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죽었다.
죽은 뒤에 눈을 뜬 곳은 하늘 위였다.
구름 위에 서 있다.
보통은 죽었다는 사실에 충분히 분개하고도 남겠지만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울 만큼 무덤덤했다.
하긴, 살아있을 적의 미련이 없으니 당연한 거겠지.
고생만 했다. 정말 죽어라 고생만 했다.
고생만 하다 죽었다.
그 동안에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천국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여기가 거긴가?’
주위를 둘러보는데 좀 더 높은 하늘에서 빛의 장막이 펼쳐졌다.
그 빛을 등지고 인간의 형체가 천천히 내려왔다.
[안녕하신가 강전일 군. 그대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네.]
범상치 않은 말투.
동굴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울렸다.
눈이 부신 건 아니었지만 후광이 너무 강해서 검은 그림자로 보였다.
“누구시죠?”
[나는 신일세. 그동안 자네 인생을 쭉 지켜봤는데,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운이 엄청나더군?]
“그랬나요?”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신(神)은 고개를 끄떡였다.
[부모님 빚을 하나 갚으면 다른 빚이 찾아오고. 월세집 주인이 보증금 갖고 튀는가 하면 알바 비 떼이는 일은 다반사에 강도 높은 일을 하다가 몸을 망치고······ 일하던 편의점에는 강도가 들고······. 이런 일들이 이루 셀 수가 없더군. 그것도 20세 밖에 안 된 젊은 청년한테······.]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내가 생각해도 용케도 10년 가까이 잘 살아남았다.
마지막에 황달이 왔을 때는 정말 기가 막혔지.
응급실에 실려가던 것은 기억이 나는데 결국 죽었던 모양이다.
[미리 말하자면 결코 우리가 의도한 불행은 아니었네. 정말 신기한 일인데 시스템상의 오류라고 할 정도로 안 좋은 일이 중첩되더란 말이야. 다른 자였으면 금세 포기하고 죽었을 것을 여기까지 버틴 것도 대단했어.]
그렇구나.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죽었는데.
[그래서 특별히 보상을 하고자 이렇게 불렀다네.]
“보상이요?”
[그래. 소원이 있다면 한 가지를 들어주지. 그리고 이전의 몸과 마음 그대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인생도 함께 제공하겠네.]
이른바 환생이나 전이 따위를 말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정말 소원을 들어주는 건가?
“뭐든지? 뭐든지 가능한가요?”
[물론이네. 딱 한 가지뿐이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보게나.]
심사숙고할 필요도 없다.
매일 하루에 백번, 아니 천번씩 바래왔던 소원이 있었으니까.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겁나 큰 부자로요.”
내가 원하는 소망은 돈.
꿈에도 원하는 소망은 돈.
돈이 많은 인생을 사는 것이 오직 내 꿈이다.
[원하는 게 돈이라는 거군. 그럼 무슨 돈으로 줄까?]
오 정말 들어주려는 건가?
무슨 돈이냐고. 그것도 정해져 있다.
이 나라 돈은 저기에선 안 통하고 저 나라 돈은 여기에선 안 통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디에서나 통하는 돈이라면 하나 밖에 없지!
“음···. 금으로, 금화로 주세요.”
화폐는 종이쪼가리일 뿐.
어디서나 통하는 금이 최고다!
황금을 얻고 싶어!
꿈의 엘도라도!
[알겠네. 그게 네 소원이라면, 세상 누구보다 많은 금화를 가지게 해주지.]
검은 그림자가 허공 어딘가에 손을 집어넣어 두툼한 주머니를 꺼냈다.
일종의 가죽 주머니다.
[금화는 이 주머니에 들어있네. 보기와는 다르게 엄청 많이 들어 있으니 걱정하지 말도록. 그런데 이대로면 너무 무거울 테니, [무게경감] 마법이랑······. 그렇지. 땅이 꺼지지 않도록 [대지보호] 마법을 걸어주지.]
마법을 건 주머니를 건네받았다.
상당히 가벼워서 손가락 하나로도 들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의심이 든다.
‘이게 정말 돈이 많이 들어있나?’
만에 하나라도 신이 거짓말을 할 일은 없겠지만, 나는 원래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신을 가장한 악마나··· 뭐 그런 것들이 사기를 칠지도 모르는 거다.
안을 들여다봤다.
주머니 안의 공간은 엄청 넓었다. 아마 마법 때문이겠지.
그리고 반짝거리는 것들이 보인다.
‘세상에··· 이게 다 얼마야!’
금화가 한 가득 들어있었는데 보자마자 세는 걸 포기했다.
그냥 무지하게 많았다.
엄청나게 행복해졌다.
[자, 네 소원이 이뤄졌다. 다음은 어디에서 태어날 지인데, 특별히 원하는 곳이 있나?]
원래 살던 나라는 싫다.
다른 나라들을 쭉 떠올려 본다.
그러나 어느 곳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 금으로 놀고먹을 수 있는 곳이라면 좋습니다. 아, 단 지구는 싫어요. 제가 알고 있던 그 어떤 곳도 싫습니다.”
[······이해하네. 그럼, 극악하지 않은 곳으로 적당히 골라주지. 서비스로 지금 그 몸 그대로 태어나게 해주겠네. 말이 안 통할 테니 [번역]도 달아주고.]
몸이 허공에 붕 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신이 손을 흔들었다.
시야가 백색으로 물들어간다.
- 작가의말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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