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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곰 님의 서재입니다.

지렁이의 능력이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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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곰
작품등록일 :
2023.01.01 05:31
최근연재일 :
2023.02.10 12:5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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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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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글자수 :
228,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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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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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길드 창설 (2)

DUMMY

방만철이 문득 정화영을 바라봤다.


앞에 앉아있는 정화영은 어디서 났는지 초코바를 하나 꺼내 냠냠 먹고 있었다.


갑자기 떠오른 궁금증이다.


정화영은 어쩌다 저렇게 살이 찐 거지?


순간 호기심에 묻고 싶었지만 자칫하다간 실례가 되는 질문일 수 있어 참아 넘겼다.


그때 초코바를 먹던 정화영이 갈증이 났는지 마실 것을 찾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이내 냉장고를 열고 이곳저곳 뒤적이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방만철은 이제 그냥 그러려니 했다.


방만철은 석현준과 둘이 있게 되자 작은 목소리로 줄곧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그런데 저분은 저렇게 살이 쪄서 헌터를 할 수 있겠어요?”


그러자 석현준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건. 그만한 사연이 있어. 원래 화영이가 저렇지 않았는데 얼마 전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있었어.”


그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정화영이 기르는 고양이 중 한 마리가 고양이 별로 떠났다. 그 후 우울증과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이후 폭식으로 버틴 모양이었다. 그 이면에 다른 사연이 있는 것 같지만 그것까진 석현준도 알지 못했다.


석현준의 이야기를 들은 방만철은 생각했다.


‘설마, 얼마 전에 죽은 그 고양이가 나야?’


어리둥절했다. 자신의 죽음이 그 정도였나?


“흐음···”


생각해보니 마음이 여리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고양이를 많이 아꼈으니까.


방만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주방에 앉아서 코코아를 홀짝이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수납장에서 다른 간식을 찾았는지 그것도 옆에 놓여 있었다.


방만철의 눈에 안타까운 빛이 어렸다.


과거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우울증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망가진 뒷모습을 보고 있자 측은지심이 들었다.


문득 위험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을 끝까지 치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카페에서도 그랬고 호텔에서도 그랬다. 혼자 몸을 피할 수 있었는데도 남아서 사람들을 도왔다. 자칫하면 본인이 죽을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그래. 그녀는 참 헌터가 되고 싶어 했지.’


갑자기 뭉클한 감정이 확 올라왔다.


생각해보니 그녀에게 신세 진 게 있다. 처음 게이트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준 게 누군가. 그리고 고양이의 몸으로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해준 게 누군가.


침묵하던 방만철이 입을 열었다.


“아! 오케이! 알겠어요.”


“어? 정말? 하겠다는 건가?”


“예. 하겠다고요.”


그 말에 석현준이 아이처럼 기뻐했다.


“하하! 잘 생각했어! 자네는 훌륭한 헌터가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지! 이제부터 나만 믿고 따라오게! 앞으로 한 식구인데 잘해보자고!”


석현준이 방만철을 와락 안으며 웃었다.


“아익! 비켜요! 고양이 똥만 생각하면 짜증 나니까.”



***



정화영과 석현준, 방만철은 함께 가까운 헌터협회지점을 찾았다. 그곳엔 길드센터도 같이 있었다.


길드 등록을 안내하는 직원이 묘한 눈빛으로 앞에 선 세 사람을 바라봤다.


해골처럼 비쩍 마르고 기다란 아저씨. 그리고 초고도비만으로 다이어트가 필요해 보이는 여자. 마지막으로 기타를 들고 있는 잘생긴 남자.


‘뭐지? 이 조합은?’


기타는 왜 들고 왔지? 어디 방송국 오디션 가야 할 걸 잘못 온 건가?


그리고 중간에 여자는 어디 체육관 등록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저 아저씨는 며칠 굶어 보이는 게 일단 식사부터 하셔야 할 것 같고.


그들은 한동안 대치하듯 서로를 바라봤다.


“···”


“···”


확인차 직원이 다시 물었다.


“뭐 하러 오셨다고요?”


“길드 등록하려고 왔다니까요. 자. 이렇게 셋이. 원 투 쓰리. 세 명이면 되잖아요. 맞죠?”


“네. 그렇긴 한데. 아! 일단 헌터증부터 보여주세요.”


셋은 모두 헌터증을 꺼내 건넸다.


방만철의 헌터증은 조금 전 만든 따끈따끈한 헌터증이었다.


등급은 상위 20%에 해당하는 A급. 어느 길드를 가더라도 환영받을 인재였다.


이 바닥 생태계를 잘 알고 있는 석현준은 이수호를 더더욱 꽉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머지않아 누군가 이수호에게 접촉해올 것이다.


본인이 홍보하지 않는 이상 A급 헌터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A급 신입이 나타났다는 정보는 뒤로 보이지 않는 선이 연결된 사람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각 길드에서 사람들이 접근해오겠지.


석현준은 풋내기인 이수호를 잘 꼬드겨서 절대 아무에게도 뺏기지 않을 생각이다.


길드센터 직원이 헌터증을 확인하고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여기 서류 몇 장 작성해주세요.”


석현준이 펜을 들고 서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몇 자 적어 내려가던 석현준은 길드명을 적는 칸에서 펜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길드명을 생각해두질 않았다.


“우리 길드 이름 뭐라고 하지?”


석현준이 갑자기 물었다.


“아니, 여태 그것도 안정해놨어요? 그렇게 생떼를 쓰더니 그런 것도 안 만들어 놓고 뭐 한 거예요?”


“···그게 아니라, 나는 최소한의 길드원이 모이면 같이 논의하려고 했지. 자 다들 좋은 생각 있어?”


“냐옹냐옹 길드.”


정화영이 불쑥 말했다.


“···”


석현준이 건조한 눈빛으로 정화영을 슥 내려다 보고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 저쪽에 앉아서 천천히 정해보자고.”


그렇게 셋은 길드센터 한쪽에 마련된 휴식 공간에 둘러앉았다.


“고양이 길드!”


“아니, 고양이는 빼고···”


“이수호 필름은 어때요.”


“필름? 무슨 영화사 차려?”


그랬다. 그건 방만철이 언젠가 세울 영화사 이름 후보였다. 이름 뒤에 필름을 붙이는 것.


“아니면 뭐 이수호 픽쳐스나 레디액션? 이런 거?”


“아니, 그런 이름은 진짜 영화사 쪽이잖아!”


“러시안블루! 브리티시쇼트헤어! 스코티시필드!”


“그건 또 뭐야!”


“고양이 품종!”


“···”


석현준이 할 말을 잃었다.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던 방만철이 말했다.


“남신강림 어때요.”


“···”


석현준은 순간 길드 창설 서류를 찢어 버릴 뻔했다.


‘안되지. 참자 참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순간 석현준도 생각난 게 있는 듯 말했다.


“좋아! 정했어. 석현준과 아이들로 하자!”


“뭐래. 고양이 똥보다 구려.”


“올드하기는. 쯧.”


“···”


회의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



길고 길었던 회의가 끝나고 길드명이 정해졌다.


이름은 간결했다.


수호길드.


이수호와 정화영, 석현준이 함께 출발할 길드의 이름이었다.


석현준은 이수호를 다른 길드에 뺏기지 않을 묘수를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이수호를 길드장으로 앉히는 것.


길드장이라고 해서 스카우트 제안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신입이 맞으니까. 그럴듯한 제안으로 회유하려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길드장이 아닐 때 보다 훨씬 낫지 않겠는가.


A급이니 길드장으로서 손색이 없다. 이 바닥 경험이 부족하겠지만 그건 석현준이 도우면 될 테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길드명도 이수호의 의견에 저울이 기울었다.


수호. 지키고 보호한다는 뜻.


석현준은 마음에 들었다. 고양이나 영화사로 착각할 이름이 아닌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길드 등록을 완료하고 이수호는 집으로 향했고 석현준과 정화영은 길드 본부로 쓸 사무실을 알아보겠다며 부동산을 보러 갔다.



***



석현준과 정화영은 곧장 사무실을 알아보러 공용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공용산은 말 그대로 산이다. 게이트도 물론 존재했다. 다른 점은 길드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닌 헌터협회에서 관리한다는 점이다.


공용산의 게이트는 이름처럼 헌터들이 공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다른 산의 게이트는 타인이 진입하려면 해당 관리 길드에 일정 돈을 지불하고 입장권을 사는 형식으로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공용산은 길드에 소속되지 않아도 누구나 자유롭게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게이트 위험등급은 대부분 D급.


간단하게 말해 공용산은 초보헌터 전용 산이었다. 갓 각성한 헌터들이 감을 기르고 기본적인 전투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공용산으로 정해 헌터협회에서 관리를 하였다.


석현준과 정화영은 공용산 아래 인근 건물을 알아보러 부동산에 들렀다.


그곳엔 괜찮은 건물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건물들은 대부분 소형 길드의 사무실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그런데 여기 건물들은 다 크고 좋아 보이는데 층은 낮네요? 기껏해야 2, 3층 되려나?”


“그렇지. 그건 일부러 그런 건데. 만약 층이 높다고 해봐라. 급하게 출동할 일이 생겼는데 엘리베이터 기다리느라 시간을 낭비한다면 어떻게 되겠어?”


“아하. 그렇네요. 2, 3층이면 여차하면 뛰어내릴 수도 있고.”


“그렇지.”


석현준과 정화영은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마치 주택단지처럼 지어진 오피스단지 사이를 걸었다.


부동산 중개인이 말했다.


“이번에는 10인실도 보러 갈게요.”


“10인실이요?”


“네. 지금은 3명이지만 앞으로 길드원을 더 받을 수도 있지 않아요?”


“아. 그건 그렇네요. 거기도 보여주세요.”


정화영이 좋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게 둘은 한참 사무실을 보며 돌아다니다 마침내 마음에 드는 한 곳을 정했다.


2층에 있고 50평 정도의 크기에 산 쪽을 향해 커다란 창문이 설치된 곳이었다.


정화영은 잠정적으로 계약하기로 정한 사무실을 보며 인테리어와 가구 배치 등을 고민했다.


“이쪽은 책상이랑 의자. 그리고 여기는 장비 물품 거치대하고 여기는 회의실이니까···”


석현준은 필수적인 내용만 전해주고 그 외 사무실 관련해서는 모두 정화영에게 맡겼다.


그는 사무실을 둘러보다 창밖에 시선을 고정했다.


막상 다시 시작하려니 두근거림과 두려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사실 길드를 다시 만들길 원했지만 거창한 목표가 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헌터가 되길 원하는 정화영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하나하나씩 전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갓 각성한 풋내기 이수호도 잘 이끌어 훌륭한 헌터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것 말고 힘을 잃은 자신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저 작은 희망이 있다면 자신과 함께하다가 배신당해 목숨을 잃은 동료들의 원한을 갚는 것. 하지만 이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 해져갔다. 이러다 완전히 잊어버릴까 두려웠다. 동료들의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들은 삼묘길드에서 플루언트길드로 이름을 바꾸었다.


플루언트길드와 마스터 구장환.


석현준은 그 이름을 잊지 않으려 곱씹었다. 그리고 천천히 한발씩 내디딜 생각이었다.



***



집에 도착한 방만철은 소파에 몸을 던졌다.


딱히 한 건 없는데 뭔가 굉장히 피로했다. 그러면서 묘한 설렘도 같이 느꼈다.


인생 2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머리를 비우고 다시 하나씩 채워나갔다. 그렇게 상념에 잠겨 잠시 시간이 흘렀다.


방만철은 벌떡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이수호는 그날 가슴에 도끼를 맞고 죽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났다.


방만철은 자신 뺨을 두 속으로 짝짝 치며 눈에 힘을 주었다.


“이제부터 내가 이수호다.”


그가 혼자 크게 말했다.


방만철을 잊게 다는 건 아니다. 그의 인생, 꿈 그리고 가족까지 잊지 않는다.


이수호와 방만철. 함께 나아가되 다만 이수호가 앞장서 걷겠다는 거다.


이수호는 할 일이 많다. 교생실습생 후 교사가 되고 영화도 제작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길드의 마스터도 되어야 한다.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갈 데까지 가는 거다.


“이수호! 해보자!”


이수호가 스스로 다짐했다.


이번 인생 알차게 살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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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설원 전투 (3) 23.02.09 25 1 13쪽
34 설원 전투 (2) 23.02.08 30 1 13쪽
33 설원 전투 (1) 23.02.07 38 1 14쪽
32 게이트에서 (3) 23.02.06 40 0 14쪽
31 게이트에서 (2) 23.02.05 38 1 12쪽
30 게이트에서 (1) 23.02.04 44 1 13쪽
» 길드 창설 (2) 23.02.02 41 1 12쪽
28 길드 창설 (1) 23.02.01 46 1 12쪽
27 꽃길만 걸을 테야 23.01.31 55 1 13쪽
26 이수호 23.01.29 50 1 13쪽
25 위기의 고등학교 (5) 23.01.28 58 1 14쪽
24 위기의 고등학교 (4) 23.01.27 54 1 13쪽
23 위기의 고등학교 (3) 23.01.26 60 0 12쪽
22 위기의 고등학교 (2) 23.01.25 67 1 13쪽
21 위기의 고등학교 (1) 23.01.24 64 1 13쪽
20 미친개 23.01.22 72 1 13쪽
19 정령왕 출신 (2) 23.01.21 80 0 12쪽
18 정령왕 출신 (1) 23.01.20 89 0 13쪽
17 집으로 23.01.19 89 2 13쪽
16 인간으로 23.01.18 96 2 12쪽
15 추락 23.01.17 101 3 16쪽
14 빌런 23.01.16 101 2 16쪽
13 괴식물 23.01.15 101 3 16쪽
12 사교모임 23.01.13 109 2 15쪽
11 고양이 똥 23.01.12 109 3 15쪽
10 고양이 왕 23.01.11 116 3 16쪽
9 암투 +2 23.01.10 122 3 16쪽
8 몬스터의 습격 23.01.08 123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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