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우중거님의 서재입니다.

프랑스에서 1호가 될 순 없어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스페란자
작품등록일 :
2023.05.10 10:30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4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22,290
추천수 :
789
글자수 :
79,171

작성
23.05.14 18:06
조회
974
추천
33
글자
10쪽

마리아 안토니아 (외전)

DUMMY

베르사유 궁전 여기저기를 활보하는 앙투아네트는 지금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이곳이 더는 답답하지 않아.’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이었으나 지난 5년간 그녀에게 이곳은 감옥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왠지 모르게 계속 웃음이 났다.

그렇게 그녀는 궁전을 돌아다니다 마주친 이에게 환하게 웃어주었는데, 그녀와 얼굴이 마주친 이는 흠칫 놀라곤 했다.


‘그래, 나라도 그랬을 거야.’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러니 다른 사람 눈에 비친 그녀는 웃으면서 우는 매우 기괴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눈물을 참거나 닦아내지 않았다.


‘이 눈물에 지난 5년이 담겨 있으니까.’


오스트리아에서 막내 공주로 태어나 수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던 그녀.

그녀는 15살의 어린 나이에 혼인 동맹의 일환으로 적대국이었던 프랑스로 왔다.

마리아 안토니아라는 이름 또한 프랑스식 이름인 마리 앙투아네트로 바뀌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새롭게 시작한 그녀의 인생은 암흑 그 자체였다.


‘오스트리아의 개..’


프랑스인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단지 그녀가 수 세기 동안 프랑스의 적대국이었던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는 이유였다.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었어. 그래, 그래도 한때는 믿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지.’


맨 처음 그녀가 루이 오귀스트를 만나 본 느낌은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꿈꾸던 반려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사람이었다.


‘그는 나약하고 무력했지.’


그녀가 오스트리아의 개로 불리더라도.

그녀가 잠자리를 피하는 루이 오귀스트 때문에 아이를 갖지 못해 비난을 받더라도.

그는 안쓰러운 눈으로 그녀를 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그를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았다.

그녀 눈에 비친 그는 왕위에 올라야 한다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나약한 사내였다.

그렇게 그녀가 프랑스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더욱더 사교 파티에 심취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달라졌지. 그것도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대관식 전날처럼 다음 날 아침에도 같이 울어보자는 심정으로 그를 찾아간 그녀.

그러나 루이 오귀스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를 볼 뿐 눈물을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그때 그 엄청나게 컸던..’


루이 16세와 단 한 번도 동침하지 않은 그녀이기에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그게 끝도 아니었어.’


대관식을 위해 랭스로 가던 중 농부의 밀밭을 망친 행렬에 분노한 그녀가 행렬 책임자에게 화를 낼 때 루이 오귀스트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그는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흙 묻은 농부의 손을 잡아주며 사과를 건넸다.

예상치 못한 모습을 연달아 보여주는 그에 그녀는 기분이 좋아져 그의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 갑자기 그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자신을 믿어줄 수 있냐고 물었어.’


지난 5년 동안 그녀에게 실망만을 안긴 루이 오귀스트.

그녀 또한 이제 더는 그에게 실망할 게 남아있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그녀는 자신을 믿어 줄 수 있냐는 그의 말을 단박에 거절했어야 했다.

그러지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그의 눈빛에, 지난 5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진지하고 절실한 그 눈빛에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리고 성당에 도착할 때까지 기묘했던 그와의 스킨쉽이 이어졌다.

그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평소와는 전혀 다른 그의 말과 행동에 다시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믿는다고 했어. 당신을 믿겠다고..’


그러나 수많은 시민 앞에서 갑자기 옷을 벗어 내동댕이치는 그의 모습에 순간 다른 사람처럼 그녀 또한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본 그의 간절했던 눈을, 그에게 믿겠다고 말한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도 수많은 시민 앞에서 몸에 걸치고 있는 것들을 내팽개쳤다.

거기다 그의 만류만 아니었다면 그녀 또한 속옷 차림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수많은 시민에게 보여 줄 뻔했다.

실제로 그녀는 그렇게까지도 할 생각이었다.

그게 그녀가 자신의 믿음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그만큼 절실하게,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의 말을 믿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믿음에 부응했다.


‘군주, 그래 내가 상상하던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이었어.’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억압해서 제 뜻을 이루는 군주는 역사서를 통해 그녀 또한 많이 봐왔다.

실제로 오스트리아에서 성군으로 추앙받는 그녀의 어머니 마리아테레지아 또한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국가를 통치했다.

하지만 자신의 남편과 같은 군주가 있었다는 건 그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난데없이 옷을 벗어 던지는 파격으로 그곳에 모인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는 말 몇 마디로 자연스레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평민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수만 명이 울기도 하고 또 웃기도 했다.

백미는 그가 그 이후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섞어 교회와 귀족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를 대상으로 징세라는 자신의 의도를 손쉽게 관철하는 지점이었다.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연극 같았어.’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남편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루이 오귀스트, 아니 남편의 멋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혼잣말을 해서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도리어 그녀에게 아직 젊으니 쌩쌩하지 않냐고 물었다.

얼떨떨했지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난데없이 마차 뚜껑을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행렬이 시작됐지.’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리고 그때의 남편은 다시 생각해봐도 한 대, 아니 다섯 대는 때려주고 싶을 만큼 얄미웠다.

지붕 없는 마차에 올라 랭스에 모인 시민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 때만 해도 좋았었다. 그러나 그 행렬이 파리에 도달할 때쯤에는 안면 경직과 더불어 팔다리에 경련도 일어났다.

그녀가 이제 그만하자는 마음이 담긴 눈빛으로 그를 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조금만 더 힘내라는 말이었다.

특히 계속 늘어만 가는 진짜라는 말을 할 때는 그의 입을 콱 막아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건 너무 가슴 아픈 모습이었어.’


그녀도 시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말은 들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본 피골이 상접한 시민들의 모습은 그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자신을 욕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더는 무관심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남편보다는 못했지만, 그들이 나를 향해서도 손을 흔들어줬어.’


모든 프랑스 시민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했던 그녀.

그러나 대관식에서, 그리고 랭스에서 파리를 거쳐 베르사유 궁까지 이어지는 행렬에서 시민들은 루이 16세뿐 아니라 그녀에게도 힘차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래서였다. 그게 갑작스러운 무리로 안면근육 경직과 부들부들 떨리는 팔다리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웃으며 손을 흔든 이유였다.

물론 옆에서 놀리듯 응원하는 미운 남편도 도움이 됐지만, 자신을 위해 손을 흔드는 그들의 눈에서 느껴지는 간절한 열망이 그녀를 버티게 만들어줬다.


‘그들에게 사랑받는 좋은 왕비가 되고 싶어.’


그게 그녀가 대관식을 마치고 궁에 돌아와 루이 16세의 침대에 혼절하듯 쓰러지며 했던 마지막 생각이었다.


***


온몸이 쑤시는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깬 그녀.

창밖에는 여전히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으나 다행히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그녀가 주변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잠시 대관식 옷차림 그대로 뻗어버린 자신에 대한 민망함이 몰려왔으나 이내 그녀의 시선은 옆에 누운 남편에게 향했다.

잠이든 루이 16세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는 그녀.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연민을 느꼈지 좋은 감정은 전혀 없었는데..’


그녀는 그렇게 얼굴도 몸도 그대로였으나 하루 만에 갑자기 든든해진, 그리고 조금 멋져진 남편을 말없이 바라봤다.

다시 어제를 되돌아봐도 5년 넘게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

물론 누가 뭐라 해도 그녀는 그런 남편의 변화가 무척이나 좋았다.


‘좋았다는 말로 표현하기 부족할 만큼 행복했지.’


그리고 그녀는 잠든 남편의 얼굴을 보며 부디 그 변화가 하룻밤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길 빌고는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왔다.


***


해가 뜬 뒤 남편을 보러 가려 옷매무시를 가다듬는 그녀에게 베아른 자작이 찾아왔다.

자작의 어두운 표정에 불안함을 느낀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예감이 들어맞았다.

루이 16세가 이상하다는 자작의 말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불행 회로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그녀는 곧바로 남편이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절대, 절대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안 돼!’


루이 16세의 처소 또한 그녀와 같은 거울의 방에 있었기에 도착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그녀에게는 길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마음 졸이며 뛰어간 그녀의 눈에 멍한 얼굴로 거울 앞에 서 있는 그가 보였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그 모습에 그녀는 5년 전부터 봐온 루이 오귀스트를 떠올랐다.


‘안돼! 절대 그럴 순 없어.’


어느 때 보다 절실했던 덕분인지 그녀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깊게 심호흡을 한 뒤 폐하를 외치며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작가의말

루이 16세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지켜본 앙투아네트의 시선을 쓴 외전입니다.

이 때가 아니면 올리기 애매할 거 같아 이렇게 추가로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프랑스에서 1호가 될 순 없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13화. 빈사의 사자상 +5 23.05.21 888 33 11쪽
14 12화. 혁명의 새싹 (2) +6 23.05.20 778 36 11쪽
13 11화. 혁명의 새싹 (1) +7 23.05.19 836 32 12쪽
12 10화. 역사적인 밤 +8 23.05.18 861 27 12쪽
11 9화. 강 건너 불구경 +8 23.05.17 888 38 11쪽
10 8화. 사위 사랑은 장모? +2 23.05.16 908 30 13쪽
9 7화. 내 사람을 얻다 +6 23.05.15 917 32 12쪽
» 마리아 안토니아 (외전) +6 23.05.14 975 33 10쪽
7 6화. 머니머니해도 머니 +9 23.05.14 958 34 12쪽
6 5화. 연극이 끝난 후 +7 23.05.13 1,014 34 13쪽
5 4화. 쇼타임(2) +10 23.05.12 1,102 37 12쪽
4 3화. 쇼타임(1) +6 23.05.11 1,124 35 12쪽
3 2화. 루이 오귀스트 +10 23.05.10 1,218 35 13쪽
2 1화. 마침표 +12 23.05.10 1,224 43 12쪽
1 0. 프롤로그 +10 23.05.10 1,402 37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