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풍요의 사도 (3)
[풍요]의 아티팩트를 들고 있는 인간이 황제 사과를 팔아치우고 있다.
조악한 짝퉁을 파는 게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황제 사과를 팔고 있다.
‘지금은 당장 물건이 없어서 못 보내주지만, 백화점에서 예약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받을 수 있을 거다. 게다가 백화점 수수료를 안 내도 돼서 가격도 싸다.’
이런 식으로 계약만 맺고 나중에 보내주겠다는 식으로 계약을 맺으며 돌아다니고 있다.
솔직히 속은 사람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 속는지도 이해가 안 되니까.
상식적으로 백화점에서 팔기에도 물량이 부족한 물건을 외판원이 돌아다니면서 파는 게 말이 돼?
아, 상품 가치가 떨어져서 백화점에서는 못 파는 물건이라고 했을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 속을 수도 있나?
아니, 역시 이상하다.
“아티팩트라는 게 정확히 어떤 물건인가요? [풍요]의 아티팩트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요.”
사람들이 속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기꾼이 [풍요]의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 죽은 뒤 남긴 잔재. 혹은 신이 지닌 힘을 희생해서 만들어 내는 물건이에요. 신의 권능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물건이죠.”.
우리 누님이 없는 살림에 어떻게든 짜내 만든 아티팩트를 들고 사기를 치는 전직 풍요의 사도라.
꼭 성공하고 돌아오겠다고 땅문서 가지고 나간 형이 도박장에서 그 땅문서를 날려버리는 광경이 떠오르는 건 내 피해망상일까.
“신분 증명에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인가요?”
“네. 사도가 다른 신의 아티팩트를 다루면서 그 신의 사도라고 사칭까지 하는 것은 금기예요.”
금기라. 그것만으로는 부족한데. 어디 사기꾼이 금기를 어기는 게 하루 이틀 일인가.
“그리고 신의 허락 없이는 다루기 어려운 물건이기도 하고요.”
“어려울 뿐이지 불가능한 건 아니죠?”
“그렇게는 한데 궁합이 정말 나쁘면 아예 다룰 수 없어요.”
해수진은 사기꾼이 풍요의 사도라고 꽤 확신하는 눈치였다.
자기가 어느 신의 사도라고 하면서 그 신의 아티팩트를 제대로 다룬다면 그의 말은 사실이다. 이게 이쪽 세계의 상식이란 말이지.
“그러면 [풍요]의 아티팩트를 나름대로 다루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건데. 그 사기꾼은 그 아티팩트로 대체 어떤 모습을 보여줬길래 그렇게 믿어요?”
실제로 황제 사과를 키워내기라도 했나?
“씨앗에서 단숨에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보였다고 해요.”.
“고작이요?”
씨앗에서 꽃?
마술사처럼 바꿔치기한 거 아니야?
“그것만으로 믿는다고요? 애초에 황제 사과가 정말 풍요의 축복으로 만들어졌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황제 사과가 풍요의 축복으로 자랐는지는 몰라도 그 아티팩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랑은 같았다고 해요.”
단독으로 있을 때는 정체를 알 수 없어도 비교 대상이 있으면 알 수 있다는 뜻이구나.
“순환 상사에서 사기라고 공표하기는 했는데 대체 주문한 황제 사과가 언제 오느냐는 항의 전화가 계속 들어온대요.”
“사기당한 게 아닌가 확인하는 게 아니라 항의한다고요? 그 사기꾼은 이튿날 바로 보내주기로 약속하기라도 했대요?”
사기당했다는 생각에 밑져야 본전이라고 찔러보는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아, 젠장.”
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진실 따위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비유하자면 직급이 적힌 명함을 들고 다니는 인간이 법인 인감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아.”
그 말에 해수진도 이해한 눈치였다.
풍요의 사도로 보이는 자가 [풍요]의 아티팩트로 신분을 증명했다.
그러니 [풍요]가 책임을 져라.
이 주장을 관철할 수만 있다면 사기꾼에서 사는 편이 황제 사과를 싸게 사서 빠르게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해수진이 그 사기꾼이 풍요의 사도라고 확신하는 걸 보면 널리 받아들여질 주장인 것 같고.
또 순환 상사의 경쟁자나 다른 사과 농원에서 [풍요]를 사기꾼 집단을 몰아갈 수도 있다.
그래야 황제 사과를 향한 관심도 함께 식을 테니까.
“하루라도 빨리 그 사기꾼을 처리해야겠네요.”
이 문제를 외면하면 [풍요]의 이미지가 더럽혀지고, 황제 사과 판매에도 악재가 되고, 앞으로 다른 작물을 팔 때도 걸림돌이 되겠지.
황당하고 억울한 일이기는 한데 돈 냄새가 나는 일에는 해충이 꼬이기 마련.
넘어야 할 시련이다.
자, 생각하자.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로한을 보내는 건 안 된다.
부정이 물러갔다고 해도 빈틈은 여전히 있는 상태.
방심했을 때 치고 들어오면 낭패다.
로한을 두고 내가 간다? 너무 오래 걸릴뿐더러 주객전도다.
하는 수 없네.
이쪽이 못 가면 저쪽이 오게 하는 수밖에.
“의뢰해도 될까요?”
“어떤 의뢰인가요?”
“현상금을 걸어주세요. 생포하면 황제 사과 100개. 그리고 아티팩트 값은 별도로 치르겠다고.”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하는데.
황제 사과 100개 플러스알파로 어디까지 부릴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자.
***
선전포고 한번 잘못 걸었다가 빈털터리가 된 김윤혁.
현재 그는 포로 상태다.
비록 신체의 자유는 있었지만, 물리적 굴레보다 훨씬 무거운 ‘압류’라는 이름의 굴레가 씌워진 상태였다.
현금만이 아니라 포인트마저 압류당하는 상태였다.
처음에는 수입의 50%라는 비율로 시작했던 압류 비율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 최대 95%까지 올라간다.
이 비율은 배상금을 받는 자에게 도착할 때까지 계속 올라간다.
제발 비율을 낮춰달라는 협상을 하기 어려우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배상금 수령자에게 달려가는 게 좋았다.
습득하는 포인트의 95%의 압류당한다?
사도 생활은 끝났다고 봐도 된다.
돈의 95%를 압류당하면 무소유의 삶을 살아야 하고.
최대까지 올라가면 상대에게 목줄을 제대로 잡히는 셈이다.
하지만 김윤혁은 아직도 출발하지 않았다.
사도의 삶을 끝내고 아무도 없는 블록에 들어가 자급자족하며 살아갈 생각은 당연히 아니었고.
‘언데드가 필요해!’
언데드 없는 부정의 사도는 오징어 없는 오징어튀김, 붕어 없는 붕어빵, 회 없는 초밥.
헤라클래스에는 훨씬 못 미치더라도 나름대로 쓸만한 예비 언데드가 있어 그 혼자만이라면 당장에라도 출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5기 부정의 사도들은 달랐다.
그들은 여기에 오고 며칠 안 돼 재산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다룰 언데드도 없었다.
그들에게 줄 언데드들을 마련하기 위해 김윤혁은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죄책감이나 책임감보다는 일손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하루라도 빨리 빚을 청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 행동이었다.
언데드를 만들려면 몇 가지 재료가 필요했다.
우선 핵심 재료인 해골은 직접 던전에 들어가 구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상점을 이용해야 했는데 예산이 부족했다.
일반적인 상점을 사용했다면 절대로 재료를 갖출 수 없었겠지만, 없는 살림에 헤라클래스를 만들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덕택에 그에게는 나름대로 인맥이 있었다. 참새 눈물 같은 예산으로 쓰레기 같은 재료를 구할 수 있었다.
적은 자원으로 어떻게든 강한 언데드를 만들려고 노력한 경험이 있어서 그는 질 나쁜 재료로도 해골 병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완성한 해골 병사들을 5기 부정의 사도들에게 나눠줬다.
“다뤄봐라.”
[부정]이 지급한 해골 병사는 잘 만든 게임의 게임 캐릭터처럼 간편하게 조종할 수 있었다.
한편 김윤혁이 만든 해골 병사는 실로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 수준.
문명의 이기에 길든 5기 부정의 사도들은 해골 병사를 일으키지도 못했다.
“형편없잖아.”
병사들을 사지로 밀고 들어간 지휘관이 모든 장비를 잃자, 몽둥이를 쥐여주며 싸우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5기 부정의 사도들은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한 눈으로 김윤혁을 봤다.
“불만 있냐? 불만 있으면 어쩔 건데? 너희에게 나 말고 기댈 곳이 있을 것 같아?”
빚더미에서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을 찍게 된 5기 부정의 사도들에게는 김윤혁을 쫓아간다는 선택지 말고는 없었다.
“쯧. 기다려라.”
지금 5기 부정의 사도들이 해골 병사를 다루는 꼴을 보면 일을 해결하기는커녕 망칠 게 뻔했다.
해골 병사들이 황제 사과를 긁고, 으깨고, 떨어뜨려 흠집을 내는 광경을 상상한 김윤혁은 부르르 떨었다. 그랬다가는 빚이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기만 할 테니까.
빚이 늘어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랬다가는 힘겹게 들어가도 쫓겨난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만으로는 안 돼.’
최단하는 그에게 빚을 갚으며 정보를 모으고 또 황제 사과를 안정적으로 수급할 방법을 찾아오라는 임무를 맡겼다.
그 일에 성과를 낸다면 10억이라는 빚을 조금이나 줄일 수 있을 될 터.
반대로 실패하면 새로운 언데드의 재료가 될지도 몰랐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와 부하들이 도움이 된다고 소드마스터의 제자를 설득해야 한다.
아직 미숙하니 봐달라는 말은 [부정] 내부에서조차 안 통한다.
일 인당 최소 농부 1.5인 분은 해야지 겨우 블록에 들여보내 줄 거다.
김윤혁은 익숙한 가게로 갔다.
“어서 옵쇼. 어이쿠, 이거 우리 빈털터리 양반 아니야.”
“이거 줘요.”
그는 해골 병사의 조작감을 개선할 때 사용할 재료 목록을 내밀었다.
“대금은?”
“이걸로.”
김윤혁은 이를 악물며 아껴뒀던 소재를 내밀었다.
희소성을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 낭비할 소재가 아니었다.
헤라클래스를 강화하려고 웃돈을 주고 겨우 얻은 물건인데 정가보다 밑지고 팔게 됐다.
“휘~유.”
가게 주인이 웃는 모습에 김윤혁은 배알이 꼴렸다.
“덤 좀 얹어 줘야겠어.”
가게 주인은 한 말을 지켜 덤을 약간 얹어줬다.
하지만 김윤혁이 손해 본 것을 벌충하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좀 더 줘요.”
“누구는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아나. 안 돼.”
“지금 이거 작별 인사가 될 수도 있다고요?”
“그렇게 말하니 내가 또 마음이 약해지네.”
가게 주인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한 뒤.
“그러고 보니 자네 황제 사과를 찾다가 털렸다 그랬지? 재미난 정보가 있어.”
가게 주인은 있지도 않은 황제 사과를 팔고 다니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냥 사기꾼이잖아요?”
“그게 또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야. 나름대로 깨어 있다는 인간들도 속아 넘어가고 있거든. 황제 사과와 아예 연관이 없는 인물은 아니라는 뜻이지.”
김윤혁은 인간쓰레기의 냄새를 맡았다.
혈연, 지연, 학연, 신앙 등 공유하는 무언가를 빌미로 빌붙는 인간의 냄새를.
“여기까지는 다른 사람들도 대충 아는 정보고. 지금 막 들어온 따끈따끈한 정보가 있어.”
“끌지 말고 빨리 말해 봐요.”
“현상금이 붙었어. 생포하면 황제 사과 100개. 사기꾼이 든 [풍요]의 아티팩트를 확보하면 별도 보수.”
김윤혁은 즉시 짐을 움켜쥐었다.
“덤 감사요.”
“오냐. 고마우면 다음에 또 와라.”
김윤혁은 빠르게 걸으며 계산했다.
황제 사과 100개를 현상금으로 걸 정도로 거슬리는 인간이 [풍요]의 아티팩트까지 들었다.
이보다 적절한 선물이 어디에 있을까.
잡아가면 무조건 소드마스터의 제자가 차지한 블록에 들어갈 수 있을 거다.
***
“뼈 빠지게 일하겠습니다! 제발 우리를 받아주십시오!”
내게 전쟁을 걸었다가 포로가 된 부정의 사도들.
이들은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 해골 병사들을 데리고 와서 뼈 빠지게 일하겠다고 했다.
개그인가?
“그리고 이놈 잡아 왔습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해골 병사가 묶인 남자를 끌고 왔다.
이들의 이동권을 생각하면 현상금을 건 날 즉시 잡아서 끌고 온 셈이다.
역시 황제 사과 100개쯤 현상금으로 걸면 일 처리가 빠르구나.
나는 남자를 살폈다.
아, 그러네.
확실히 느낌이 온다.
이 인간에게서 [풍요]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게 [풍요]의 아티팩트 때문인지 아니면 이 인간이 풍요의 사도라서 그런지 여전히 모르겠다.
지금부터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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