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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님의 서재입니다.

아비는 회귀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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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vette
작품등록일 :
2023.05.12 01:45
최근연재일 :
2023.06.14 12:00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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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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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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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4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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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14화

DUMMY

어쨌거나 나는 용운령 덕분에 겨우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에게 일단 고마운 마음이 들기는 했으나, 그러면서도 내심 기이하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하군. 어쩌면 내 운명은 매 생애마다 반드시 용운령과 인연이 닿도록 되어있는 것인가?’


최초의 생애에선 그에게 목이 베여 죽었고, 두 번째 생애에선 그가 노흉을 놓치고 헛걸음하던 모습을 목격했다.


그리고 이번 삶에선 수도성엘 왔다가 첫날에 뜬금없이 이리 만나게 되었으니 이걸 과연 그저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의도적으로 용운령을 만나려고 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기이함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지금의 용운령 또한 이질적인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는 날 바라보며 가볍게 머리를 긁적였다.


“···잘 모르겠군. 방금의 행동은 나 자신도 내가 왜 이랬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쨌든 룡이 네가 꽤나 반갑고, 그래서 조금 도와준 거야.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는 마라.”


“알겠소.”


그러자 곁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소륜이 반색하며 내 양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그러면 너 여기서 쭉 머무르는 거지?”


“···일단은 그럴 생각이오. 그보다 얼른 손이나 놓으시오.”


나는 이상하리만치 내게 가깝게 구는 소륜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아까 전 용운령이 했던 말 중에 미심쩍은 부분도 있었던 것이다.


‘어린애를 또 주워왔댔지.’


그 말인 즉, 소륜이 나 같은 거렁뱅이 소년을 주워다 씻기고 먹이고 입힌 게 이번 한번만이 아니라는 의미일 터였다.


그야말로 괴벽이라 할 법했는데 참 이상한 여자였다.


“아무튼 우리들 역시 열흘 정도 이곳에서 머무를 것이니 만일 스승님을 뵙고 싶거든 날 찾아와.”


용운령은 그리 말을 남기고는 백희아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고, 소륜도 내게 시종을 부르는 법 따위를 가르쳐주곤 방을 나섰다.


그리 다시금 방에 홀로 남게 되자 나는 자연스레 상념에 잠기게 되었다.


비록 계획했던 바는 아니나 어쨌든 지금 내겐 노흉에게 복수할 길이 희미하게나마 열린 듯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복수하겠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


내심 그리 생각을 했으나 다만 나는 그럼에도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는 감이 잡히지 않는 거였다.


견옹은 내가 미쳤기에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정신을 차려야만 했는데, 대체 어찌해야 내가 제정신을 되찾을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이 딱히 미쳤다는 생각이 들지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야 지금의 나는 광증을 앓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식 잃은 비통함에 몸부림치는 것뿐이었으니까.


자식 잃은 아비가 슬피 울며 그를 기린다면 그것이 정녕 미친 자인가?


아니다. 그건 차라리 아비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며 또한 애달프고 못 다한 사랑을 떠나보내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오히려 만일 내가 지금 청이를 상실한 아픔에서 대번에 벗어나 평소와 같은 심정이 된다면, 그 냉혹한 마음이야말로 비정상—광인의 정신일 터였다.


‘그러니 나더러 어쩌란 말이오.’


나는 고민하다가 새벽녘에 겨우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또 소륜이 아침부터 날 찾아와 괴롭히는 거였다.


“오늘은 이 옷을 입어보자!”


소륜은 내게 억지로 새 비단옷을 입혔는데, 기이하게도 마치 내게 맞춰서 만든 옷 마냥 치수가 내 몸에 딱 맞아떨어졌다.


“···음, 역시! 자, 그러면 가자!”


소륜은 썩 만족스럽게 웃더니 이내 내 손을 이끌고는 어딘가로 향했는데, 이윽고 나는 넓고 화려한 식당에 들어서게 되었다.


“으음. 이번엔 그 아이더냐?”


식당에 위치한 커다란 식탁에는 딱 봐도 이 가문의 주요인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주르륵 앉아있었는데, 가장 상석에는 중년인 한 명이 나와 소륜을 바라보며 마뜩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중년인은 날 보면서 한참을 살피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곤 장내를 한 차례 둘러보았다.


“어쨌든 소륜이도 왔으니 식사합시다들.”


그리하여 나는 홍씨 일가의 아침식사에 엉뚱하게 껴들어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듯한 기분으로 밥을 먹어야만 했다.


심지어 식사 중에 소륜은 수시로 내 수저 위에다 맛있는 고기반찬 따위를 얹어주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눈치가 보이고 숨이 턱턱 막혀서 삼킨 음식이 목구멍에 얹히는 기분이었다.


‘이 여자가 미친 건가?’


그게 아니고서야 일가의 식사자리에 외인인 날 억지로 끼워놓고는 흡사 제 자식 챙겨먹이듯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다른 가족들도 이런 미친 꼴을 억지로 못 본 척 해주고 있으니, 소륜이 이러한 배려를 받을 만한 이유라곤 정신병 외엔 딱히 떠오르지가 않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리 불편한 식사자리가 파한 후, 나는 겨우 내 방으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었다.


“미치겠군. 이러려고 수도성엘 온 것이 아닌데.”


그러는데 또 누군가가 방문을 똑똑 두들기기에 나는 이번에도 소륜이구나 싶어서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이토록 사람을 멋대로 굴리면서 딴에 예의를 차리는 것이오? 문 두드리지 말고 그냥 들어오시오! 시끄러우니까!”


그러자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인상을 팍 찌푸리고 있는 어린 백희아가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야.”


백희아는 대뜸 내게 그리 말하더니 손가락을 까딱까딱 했다.


“따라와. 늦었지만 너도 스승님 아침문안인사는 드려야지.”


그러자 나는 아연하여 물었다.


“문안인사라니? 나는 아직 제자도 아니지 않소?”


“뭐래? 너 바보니? 그러니까 오히려 더 스승님 눈에 잘 들려고 노력해야 할 거 아니야? 하아···. 사형께선 왜 이딴 놈을 그리 마음에 드셔하는 건지···.”


그리 사람 면전에 대놓고 한숨을 푹푹 내쉬던 백희아는 이내 내 손을 억지로 꽉 움켜쥐고는 어딘가로 질질 끌고 갔다.


도착한 곳은 가문의 빈객들이 머무르는 별채였는데, 그곳에서도 가장 상층에 위치한 방이었다.


“제자 희아입니다. 놈을 데려왔습니다.”


“그래. 들어와라.”


방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가부좌를 틀고 있는 견옹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여유롭게 미소를 짓더니 내게 물었다.


“그래서 아침식사는 잘 했느냐?”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요리가 참 맛있긴 했습니다···.”


“으하하! 그 맛이 참으로 느껴지긴 하더냐? 부담스럽고 불편해 미칠 것 같지는 않았고?”


나는 그제야 견옹이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다 알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그가 다 알면서 이리 물어보는 의도야 뻔했다.


나는 아마도 견옹이 원하는 답변으로 예상되는 말을 입 밖으로 슬쩍 꺼내보았다.


“···그러면 설마 그 소륜 소저가 정말로 광증을 앓고 있는 겁니까?”


내 말에 견옹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러더니 날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


“이유도 없이 제게 맹목적으로 비틀린 애정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견옹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는데, 문득 나는 저 노인이 저리 눈을 게슴츠레 뜬 다음엔 반드시 누군가의 정수리가 호된 꼴을 당하는 것을 보아왔기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그러나 견옹은 내 정수리에 지팡이를 콩 내려찍거나 하지는 않고 조용히 일어나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래. 륜아 또한 광인(狂人)이다. 잘 알아보았구나. 그러나 너와는 광증의 단계가 다르니 륜아의 광증은 이미 최악의 결말에 도달했음이다.”


나는 조용히 견옹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이 자가 이리 말을 하는 건 내게 약간의 실마리를 주려는 의도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딱 거기까지만 말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알려주었으니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서 해 보거라. 본래 같았으면 내 이런 도움 따위도 결코 주지 않았을 터이나, 어찌된 일인지 운령이 놈이 네게 아주 큰 관심을 갖고 있더구나.”


“너른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공손히 인사를 한 뒤 백희아와 함께 견옹의 방에서 빠져나왔다.


“어쨌든 소저에게도 고맙고 죄송하오. 아까 내가 함부로 상황을 오해하여 막말을 한 바, 소저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턴데도 이런 자리에 안내를 해주셨으니.”


내가 아까 전의 무례를 사과를 하자 백희아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몇 마디 말을 우다다 내뱉고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러면 내일부턴 진시 전에 꼭 스승님께 문안인사를 드리도록 해! 그리고 나는 소저가 아니라 백희아 사저(師姐)야! 그야 용운령 사형께서 그토록 단단히 마음먹은 이상 네 녀석이 내 사제가 될 것은 이미 자명한 일이니까! 그러니 앞으론 나한테 존댓말 해! 흥!”


그렇게 복도에 혼자 남게 된 나는 다시금 내 방으로 돌아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수행했다.


그리 가만히 앉아있노라니 문득 참 조용하다 싶었다. 어찌된 일인지 더 이상 소륜도 날 찾아오는 일이 없이 점심 무렵이 되었다.


그쯤해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기에 열어보았더니 어제 저녁상을 차려주었던 시녀였다. 이번에도 그녀가 내 몫의 점심식사를 챙겨온 거였다.


시녀가 탁자에 요리를 차릴 적에 나는 넌지시 질문을 던져보았다.


“소륜 아가씨는 어떤 분이시오?”


“다정하고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그저 모시는 분이라 금칠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소륜 아가씨께선 도성 내에서 삼화일미(三華一美)로 불리시기도 하니까요.”


기실 내가 궁금한 건 그런 얘기가 아니었으나, 어쨌든 나는 제법 관심이 있는 척 유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시녀의 얘기를 경청했다.


하지만 시녀는 딱 표면적인 수준의 이야기들만 해줄 뿐, 심층적이고 심도 깊은 얘기는 결코 꺼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시녀에게 이 이상의 정보를 캐내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후 식사에나 집중했다.


그리고 오후 무렵에도 소륜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한가하기에 슬그머니 홍가장을 나서보았다.


‘사람이 참 많기는 하구나.’


그리 장원을 나서 도성 거리로 들어서자 오만 곳이 오가는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이내 저 멀리쯤 보이는 관문을 발견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어제 내가 출입했던 성문이었다.


그 말인 즉, 내가 만들었던 청이의 무덤이 이곳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의미였기에 나는 얼른 걸음을 옮겨 어제 들렀던 그 언덕으로 향했다.


그렇게 언덕에 도착했더니 청이의 무덤 앞에 웬 국화꽃이 놓여있었다.


그것이 의아스러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는데, 문득 저쪽에서 누군가가 날 부르는 거였다.


“우룡. 역시나 왔구나?”


“······.”


그건 다름 아닌 소륜이었다.


그녀는 어쩐 일인지 평소와는 달리 다소 처연한 얼굴로 가만히 언덕배기 돌부리 위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쩐 일인지 슬픔에 잠긴 선녀처럼 보여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저 꽃. 당신이 가져다 놓은 거요?”


내가 묻자 소륜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혹시 기분 나쁘다면 치울까?”


“아니오. 그럴 필요까진 없소···. 오히려 조금 고맙소.”


나는 얌전히 청이의 무덤 앞에 서서 묵념을 했다. 그러는 동안 어렴풋하게 국화향이 내 코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했다.


“아침엔 많이 놀랐지?”


“그렇소. 가시방석도 그런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소. 대체 왜 그랬던 거요?”


“미안해. 내겐 때때로 나 자신이 도저히 통제가 안 되는 때가 있거든.”


그러며 소륜이 말했다.


“열흘 뒤면 내 동생의 생일이야.”


“그렇소? 뭐 축하하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으나 이어지는 소륜의 말에 내가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동생의 기일이기도 해.”


생일(生日)이자 기일(忌日).


그 말인 즉, 소륜의 동생은 자신의 생일날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일 터였다.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고, 소륜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나는 동생이 제 생일을 누리지 못하고 떠난 게 늘 한스러웠어.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는 아예 그게 강박이 되어버려서는, 동생의 기일이 될 때쯤이면 꼭 동생만한 아이 하나를 찾아선 마치 그 아이가 동생인 마냥 어르고 놀아주며 옷을 입히고 생일을 축하해주는 괴벽이 생기고 말았지.”


“아···. 그래서 나를···.”


“맞아. 나는 지금 네게 생전의 내 동생을 투영하고 있는 셈이야.”


나는 침음을 삼켰다. 소륜이 광증을 앓고 있다곤 이미 얘기를 들었으나 이런 사정이리라곤 미처 상상도 못했던 탓이었다.


게다가 나 또한 최근에 청이를 잃어 큰 상실을 느끼고 있던 지라 더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그렇소. 정말 안됐구려.”


나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소륜의 괴이한 행동들 때문에 그녀를 못내 짜증스럽게 여겼으나 사정을 듣고 나니 차라리 동병상련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내 기색을 읽은 것인지 소륜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니 며칠만 조금 부탁을 할게. 동생 흉내까지 내달라는 건 아니야. 다만 내 이런 광증을 조금은 너른 아량으로 이해해주길 바라.”


“알겠소. 아니, 알겠어요···. 누님.”


내가 그리 대꾸하자 소륜이 가볍게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날 가볍게 포옹했다.


“그러면 나중에 보자. 저녁 전까진 꼭 돌아와야 해?”


그러고 소륜이 자리를 떠났고, 나는 홀로 남아 청이의 무덤 옆에 섰다.


‘너와는 광증의 단계가 다르니 륜아의 광증은 이미 최악의 결말에 도달했음이다.’


문득 견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소륜이 저러한 강박에 사로잡힌 것이 바로 광증의 결말이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이대로 가다간 저런 괴이한 괴벽을 얻게 된다는 말인가?


생각하던 중, 문득 나는 내가 사실 이미 소륜이 보였던 것과 유사한 행동을 몇 번씩이나 해왔음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나뭇가지···.’


이미 나는 성도로 오는 여정 내내 품에 챙겨왔던 감나무가지를 청이마냥 아끼고 보살핀 적이 이미 있었던 것이다.


엉뚱한 걸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선 내 증상이나 소륜의 증상이나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아무튼 그리 생각하자면 확실히 나는 정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야 나뭇가지를 산 사람마냥 취급했으니까.


하지만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했음에도 어쩐지 나는 해답을 강구해낸 느낌이 전혀 들질 않았다.


견옹이 고작 이 정도의 이유로 날 미친놈 취급하는 건 아닌 듯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만 의미 없이 흘려보내다가 나는 날이 어둑해질 무렵에 홍가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저녁 무렵, 내 방에 용운령이 찾아왔다.


“소륜과는 이미 대화를 나눴겠지?”


나는 오후 중에 백희아에게 들었던 소리가 있었기에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예. 사정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렇구나 싶을 뿐이더군요. 엉뚱한 사람을 죽은 동생으로 여기는 건 분명 괴이한 행동이긴 하나,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역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사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은 저마다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들 그런 비슷한 행동을 보이곤 해. 생전에 그 사람이 좋아했던 음식을 자신도 따라 좋아하게 된다거나, 그 사람이 오르길 즐기던 산을 자신도 따라 오른다거나, 아니면 그 사람이 아끼던 물건을 그 대신으로 아끼거나, 그 사람을 닮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둥 말이야.”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요소는 따로 있다는 얘기인 겁니까?”


내 물음에 용운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룡. 만일 네가 정말 꼭 달성해야할 목표가 있고, 그를 위해 스승님의 힘을 꼭 빌려야만 한다면, 너는 꼭 열흘 뒤까지 이곳에 머물러야만 한다.”


거기까지 말한 용운령은 방금까지의 진지한 기색을 떨쳐내곤 다소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검지로 제 입을 가렸다.


“뭐 아무튼 조언은 여기까지! 스승님께선 워낙 귀가 좋으신지라 이 이상 말했다간 역정을 내실 거야.”


그러고서 용운령이 내 방을 떠났고 나는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탓에 나는 나뭇가지를 그 대신으로 삼았고, 소륜은 엉뚱한 타인을 그 대신으로 삼았다.


그러나 용운령의 말대로라면 이런 건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진정한 답을 알고 싶다면 열흘 뒤까지 머물러야겠지.’


나는 그리 생각을 정리하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부터 매일 아침 견옹에게 찾아가 문안인사를 드렸고, 소륜이 광증을 내보일 적엔 툴툴대지 않고 적절하게 동생처럼 굴며 어울려주었다.


그러고 난 뒤 여유가 있으면 난 항상 청이의 무덤가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튿날부터 백희아가 이런 날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한 거였다.


그래서 한번은 그게 좀 불편하여 대체 왜 따라 오냐 물었더니 백희아가 짜증을 왈칵 내는 것이다.


“뭐? 너 바보야? 너 미친놈이잖아. 그러니 밖에 나갈 때면 당연히 내가 감시를 해야지!”


보아하니 용운령이든 견옹이든 누가 시켜서 하는 모양새였는데, 괜히 자기 개인시간을 나에게 뺏긴 탓에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아무튼 전생 때에도 나와 백희아는 영 죽이 맞지 않았던 느낌인데 이번 생에서도 딱히 다를 바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용운령이 약조했던 열흘째가 되었다.


나는 그날도 평소와 같은 오전과 오후를 보낸 뒤 저녁 늦은 무렵에 단정히 세수를 하고 용모를 정리한 후 예쁜 비단옷을 입고는 홍가의 가솔들이 모여 생일잔치를 벌이기로 한 식당으로 향했다.


“생일 축하한다, 태영아!”


식당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소륜이 날 반기면서 전혀 엉뚱한 이름으로 날 불렀는데, 그건 다름 아닌 죽은 제 동생의 이름이었다.


아무튼 나는 여느 때처럼 적당히 동생 흉내를 내며 분위기를 맞추어줬는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평소와 달리 다른 가솔들의 분위기가 굉장히 음울했던 것이다.


게다가 또 이상한 점이 있었으니, 분명 생일잔치가 열린 자리임에도 식탁엔 아무런 만찬이 준비되어있지 않았고, 거기에다 평소엔 늘 별채에 거하던 견옹과 용운령도 홍가의 가솔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거였다.


‘칼?’


심지어 나는 용운령이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그리고 그가 노려보고 있는 게 내가 아니라 소륜이란 것도 알아차렸다.


또한, 지금 소륜의 눈동자가 어쩐지 평소와는 달리 혼탁하고 기이한 게, 흡사 짐승의 동공처럼 싯누런 기색을 슬며시 흘리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


순간 소륜의 눈을 보며 내가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노흉이었다.


강료와 함께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문득 노흉의 눈동자가 짐승을 닮았다고 느꼈었는데 바로 그 때 느꼈던 흉흉한 기색이 지금 소륜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거였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소륜이 고개를 휙 떨구더니 가볍게 어깨를 떨었다. 그러더니 음산한 목소리로 킬킬거리며 웃기 시작하다가 흡사 미친 개새끼마냥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내는 거였다.


“···홍소륜의 광증이 시작되었다. 용운령. 보조하라. 광견(狂犬)을 축(逐)한다.”


그 순간 견옹이 그리 중얼거렸고 그의 신형이 일순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소륜의 머리 위에 나타나 지팡이를 그 아래로 세차게 내리찍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지팡이에 담긴 내력이 어마어마함을 이미 본 적이 있는지라 크게 놀랐으나 더 놀라운 일이 바로 다음 순간 벌어지고 말았다.


쩡—! 하는 소리와 함께, 소륜이 팔을 위로 들어 올려 견옹의 지팡이를 막아낸 거였다.


그와 동시에 마치 정신을 통해 전달되는 듯한 소륜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놈들이냐? 내 동생 태영이를 단약으로 갈아먹은 ‘신선(神仙)’을 자처하는 놈들이? 그럼 어디 너희들이 자랑하는 그 선력(仙力)에 네놈들 또한 갈가리 찢겨져 보거라!]


작가의말

분량이 자르기 애매해 그냥 붙였습니다 ㅎㅎ...


재밌게 봐주신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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