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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돌하르방 탄생설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중·단편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4.11.26 10:39
최근연재일 :
2014.12.10 02:06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6,506
추천수 :
16
글자수 :
56,195

작성
14.11.28 06:12
조회
446
추천
2
글자
10쪽

탐라의 아이들 3

DUMMY

며칠 후,

샘터 팽나무에 기대 쉬던 빌레는 어쩐지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느꼈다. 늘 고즈넉하던 숲속이 술렁대는 것 같다. 의아하게 둘러보던 시선이 얼마 전 심은 삭정이에 멈추면서 휘둥그레진다. 파릇파릇 새순이 돋고 있지 않은가?

이 무슨 도깨비장난 같은 ---!

땅에 꽂아둔 큰 스님의 지팡이에서 싹이 터 거목으로 자랐다는 옛말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술렁임은 살아난 삭정이를 반기는 숲의 기운일까? 잎이 돋는 삭정이 주변을 꾹꾹 밟아 다져준 빌레는 나무에 기대 잠들었다.


불그스름한 얼굴의 백발노인이 묻는다.

" 얘야, 이름이 뭐냐?"

어딘지 위엄을 풍기는 노인이라 공손히 대답했다.

" 저는 어둥개 마을 빌레우다."

" 지켜보니 넌 참 좋은 아이더구나."

지켜보다니? 숲이나 마을에선 본 적이 없는데 -- ,

" 하르방도 어둥개 사수꽈?"

" 아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여기 살았지."

여기? 아마도 어딘가의 이웃 마을이겠지.

" 빌레 넌 일찍 어미를 잃었지?"

아니, 처음 보는 노인이 어찌 --- ?

" 천지신명도 어미, 자식 간의 애틋한 정에는 감응하는 법. 네 눈물이 그 삭정이를 살렸느니라. 나는 네가 기댄 팽나무다."


놀라움보다 신기함이 앞선다.

" 그럼 신령님이우꽈?"

" 무슨 신령씩이나--, 정령쯤으로 해두자."

신령이든 정령이든 아이에게는 그게 그거였다.

" 옛말에 나오는 신령님이 정말 계신 줄은 몰랐수다."

" 알았으니 이제 가끔 놀러오너라."

신령님이란 존칭에 머쓱해진 나무 정령은 의뭉스럽게 코를 킁킁 댄다.

" 하르방 댁은 어디우꽈?"

" 내 둥치에 손을 대고 스스로가 나무라 생각해 보려무나."

스르르 사라진다.

" 하르방, 하르방!"

제 소리에 놀라 퍼뜩 깨어났다.

초록 잎사귀 틈새를 비집은 해맑은 햇살 한 조각이 어리둥절한 아이의 가무잡잡한 이마에 내려앉아 반짝인다. 꿈치고는 너무 생생했다. 기댔던 나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둥치가 두 아름 넘게 굵을 뿐 흔한 팽나무였다. 여기 신령님이?

미심쩍은 기색으로 만지려다 흠칫 옴츠린다. 더럭 무섬증이 인다. 잠시 머뭇대다 굵은 둥치에 슬그머니 손바닥을 붙여보았다. 까칠까칠할 뿐 아무 일도 없다. 안심한 아이는 이윽고 눈을 감고 나무를 자기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깊숙이 뻗은 뿌리에 마음을 두자 긴 잔뿌리로 흙속을 헤집는 느낌이 온다. 땅 속은 어둡고 축축했다. 음산한 어둠이 싫어진 아이는 둥실 떠있는 뭉게구름을 향해 뻗은 가지와 푸른 잎들을 생각했다. 그러자 살랑대는 산들바람이 볼을 간질이는 느낌이 온다. 따뜻한 볕이 땅속의 습기로 축축해진 뺨을 보송보송 말려준다. 상쾌하다. 그런데----,


어쩐지 손바닥의 느낌이 다르다? 눈을 떠보니 손은 나무속으로 사라지고 손목만 보이지 않는가? 그것은 실로 괴기스러운 장면이었다. 질겁한 빌레가 후다닥 물러서자 나무에 박혀버렸던 손도 쓱 따라 나온다.

이 무슨!?

단단한 무엇과 닿았던 느낌이 전혀 없다. 놀란 아이는 손을 맞잡고 우두커니 있었다. 와들와들 떨린다. 잠시 후 떨림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다시 만져보았다. 역시 쑥 들어가 버린다. 정말 신기했다. 그러나 망설여진다. 하지만...

설마... 괜찮겠지, 하르방도 놀러오라고 허락하셨는데... 결심한 아이는 팔을 넣고 연이어 머리까지 디밀었다. 그리고... 신기한 세상이 나타났다.

나무속은 결이 고운 나무로 지어진 방이었다. 벽에는 크고 작은 검은 구멍들이 군데군데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넋을 놓고 두리번거리다 이내 머리를 빼냈다. 그러나 다시 보아도 역시 평범한 팽나무일 뿐이었다. 머뭇거리던 아이는 한 걸음 내디뎠다. 거침없이 들어간다. 이내 몸뚱이도 다 들어왔다.

방안에는 향긋한 나무 향이 청량하게 흐른다. 더럭 겁이 난다. 이러다 갇혀 버리면? 머리를 내밀자 바로 샘터다. 누가 보았다면 나무에 돋은 아이의 머리에 소스라쳤을 것이다.

이윽고 안심한 아이는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벽의 구멍들은 비탈들로 이어졌다. 아마도 오르막은 가지로, 내리막은 뿌리로 이어진 통로이리라. 아담한 방안은 창문도 없는데 환했다.

‘ 하긴 고개만 내밀면 보이는데 뭔 창이 왜 필요하겠어. 근데 하르방은--?’

다음 순간 이 방이 곧 하르방임을 깨달았다. 조심스레 불러보았다.

" 하르방, 듣고 계시우꽈?"

껄껄대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느껴진다.

" 기특한 녀석, 꿈을 믿고 여기까지 오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살던 세상은 아니었다. 신선들이 노닌다는 선경일지도--.

" 하르방, 여기 다른 사람도 온 적 있수꽈?"

" 여긴 착한 사람만 올 수 있단다."

대답이 어째 분명치 않다.

알고 싶은 것은 언년이도 올 수 있는지 여부였다. 제아무리 신기한 것일지라도 동무와 나눌 수 없다면 재미가 없는 빌레였다.

" 데려와 보렴. 네 동무면 역시 착한 녀석일 터이니."

묻기도 전에 대답이 돌아온다.

" 네 손을 잡으면 들어올 수 있단다."

하르방, 아니 신령님은 잠시 후 덧붙였다.


" 너 뭔 일 있지?"

무레 나온 주제에 딴전만 피우는 빌레를 유심히 지켜보던 언년이가 물었다. 빌레로서는 뭔 일 정도가 아니었지만 막상 설명을 들은 언년이는 뜨악한 표정이다.

" 아직 낮잠 덜 깼니?"

" 아니야아 ---,. 흠생이 너도 가보면 알아."

어쭈, 또 흠생이? 그러나 꾹 참는다.

" 그래 알았어. 우리 낼 가보자."

(★ 무레 : 마을 경비마련을 위해 매달 한차례씩 공동으로 하는 해산물 채취 작업)


다음 날, 아이들은 일찌감치 허벅을 지고 당 오름을 올랐다.

" 자, 보여줘."

샘가의 팽나무 앞에 도착한 언년은 앙큼한 표정으로 턱을 쳐들더니 허리에 양손을 척 짚는다.

‘나무속? 말이 되는 소릴 해라. 뻑 하면 흠생이 들먹이는 녀석을 이참에 확!’

단단히 벼르는 언년이였다. 그러나 빌레는 자신만만하게 팽나무에 손바닥을 붙인다. 제법 그럴듯하게 눈까지 척 감고 있다.

긴가민가하던 언년이는 동무의 손이 나무 속으로 쓰윽 하니 스며드는 것을 보자 얼어붙었다. 벌써 더위지기 시작하는 초여름의 날씨인데도 몸이 싸늘하게 식으며 소름이 쫘악 돋는다. 씩 웃어 보인 동무는 이내 나무속으로 사라졌다.

" 빌레야, 빌레야, 내말 들리니?"

놀란 언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부르짖었다.

" 나 여깄어. 들어와."

나무 둥치에서 머리가 쑥 튀어나온다.

" 꺄악, 저리 치웠."

쑤욱 솟아나온 손이 잡으려들자 화들짝 놀란 소녀는 펄쩍 뛰며 물러선다.

" 괜찮아. 내 손 잡아."

몸통 없는 머리가 씩 웃는다.

어쩐지 미심쩍다. 하지만 마지못한 척 슬며시 손을 내주는 언년이다.

" 이제 들어와."

머리는 사라지고 소리만 들려온다. 손을 이끌리며 주춤주춤 발을 옮겼다. 이윽고 작은 몸뚱이는 사라졌다.


" 옴마야! 이거야 정말! 정말 굉장하다!"

방은 어제보다 더 넓어져 있었다.

" 어때. 내 말 맞지."

의기양양 하다.

" 게메, 이게 대체 뭔 조화라니?"

사실 빌레도 아는 건 별로 없다. 머쓱해진다.

" 여긴 아마 다른 세상인가 봐."

그건 언년이 역시 마찬가지 느낌이었다.

" 우선 인사부터 드리자. 근데 어떻게 불러야 되지?"

" 나무 정령이라고 하셨거든. 그러니까 신령님이지 뭐."

" 신령님, 집 구경시켜주셔서 촘말로 좋수다."

나란히 선 아이들은 큰절을 올렸다.

" 어디 계신지 모르니 사방으로 하자."

한차례 절한 빌레가 말했다.

" 됐다. 인석들아."

방향을 바꾸어 다시 엎드리려 하자 껄껄대는 기색이 느껴졌다

" 저희가 보이수꽈?" 주춤한 빌레가 허공에 대고 말했다.

" 그럼, 보이구 말구." 느낌은 둘에게 동시에 전해졌다.

" 신령님, 전 얘 동무 언년입니다."

신령님은 다행히 반겨주었다.

" 잘 왔다. 전에 놀러오던 여자아이 뒤로는 너희가 처음이로구나."

" 저희 말고도 누가 다녀갔수꽈?"

" 그랬단다. 기씨라는 여자 애였는데 벌써 오래 전이지. 이곳 사람은 아니었어. 피난 온 백제 아이였는데 바람이 드세 무섭다고 했지. 어느 날 대국(당나라)으로 간다며 떠났어."

예로부터 뱃길에 익숙한 백제 사람들은 탐라에 자주 들렀다. 부친 덕우도 백제 배들이 많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아이도 아마 그들 중 하나였겠지.

그날 하르방은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르방은 무척 아는 게 많았다. 정령은 세상만물에 다 있고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물건에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장인의 혼이 깃든 진품들은 정령들이 먼저 알아본다고 했다. 하지만 하르방은 숲을 떠날 수 없어 탐라 사정을 다 알지는 못했다.

원래 나무 정령에게는 치료하고 마음을 달래주는 힘이 있다.

" 가끔 와서들 한숨씩 자고 가려무나."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며 낮잠 자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따로 없을 것이었다.

그 뒤부터 지쳐 찾아온 아이들은 나무속에서 쉬며 원기를 되찾곤 했다. 응어리진 빌레의 슬픔 역시 서서히 가시고 있었다. 그러나 나무속 세상을 넘나드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아이들은 알지 못했다.

호랑이.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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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갈등 4 14.12.06 435 2 11쪽
10 갈등 3 14.12.05 427 0 10쪽
9 갈등 2 14.12.04 444 0 9쪽
8 갈등 1 14.12.03 472 0 7쪽
7 귀비 망명 4 14.12.02 393 2 9쪽
6 귀비 망명 3 14.12.01 480 1 7쪽
5 귀비 망명 2 14.11.30 385 1 8쪽
4 귀비貴妃 망명 1 14.11.29 407 1 8쪽
» 탐라의 아이들 3 14.11.28 447 2 10쪽
2 탐라의 아이들 2 14.11.27 382 1 7쪽
1 탐라의 아이들 1 14.11.26 650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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