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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슈라: 쓰레기와 별

문드러진 정의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바슈라
작품등록일 :
2021.02.16 16:05
최근연재일 :
2021.06.22 14:35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1,261
추천수 :
8
글자수 :
89,710

작성
21.04.30 14:14
조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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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8쪽

ep5. 숨은 살의(2)

DUMMY

"라드그리드 카포...!"


메디치는 놀란 표정으로, 하지만 몸을 정자로 굳히며 떠듬거렸다. 목표에겐 무슨 사정이 있든 인정사정 없는 일처리. 말하자면 폭주기관차 같지만 거기에 아무 감정도 없는 마하의 일처리를 메디치는 존경했고, 그 대상인 마하도 우러러보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입에 올렸지만 대답없이 마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재떨이로 보이는 유리조각, 떡이 된 두 사람의 얼굴, 터진 요엘의 입술. 마하의 미간이 살짝 패였다.


"무슨 일이야."


"보다시피."


요엘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메디치는 자신한테 한 얘기 마냥 열변을 토했다.


"이단자 처치하는 거 떠맡겼다고 저러잖아!"


마하는 대꾸없이 요엘에게 다가가 피묻은 입술을 닦아주었다. 그러곤 멈춰선 단테를 돌아보았다.


"단테. 구급상자를."


"라드그리드, 내 말 좀 들어봐! 나도 다쳤다고!"


자신이 외면당하자 메디치가 자기를 가리켜보였다. 외관상 메디치가 더 크게 다친 건 맞았다. 일단 재떨이에 맞았지, 주먹에 얼굴도 맞았지. 얼굴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한쪽 볼은 부어올랐고 코피도 나고 있었다.


"일단 나가있으시죠, 메디치 카포..."

"넌 꺼져!"


만류하는 파빌로의 팔을 뿌리치고 메디치는 마하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동시에 마하가 소리나게 그를 돌아보았는데 짐승처럼 보이는 노란 눈은 미간에 눌려 사나운 빛을 띄었다.


"....손 떼, 메디치."


자신을 적나라하게 보는 사나운 시선에 메디치는 움츠리며 손을 뗐고 마하 곁에 파빌로가 구급상자를 들고 왔다. 마하는 이게 익숙한 양 그녀의 터진 입술에 연고를 발랐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그 모습에 메디치는 불퉁한 낯이 되어 소리나게 집무실을 나섰다.


쾅!


옛날 마피아 영화처럼 나무 문은 아닌지라 육중한 소리가 집무실을 내리찍었다. 문을 바라보며 단테는 속으로 툴툴거렸다. 깡패 같은 놈이 이상하게 라드그리드에겐 찍소리도 내지 않는 점은 그만의 의문점이었다.


"어쩌다가 메디치랑 싸운 거야?"


입가에 작은 밴드를 붙이며 마하가 물어왔다. 지쳤기 때문인지 평소보단 힘없이 웃으며 요엘이 말했다.


"별거 없어."

"네가 별 게 없어서 싸울 애는 아니잖아."


밴드 한쪽을 마저 눌러 마무리하며 마하가 말했다.


"아야야!"


일부러 한 짓이었다. 요엘도 그걸 알기에 마하를 째려보았지만 그 뿐이었다. 자신을 찌르는 시선에 마하는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이단자 얘긴 뭐야?"

"이단자도 아냐. 교회가...밉보인 애를 죽이란 걸 메디치가 나한테 떠넘긴 거지."


마하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신경쓰지마."


지나가며 던지는 말처럼 덤덤했다. 그 말에 요엘은 한숨을 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걔랑 넌 그냥 본질이 달라서니까."


마하는 메디치랑 자신의 관계를 그렇게 정의하곤 했다. 본질까지는 모르지만 메디치가 타고난 마피아인건 맞았다.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봐온 요엘은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첫만남, 이라고 해야하나 목격자를 겨눈 총 앞에 망설임 없이 들어가선 '일반인이야!' 라고 외칠 만큼 자비로운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이제 나가봐."


파빌로에게 구급상자를 슬쩍 밀며 마하가 말했다. 구급상자를 든 채 파빌로가 공손히 인사해보였다. 뒤돌아서는 파빌로와 반대로 단테는 요엘 곁에 섰다. 그에게 적나라하게 손가락질하며 마하가 한 마디, 했다.


"너도."


표정이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단테가 미간을 찌푸렸다. 등받이에 기댄 채 요엘이 단테에게 나가란 손짓을 했다.


"...이번엔 싸우지 마십시오."


그 한 마디를 던지고 단테도 파빌로를 따라 돌아섰다.

이어 집무실이 고요해졌다. 마하는 그녀 맞은 편에 살풋이 앉았다. 그 흔한, 스프링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도 머리에 재떨이를 던지는 건 아니었어."


축 쳐졌던 머리가 비뚜름히 올라갔다. 고개처럼 요엘이 삐딱하게 응수했다.


"담뱃재는 없었어."

"걔가 뭐라고 한거야?"


그렇게 말하며 마하가 팔짱을 꼈다. 흩어지는 햇살에 그녀의 까만 정장이 윤기로 반짝였고 회색깔처럼 보였다. 그리고 저를 바라보는 시선은 곧았지만 살짝 치켜올라간 고개. 그 모습은 고고하다던 카모라의 돈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단순히 일 떠맡겼다고 네가 그랬을 거 같진 않아서."


"안들추려는 일을 들춰서 빡쳤을 뿐이야."


요엘이 들추고 싶지 않는 일이면 빤했다. 그때 마하는 입을 다무는 게 요엘에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입새에서 나온 말은 그녀의 생각과 다소 달랐다.


"...우리한테 속이 망가져봤자 좋으면 좋은 일이지 않아?"


그때 요엘이 벌떡 일어나 낮게 말했다.


"라드그리드."


그 모습은 달려들기 직전 보이는 호랑이같았다. 그게 무서운 건 아니지만 안타까워 마하는 한숨을 쉬었다.


"현실이야, 요엘."

"너한텐 별 일 아니래도 난 아냐."


그 말을 하며 부아가 치밀어, 요엘이 이를 세게 다물었다. 마하가 말할 필요가 없는 부분을 언급했던 데에 화낼 법 했지만 요엘은 그렇지 않았다.



그 '속'이 망가진 게 누구들 때문인지 떠올리면 당장에라도 이 사옥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너만 강제로 마피아가 되고, 겁간을 당한 게 아냐."

"하!"


소리 지르고 싶은 걸 참았는지 목울대를 꿈틀거리다 낸 소리는 꽤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그딴식으로 시비거는데 그럼 웃으리?"

"그래야하는 거 알잖아."


알고 있었다. 비웃어도 웃고, 아무렇지 않는 척해야만 그나마 자기 약점을 감출 수 있었다. 하지만 요엘에겐 지금 그럴 기운이 없었다. 그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 세계에서는 자기 약점, 즉 자기 본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요엘, 화났어?"


홉뜬 눈에 고였던 푸른 안광이 한번 불타오른 듯 했다. 그러다 눈을 질끈 감고 숨을 있는 그대로 들이마셨다.


"......."


그렇다고 말을 하진 않았다. 화났다, 화나지 않았다 같은. 그러다 겨우 고개를 저었을 뿐이다. 고요 사이에 사람들이 수다떠는 소리가 아득히 퍼졌다. 커피가 맛있었다는 둥, 고맙다는 둥 얘기 따위일 수도 있지만 거리를 지나가는 이들이 조직원이라면 그 내용은 달랐다. 안 들어도 훤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시체 얘기만 나와도 그녀는 견딜 수 없었다. 제 귓가에 울리던 총성과 저를 바라보며 두려움을 애써 참던 표정이 떠오를 것 같았다.


"미안, 라드그리드. 난 좀...쉴게."


제 눈가를 손바닥으로 비비며 요엘이 말했다. 순순히 마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문으로 가는 줄 알았던 걸음이 제게로 향해 요엘은 의아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굳이 말하면 얼핏 보면 짜증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요엘."


성 대신 제 이름을 부르며 마하가 제 어깨에 손을 짚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긴 검은 머리칼이 커텐처럼 요엘의 옆 얼굴을 가리고, 그 사이에서 마하가 입을 벙긋거렸다.


"난 네가 메디치의 머리를 깨도 네 편이야."


그러나 요엘은 그 뒤에 이어진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요엘이 주먹을 소리없이 쥐었다. 그랬거나 말거나 마하는 말을 마치고 몸을 세워 슬쩍 웃어보였다. 멀리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도란도란 그들 사이에 퍼지고 제 곁에 바스라지는 햇살 사이에서 마하가 웃어보였다.


달칵, 소리를 내며 마하가 문을 나섰다. 멀어지는 소리 속에 요엘은 응접대에 제 머리를 콩 박았다. 그제서야 피냄새가 퍼졌고 혀엔 쇳맛이 닿았다.


작가의말

음..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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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p6. 비수(1) +1 21.05.20 27 1 7쪽
18 ep5. 숨은 살의(完) 21.05.07 25 0 10쪽
17 ep5. 숨은 살의(4) 21.05.05 54 1 9쪽
16 ep5. 숨은 살의(3) 21.05.02 38 0 7쪽
» ep5. 숨은 살의(2) 21.04.30 34 1 8쪽
14 ep5. 숨은 살의(1) 21.04.26 30 1 8쪽
13 ep4. 엔리코(完) 21.04.23 62 1 10쪽
12 ep4. 엔리코(1) 21.04.22 40 0 10쪽
11 ep3. 부식된 일상 (完) 21.04.04 68 0 10쪽
10 ep3. 부식된 일상(2) +2 21.03.26 43 0 12쪽
9 ep3. 부식된 일상 21.03.21 50 1 8쪽
8 ep2. Crimson diamond(完) 21.03.08 45 0 21쪽
7 ep2. Crimson diamond(3) +1 21.03.03 37 0 10쪽
6 ep2. Crimson diamond(2) 21.02.26 70 0 11쪽
5 ep2. Crimson diamond(1) +2 21.02.24 54 0 9쪽
4 ep1. 악덕의 소굴(完) +2 21.02.21 71 0 21쪽
3 ep1. 악덕의 소굴(3) 21.02.20 76 0 11쪽
2 ep1. 악덕의 소굴(2) +2 21.02.18 137 0 8쪽
1 ep1. 악덕의 소굴 +2 21.02.17 257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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