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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거님의 서재입니다.

프랑스에서 1호가 될 순 없어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스페란자
작품등록일 :
2023.05.10 10:30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4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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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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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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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3화. 빈사의 사자상

DUMMY

어느덧 시몽이 흔드는 종소리에 잠에서 깨 탁자에 앉아 여유롭게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는 게 습관이 되었다.


“시몽.”

“예, 폐하.”

“오늘이 빈으로 가는 날이지?”

“그렇습니다. 빈으로부터 방문을 환영한다는 답신이 도착했습니다. 폐하.”

“후..”


21세기에도 처가를 내 집처럼 들락거리는 사위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18세기에 무려 왕인 내가 처가라며 직접 외국에 가는 건 매우 희귀한 일이었다


‘왕이 곧 국가라는 말이 있는 시대였으니까..’


자칫 외국에서, 혹은 외국으로 가는 길에 왕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라 전체가 대혼란에 빠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데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물며 미국에 전쟁 물자를 팔아먹으려고 해도 그 전쟁 물자를 만들 자본은 필요하니까.’


재정 여건만 되면 21세기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내가 프랑스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한하다고 말할 만큼 많았다.

그리고 그게 앞으로 벌어질 온갖 폭풍우에서 나와 왕비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가 될 것이 분명했다.


“시몽, 내가 따로 지시한 건 준비됐어?

“예, 폐하. 마차가 궁전을 떠나면 자연스레 시민들에게 퍼질 겁니다.”


나와 그녀가 오스트리아로 간다는 게 알려지면 세간에 또 온갖 악소문이 퍼질 것의 대비였다.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야 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그딴 개소리는 집어치워야지.’


시몽이 프랑스 전역에 퍼트릴 소문의 요지는 왕 내외가 오스트리아로 향하는 이유가 프랑스 재정의 어려움을 알게 된 왕비가 친정인 오스트리아에 가서 돈과 식량을 구하러 가겠다며 왕에게 청했고, 왕비 혼자 보낼 수 없어 내가 같이 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건?”

“우선 군권을 맡은 국경 지역의 각 사령관과 제독에게 폐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에게 전하는 말을 사실 별것 없다.

프랑스는 그대들의 헌신을 기억한다는 한마디. 그리고 거기에 더해 국가에 헌신한 그대들의 노고는 정당한 대가를 받을 것이라는 거였다.


‘자칫 귀족에 대한 징세로 군권을 가진 그들이 딴생각을 하면 위험하니까..’


그리고 내가 시몽에게 지시한 건 하나 더 있었다.


“또 다른 건?”

“코르시카섬의 보나파르트 가에 폐하의 이름으로 만 리브르와 세간의 평이 출중한 가정 교사를 보냈습니다.”


역시 시몽의 깔끔한 일 처리가 마음에 들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에스프레소 한 모금을 들이켜고 내려놨다.


“한데 폐하..”

“왜?”

“폐하께서 어떻게 그 작은 섬에 그런 가문이 있다는 걸 아시고.. 또 왜 돈과 가정 교사를 보내셨는지가 궁금합니다.”

“나중에, 나중에는 시몽도 내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될 거야. 아, 그리고 가정 교사에 그 집 아들이 사관학교에 진학하라고 부추기라고 전해 ”


여전히 시몽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그에게도 알려줄 순 없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전 세계 역사를 뒤져봐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전쟁의 영웅.


‘얘만큼은 독이 들어있는 사과라도 먹어봐야지.’


그리고 거기에 더해 나는 그 독을 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뭐라도 해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자기 가문과 프랑스어를 잘 읽고 잘 쓰지 못하던 변방의 귀족 나폴레옹.

그리고 어쩌면 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 했던 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트라우마를 왕인 내가 벗겨줄 수 있다면.’


어눌한 프랑스어와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주눅 들어 성장한 나폴레옹이 아니라 자존감 있게 성장한 나폴레옹은 어떨까 하는 기대.

그러면 그도 현실과 타협이 가능한 로베스피에르처럼 그가 이순신처럼 전신이자 충신으로 남아 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렇게 나폴레옹이 내 명령에 따라 유럽을 제패하는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고 있을 때, 왕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


다급한 목소리에 이어 내 앞에 나타난 왕비의 표정이 어두웠다.


“무슨 일 있어요?”

“저기 그게.. 어머니께서 저희더러 빈으로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 그게 무슨..”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거 같은 얼굴로 그녀는 내게 그간의 일을 털어놓았다.

내가 시몽을 통해 오스트리아를 방문하려 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빈으로 전했을 때, 왕비는 주프랑스 오스트리아 대사를 통해 그녀의 어머니에게 따로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편지에는 프랑스의 어려운 재정 상황에 도움을 바란다는 내용을 썼다고 한다.

그러자 그 편지를 읽은 그녀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녀에게 오지 말라는 답신을 오스트리아 대사를 통해 다시 보낸 것이었다.


“송구합니다. 폐하. 신첩이 괜한 일을 하여 폐하와 이 나라에 폐를 끼쳤습니다.”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토닥였다.


‘딴에는 자기가 먼저 어머니에게 말을 해 어느 정도 약속을 받으려 했던 거겠지.’


그런 마음씨 고운 왕비의 행동이 안 좋은 결과로 나타난들 그녀를 탓할 수는 없었다.


“괜찮습니다. 왕비.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우리 예정대로 빈으로 갑시다.”

“예? 폐하 어머니께서..”

“안주면 안 받으면 됩니다. 그저 나는 왕비가 나고 자란 그곳이 궁금해서 가는 겁니다.”

“폐하..”

“어때요? 이제 좀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면 나와 밖으로 나들이 간다고 생각하세요,”


그 말에 그녀는 다시 내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나도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이미 방문 목적이 돈이라는 걸 들었으니 엄청 예민하게 나올 테지..’


그래도 돈을 구할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무조건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이미 저쪽에서 나를 사위가 아니라 프랑스의 왕으로 대한다면 이쪽도 그렇게 대해줄 작정이었다.


“시몽.”

“예, 폐하.”

“빈에 다시 전령을 보내. 프랑스가 7년 전쟁 참전 대가인 오스트리아령 저지대(네델란드)를 받으러 간다고.”

“폐하!”

“시민들에 소문낼 내용도 바꿔. 짐이 프랑스 국민이 흘린 피의 대가를 오스트리아에 받으러 간다고 말야.”


당황한 시몽의 얼굴과 깜짝 놀라 울음도 그치고 나를 보는 왕비가 보였으나 이제 내친걸음이었다.


‘저쪽에서 날 사위가 아닌 프랑스의 왕으로 대한다면 나도 그럴 수밖에 없지.’


물론 이는 큰 모험 수였다.

오스트리아에서 아무것도 얻어오지 못하면 시민들에게 나는 무능한 왕으로, 왕비는 은혜도 모르는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로 미움받을 게 뻔했다.


***


마차에 올라 베르사유를 떠난 지 벌써 수일이 흐른 뒤임에도 여전히 빈까지는 꽤 먼 거리가 남아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마차는 달리고 있었으나 해는 뉘엿뉘엿 저물며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마차에서 왕비랑 꽁냥꽁냥하는 것도 이제 할 만큼 했는데..’


왕비 또한 계속 마차 안에만 있어서인지 답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때 마차가 멈추며 시몽의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다시 출발하시지요.”


그 말에 반색하며 나와 왕비가 마차에서 내렸다.

주위를 둘러보자 옆에 꽤 큰 강이 흐르는 작고 아담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시몽에게 스위스를 거쳐 오스트리아 국경을 지나 빈으로 향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확히 어디 어디를 거쳐 간다는 건 몰랐었다.


“여기가 어디야?”

“스위스 루체른입니다. 폐하.”


시몽의 입에서 나온 낯설지 않은 지명에 자연스레 뭔가가 떠올랐다.


‘빈사(瀕死)의 사자상.’


물론 한태현으로 산 30년 동안 루체른에 가보지는 못해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다만 그런 나도 빈사의 사자상만큼은 알 정도로 유명한 조각상이었다.

빈사란 한자 뜻 그대로 큰 돌에 죽어가는 사자를 조각해놓은 빈사의 사자상.

그리고 이 조각상은 이 몸의 주인인 루이 16세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창에 맞아 쓰러진 사자가 부르봉 왕가의 문양이 새겨진 방패를 안고 있는 모습이었지.’


프랑스혁명 당시 시위대가 궁전을 습격하자 당시 루이 16세에 고용되어 있던 스위스 용병들은 왕을 지키고자 시위대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근위대조차 왕을 버리고 도망쳤는데 이들만은 끝까지 싸우다가 죽었다고 했지.’


물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과장이 포함됐을 수도 있으나 스위스 용병들이 죽을 때까지 루이 16세를 지키려 했다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이 빈사의 사자상은 그렇게 루이 16세를 지키려다 죽은 스위스 용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조각상이었다.

그러나 1775년의 루체른에는 이 조각상이 없었으나 기분이 좀 이상했다.


“시몽.”

“예, 폐하.”

“이 행렬에도 스위스 용병들이 포함되어 있나?”

“예, 그렇습니다.”


21세기 스위스야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약 3배에 달하는 선진국이었지만, 18세기 당시만 해도 몹시 가난한 빈국이었다.

그래서 스위스 국민은 각국의 용병이 되어 전쟁터를 누비며 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들은 용맹했기에 용병으로 인기가 많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용맹할 수밖에 없었지.’


스위스 용병으로 활동하던 자들은 자칫 자신이 비겁한 모습을 보여 스위스 용병의 평판이 떨어져 다른 스위스인들이 용병조차 할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도망치거나 항복해 목숨을 연명하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했다.

그래서 한태현이었던 나는 맨 처음 빈사의 사자상과 스위스인이 죽음을 불사하는 용맹한 용병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듣고 눈시울이 붉혔다.


“그들을 모두 내 앞에 데려와.”

“예, 알겠습니다. 폐하.”


이미 날이 노을이 지며 주변이 어두워진 상황에 그들을 데려와 봐야 얼굴조차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울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미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입을 움직였다.

그리고 내 목소리가 평상시와 조금 달라서인지 시몽도 군말 없이 내 명령에 따랐다.

그렇게 잠시 뒤 내 앞에 백여 명이 훌쩍 넘는 스위스 용병이 모였다.

갑작스러운 소집에도 한점 흐트러짐 없는 엄정한 군기를 보여주는 스위스 용병.


“여기가 그대들의 조국 스위스인가?”

“예, 그렇습니다. 폐하!”

“그리고 나는 그대들을 고용한 고용주인가?”

“예, 그렇습니다. 폐하!”


백 명이 넘었지만,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

다시 한번 물끄러미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조국을 버릴 수 있나?”


내 질문에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이들이 영문을 몰라 침을 삼키는 듯 그들의 목울대가 꿀렁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다시 묻겠다. 그대들은 고용주인 내 명령에 따라 조국을 버릴 수 있나?”


이번에도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전보다 그들이 동요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대들이 조국을 버리고 프랑스인이 되길 바란다.”


그랬다. 나는 저들로 외인부대를 만들 생각이었다.


작가의말

라이브 연재 힘드네요 ㅎㅎ

관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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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9화. 강 건너 불구경 +8 23.05.17 888 38 11쪽
10 8화. 사위 사랑은 장모? +2 23.05.16 908 30 13쪽
9 7화. 내 사람을 얻다 +6 23.05.15 917 32 12쪽
8 마리아 안토니아 (외전) +6 23.05.14 974 33 10쪽
7 6화. 머니머니해도 머니 +9 23.05.14 958 34 12쪽
6 5화. 연극이 끝난 후 +7 23.05.13 1,014 34 13쪽
5 4화. 쇼타임(2) +10 23.05.12 1,102 37 12쪽
4 3화. 쇼타임(1) +6 23.05.11 1,124 35 12쪽
3 2화. 루이 오귀스트 +10 23.05.10 1,218 35 13쪽
2 1화. 마침표 +12 23.05.10 1,224 43 12쪽
1 0. 프롤로그 +10 23.05.10 1,402 3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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