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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 님의 서재입니다.

고월 아래 비는 거닐고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무의
작품등록일 :
2022.10.31 23:54
최근연재일 :
2022.11.30 07:4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3,577
추천수 :
149
글자수 :
139,369

작성
22.11.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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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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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홀로 바르기에 외롭노라 (2)

DUMMY

22화. 홀로 바르기에 외롭노라 (2)


「석 달 전, 조부님께서 선화 그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셨습니다. 그 모든 일들이 그 여인, 빙목검희를 통해 은밀히 이루어졌기에 저는 선화가 떠난 후에나 상황을 알았고요.」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걸음이 사뭇 조급하다.


오랜 시간, 수없이 반복된 수련으로 단련된 심장이 고작 이런 속보(速步)에 힘겨울 리 없건만 점점 빨라지던 맥박은 어느새 생사결(生死決)의 순간을 연상케 할 만큼 격렬해졌다.


남궁정은 괴로운 듯 고개를 떨구던 제 아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뒤늦게 달려간 제가 어찌된 일이냐 황급히 여쭈니 조부님께선 따로 볼일이 있으시기에 선화 그 아이를 보낸 것이라 하시더군요. 하지만··· 저는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왜 굳이 선화, 그 아이여야한단 말입니까? 그 연약한 아이를···!」


안타까움에 주먹을 불끈 쥔 그 모습에선 한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그 아이가 대동한 이는 빙목검희와 시비 한 명뿐이었고, 호위로 붙은 자들 또한 고작 낭인 다섯에 불과했습니다. 무슨 일로 보내신 것이냐 여쭤봐도 알 것 없다고만 하시고, 어찌하여 남궁의 깃발을 내걸지 않으신 건가 여쭈어도 그저 은밀한 일이기에 그렇다, 그리만 말씀하시니 제가 어찌 답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금 떠올린 그날의 기억이 새삼 갑갑하게 다가오는지, 남궁휘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제가 대신 다녀오겠노라, 그렇게도 말씀드리려 했으나 조부님께선 듣지를 않으셨습니다. 가차 없는 축객령에 쫓겨나야만 했지요.」


하지만 여기까진 그저 몸 약한 동생이 걱정되는 마음에 불과했다고, 집에서 멀리 벗어나 본 적 없는 그 아이가 난생처음 맞이한 장정에 혹 지치고 아프면 어떡하나, 염려하는 심정일 뿐이었다고. 남궁휘는 그렇게 말했다.


문제는, 모처럼 저잣거리로 나섰던 그가 남겨진 적효단원 중 하나를 우연히 만남으로서 시작되었다.


금편 백 닢을 내걸었던 전(前) 의뢰주와 그 의뢰를 수행했던 낭인.


대화의 시작은 평범한 안부, 그리고 감사의 인사말이었다.


여러모로 신경 써주신 것 감사했노라, 그 솜씨에 감탄했다, 과찬이시다, 몸은 괜찮으냐···.


평소라면 그쯤에서 마무리되었을 대화가 그날은 다소 길어졌고, 이는 저잣거리 근처의 다루(茶樓)로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차 한 잔씩을 앞에 두고 잠시 근황을 나누었더랬다.


평소 낭인들과 접할 일이 많지 않고, 낭인들에게 큰 관심도 없었던 남궁휘로서는 다소 이례적인 행동.


허나 그날의 대화를 들여다보자면, 여기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론 그 역시 불혹이 넘어 무공에 입문한 주제에 적경의 벽을 넘어선 악적 곽후릉과 그 곽후릉을 처단한 적효단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이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인데, 얼마 전 출발한 선화 일행에 호위로 붙은 낭인대가 바로 적효단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애당초 온화하기 그지없는 성품의 남궁휘가 그에게 인사 건넨 이를 급 따져가며 무시할 리 만무하지만, 제 동생의 호위로 붙은 이들에게 한층 더 사근사근해지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지난 일에 대해 감사와 치하를 더하고, 그에 대한 답례가 돌아오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대화.


처음에는,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그녀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무언가 이상한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띄었다.


「빙목검희가 적효단에게 내건 의뢰, 그것이 선화의 호위가 아닌 리화의 호위였다고 하더군요.」


분명 떠난 것은 운리화가 아닌 남궁선화일진대, 어찌 낭인이 지켜야 할 대상을 잘못 알고 있단 말인가.


혹 잘못 들은 것이 아니냐, 착각한 것이 아니냐 거듭 묻는 질문에도 상대는 ‘분명 단장이 받아온 것은 남궁휘 공자의 정인이자 남궁선화 소저의 친우인 운리화 소저의 호위의뢰였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남궁휘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


「아버지께 연통을 드리고자 하였으나 방법이 없었습니다.」


침통하게 읊조리는 남궁휘의 모습에 남궁정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무려 남궁세가의 가주인 그가 수개월이나 자리를 비워야만 했던 것엔 응당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바. 항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을 상황이 되지 못했음이다.


‘선화야.’


제 오라비가 그런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남궁선화는 남궁정에게 있어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타고나길 병약했고, 병약했기에 무공조차 익히지 못했다.


아무리 여인의 몸이라고는 하나 무가의 여식이 무공 한 자락 익히지 못했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


당연히 이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보다 밝고, 상냥하며 바른 아이가 바로 선화였으니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


한때 가장 존경했던 이를 입안으로 부르짖으며 남궁정은 눈앞의 장지문을 마주했다.


“아버지, 소자 정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너라.”


떨림을 억누른 그 목소리에 지독히도 탁한 악성이 답한다.


남궁정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


장지문을 열기 전, 남궁정이 문 너머에서 마주하리라 기대했던 것은 그 너머를 빽빽하게 가린 주렴이었다.


반짝이는 구슬을 수십, 수백 알 꿰어 만든. 그러나 방 안에 스미는 빛조차 모두 가렸기에 본래의 휘황함을 잃어버린 주렴.


보이는 것은 그저 그뿐일 테고, 아마 깊은 상처로 인해 거칠어진 부친의 음성이 그 너머에서부터 들려올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익숙해진 풍경이자, 그와 부친의 대화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정작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가 주렴보다 먼저 마주한 것은 한 노인의 등이었다.


“아버지···?”


예상치 못한 광경에 저도 모르는 새 당혹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버지께서 누군가를 마주할 때, 주렴을 사이에 두지 않으신 것이 얼마 만인가?


자식인 자신에게조차 그 낯을 쉬이 보여주지 않던 이가 바로 그의 부친, 남궁극이다.


한때는 모두가 저토록 두문불출하셔서 어찌하나 걱정했으나, 지나치리만치 오랜 세월 이어지다 못해 굳어져 이제는 모두가 당연시하게 되어 버린 것이 부친의 칩거였다.


가주인 그조차 마지막으로 그 얼굴을 뵌 것이 수년은 더 되었을 터.


그런 남궁극이 주렴 밖으로 나와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딸의 일을 물으러 왔건만, 너무도 평소답지 않은 모습에 걱정의 말이 먼저 나간다.


하지만 그에 대꾸하는 남궁극의 악성은 냉랭할 뿐이다.


“괜찮으냐고? 무엇이 괜찮으냐는 것이냐? 이 내가 주렴 밖으로 나온 것이 괜찮은 것이냐, 그리 묻는 게냐?”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두고 세상에 나오지 않던 이가 다시금 문밖으로 나왔다면, 그것은 응당 반갑고, 또 기꺼워할 일이리라.


허나 스스로를 가둔 세월이 너무 길어져 그 상태가 평소이자 일상이 되어버린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른 법이니, 그토록 오랜 시간 변하지 않던 심경에 대체 무슨 이변이 일었는가 우려하게 되는 것이다.


부친의 냉소적이고도 염세적인 태도를 익히 알기에, 남궁정은 공손히 대답하며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아버지께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나, 반가우면서도 염려가 되어 여쭌 것입니다.”


“흥, 허튼소리는 되었다. 용건이나 말해라.”


여전히 싸늘한 대꾸에 남궁정은 오래전에 묻어버려 이제는 무감하리라 생각했던 슬픔이 다시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그 슬픔을 억눌렀다.


그 슬픔을 풀지 않고 묻은 데엔 이유가 있었지 않았나. 오랜 마음고생 끝에 세상엔 해소되지 못할 것들도 있노라 인정하며 묻은 감정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에겐 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남궁정이 마음을 다잡는 순간, 남궁극의 성마른 목소리가 책망하듯 들이닥쳤다.


“무슨 일이냐 묻질 않느냐. 방금 다녀갔던 네가 무슨 일로 다시 온 게야?”


“···아버지, 선화는 어디 있습니까?”


억누르던 슬픔 대신 풀어낸 듯한 그 한 문장은, 마치 억지로 부여잡고 있던 고삐를 뿌리친 야생마처럼 불쑥 튀어나왔다.


이리 거칠게 꺼낼 말은 아니었는데, 남궁정은 내심 후회했지만 이미 내친걸음, 내어버린 말이었다.


“휘에게 들었습니다. 선화, 그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셨다고요.”


“······.”


“다른 식솔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그 아이가 몸이 조금 좋지 않아 근처 별장으로 요양을 갔다고, 다들 그리 알고 있더군요.”


대답하지 않는 그 등이 애잔하지만, 동시에 불길했다.


조금씩 아우성치기 시작하는 마음을 애써 달래며 남궁정은 말을 이었다.


“들을수록 복잡할 뿐인 이야기라 그냥 아버지께 전말(顚末)을 듣겠노라 말하고 바로 이리 왔습니다. 불필요한 의심도, 번잡한 상념도 품고 싶지 않아서요. 아버지, 선화 그 아이를 어디로, 왜 보내신 겁니까?”


왜 식솔들에겐 요양 차 근처의 별장으로 갔노라 거짓말을 한 건지.


어째서 가문의 무사들이 아닌 낭인들을 고용해 호위를 맡긴 건지.


그 낭인들에게조차 호위 대상을 거짓으로 알린 이유가 대관절 무엇인지.


뇌리 속에 떠오르는 의문은 차고도 넘친다.


하지만 남궁정은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따져 묻지 않았다.


대신, 이 모든 전말과 이유를 자신에게 말해달라, 그리 요구했을 뿐이다.


남궁세가를 이끄는, 남궁세가의 가주로서.


그때, 남궁극의 몸이 천천히 돌아서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그가 비로소 완전히 돌아선 순간.


“······!”


오랜만에 마주하는 아버지의 얼굴에 다소 긴장하고 있던 남궁정의 두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아버지, 그건 대체···?!”


남궁극이 몸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창틀을 넘은 바람이 그의 겉옷을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깨에 위태로이 걸쳐져 있던 겉옷이 바람에 밀려나며 바닥으로 떨어지자 그 안에 감춰져 있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남궁정의 머릿속으로 수십 년 전, 그가 아주 어린 시절 어머니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어머니, 아버지께선 왜 저희를 향해 웃어주시지 않나요?」


어린 아들의 투정 어린 말에 그때, 어머니는 눈물 맺힌 눈으로 무어라 말씀하셨던가.


「나쁜 사람들이 있었단다. 당당한 정파 출신임에도 정도무림을 배신하고, 저 사악한 마교의 편에 선 사람들이 있었어. 네 아버지께선 그 사람들과 싸우다가··· 다치신 거야. 팔도, 목소리도··· 그리고 마음도.」


그때, 아버지는 분명히 팔을 잃으셨건만.


분명히 비어있어야 할 오른 소매 아래 자리한 ‘손’을 바라보며 남궁정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대체··· 그 팔은 무엇입니까, 아버지!”


작가의말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선작, 좋아요 눌러주신 분들, 댓글 남겨주신 분들 복 받으실 거예요 :)

어색한 점, 아쉬운 점, 오타 등 모든 피드백들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 생각보다 아침 반응이 좋은 거 같아서(?) 며칠 더 이 시간 유지해보겠습니다! 베푸는 맘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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