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종우몽 님의 서재입니다.

돈주머니 용사 나가신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종우몽
작품등록일 :
2019.04.01 10:32
최근연재일 :
2019.04.26 07:30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74,968
추천수 :
937
글자수 :
145,028

작성
19.04.03 07:00
조회
2,593
추천
40
글자
13쪽

데르나의 관점

DUMMY

로벨 왕국이 멸망하기 10일 전의 일.

깜깜한 밤. 왕국의 동쪽 숲.

금발의 여기사와 그 수하인 병사들이 누군가를 추격하고 있었다.


“악마의 마법사다!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여기사는 국왕의 육촌이자 로벨 왕국의 상급기사인 데르나.

잽싸게 멀어져가는 녀석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녀석을 가증스런 행태를 떠올릴 때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다.

겨우 따라잡아서 붙들 만하면 거대한 공격 마법을 날려온다.

영창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상급의 바람마법 같은 것이 날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 놓치지 않아······.’

머리칼을 뒤로 묶은 데르나가 검을 추켜들었다.


“기운을 내라! 녀석을 잡는 자에게는 후한 상금이 주어질 것이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부단장과 병사들이 수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상금이 아니라 급료를 올려주실 수 있나요?

-아니, 저는 그냥 현물로 받을 순 없을까요?

-저, 저도요!


데르나의 무릎이 일순간 휘청했다.

그러나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감자 하나에 은화 10개라니 말도 안 되는······.’

그것도 지금은 얼마일지 알 수 없다.

원래는 감자는 동화 하나면 열개는 사고, 은화 1개면 짐짝으로 받았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금화를 비롯한 모든 화폐의 값어치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것이 물가 폭등으로 이어졌다.

참고로 병사들의 월 평균 급료는 은화 15개. 그것도 왕도를 경비하는 병사들이 그렇다. 기사들은 계급에 따라 다르지만 은화 30개에서 금화 하나 정도를 받는다.

그랬는데······.

데르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내뱉었다.


“조, 좋다. 그럼 감자나 밀가루를 주겠다! 포대로 주겠다! 한 포대 말고 여러 포대로!”

-오오!


사기가 오른 병사들이 미친 듯이 내달렸다. 데르나 역시 추격을 재개하며 물었다.


“그보다, 저 자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저닐인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저닐······ 과연 사악한 이름이군.”

-네. 어딜 가나 피해자가 생길 것 같은 이름입니다.


현재 로벨 왕국은 저닐로 인해 멸망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로벨 왕국의 공주이며 데르나와는 친족 관계인 비아 공주의 결혼까지 무산되었다. 상대 나라에서 거부한 것이다.

이를 으드득 갈은 데르나가 이틀 전의 일을 떠올렸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평화로운 로벨 왕국.

데르나는 아침 일찍 방문한 남작 카무스와 함께 레벨 왕국 국왕의 침실로 향했다.

카무스는 로벨 왕국의 재정을 담당하는 대신으로 국왕의 신임을 받는 귀족이다.

그러나 그날의 카무스는 평소와 달리 안색이 좋지 않았다.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왕국의 뒤를 받쳐오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아침 일찍, 왕의 집무실도 아닌 침실로 향한다. 그것도 조급한 걸음으로.

그 모습에서부터 데르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침실로 들어간다.

왕국의 국왕 프라마는 이미 일어서서 의복을 갖춰 입은 상태였다.

밤새 숙면을 취했는지 표정이 밝았다.

혈압이 높아서 고생인 국왕으로서는 오랜만의 좋은 컨디션이었다.


“카무스여 일찍 찾아왔구나. 물품준비는 다 되었느냐?”


물품준비란, 로벨 왕국의 공주 비아의 지참금을 말한다.

비아 공주는 이웃 나라인 하타 제국의 그라스 왕자와 반년 후 혼례를 올리기로 되어있다. 이제 그 지참금의 일부를 미리 보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로벨 왕국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


수년 전, 로벨 왕국은 왕국 동부에 자리 잡은 마왕 알퀴세르에게 패퇴하여 1만 여명의 병사들이 희생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주인 비아와 하타 제국 후계자와의 성혼은 왕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물론 공주에게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어차피 어딘가의 왕국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 공주의 업무 중 하나였고, 비아 공주 역시 딱히 싫어하는 기색은 없었다. ‘아니 내심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더라마는.’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보고를 올려야 하는 카무스의 얼굴이 창백하다.


“어찌하여 말이 없느냐?”

“그, 그것이······ 준비가 되지 않았사옵니다.”

“뭐라?”


싸늘한 정적.


“······준비가 되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카무스가 꿀꺽 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물가가··· 폭등하였습니다.”

“대체 얼마만큼 올랐기에 이 호들갑인가?”

“왕가가 가진 금화의 수백 배가 저잣거리에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카무스 남작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저잣거리를 싸돌아다니는 평민 애들이 금화로 딱지치기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컥!”


온몸에 소오름이 돋은 국왕.


“대, 대체 그런 걸 왜 이제야 알았느냐?!”


국왕의 외침에 남작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얼마 전부터 파악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짐은 몇 달 전부터 있었던 반면 물가의 상승은 일순간이었다.

사람들이 변화를 인지하고 우- 하고 몰리는 순간 그리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물가가 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통제할 수도 없었다.


“혀, 현재 상황을 보고하라······.”


심각해진 국왕이 숨을 헐떡인다.


“지, 지속된 금화의 가치 하락으로 모든 물건의 물가가 무려 10배를 뛰었으며 현재도 상승 중입니다. 동화는 이제 통화 구실을 아예 못하고 은화도 위태위태한 것으로······.”


“뭐, 뭐라! 으어억!”


국왕이 끝까지 듣지 못하고 뒷목을 잡았다.


“폐하!”


데르나가 재빨리 국왕을 부축했다.


“그대가 하는 말이 진정 사실이렸다!”


국왕의 눈이 카무스를 잡아삼킬 듯이 노려보았다.

카무스도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인 것을 어쩌겠는가.

당장 카무스 자신도 파산 직전인 것을······.


“다, 당장 원인을 파악하라······. 공주의 결혼을 위한 물품은 하타, 아니, 카르시아나 엘린에서 마련하라. 그곳의 가격은 별 이상이 없을 것 아니냐! 이 사태가 그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빠르게 물품의 계약을 체결하라. 그리고 이 사태의 근원을 찾고 당장 해결하란 말이다! 으억!”


국왕이 졸도했다.

그 후로, 데르나는 왕명을 받아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카무스는 무능한 자가 아니었고 따라서 며칠 전부터 사태의 진원지를 파악해두고 있었다.

그리하여 도착한 도시가 상업의 요충지인 루하나.

데르나는 곧장 루하나의 영주 베롤트 백작을 찾아갔다.

루하나의 영주라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방법을 강구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주를 만난 데르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후후······. 데르나 양이 아니신가. 여기까진 어인 일이신가······.”


이것이 베롤트 백작인가.

정말 이게 자신이 알던 그 사람이란 말인가.

영주는 집무실에 수북히 쌓인 금화 더미 위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달그락달그락달그락달그락.


그러면서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사람이 웃고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본래 신경질적이고 스트레스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던 것이 데르나가 알던 베롤트 백작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더구나 저 미소.

······사람이 저렇게 행복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런 생각까지 들어서 살짝 오싹한 미소였다.

백작의 얼굴에는 무슨 성자라도 되는 것처럼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후후후. 데르나 양 무슨 근심이라도 있는 모양이구우운.”


말투는 또 왜 저런단 말인가?


데르나는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하고 백작에게 협조를 구하려 했다.

그러나 백작은 그저 웃음지을 뿐이었다.


“후후······, 본관은 행복이란 돈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네. 그대도 그것을 깨달으면 좋으련만.”


이게 다 무슨 소리란 말인가?

결국 데르나는 백작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포기하고 백작의 시녀와 하인들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

그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 사내가 몇 달 전, 루하나에 나타났다.

이름하여 저닐이라는 사내.

그는 매일 파티를 벌이며 금화를 뿌려댔다.


“이런 금화였습니다.”


보아하니 본 적이 없는 금화였다.

조사해본 결과 틀림없는 제대로 된 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듯이 닥치는 대로 금화를 뿌려대니 이미 도시 전역에서 금화가 창궐하고 현재는 금화가 발에 밟힐 지경이라는 것이다.

데르나가 슬쩍 보니 하인들의 주머니에도 금화가 가득 차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주머니에 금화를 한 움큼씩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작은 도시에 황금이 가득 차는 것을 보고 미쳐버린 것일까? 확실히 미쳐버릴 만한 일이기도 한데······.’

그렇게 생각한 데르나였으나 그것은 또 아니라고 한다.

백작이 저렇게 된 것은 의외로 루하나가 아직 멀쩡할 때.

그 저닐이라는 자가 방문하여 백작의 저택 중 하나를 사들이겠다고 제안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아끼는 저택이라 거절한 백작이었으나 상대는 된다고 할 때까지 금화 더미를 꺼내 들었다나.

백작은 집무실 가득 차오르는 금화 더미를 보더니 딸꾹질을 시작하다가 급기야 미쳐버렸다는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에 입이 떡 벌어진 데르나와 병사들.

‘이 무슨 사악한 일화인가.’

어린 시절에 들은 동화 속의 사악한 마법사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왕도의 인플레이션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루하나는 이제 금으로 감자 한 알을 사는 정도에 도달해 있었다.

데르나의 판단은 신속했다. 금발을 휘날리며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격리하라! 왕궁에 이 사태를 알리고 왕국군을 이끌고 와서 루하나를 격리하도록 전하라!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게 하라!”


지금도 문제가 어마어마한데 이대로라면 왕국 전역이 루하나처럼 되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 금화는 타국으로도 퍼져나갈 것이다.

억지로라도 도시를 격리한 후 금화를 없애버려야 한다. 땅에 묻든 말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리고 이 사태를 초래한 자는 반드시 잡아서 죽이거나 억류해야 한다!

하지만 상대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데르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연금술사인가······.’

연금술사라는 이들은 분명히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보통 황금 한 조각을 만드는 것도 끙끙대는 존재들이다.

황금보다 더 비싼 재료들을 잔뜩 들여다가 금조가리 약간을 만들어내는 존재들이라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중에서도 성공하는 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사악한 마법사인 저닐은 루하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녀석을 붙잡아라!”

-네!


병사들이 신속하게 흩어졌다.

데르나는 초조한 표정으로 검자루를 쥐었다.

이 사악한 마법사를 절대로 잡아 죽여야 한다.

여기사는 그렇게 다짐하고 있었다.


***


“헉헉헉헉······.”


나. 강전일.

이세계로 온 지 정확히 구십 하고도 5일째.

사치와 향락, 그리고 행복의 나날들이었다.

꿈결 같은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산 속을 달리고 있다.

등 뒤로는 성난 병사들이 나를 죽일 기세로 쫓아온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갑자기 나타나서는 다짜고짜 악마의 마법사라니!’


언제나처럼 저택에서 느긋하게 와인을 즐기고 있었는데, 데르나라는 여기사와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왕국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국정을 어지럽힌 죄로 악마의 마법사를 포박하러 왔다나?

그저 평온하고 부유한 이세계 라이프를 즐기고 싶었을 뿐인데, 한순간에 죄인으로 몰리고 말았다.

나야 그냥 내 집에서 인생을 즐기고 있을 뿐인데?

심지어 일년 간은 밖에 나가본 일도 없다.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 그때, 저택에 상주하며 먹고 자던 사람들이 병사들을 온 몸으로 막아서기 시작했다.


-여기는 저희가 막겠습니다!

-어서 도망치십시오!

-우리들의 생명줄, 저닐 님을 지키자!


어째 근 한달 정도는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은 듯해 보여서 마음에 걸렸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나서주는 것을 보면 나를 저버리진 않은 모양이었다.

너무나도 고마워서 금화를 뿌려주었다.

그러자 병사들까지 뛰어올라서 금화를 낚아채었다.

여기사는 버럭 화를 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는데 무슨 소린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빚이 많은 할머니가 여기사에게 사지로 엉겨 붙어 방해했기 때문이다.

여기사는 할머니를 힘으로 떼어내진 못하고 있었다.

‘아, 할머니······.’

나는 약간의 감동을 느끼며 술집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도망치는 길목마다 병사들이 지키고 있어서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

결국 어떻게든 빠져나와서 숲길로 도망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돈주머니 용사 나가신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당분간 월화수목금 주5일 연재. 휴일은 쉽니다! 19.05.03 940 0 -
25 황제 알현 +2 19.04.26 1,262 11 15쪽
24 대체 어떤 놈이오? +2 19.04.25 1,310 12 13쪽
23 사랑의 화살꾼 +1 19.04.24 1,305 12 14쪽
22 선발 +1 19.04.23 1,361 11 15쪽
21 흑화와 세뇌 +1 19.04.22 1,406 11 13쪽
20 레벨이 비슷해졌네 +1 19.04.20 1,436 14 15쪽
19 성검용사 샌슨 +1 19.04.19 1,458 13 16쪽
18 진료와 상담 +1 19.04.18 1,533 16 13쪽
17 물론 짐작했다 +1 19.04.17 1,515 15 16쪽
16 얼마면 돼? +2 19.04.16 1,551 16 11쪽
15 로벨 왕국 +1 19.04.15 1,604 18 13쪽
14 문답무용의 네클리스 +1 19.04.13 1,628 15 11쪽
13 마검 깔고 앉아 봤어? +1 19.04.12 1,701 16 13쪽
12 자이렌의 유혹 +1 19.04.11 1,757 19 13쪽
11 마검찾기 +1 19.04.10 1,776 19 12쪽
10 마족 여인 샤사룬 +3 19.04.09 1,810 21 12쪽
9 마왕의 딸 +1 19.04.08 1,952 25 14쪽
8 마족지배 +1 19.04.06 2,011 27 10쪽
7 짐은 방패가 아니다 +1 19.04.05 2,222 29 14쪽
6 마왕 알퀴세르 +1 19.04.04 2,517 33 13쪽
5 황금의 산 +4 19.04.03 2,430 36 14쪽
» 데르나의 관점 +3 19.04.03 2,594 40 13쪽
3 무게경감 +7 19.04.02 3,033 48 13쪽
2 부활 +2 19.04.01 3,390 55 10쪽
1 *프롤로그 +2 19.04.01 3,809 58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