커드 씨?”


그의 눈앞에 매끈한 몸매가 확연히 드러나는 정장 차림의 동양계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의 왼쪽 가슴에는 UPX사의 뱃지가 푸르스름한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데커드를 응시하면서도 주위의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을 것 같은 날카로운 눈이 그녀의 검은 단발머리 밑에서 빛나며 이를 희석시키고 있었다.


“제 이름을 알려드린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 건물에 들어오신 이상 요원님의 이름을 제가 모를 수는 없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웨이 린입니다. UPX의 보안 부책임자지요. 데커드씨께서 수사에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모두 제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사내에서는 누구도 제가 드릴 수 있는 것 이상의 정보를 드릴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해주십시오.”

“부책임자?”

“보안 총 책임자이신 파벨씨는 며칠 전부터 병가를 낸 상태입니다. 파벨씨가 부재하지만 수사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누구도 제가 드릴 수 있는 것 이상의 정보를 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폴리스라인 주위에서 북적이던 사람들이 어느새 거의 흥미를 잃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주위는 한결 한산했다. 검은 제복을 입은 UPX의 사설 경비대원들만이 지나치게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과 흥밋거리를 찾아 몰려든 기자들을 제지하고 있었다. 드론을 조작하던 수사관은 어느새 동료들과 합류하기 위해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데커드는 문득 그 넓은 공간에 홀로 남겨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곳 직원은 아닌 것 같소만. 어디서 온 친구인지 짐작 가는 데라도 없습니까?”

“전혀요. 벌써 신원이 밝혀진 건가요?”

“개인적인 추측일 뿐입니다. 사실 이 건물 직원 중에 이런 복장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해서 말이죠.”

“직원이나 비즈니스 방문자, 관광객이 아니고라도 이곳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드나듭니다. 하루에도 부랑자, 건달, 선교사, NGO 활동가, 혹은 자신들이 대단한 존재라 생각하는 망상가들... 셀 수도 없죠. 대부분은 입구에서 제지당합니다만 그 들 중 몇몇이 요행이 건물 안 까지 들어온다 해도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그들 중에서 단 한 명도 저 높이까지 올라가 본 사람은 없었겠지요. 이 건물의 보안 수준에 대해서는 저도 익히 들어온 바가 있습니다. 경비원만 해도 한 개 연대 병력은 족히 된다고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건물 전체가 거대한 센서라고 하더군요. 당신 같은 사람들은 이 건물에 출입하는 사람이 누가 되었건 간에 바로 신원을 알 수 있다고 하던데 사실 오늘 아침 까지만 해도 그다지 믿지 않았었지요.”


데커드는 직원들이 드나드는 보안 게이트와 그 옆을 지키고 있는 경비대원들을 슬쩍 쳐다보며 넌지시 말했다.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경비원 수는 과장된 것 같군요. 또한 저희는 어디까지나 보안을 위해 제한적인 수준에서 보안국과 자치 정부의 인적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가지는 것 뿐입니다. 사업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위험 인물이나 망상가들은 걸러내야 하니까요. 물론 저희의 보안 시스템은 완벽합니다. 이 건물의 보안 시스템은 건물 내의 모든 센서로부터 수집된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자동적으로 보안 업무를 수행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3차원 영상뿐만 아니라 소리, 진동, 대기 조성, 전자장 변화 등의 모든 요소들이 고려되지요.”

“놀랍군요. 여러 가지로.”


데커드가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아닌 시신을 주시하자 그 뜻을 눈치 챈 린은 억지로 심술궂은 미소를 지었다.


“저, 여기 좀 도와 주셔야 겠는데요.”


한 수사관이 머리를 긁적이며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보안국 수사관 대여섯과 경비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종 장비를 손에 든 수사관들이 굳게 닫힌 승강기 문 앞에 버티고 선 두 명의 경비대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상층에 올라가려면 담당자 허가가 있어야 한다지 뭡니까. 보안국에서 나왔다고 해도 저 치들이 워낙 완고해서...”


데커드는 팔짱을 낀 채 수사관들을 막고 서 있는 경비대원들과 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의 말이 사실입니까? 그 쪽에서 저희의 수사를 방해한다는 것이...”

“그럴리가요. 다만 만사에 철저를 기하려는 것 뿐입니다. 업무에 지장을 주거나 쓸데없는 잡음을 만들어서는 안 되니까요. 파커, 113층 C구역 보안 인가를 임시 해제했으니 일단 여기 보안국 분들 올라 가시면 당신도 몇 명 데리고 같이 올라와요. 데커드씨. 불편을 끼쳤군요.”


어련 하시겠어. UPX같은 기업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보안국 수사관들을 대했다. 그들은 회사와 연관된 문제에 대해 공권력이 개입하는 것을 싫어했다. 오늘같이 떠들썩한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보안국 요원들은 그저 몇 자의 보도 자료만 떠안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점이야 이해합니다만... 불필요한 잡음을 원하지 않은 건 저희들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누가 되었건 간에 사람이 죽었으니 말이오. 신고를 받은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아직까지 상층에 발도 못 들여놓지 않았습니까.”

“UPX는 항상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보안국 수사에 협조할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께서 몇 가지 점은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우선 사건 현장 주변이 아닌 다른 곳에 접근하는 행위는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괜히 관계없는 곳을 기웃거리실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요. 또한 혹여라도 상층 내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경우 저와 UPX 경비대의 통제를 받아주셔야 합니다. 화장실이나 흡연실에 가고 싶으실 때는 여기 있는 경비대분들께 말씀하시면 직접 안내해 드릴겁니다. 마지막으로 사건 현장을 제외한 다른 곳의 사진을 찍거나 스캐닝을 하는 경우 사내 보안 규정 침해로 제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십시오. 보안국 분들이니 이런 일의 중요성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분 말 들었지? 괜히 쓸데없는 말썽 일으키지 말고 얼른 할 일이나 하자고.”


망할 년. 누가 수사를 하러 온 건지 직접 상기시켜 줘야 하는 건가. 감정을 억누르며 데커드가 한 번 더 힐끗 불운한 사망자를 바라보는 사이 린은 수사관들을 지나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경비대원들이 물러서자 그녀는 승강기 문 앞 바닥의 반원형 구역에 섰다. ‘6급 보안 접근 인가’라는 녹색 글자가 투사되면서 승강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데커드는 린의 옆으로 다가가 나지막히 속삭였다.


“따르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유쾌하지는 않군요. 여기는 항상 이렇습니까?”

“규정입니다.”

“모든 곳에서 이렇게 빡빡하게 굽니까?”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113층은 전체가 1급 보안 구역입니다.”


그 때 승강기의 문이 열렸다.


“올라가시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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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연방 보안국. 이틀 후. 14.01.26 244 4 20쪽
9 도시 외곽. 킹 크랩. (2) +1 14.01.19 235 6 17쪽
8 도시 외곽. 킹 크랩. +2 14.01.12 338 7 20쪽
7 도시 하층부 홍등가. 여관 골고다. +2 14.01.05 380 10 14쪽
6 연방 보안국. 나흘 후. (2) 14.01.05 268 11 18쪽
5 연방 보안국. 나흘 후. +2 13.12.31 351 11 14쪽
4 UPX 사옥. 113층. (2) 13.12.31 330 9 10쪽
3 UPX 사옥. 113층. 13.12.30 376 11 8쪽
» UPX 사옥. 로비. 13.12.30 621 9 9쪽
1 프롤로그. 13.12.30 685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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