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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샌드 님의 서재입니다.

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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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샌드
작품등록일 :
2013.12.30 22:07
최근연재일 :
2014.10.2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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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9,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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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12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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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도시 외곽. 킹 크랩.

DUMMY

인류가 지구를 벗어나 내행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지 채 십년도 되지 않아, 정부와 거대 기업의 손이 미치지 않는 지하경제 영역의 종사자들 역시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매춘의 뒤를 이어 등장한 행성간 밀무역은 연방 및 행정 자치 정부의 엄격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특히 소비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외곽 식민 행성을 중심으로 하여 지금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초기에는 정착 단계의 식민지와 지구를 잇는 왕복선을 이용, 몇몇 개인들이 가족, 친척, 친구들의 부탁을 받아 여행 가방 몇 개 정도 분량의 생필품을 몰래 가져가는 식의 소박한 밀매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민간 우주선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행성 단위의 밀무역 규모는 놀라울 정도로 확대되었다. 중소형의 개인 우주선을 이용한 소규모 밀무역부터, 다수의 ‘투자’를 받아 퇴역한 대형 항성간 화물선이나 채굴선을 구매, 개조하여 이용하는 준 기업 수준의 밀무역까지 그 규모는 엄청나게 다양했다. 밀매되는 물품 역시 식재료나 가공 식품, 약품과 같은 생필품에서부터, 최신형 양자 컴퓨터나 홀로패드와 같은 전자 제품, 주류나 마약류, 심지어는 소행성이나 식민 행성에서 채굴된 수 만 톤 단위의 광물 원석까지 다양했다. 초기에 연방 정부와 거대 기업들은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함을 내세워 밀무역자들을 최악의 사회악으로 규정했으며, 엄청난 인력과 자원을 투입, 밀무역을 근절하고자 했다. 중무장한 행성 출입 관리국의 초계함과 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기업 소유 '사략선'들이 밀무역선을 공격, 수 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밀무역은 도무지 근절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실 애초부터 탤론 프라임과 같이 경제적으로 궁핍한 외곽 식민 행성들은 밀무역자 단속에 별다른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행성의 관료들 스스로 밀무역자들이 사라지면 몇몇 행성은 수 년 만에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로 돌아가고 말 것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입에 올리곤 했다. 실제로 외곽 행성의 대다수 거주민들에게 밀무역자들은 자신들의 거친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필요악이었다. 시민들은 정부의 묵인 하에 자발적으로 밀무역 조직을 만들었고, 행성의 중소 무역업자나 광산업자들은 그들의 퇴역한 우주선들을 이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주었다. 이러한 상황이 한 세기 가까이 지속되면서, 지구의 관료들 역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관료들은 적당한 '보수'를 받고 도시의 불빛 바로 아래에서 일어나는 밀무역 행위를 눈감아 주었으며, 이들 중에는 심지어 밀무역자들과 적극적으로 결탁하여 돈벌이에 나서는 자들도 있었다.

물론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밀무역은 여전히 위험한 일이었다. 정부와 기업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밀무역 행위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철퇴를 내리고는 했다. 게다가 밀무역자들 사이의 이권다툼 역시 왕왕 벌어졌다. 이에 일부 밀무역자들은 일종의 준 군사집단화 하였고,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데커드는 가까운 곳에 밀무역자들이 모여드는 속칭 <킹 크랩>이라는 장소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킹 크랩>은 중앙 관제 시설을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는 도크의 흔적들이 마치 거대한 게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도시의 불빛이 지평선 너머로 아스라이 보이는 황무지 위에 자리한 이 시설은 본래는 UPX의 대형 우주선 전용 건조 도크였다. 누구라도 알만한 인류 역사의 기념비적인 함선들을 낳았던 이 장소는, 그러나, 대형 우주선의 건조가 궤도상에 위치한 스페이스 도크에서 이루어지면서 급격히 외면받기 시작했다. UPX가 헐값에 내놓은 시설과 부지를 영세한 소형 우주선 제작사들이 사들였으나, 그들 역시 곧 더 이상은 비효율적인 지상 건조 설비를 유지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떠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 영광의 흔적을 눈 씻고 찾을 래야 찾아볼 수 없는 이 붉은 강철의 도시로 노숙자들과 시시한 범죄자들, 그리고 도시가 내뱉는 부의 조각을 몰래 탐하려는 밀무역자들이 몰려들었다. 한 때 거대한 개척선들이 우주로의 첫 여정을 시작하던 발사대 터는 밀무역선들의 착륙장이 되었고, 수많은 공장 내부와 사이의 골목에는 그네들만의 작은 도시가 들어섰다.


<킹 크랩>의 중심가, 통제탑 꼭대기에 차려진 허름한 바의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데커드는 한 손으로 무심한 듯 홀로패드를 조작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싸구려 조명과 매캐한 담배 연기, 고막을 찢을듯한 음악 소리는 술 취한 부랑아들과 범법자들의 고함소리와 합쳐져 세기말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혼돈 속에서도 데커드의 눈빛은 가끔씩 어딘가를 향해 날카롭게 꽂히고 있었다.

그의 눈길이 향하는 곳에는 한 건장한 체격의 흑인 남자가 있었다. 그는 홀로 앉아 흰색 병에 담긴 싸구려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진 병의 개수를 보건대, 이미 남자는 꽤 많은 술을 마신 듯 했다. 데커드는 그가 술병을 기울일 때마다 슬쩍 비치는 오른쪽 얼굴의 화상 자국을 유심히 눈여겨 보고, 그가 여관에서 제이콥 사일러스를 마지막으로 만난 두 남자 중 한 명임을 확신했다. 데커드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마치 오래된 친구인양 자연스럽게 그의 앞에 다가가 앉았다. 남자는 어느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혼자 너무 많이 마시는 것 아니오?”


고개를 푹 숙인채 남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신 친구에게 좀 안 좋은 일이 생겼소. 제이콥 사일러스 말이오.”


제이콥이라는 단어에 남자는 고개를 들어 데커드를 노려보았다. 얼굴 한쪽을 완전히 뒤덮은 곪아버린 화상 자국이 붉은 조명에 비치며 그의 모습을 한 층 더 괴기스럽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제이콥… 아주 잠깐 그 때문에 온 도시가 시끄러웠던 기억이 나는군. 그런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당신이 제이콥을 마지막으로 만났었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가…”


순간 남자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당신 뭐야? 경찰 끄나풀이라도 되는거야?”

“그런게 아니오. 난 그저 제이콥에 대해…”

“더 할 말은 없어.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오.”


남자는 술이 조금 남아있는 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데커드는 뒤돌아 걸어 나가려는 그의 팔을 잡았다.


“이봐요, 난 그저…”


그 순간 머리를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데커드는 커다란 충격을 느꼈다. 남자가 술병으로 그의 머리를 가격한 것이다. 데커드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귓가에 메아리 치듯이 웃음과 욕설이 섞인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정신을 차린 데커드의 눈에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흉터 자국의 남자가 서둘러 바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빌어먹을. 그는 몰려드는 구경꾼들을 밀쳐내며 서둘러 남자의 뒤를 쫓으려 했다. 사람들의 기묘한 비웃음과 쑥덕거림을 뒤로 한 채 데커드가 바를 빠져나왔을 때, 남자는 이미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데커드의 주위에는 침침한 가로등 아래 널브러져 있거나 술과 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초라한 행색의 부랑자들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데커드를 힐끗 쳐다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자기들끼리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때, 그는 문득 자신의 콧잔등을 타고 흐르는 온기를 느꼈다. 그제서야 방금 전 남자에게 가격당한 이마의 상처가 쑤셔오기 시작했다. 데커드는 옷소매로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아낸 후,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아무도 없는 뒷골목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약 삼십 여분 후, 데커드는 거대한 직사각형 건물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홀로패드에 투사된 위치 추적 드론의 신호를 쫓아 어둡고 비좁은 골목길을 누비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애초에 밀수업자들에게서 호의적인 태도를 기대하지 않았던 데커드는 바에서 나가려는 남자의 팔을 붙잡을 때 초소형 위치 추적 드론을 그의 옷 소매에 부착시켰다. 5 밀리미터 정도 크기의 곤충 모양 드론은 작은 발톱으로 자신의 동체를 단단히 고정시킨 채, 데커드의 홀로패드로 남자의 3차원 위치 정보를 끊임없이 전송했다. 그리고 홀로패드의 위치 추적 소프트웨어는 이 정보를 토대로 보안국 안전 감시 시스템과 연동, 목적지에 이르는 최단 경로와 주변의 위협 요소들을 도출해냈다. 홀로패드의 신호는 <킹 크랩>의 남서쪽 다리 끝의 버려진 조립 공장 내부를 가리키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어두웠다. 녹슨 크레인 끝에 설치된 어슴푸레한 조명만이 건물의 회색빛 벽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정면의 넓은 뜰에는 패잔병처럼 버려진 기계들과 자재들이 쌓여있었고, 그 사이로 총탄식 총으로 무장한 보초들이 서 있었다. 화약의 힘으로 총알을 발사하는 총탄식 총은 전자기력을 이용해 플라즈마 에너지를 발사하는 펄스식 총에 밀려 이제는 완전히 구식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무기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들을 피해 건물 안으로 용케 들어간들, 이런 상황에서는 화상 자국의 남자를 끝까지 추적한들, 어떠한 유의미한 정보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데커드는 혹시라도 있을 역추적을 막기 위해 드론에 과부하 코드를 전송했다. 다양한 추적 및 탐지 기술이 개발되면서, 더불어 이를 회피하거나 역이용하는 기술 역시 함께 발달했다. 근래에는 사소한 범죄 조직들도 그들의 본거지에 암암리에 신호 분석 및 역추적 장비를 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드론의 신호가 역추적 된다는 것은, 곧 데커드의 신변에 커다란 위협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데커드가 홀로패드 화면으로 드론의 무력화 프로세스를 확인하고 있던 그때였다. 그의 귓가에 어디에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데커드의 눈에 저 멀리 두 남자가 건물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주변이 온통 어두웠기 때문에 데커드는 그들의 검은 실루엣만을 겨우 볼 수 있었다.


“물건은 확인했습니까? 예비 부품 하나까지라도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스티코프가 책임지고 검수 완료했습니다. 종류, 수량 모두 정확합니다.”

“자기장 스캔 결과는 나왔습니까?”

“네. 모든 물품에 대해서 이상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도청장치, 추적장치, 킬스위치 모두 깨끗합니다.”

“수고했습니다. 알다시피 저쪽도 이제 조급해하기 시작했더군요. 이럴 때일수록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선적을 담당하는 형제들에게 다시 한 번 이륙 전 모든 품목에 대한 봉인 상태를 재확인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그자’를 데려올까요?”

“그렇게 해 주십시오. 다만 정중하게 해야 합니다. 아직 우리가 그쪽에 쓸데없는 일로 척을 지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니니까요.”


뜻 모를 대화를 나누며 어느새 그들은 데커드가 숨어있는 곳에서 채 스무 보도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와 있었다. 건물 입구에 설치된 조명이 그들을 비추자, 그들 중 지시를 내리는 남자의 헝클어진 머리와 풍성하게 자란 수염이 드러났다. 데커드는 그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그는 분명 조나단 사일러스가 틀림없었다.

조나단 사일러스. 아들을 잃은 탤론 프라임의 광산 관리인. 그가 이곳에서 무장한 밀무역자들을 이끌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조나단이 지구에 온 것은 단순히 아들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단 말인가. 게다가 방금 전의 대화는 그들이 다루고 있는 물건이 단순히 시시한 생필품이나 마약 따위가 아님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들이 구하는 물건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이 무엇이길래 그들은 이다지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려는 것인가? 스쳐가듯 언급된 ‘그자’는 또 누구란 말인가? 데커드의 머릿속은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은 데커드의 마음속에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추적을 포기하겠다는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데커드는 어느새 눈앞에 버티고 있는 회색빛 벽 너머로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며 보초들의 시선을 피해 건물 외곽을 샅샅이 뒤진 데커드는 건물 외벽의 꼭대기에 위치한 환풍구를 하나 찾아냈다. 환풍구는 데커드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어 보였으며, 게다가 우연찮게 환풍구가 위치한 외벽에서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거대한 절단용 로봇팔이 버려져 있었다. 로봇팔 위로 올라가서 제대로만 뛴다면 충분히 환풍구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었다.

데커드는 로봇팔에 바짝 붙어 서서 환풍구 사이의 길이를 가늠하고 있었다. 그 때, 저 멀리서 희미한 손전등 불빛이 반짝였다. 누군가가 순찰을 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데커드는 깊이 생각할 겨를 없이 재빨리 자신 앞의 거대한 기계 위로 기어올랐다. 불빛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고 있는 자켓의 소매를 손가락으로 꽉 움켜쥐고 손목으로 녹슨 쇳덩어리를 안은 채 몸을 끌어올렸다. 데커드가 로봇팔의 꼭대기에 다다렀을 때 쯤, 어느새 손전등의 불빛은 바로 아래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데커드는 한 팔로 균형을 잡으며, 만약을 대비하여 자켓 안주머니에 숨긴 펄스 권총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다행히 순찰자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거대한 쇳덩어리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데커드는 누가 들을 새라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데커드는 천천히 균형을 잡으며 일어섰다. 로봇팔과 환풍구의 거리는 생각보다 꽤 멀었다. 데커드는 가능한 시선을 아래로 두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한 번 숨을 고른 후,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환풍구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데커드의 몸이 벽에 부딪혔다. 생각보다 큰 충격에 갈 곳을 잃은 데커드의 오른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의 왼손은 환풍구의 프레임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다.


공장 안에는 이미 녹이 슬대로 슬어버린 거대한 기계들이 어둑한 전등 하나에 의지한 채, 그 존재를 데커드에게 알리고 있었다. 한 때는 수십 톤에 달하는 복합재 패널들을 매달았을 거대한 크레인들은 어둠 속에 묻힌 채 마치 도살장의 갈고리와 같은 흉측한 실루엣을 드러냈고, 그 양쪽에 로봇 팔들이 일렬로 늘어서 마치 해체된 갈빗대를 연상시키는 기괴한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데커드는 크레인 기둥의 철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기계들이 만들어내는 어둠 속에 조심스럽게 몸을 숨겼다. 한결같이 총탄식 총기로 무장한 열댓명의 남자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일부는 두셋씩 모여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고, 기둥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데커드는 생산 라인의 끝에 위치한 2층 높이의 통제 콘솔 플랫폼 위에 홀로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조나단 사일러스를 발견했다. 조나단의 시선을 따라가던 데커드의 눈에 두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화상으로 인한 흉터 자국이 선명한 흑인과 부어오른 볼살, 쳐진 눈매의 백인. 그들은 에비게일이 그려준 몽타주의 주인공이었다. 그들은 절박한 표정으로 조나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저희의 잘못을 조금이나마 보상할 수 있다면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니...”


두 남자는 조나단을 향해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사죄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에 응답하여 거의 부복하다시피 한 두 남자의 머리 위로 조나단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누구라도 거부할 수 없었을 짐을 스스로 진 것이 어찌 잘못이라 하겠습니까. 고개를 드십시오. 그 누가 당신들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제이콥의, 제 아들의 죽음을 헛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덮고 있는 어둠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작은 빛을 형제들에게 인도한 것입니다...”


조나단 사일러스의 어조는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그러나 이미 데커드도 경험한 바와 같이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후한 힘이 있었다. 공장 내의 모든 사람들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조나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저 도시의 사람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비록 세상이 그의 죽음을 순식간에 잊어버린다 해도, 우리는 그의 신념과 의지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을 바꾸겠지요. 제이콥은 광야에 종을 울린 첫 선지자가 될 것입니다. 당신들은 그 여정의 짐을 함께 나누어 졌던 것입니다.”


두 남자의 눈은 어느새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몸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서 당신들이 여기서 본 것, 들은 것을 기억하고, 알리십시오. 그것으로 형제들의 사명을 다 하십시오. 우리는 지금 한 명, 한 명의 형제가 모두 필요합니다. 그러니 어깨를 펴고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시오. 형제들이 그대들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놀라움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조나단은 좌중을 바라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 남자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외에 내게 더 말해야 할 것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해주십시오.”


흉터 자국의 남자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는 저의 부주의로 형제들을 위험에 빠뜨릴 뻔 했습니다. 방금 전 중심가에 있을 때 한 사람이 아드님의 이름을 언급하며 접근했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보안국의 끄나풀 같아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신중을 기했으나 그 자가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를 어떻게 했습니까?”

“다행히 그를 따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크랩의 복잡한 길을 골라 우회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혹시 몰라 신호 분석 스캐너로 추적 장치가 있는지 확인했으나 다행히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잘 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목격자가 있었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보안국은 우리의 일에 별다른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항상 우리 안에 갖혀 똑같은 장소만을 멤도는 늙은 호랑이와 같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항상 만사에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만 명심하면 됩니다.”

“항상 명심하겠습니다.”


그 때였다. 공장의 벽을 뚫고 저 멀리서 희미한 우주선 엔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러자 공장의 모든 남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게 한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라인의 뒤편에 위치한 문이 열리면서 다양한 종류의 화기로 무장한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들어와 합류했다. 곧 족히 스무 명은 되어 보이는 완전 무장한 남자들이 라인의 끝 부분, 높이 솟은 철제 문을 바라보며 열을 맞추었다. 열이 완성되자 조나단 사일러스는 그가 서있던 플랫폼에서 내려왔다. 그는 열의 맨 앞에 서서 반쯤 열린 철제 문 너머를 고요히 응시했다. 그 와중에도 엔진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마침내 우주선이 부드러운 파열음을 내며 착륙했다. 곧이어 딱딱한 발소리와 함께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반쯤 열린 문 너머에서 열을 지어 나타났다. 그들의 모습을 본 데커드는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남자들은 한 결 같이 말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으며, 그들의 손에는 온갖 부착물이 장착된 최신식의 펄스 라이플이 들려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곧 대오의 앞으로 한 남자가 걸어 나왔을 때, 데커드는 의외의 인물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UPX의 이사. 앤드류 케이먼이 그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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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연방 보안국. 이틀 후. 14.01.26 244 4 20쪽
9 도시 외곽. 킹 크랩. (2) +1 14.01.19 234 6 17쪽
» 도시 외곽. 킹 크랩. +2 14.01.12 338 7 20쪽
7 도시 하층부 홍등가. 여관 골고다. +2 14.01.05 380 10 14쪽
6 연방 보안국. 나흘 후. (2) 14.01.05 268 11 18쪽
5 연방 보안국. 나흘 후. +2 13.12.31 351 11 14쪽
4 UPX 사옥. 113층. (2) 13.12.31 330 9 10쪽
3 UPX 사옥. 113층. 13.12.30 376 11 8쪽
2 UPX 사옥. 로비. 13.12.30 620 9 9쪽
1 프롤로그. 13.12.30 684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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