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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돌하르방 탄생설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중·단편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4.11.26 10:39
최근연재일 :
2014.12.10 02:06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6,505
추천수 :
16
글자수 :
56,195

작성
14.12.0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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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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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산갈치 1

DUMMY

하루는 옥환이 부루와 진조경을 불렀다.

“ 이제 몸이 예전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동안 수고 많았구나. 또 이곳 사람들 도움도 컸다. 인사도 할 겸 우리 일행의 어둥개 마을 신참례를 준비하라.”

산갈치 건을 걱정해오던 두 사람에게는 실로 반가운 지시였다. 심중에 어떤 변화가 왔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급한 불은 잡힌 셈이었다.

희색이 만면해진 부루는 덕우와 언년 어미를 찾았다. 덕우는 매월 하루씩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 무레가 있다고 설명했다. 마을비용을 염출하는 행사였다. 신참례 잔칫날을 무레하는 날로 정한 옥환은 이정에게 은자를 내놓았다. 마을잔치를 몇 번쯤은 할 금액이었다. 이정은 남는 돈을 집집마다 나누어주었고 새 옷 입은 아이들이 자랑하며 돌아다니자 마을은 때 아닌 명절 분위기가 되었다.


잔치가 벌어진 날, 옥환은 평소처럼 갈옷 차림새로 나섰다. 진조경은 황실의 위엄을 드러내는 예장을 권했지만 이곳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옥환은 갈옷을 고집했다.

“ 저는 여기서 새로운 삶을 얻었습니다. 모두가 여러분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부루의 통역으로 옥환은 이어갔다.

“ 언젠가는 왜국으로 가겠지만 그동안 여러분과 가깝게 지내고 싶습니다. 부디 마음껏 즐겨주십시오‘

그게 전부였다. 욕설 퍼붓던 아낙들에 대한 섭섭함 따위는 눈곱만치도 드러내지 않는 봄바람 같은 태도에 진조경과 부루가 의아한 시선을 교환했다. 많은 사람을 다루던 귀비라 역시 보통 사람과는 다른가?

여하튼 그날은 어둥개의 명절이었다. 빌레와 언년이는 동무들을 데려와 인사시켰고 옥환은 아이들마다 하나하나 쓰다듬고 선물도 주었다. 취흥이 오른 사내 하나가 목청을 돋우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십오야 밝은 달은 구름 없는 탓이고, 이 내 간장 타는 것은 님이 없는 탓이라

사내의 선창에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후렴으로 화답했다.

에헤야 가다 못가면 에헤야 쉬어나 가세, 호박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사우다.

다시 선창이 이어졌다.

우물가의 청개구리는 뱀의 간장 녹이고, 저기 앉은 저 비바리 이 내 간장 녹수다.

왁자지껄한 웃음과 함께 후렴이 이어졌다.

에헤야 가다못가면 에헤야 쉬어나 가세, 호박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사우다.


따로 챙긴 제물을 짊어진 부루 일행은 그 시간에 당 오름을 오르고 있었다. 팽나무 앞에 제물을 벌려놓은 부루는 빌레, 언년과 더불어 큰 절을 올렸다.

“ 덕분에 우리 마마님이 살았습니다. 신령님, 고맙습니다.”

언년 어미를 통해 잠녀들의 고단한 삶을 본 옥환은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왔다. 그 일로 본향당 할망을 찾은 부루는 산갈치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보니 주산군도 떠날 때 보았던 은색 띠가 바로 산갈치였다. 그때 선원들은 말했었다.

‘쌴따이 위이(山带鱼, 산갈치) 를 만나면 재수 없다.’

기피 대상의 흉물이기는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대항조치 따위는 생각도 못해보았고 천재지변쯤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렇다면---, 옥환은 생각했다. 한번 나서 볼만하겠구나. 산갈치 출몰을 막으려면 그 생태를 아는 것이 먼저라는 결론을 이미 내린 그녀였다.


“ 이참에 무언가 어둥개 마을을 돕고 싶습니다.”

잔치가 파장으로 접어들자 옥환이 입을 열었다. 시끌벅적 하던 자리가 조용해졌다.

“ 산갈치라는 괴어가 있다지요. 보일 때마다 안 좋은 일도 생긴다 들었습니다.”

드디어 산갈치구나!

통역하던 부루는 욕설을 퍼부은 잠녀들을 흘낏 했다. 낌새를 챈 아낙들은 대번에 얼굴이 노래진다. 얼마 전에야 옥환의 신분을 안 그녀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 뒤부터 무슨 소리만 나도 화들짝 놀라며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전전긍긍 지내왔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그녀들의 우려와는 전혀 방향이 달랐다.

“ 그 흉물을 없앨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건 어렵겠지요. 하지만 차선책으로 어둥개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방법정도는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 여기 은자 백 냥이 있습니다. 그 방법을 찾는 분께 드릴 상금입니다. 그리고 소원 하나도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제가 할 수 있는 일’ 이라면 말입니다만---.”

준비한 상자를 마연이 열어보이자 상자에 가득한 말굽은이 반짝였다.

와아--!! 환성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어부와 잠녀들은 끄덕이고 있었다.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 같았다. 밑물이 먹이를 몰고 윗물과 자리를 바꾸면 잔고기들이 따라오고 그 잔고기 떼는 방어 같은 큰 물고기를 불러들이는 법이다. 다시마 밭을 없애면 전복 또한 사라지는 것이 바다의 생태였다. 이를 아는 그들은 어쩌면 산갈치 퇴치도 가능하리라는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상금 백 냥, 그리고 한 가지 소원. 옥환이 누구인가? 대당 황제도 주무른다는 여걸 아닌가? 마음만 먹으면 탐라 왕자쯤은 충분히 움직일 권력자다. 사람들은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이미 산갈치를 잡아버린 듯한 기세였다.


그날 밤 어둥개 마을은 집집마다 늦게까지 호롱불이 꺼지지 않았다. 덕우와 진조경 역시 나름의 궁리에 빠져들었다. 한 가지 소원---,

산갈치를 쫓아내면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다!

궁리가 어른들만의 몫은 아니었다. 덕우가 옥환을 마음에 둔 눈치를 진즉부터 알던 빌레는 아비를 도우려 나섰다. 그것은 또한 빌레 자신의 소원이기도 했다.

여기저기 묻고 다니던 아이는 결국 팽나무까지 찾아갔다. 그러나 산에서만 살아온 정령이 산갈치를 알 턱이 없었다. 산갈치는커녕 갈치에 대해서조차도 맹탕이었다. 오히려 한바탕 설명만 해주고 돌아왔다.

“ 갈치는 긴 칼 모양이우다. 신라 말로 칼을 갈이라 해서 갈치라 부르우다. 입이 크고 아래 턱이 윗 턱보다 삐죽 튀어나왔는데 갈고리처럼 생긴 앞니는 무척 날카롭수다. 몸통이 온통 은색 가루라 만지면 하얗게 묻어 나우다.

깊은 밑물에 살다 가을이면 멸치 먹으러 갯가 가까이까지도 몰리우다. 어린 눔들은 낮이면 물밑에 있다 밤에만 올라오는데 해뜨기 전에 도로 가라앉수다. 반대로 큰 갈치는 밤이면 물밑, 낮에는 올라오우다. 이 눔들은 성질이 사나워 저보다 작은 갈치를 만나면 잡아먹고 동무들의 꼬리마저 잘라 먹수다. 그래서 우리 아방은 미끼로 갈치꼬리를 다는데 우리 개 사람들은 서로 헐뜯는 사람을 가리켜 갈치가 갈치꼬리를 문다고들 하우다.

이 눔들은 눈이 무척 밝수다. 오징어 새끼들이 노는 주위로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순식간에 딱 한 마리만 물어 채가는 재주는 정말 대단하우다.“


상금을 제 어미가 탔으면 하는 마음은 언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팽나무를 찾았다. 아이들이 번갈아 찾아오면서 이윽고 정령도 사태를 파악했다. 정령 역시 그녀의 생기를 갈구하고 있었다. 옥환을 곁에 두고 싶은 욕심은 덕우나 진조경 못지않았다.

신령은 윤회의 굴레를 이미 벗어난 존재였지만 정령의 격은 한참 아래다.

나무 정령이나 도깨비나 다 고만고만한 수준들이었고 그래서 끼리끼리 자주 어울렸다. 나름대로 한 나절을 궁리한 팽나무 정령은 어둑어둑해질 무렵에 누가리와 비니를 불렀다. 둘은 예로부터 본향당에 깃들어 사는 도깨비들이다.

오랜만에 보는 암컷 도깨비 비니가 예쁘장한 각시 모습으로 먼저 도착했다.

“ 어쩐 일이래? 나무 하르방이 우릴 다 찾고.”

잠시 후 봉두난발에 벙거지만 덮어쓴 누가리도 진득한 노린내를 풍기며 나타났다. 사연을 듣고 난 누가리는 불량기가 줄줄 흐르는 웃음부터 터뜨렸다.

“ 음우우아핫핫핫핫‘

시뻘건 입이 귀 밑까지 죽 찢어진다.

“ 그러니까 고 년이 그렇게 마음에 들더란 말이지?”

다짜고짜로 첫 마디가 ‘고 년’이었다.

“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잖아, 이참에 국수나 얻어먹지.” 비니도 헤실 댔다.

‘ 여하튼 산에 있는 내가 산갈치를 어쩌겠나? 자네들이 한번 나서 주게.’

정령은 빌레나 부루 때와는 달리 납작 엎드린 저자세였다.

“ 그럼, 그럼. 우리가 어디 한두 해 사인가? 이럴 때 돕고 살아야지. 요컨대 산갈치만 얼씬 못하게 하면 되는 건가?‘

누가리는 아주 시원시원하게 나온다.

“ 자주 오지도 않는 산갈치를 가지고 왜 난리들이람?” 비니가 종알댔다.

‘ 나타나기만 하면 꼭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며 인간들은 싫어해.’ 정령이 설명했다.

“김 서방 소갈머리 하구는, 조잔하게--- ”

김 씨는 누가리가 아는 유일한 성씨였다. 그래서 누가리에게 인간은 다 김 서방이었다.

“ 갈치는 멸치나 오징어, 문어를 좋아해.”

“ 산갈치는 청어 대왕이야. 청어 떼를 몰고 다니지.”

“ 깊은 바다에서만 살던 산갈치는 물 위에 나오면 힘을 못 쓰고 비실대지.”

별 쓸모없는 지식들만 번갈아가며 늘어놓자 나무 정령은 속이 끓었다.

“ 아,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안 나타나게 할 수 있는데--?”

“ 벅수(장승)를 세워.”

“ ---?”

뚜벅 던지는 누가리의 느닷없는 말에 어리둥절해진다.

“ 우리 닮은 벅수를 여기저기 세우라구, 지키고 있다 산갈치가 오면 내쫓을 테니까.”

역시 자상한 비니였다. 그런데 ‘우리 닮은 벅수?‘

비니야 나름 고운 모습이지만 누가리는 누가 봐도 험악하다. 짧은 이마의 둥근 주름 아래에서 눈까지 두터운 눈썹이 덮고 있다. 툭 불거진 퉁방울 눈, 주먹코에 윗입술 아래 네모진 이빨을 드러내고 외가닥 수염이다. 정령은 갸우뚱 했다. 사람들로부터 인기 있는 벅수 되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쩌랴? 산갈치 모르는 죄로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을---,


그날 밤 옥환에게 현몽한 정령은 누가리와 비니 모습의 벅수를 마을 주위에 세우라 일렀다. 반신반의하던 그녀는 부루와 마연 역시 같은 꿈을 꾸자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이정과 마을 사람들은 갸우뚱 했다. 벅수란 원래 흉사에 세우는 법이다. 태평세월에는 오히려 불길하다. 더군다나 그녀들이 설명하는 돌장승의 모습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 그건 도깨비지 마을을 지키는 벅수가 아니우다.‘

그러나 나무 정령의 능력을 아는 부루는 장승을 주장했고 옥환 역시 동조해 결국 세우기로 했다. 산갈치 퇴치행사의 물주는 그녀들이었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상 새겨온 것을 보니 사나워 보이는 부분은 대충 지워버린 조금은 해학적인 돌하르방이었다. 탐라 특유의 억센 고집이 만든 결과였다. 이미 새긴 것을 어찌할 수도 없어 그대로 주변 갯가에 세우기로 했다. 그러자 누가리는 성질을 있는 대로 부리며 날뛰었다.

“ 이게 어디가 날 닮았어. 김 서방 믿은 내가 잘못이지, 산갈치고 뭐고 이제 난 모른다.‘

나무 정령은 결국 헛품만 한바탕 팔고 만 셈이었다.

정령은 경쟁자인 덕우와 진조경를 한바탕씩 훼방 놓을 속셈이었다. 벅수 건으로 삐진 것도 달랠 겸 새 장난거리를 설명하자 금세 화가 풀린 누가리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도깨비들은 솥뚜껑을 솥 안에 넣고 소를 지붕에 올려놓는 심술궂은 장난을 즐긴다. 재미, 신명, 흥, 이 셋이 도깨비의 주특기다.

하나밖에 없는 다리 때문에 자꾸 지면서도 끈질기게 씨름하자며 덤비고 막걸리를 좋아하며 체면을 중시한다. 힘이 장사고 신통력도 있어 부자로 만들기도 하고 망하게도 한다. 그러나 미련해 걸핏하면 인간에게 속아 넘어간다. 속은 줄 알면 복수한답시고 대들지만 오히려 도와주는 엉뚱한 결과를 빚기도 했다. 누가리와 비니는 두 사람 주변을 서성이며 훼방 놓을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장승 3.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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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갈치 1 14.12.08 530 2 12쪽
11 갈등 4 14.12.06 435 2 11쪽
10 갈등 3 14.12.05 427 0 10쪽
9 갈등 2 14.12.04 444 0 9쪽
8 갈등 1 14.12.03 472 0 7쪽
7 귀비 망명 4 14.12.02 393 2 9쪽
6 귀비 망명 3 14.12.01 480 1 7쪽
5 귀비 망명 2 14.11.30 385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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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탐라의 아이들 2 14.11.27 382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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