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天符經 바로알기- 1.천부경(天符經)은 어디서 왔나?
천부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부경이 어떠한 내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따라서 본 장은 외세에 의해 왜곡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천부경이 우리민족에게 어떠한 존재였는지 그 의미를 짚어봤다.
우리민족을 흔히 배달의 민족이라거나 한민족이라는 말로 설명을 한다.
또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는 자긍심도 갖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선 우리의 역사가 고구려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이전은 모두 신화라 가르치고 있다.
신화는 그저 동화 속 이야기지 역사가 될 수 없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나라 이름을 지으면서 새로운 국호는 옛 조선(朝鮮)을 잇는 것이라 했고, 고종은 대한제국을 건국하며 이는 한(三韓=고조선)을 잇는 것이라 하였다.
옛 임금들이 국호를 지으며 그렇게 닮고 싶어했던 조선은 무엇이고 한(韓)은 또 무엇인가? (조선의 단군들은 영토를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우리의 역사를 고구려로 시원을 삼는다면 기껏해야 2,000년의 역사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반만년의 역사를 운운하며 또한 배달의 민족은 뭐고 한민족은 또 뭐란 말인가!
이렇게 우리 역사는 이율배반적이고 모순투성이다.
지난 2천여 년 동안 우리민족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에 의해 철저히 말살되고 왜곡되어 왔다.
춘추전국시대까지만 해도 중국의 유생들은 우리민족을 동방의 예의지국(동국)이라 칭하며 신선처럼 사는 민족으로 경외해 왔다.
그러나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의 폭정으로 백성이 도탄에 빠지자 유생들이 한결같이 동국의 예를들며 상소를 올리자 화가 난 시황제는 전국의 유생들을 묻어 죽이고 동국과 관련된 문헌들을 모두 불태우며 소장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벌에 처한다는 칙령을 내렸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분서갱유(焚書坑儒)다.
중국의 전국시대는 고조선 말기에 해당한다.
우리민족은 세계 최초의 국가인 환국의 지위리환인으로부터 천부인을 물려받은 거발환환웅이 백두산에 신시를 열고 배달국을 건국한 후 단군왕검의 고조선까지 이미 3,000년 동안 동북아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인해 중국에서 우리의 역사서가 말살된데 이어 한나라 때 사마천은 사기(史記)를 저술하며, 중국의 시조인 헌원이 배달국 14대 환웅인 치우천황에게 탁록에서 철저히 패하고 속국이 된 치부를 가리고자 역사를 왜곡시키며 우리민족에게 제2의 분서갱유를 단행했던 것이다.
중국이야 넘의 나라라 그렇다치고, 조선시대 세조는 유교사상에 입각해 우리의 상고사가 대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각도 관찰사에게 민간에서 소장하고 있는 모든 상고사의 기록을 압수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명을 내렸다.
책을 숨기는 자를 사형에 처하며 우리 상고사를 우리 손으로 말살해 버렸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우리의 고대사는 중국에 의해, 또한 우리 손으로 지난 2,000년 동안 철저히 말살 왜곡되어져 왔으며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이마니시 류를 비롯한 일본 사학자들에 의해 우리의 고대사가 또다시 수난을 겪으며 고조선의 역사를 신화로 변질시켜 놓았다.
이렇게 우리의 고대사가 외세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어져 왔는데도 해방을 맞이해 7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고대사는 여전히 부정당하고 있다.
외국의 사학자들이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러니하게 국내 식민사관에 젖은 강단사학자들에 의해서 부정당하고 있다.
러시아의 역사학자인 유엠 부찐(1931~2002)은
“동북아 고대사에서 단군조선을 제외하면 아시아 역사는 이해할 수 없다. 그만큼 단군조선은 아시아 고대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한국은 어째서 그처럼 중요한 고대사를 부인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일본이나 중국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 내는데 한국인은 어째서 있는 역사도 없다고 그러는가 도대체 알 수 없는 나라다.” 라며 한탄하였다.
또한 조선의 마지막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는 떠나면서
“우리는 비록 전쟁에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인이 제 정신을 차리고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놨다.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라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가 조선을 떠나기 전 자신있게 총독부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내뱉은 것은 바로 총독부에 설치한 '조선사편수회'라는 조직과 거기서 부역했던 친일파 때문이다.
일제는 3.1운동 이후 민족주의 역사가인 박은식 선생이 중국에서 저술한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조선에 유입되자 당황했다.
그래서 서둘러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식민사관을 토대로 한 <조선사>편찬에 열을 올리게 된다.
이 단체에는 천황을 신봉하는 일본인 어용학자를 중심으로 친일 소장 한국인 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이들이 저술한 <조선사>의 요체는 조선의 역사는 식민지 혹은 외세의 압제에서 시작했다고 강조하면서, 일본의 조선 지배는 고대사회에서 일약 근대사회로 도약시켰다고 조작한 것이다.
<조선사> 편찬에 앞장선 한·일 학자들은 '한국사는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에서 출발했다.'는 침략논리를 세우고 역사서 조작을 통해 한국사의 주체성을 부정했다.
이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분야가 고대사다.
한국사의 뿌리를 말살하기 위해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중국 식민정권인 한사군이 한국을 발전시켰다는 논리를 세웠다.
식민사학을 분석한 이주한 씨는 그의 저서에서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며 이렇게 강변했다.
"식민사관의 가장 큰 폐해는 진실을 훼손해 국민들에게 열등감을 주입하고, 비주체적인 삶을 내면화한다는데 있다. 민족에게 노예의식을 심는데 식민사관 만큼 효과적인 수단도 없다. 이것이 역사학자가 아니었던 단재 신채호, 위당 정인보, 석주 이상룡 등이 무장투쟁을 하면서도 역사연구에 매진한 이유이다."
이렇게 우리의 고대사는 아베 노부유키의 저주처럼 7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가 거짓된 역사의 미몽에서 깨어나 세계 최고(最古) 문명의 주인공인 한민족의 잃어버린 시원역사와 영성문화를 되찾아야 할 때다.
다행히 오늘날 의식있는 재야 사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왜곡되었던 한국고대사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이마니시 류에 의해 왜곡된 고조선 역사에 불과하다.
아직도 중국에 의해 왜곡 말살된 배달의 역사에는 침묵하고 있다.
그 논리가 되고 있는 것이 실증사학이다.
실증사학이란 그 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어야만 역사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하량 등에서 발견되는 홍산문화가 배달국 시대의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우리의 역사도 고조선 이전 만주와 중국 본토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던 배달국을 그 기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국조도 단군왕검에서 배달을 건국한 거발환환웅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천부경(天符經)인 것이다.
인류의 황금시대를 연 환국은 BCE 9,000년 전에 중앙아시아의 천산을 중심으로 환족이 세운 세계최초의 국가다.
환국의 영토는 중앙아시아에서 시베리아, 만주에 이를 만큼 방대했으며, 초대 통치자 안파견(安巴堅)환인 이후 지위리(智爲利)환인까지 3,301년 동안 7명의 환인이 다스렸던 무병장수의 시대였다.
환국시대 사람들이 무병장수하며 신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천지광명의 심법인 신교(神敎)의 가르침에 따라 영적 승화를 통해 조화신성(造化神性)을 이뤘기 때문이다.
환인들의 평균 재위 기간이 470년이었으니 실제수명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들은 하늘, 땅, 대자연과 소통하고 마음까지 훤히 들여다보았으며, 몸과 영혼이 대자연과 하나 되어 아무 근심 없이 무병장수했던 것이다.
환국을 이은 배달국은 BCE 3,897년 거발환환웅이 무리 3,000명을 이끌고 백두산 마루에 신시(神市)를 연 이후 18세 거불단환웅까지 1,565년간 동북아를 지배했던 대제국이었다.
천부경은 환국(桓國) 이래 구전으로 전승되던 것을 배달국을 세운 거발환환웅께서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해 녹도문(鹿圖文)으로 전고비(篆古碑)에 새겨놓은 것을 신라 최치원이 풀이해 다시 묘향산에 전서로 각(刻)을 해 놓았다.
이 경문이 1916년 약초를 캐던 도인 계연수에게 발견돼 오늘날 전해지게된 것이다.
신지(神誌)는 왕명을 주관하는 관명으로서 혁덕은 왕명을 출납하고 환웅을 보좌하고 있었다.
신지 혁덕은 거발환환웅의 명에 따라 녹도문자를 만들었으니 이는 세계 최초의 문자다.
또한 신지 혁덕은 녹도문자로 천부경과 삼일신고 두 경전을 기록하였던 것이다.
인간을 흔히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엔 영(靈)이 존재하지만 진화를 통해 영적인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므로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이 인간은 원래 영적인 존재인데 문명이 발달되면서 물질의 노예가 되어 영성(靈性)을 잃어버린 것이다.
천부경은 현존 최고(最古)의 경전으로 인류 최초의 원형문화인 영성문화(靈性文化)이며 인류 최초의 시원종교인 신교(神敎)의 근원이다.
81자로 무척 짧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그 어떤 경전보다도 깊고 심오하다.
환국 배달 고조선으로 이어지는 삼성조시대 이래 우리민족은 천부경(天符經)을 통해 도(道)를 이루고 귀천(歸天)하였던 것이다.
서양의 고대 문명 연구가들은 인류 초기의 역사를 ‘황금시대’라 부른다.
독일의 칼 바이트(H. Kalweit)는 그의 저서에서 ‘먼 옛날은 인간이 행복과 평화 속에 살면서 초자연적인 힘을 쓰던 황금시대로 그때 사람들은 별 어려움 없이 신과 소통할 수 있었고, 죽음을 모르고 질병과 고통 없는 자유로운 경지에서 살았다.’고 했다.
이 시대는 역사학에서 말하는 신석기시대에 해당한다.
신석기시대는 대체로 BCE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어 청동기의 등장과 함께 끝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석기시대에는 농업과 목축이 시작되었고 토기를 제작해 사용하였으며, 생산 도구와 무기로 마제석기가 사용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한반도와 만주의 신석기시대가 황하유역보다 앞서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황하유역의 신석기유적인 배리강(裵李崗) 유적과 자산(磁山) 문화유적이 BCE 6,000년인데 반해 한반도에서는 강원도 양양의 오산리(鰲山里) 유적이 BCE 10,000년, 고성 문암리 유적은 BCE 10,000~BCE 6,000년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금의 요서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BCE 4,700~BCE 2,900년 시기의 홍산문화 유적에서는 다양한 옥기 부장품과 함께 청동기가 대거 출토되어 고고학계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옥룡, 옥봉, 옥벽을 비롯하여 옥패, 옥팔찌, 옥귀고리 같은 장식품은 말할 것도 없고, 권위의 상징인 옥으로 된 인장(印章)도 출토되었다.
인장은 정치 지도자가 직권을 행사하는 상징물이다.
따라서 단군조선 이전에 이 지역을 다스렸던 배달시대에 이미 한민족은 국가조직을 갖추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증거이다. (박선희, 홍산문화 유물에 보이는 인장의 기원과 고조선문화)
- 작가의말
슬픈 우리의 역사에 애도를 표합니다.
우리 상고사는 진시황과 세조에 의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상고사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사학자들이여!
우리 5천년 역사를 4천년 역사밖에 안되는 중국에서 찾지 마세요.
이제 러시아밖에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고 잘해봐야 2~3천년 역사에, 왜곡으로 일관하는 일본은 그냥 무시하세요.
러시아엔 아직 배달 고조선의 역사가 원시 그대로 잠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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