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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슈라: 쓰레기와 별

문드러진 정의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바슈라
작품등록일 :
2021.02.16 16:05
최근연재일 :
2021.06.22 14:35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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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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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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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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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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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ep1. 악덕의 소굴(完)

DUMMY

마다카스카 갱단.

한물간 빨간색 해골 문신을 두르며 설치는 그것들은 일반인들에겐 흉물이었지만 아르젠팔토라에겐 단순한 하부조직일 뿐이었다. 그네들이 해야할 건 단순했다.


자기들이 팔 마약을 아르젠팔토라에게 건네주며 중개료를 내주는 일 뿐. 하지만 자기들을 관리하던 카포가 요엘로 바뀌고나선 공연히 약을 빼돌려 다른 조직에 중개를 요청하거나 중개를 파탄낼 정도로 위장을 제대로 하질 않아 요엘이 벼르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요엘은 무슨 까닭인지 바로 마다카스카 네에 쳐들어가지 않고 마다카스카들에게 화풀이하며 압박을 넣었다. 그 압박은 마다카스카가 말귀를 듣는 척하게 했고, 그 때문에 요엘이 마다카스카를 굳이 손대지 않는 거라 생각하던 이들은


마다카스카를 보러가잔 그녀의 말에 각자 다른 의아한 폼을 풍기며 그녀를 따라갔다. 단테만이 그걸 아는지 평소처럼 무덤덤했다. 파빌로는 그에게 까닭을 묻고 싶었지만 마다카스카의 조직원들이 고개를 꾸벅이는 걸 보곤 애써 저도 인상에 힘을 주며 따라나섰다.


"여, 세레나타 카포님 아니십니까. 그래, 무슨 일...!"


탕!


싸구려 가죽소파에서 여자애들을 안던 뚱보는 총소리에 뒤로 엎어졌다. 자기가 앉아있던 소파 가장자리가 푹 패여 초연을 물씬 뿜어내는 걸 보곤 마다카스카는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바닥에 조신하리만큼 무릎 꿇어 앉았다.


"...이십니까요."

"모르는 거야, 모르는 척 하는 거야?"


그가 앉았던 소파에 앉으며 요엘이 담배를 피웠다. 저를 흘겨보는 푸른 눈은 감흥이 없어보였고 오히려 그런 눈이 사단을 부를 것을 알기에 마다카스카는 공손히 말했다.


"약갖고 장난치는 건... 안하는데굽쇼."

"싸구려 아보카도에 약 숨기고 온 건, 어떻게 설명할건데?"

"요즘, 요즘 저희도 어려워서 그럽니다요! 아보카도 값도 오르는데 거 트럼펫 따까리들이 까다롭게 구는지라 저도 미치겠어요."

"내가 만만해서 보여서가 아니고?"


그 말에 마다카스카는 침을 꼴깍 소리 나게 삼켰다. 얄쌍한 몸매, 여자, 마피아 답지않게 허리까지 늘어놓은 머리, 클럽이었으면 벌써 남자들의 눈길을 끌었을 모양... 얕볼 만한 모양은 다 갖췄기에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그걸 티내는 건 요엘 앞에서 하면 안될 짓이었다. 저래뵈도.....


"카모라를 반파시키셨는데 어떻게 그럽니까요."


카모라의 가장 큰 마약공장을 반파시킨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잘 아네. 지금 네 사무실까지 폭발시킬 마음은 없어, 마라파스타."


마라파스타가 아닌 마다카스카지만 굳이 그걸 정정시키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담배연기를 뱉었다. 향내 나는 담배연기가 마다카스카의 사무실에 자욱히 깔렸다.


"아보카도든, 페라리 딱지에 숨기든 상관없으니 앞으로 똑바로 하란 얘기야."

"가... 감사합니다."


자존심만 집어던졌으면 바로 절을 했을 기세로 마다카스카는 넙죽 엎드렸다.


그때였다.

"아. 그렇다고..."


단테가 허리춤에 둔 총을 뽑아 마다카스카의 허벅지에 쏘았다. 총성이 사무실을 울리면서 마다카스카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아아아악, 아이고오오! 세레나타 카포!! 아아악!"

"똑바로 앉혀."


그 말에 단테가 바로 마다카스카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피가 콸콸 쏟아져 바지를 흥건히 적셨지만 미간에 드리운 단테의 그림자를 보고 마다카스카는 애써 아픈 다리를 꿇었다. 무릎을 꿇은 그를 요엘이 내려다보았다. 손을 뻗으면 금방 닿을 거리였다. 그러나 그를 보는 눈은 하얀 등빛에 빛나 푸르렀고 눈초리는 웃음기를 띄고 있었다. 마치 강 건너 불길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봤음 여태까지 그딴 식으로 안 굴었겠지?"

"으으으흑....카포, 카포님... 아니에요오... 성모님께 맹세라도 할게요..."


시체따위는 장난감으로 여기는 깡패들이지만 허벅지에 뚫린 구멍은 아픈지 훌쩍거렸다. 허벅지에서 퍼진 피는 사타구니까지 적셔서 얼핏 보면 오줌 싼 티로 보였다. 그 모양에 요엘이 웃는 듯 그녀의 눈초리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맹세는 필요없고. 받은 만큼은 주는 게 이 바닥 아닌가? ...불만이야?"


"진짜 불만 없습니다요...살려만 주세요, 세레나타 카포......"

"다리가 부숴져도?"


그 말에 마다카스카가 숨을 헐떡거리다 멈췄다. 단테의 발이 구멍난 제 허벅지에 살포시 얹혀 있었다.


"네, 네...살려만 주세요."


마다카스카는 그러면서 고개를 급하게 주억거렸다. 그 말에 흡족한지 요엘이 입가에 미소를 얹으며 일어났다.


"애들아."

"네, 카포."

"마라파스타 안 터지게만 해."


그 말에 요엘을 따라온 이들이 마다카스카에게 썰물처럼 다가갔다. 이어 그녀의 옆에서 마다카스카가 어이고 어이고 통곡하며 밟혔다. 물론 대놓고 카포를 무시했는데도 그 정도에서 끝낸다면 단테는 나중에 잔소리를 하리라. 그러니까 허벅지에 구멍정돈 내줬지. 폐부에 들이닥치는 연기에 요엘이 몽롱한 듯 눈을 깜박거렸다. 열린 문틈으로 이질적인 소리만 기어들어오지 않았다면.


"...뭐야."


열린 문으로 시모네가 들어와 요엘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그 손에는 손도끼가 들려 있었는데, 얼마나 오래 썼는지 모를 정도로 손잡이가 핏자국으로 굳어 있었다.


"아, 카포님!"


제게 들어온 시선에 시모네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 그러곤 마다카스카가 두들겨 맞던 데에서 요엘을 바라보았다.


"마다카스카 때문에 고생이란 말을 들어서요."


그녀가 물던 담배가 바닥에 튀었다. 요엘이 일어나 시모네를 내려다보았다. 적나라하게 미간으로 불쾌해하자 시모네가 의아한 듯, 움츠러들었다.


"지금... 네가 문제인데?"


그러곤 요엘이 바로 시모네를 걷어찼다. 총성처럼 크진 않아도 그녀의 발길질 소리에 시모네가 나뒹굴었다.


"내가 조지란 말도 없었잖아."

"하지만, 카포님!!"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요엘이 그의 뺨따귀를 올려쳤다. 올려친 뺨따귀는 물론 그녀의 손바닥도 빨갛게 부었다. 그러나 그건 안중에 없는 듯 요엘이 시모네 앞에 눈을 맞추곤 그가 도끼를 쥔 손을 움켜잡아 올렸다.


"아!"


가녀린 손목서 나올만한 악력은 아니었다. 아니면 애라 그런지 그녀의 악력에 시모네가 낮게 소리 내었다.


"카포, 카포님!"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고 싶다더니..."


흐려지는 말끝에서 요엘이 시모네의 도끼를 흘려보았다. 어찌나 오래 썼는지, 얼마나 많이 썼는지 손잡이는 물론 날은 무뎌졌고 피로 녹이 슬어 있었다. 아마 자기가 들고 다니던 걸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요엘은 부하들이 뭘 갖고 가든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은 마다카스카를 죽일 생각이 없었고, 마다카스카를 죽이라고 하지 않는 이상 보통 부하들은 자신의 말을 따랐기 때문이다.


"혹시, 쟤갖고 뼈 만들려 그런거냐?"


그 말에 마다카스카와, 요엘의 부하들이 숨을 들이마셨다.


"마피아가 되고 싶다고 설치는 애들은 많아. 그렇다고 너같이 뼈를 만들려 애쓰는 애들은 많지 않고."


공원서 단테가 한 말이 다시 그녀의 머릿속에 흘러들었다. 평범한 애는 아니다. 그때 요엘은 두 가지 가설을 세웠다. 감시자던가, ...조직원에 뭔 이유로 집작하던가.


요엘이 시모네의 손목을 뿌리치며 그를 바닥에 팽개쳤다.


"한 가지 묻자. 넌 대체 왜 마피아가 되려 하냐."

"여동생이 많이 아프답니다."


파빌로가 나서 속삭였다. 그에게 눈을 좁히며 요엘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넌 빠져있어."


낮은 음색에는 화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것도 섞여 있었다. 파빌로는 시모네를 슬쩍 내려다보곤 들리지 않게 속삭이며 물러났다.


"동생이, ...많이 아파요. 그래서,"

"돈이 필요하니까?"

"맞아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곤 시모네가 무릎으로 기어가 요엘에게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그래서...마피아가 되어야 해요, 그런데 동생은 제가 청소부였던 걸 싫어했어요, 그래서, 그래서!"


"그래, 그만."


간곡하리 만큼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요엘은 그에게 손을 까닥이며 멈추란 손짓을 했다. 피우던 담배를 요엘이 내버렸다. 얼룩덜룩한 바닥에 그녀의 담배가 느리게 타들었다. 공기로 흩어지는 연기 새로 요엘은 나른하게 손에 턱을 괴었다.


"그래서?"


그러곤 졸린 마냥 낮게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시모네가 도끼를 쥔 손을 떨었다.


"돈이 필요하면 줄게. 그런데, 난 네가 필요없어."


정확하게는 그녀가 한 말에 더 떨기 시작했다.


"솔다토(조직원)도 안된 게 내 말도 없이 뼈 만드는 건 용납 못하거든."


시모네의 눈이 눈물에 젖기 시작했다. 시모네를 그래도 친하게 생각했던 파빌로는 요엘과 시모네를 안절부절거리며 번갈아보았다. 그때 단테가 그의 어깨를 잡아 밀쳐냈다. 바닥에 손도끼가 떨어졌다. 시모네는 요엘의 앞에 무릎꿇고 그녀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울었다.


"싫어요! 제발 저를 내쫓지 마세요, 다음부턴 말하셨을 때 뼈를 만들테니...!"


요엘의 발끝이 그를 슬쩍 밀었다. 요엘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초연에 섞인 담배연기는 지독하기 짝이없었고 매캐해서, 요엘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것 같았다. 요엘이 조직원들을 돌아보며 손짓했다. 그들은 마다카스카에게서 물러섰고 요엘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카포!"


시모네가 일어나 그녀를 좇으려했다. 긴 머리칼이 흔들리며 요엘이 그를 돌아 보았다. 소년은 그녀를 몇 번도 보지 못했다만, 그럼에도 그녀에게서 낯선 표정을 보았다. 그녀는 무언가 아픈 양 제 미간과 입가를 미미하게 찌푸리고 있었고 연녹색으로 빛나는 눈은 마피아들에게선 보지 못하는 표정에 일그러져 있었다.


"난 네가 뼈를 만드는 게 싫어."


그 한마디를 던지고 요엘은 거칠게 그에게서 멀어졌다. 소년은 머리를 맞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양 손도끼를 쥐었다. 그때 마다카스카가 그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너 이 새끼!"


그와 시선을 마주치고 마다카스카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 사이 소년이 그에기 도끼를 휘둘렀다, 마다카스카의 사무실에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뒹굴며 스스로를 태우는 담배에 핏자국이 튀었다.


"내 팔!!! 내 파아알!!!!!"


오른손이 잘린 단면을 쥔 채 마다카스카가 비명을 질렀다. 떠났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그들에게 뒤질라 소년은 도끼를 마다카스카에게 내리쳤다. 이번엔 끝장을ㅡ


"시모네!"


비명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며 파빌로가 시모네를 잡아당겼다. 피묻은 도끼가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로 뒹굴었다.


"파빌로님?"

"그냥, 빨리 나가!"


의뭉스러운 시선이었지만 파빌로는 급하게 시모네를 마다카스카 사무실 밖으로 밀었고 문을 닫았다. 문 너머에서 욕지기와 마다카스카의 비명따위가 섞여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시모네의 낯은 환희로 발갛게 물들었고 그는 여느 아이들처럼 파빌로에게 제 일을 자랑하려 했다. 파빌로는 그의 팔을 움켜잡고 고개를 들었다.


"잘 들어. 지금부터 넌 누굴 만나든 아는 체 말고 여길 떠!"

"사무실서 만나면 돼요?"

"아니!"


파빌로가 소리 질렀다. 그는 분에 제 얼굴을 일그러뜨리다가 곧 고개를 떨구곤 반쯤 주저앉았다.


"마다카스카는 적어도 너는 무조건 죽일 거야... 카포께서 네 퇴직금을 계좌에 보낸다고 했어. 그러니 오늘내일 중으로 이 로마를 벗어나."

"왜요! 전,..."


말을 하다 시모네가 낯을 흐리며 입을 떨었다. 평범한 다갈색 눈이 이어 떨리면서 시모네가 저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얹은 채 파빌로에게 외쳤다.


"카포가 원하는 대로 했어요!"

"넌 대체 뭘 기대하고 있는 거야! 아무리 마피아가 되고 싶어도 그렇지, 넌!"


그때 죽여버릴 거란 단말마가 문 안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자 파빌로가 시모네를 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자 녹슨 배관과 가스관이 얽힌 골목길이 보였다. 파빌로는 허겁지겁 제 주머니서 지폐뭉치를 꺼내 시모네의 주머니에 쑤셔주곤 그를 밀쳤다.


"파빌로님!"

"너랑 여동생은 여길 떠나... 그 돈이면 네 동생 병원 정돈 데려갈거야.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마!"

비명과 악다구니가 건물 바깥까지 새나가고 있었다. 파빌로는 시모네와 건물을 번갈아보다 곧 눈을 감고 자신이 내려갔던 길을 되돌아갔다. 배관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고, 시모네는 홀로 그가 사라진 곳을 멍하니 보다가 제 주머니에 있던 돈을 꺼냈다.


찢기고 지저분한 것과 빳빳한 새 것이 뒤섞인 그것은 1000이라는 위용들을 소년에게 보였다. 지폐에 있는 베네치아 운하가 소년에게 보란 듯이 펼쳐졌다. 그러나 운하는 소년의 손에 맥없이 구겨졌다. 시모네는 울 것 같은 낯이 되어 돈을 쥔 손을 떨다 그것들을 집어 던졌다.


"왜...계속 나를 밀쳐내는 거야...! 왜! 마피아가 되어서, 잘 살아보겠다는 게! 왜 나쁜 거냐고! 왜 나쁜 거냐고!!!!"

"시모네 씨?"


뒤켠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설지만 그 음색은 시취가 나고 녹슨 피냄새가 나는 골목엔 어울리지 않을 아가씨의 음색이었다. 시모네가 고개를 돌렸고 그의 귀를 여태껏 듣지 못한 큰 총성이 꿰뚫었다. 일견 그 소리에 시모네는 움직이길 멈추었다. 돌연 가슴이 축축해져 시모네가 고개를 내렸을 때, 땅을 딛던 그의 다리가 주저앉았다.


"그러게 왜 그랬어요."


담뱃재에 찌든 종이와 캔이 뒹구는 골목을 하얀 구두가 또각거리며 들어와 시모네의 앞에 멈췄다. 골목 사이에 있는 푸른 하늘을 등진 채 여자는 웃는 낯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저녁 하늘의 자색을 닮은 머리와 스카프가 더러운 바람에 너울거렸지만 그녀는 오히려 기분 좋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시모네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축축했던 가슴은 그녀의 총성에 꿰뚫렸다. 가슴을 적신 것은 제 피였고, 제 귀를 쑤신 것은 저를 향한 총성이었다.


"어, 왜...째서?"

"말하지마세요, 어차피 죽을 건데요."


쾌활한 음색과 함께 여자는 제 손을 시모네에게 얹었다.


"아, 여동생이 있다는 건 걱정마세요. 여동생은 이미 죽어있던걸요. 시모네 씨."


엎어진 채 시모네가 고개를 들었다. 당혹을 그의 낯이 적나라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되려 영문을 모르겠다며 고갤 기웃인 채 무릎을 꿇었다. 그러곤 제 몸을 시모네에게 디밀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숙녀지만 어린애와 다르지 않는 의뭉함이 그의 귓가를 나즉히 파고들었다.


"며칠 전에 죽은 거에요? 시모네."



* * *


시모네가 피를 왈칵 토했다. 그 반동으로 그의 몸뚱이가 크게 바르작거렸다. 여자는 신기한 듯 바라보기만 했다.


"사실 흔한 얘기죠. 오빠가 시체청소부 하는 걸 말리려 나갔더니 깡패들이 쏜 총에 엉뚱하게 맞아 죽었다는 건요."


피가 쏟아지고 생기가 빠지면서 시모네는 더 이상 그 물음에 일일히 반응할 기력을 잃은 듯 했다. 그나마 그가 할 수 있는 건 뭐라 말하려고 입을 달싹거리는 것 뿐이었다. 총을 쏘아놓곤, 웃기지만 여자는 짐짓 그를 향해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해는 해요, 자기때문에 동생이 죽은 꼴이잖아요? 누가 인정하고 싶겠어요. 시모네도 사실 동생 때문에 시체 치우고 산거잖아요."


들리던 비명소리가 잦아들자 잠깐 여자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눈꼬리를 휘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동생 입장에선 어떻게든 말리고 싶어서 밤중에 집을 나와 제 오빠를 찾다가 깡패들의 싸움에 휘말려 죽었을 것이다. 여자에게 그건 사실 그게 저를 달아오르게 하진 않았다. 꾸물적거리는 몸뚱아리, 죽어가면서도 자신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파리한 눈. 몸뚱이가 잘리고 발악하는 메뚜기를 바라보는 것만큼 재밌는 게 어딨는가?


"그거 알아요? 어쩌면 카포는 당신을 패밀리로 받아줬을지도 몰라요. 우리 카포는... 아마 당신 사정을 들었으면 비단 자기네가 아니더라도 당신을 어느 소대에 붙여줬을지 모를 일이죠."


하아... 여자의 입새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 모양은 얼핏보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 여자가 손을 들었다. 더러운 골목길에 맞지 않게 가느다란 손이었다. 제 얼굴을 감쌌고 그 사이서 황홀경에 가까운 미소가 피어나 등진 햇살에 반짝거렸다.


"물론 카포는 당신이 뼈를 만들게 두진 않았을 거에요. 카포는...누구도 이 바닥에 오지 않길 바라거든요."


"카밀라!"


어느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그녀의 고개를 세웠다. 그녀가 고개를 들면서 보이는 표정에 파빌로가 흠칫거렸다. 녹슨 냄새와 퀘퀘한 시취를 덮은 피냄새는 이제 흔한 고깃덩이의 냄새가 되었다. 그나마 발악하던 움직임은 멈춰 있었다. 흐르던 피는 그녀의 구둣굽에 끈적하게 달라 붙었다.


제 이름인양 여자가 파빌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렇게 부르면 카밀라 무서웡!"


이 세상에 절대 어울릴 수 없는 말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시모네 알비오."


차 안에서 단테는 핸드폰 화면에 나온 문자를 그대로 읊고 있었다. 시모네 신상을 알아보던 이가 보낸 정보였다.


"나이 14살, 여동생과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살고 있었다?"


차창을 보던 요엘이 그를 돌아보았다.


"아파서 집안에만 있던 동생이 그 날 자기 오빠를 찾으러 갔다 합니다. 그때 깡패들 총격전에 휘말렸다고 이웃이 그랬다군요."

"자기 오빠가 시체청소부였단 건 믿기 힘들었겠지."


핸드폰 화면을 끄며 단테는 요엘을 슬쩍 돌아보았다. 요엘은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뭔가 놀라운지 그의 목소리에 의문이 묻어났다.


"궁금하신 점은 없습니까?"

"어차피 패밀리가 될 애가 아닌걸."


그제서야, 아니, 그럴 줄 알았단 듯 단테의 눈이 무덤덤해졌다.


"그러고보니 누가 마피아가 되고 싶다해도 받아주지 않으셨죠."

"누가 기껏 태어나서 하는 게 마피아이길 바라겠어."


그리 말하며 요엘이 느리게 담배연기를 흘렸다. 박하 향이 섞였지만 역한 탄내가 차 안을 순식간에 메웠다. 흩어지는 연기 속에서 요엘의 푸른 눈이 잠잠하게 잠겼다. 그런 요엘을 바라보다 단테가 입을 열었다.


"카포. 사실 걔가 도망치길 바랬군요."


요엘은 대답대신 머금은 연기를 뱉었다. 단테가 등받이에 제 몸을 소리없이 기대며 말했다.


"박쥐를 동굴 밖에 꺼내면 죽습니다. 그런 태생도 있는 겁니다."


달싹이는 차 안에서 단테의 앞머리가 살짝 그의 눈가를 훑었다.


"자기가 박쥐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


마치 혼잣말 같은 소리였다. 흩어지는 연기 속에서 단테는 슬쩍 눈을 감았다. 도로를 달리며 들리는 미미한 엔진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모든 사람이 카포처럼... 이 세계를 혐오하는 건 아니란 얘깁니다."


그 말에 요엘이 단테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별 감정이 없어보였다.


"독단으로 마다카스카를 건드린 이상 굳이 내 밑으로 둘 필요도 없어. 그런 앤 언젠가 사고를 치거든."

"그런 생각까진 닿으셔서 다행이군요."

"잔소리 그만하고, 지금 걔 계좌에나 퇴직금 쏴."

"알겠습니다."


그 말에 대답하며 단테는 핸드폰을 켰다. 그러나 핸드폰에 닿는 손가락은 별 의미없이 배회하고 은행과는 상관없는 앱을 숫자두드리듯이 하고 있었다. 그때 단테의 손에서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


발신인: 카밀라


[일정 완료!]



"보냈어?"


심드렁한 물음에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요엘은 다시 차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푸른 하늘을 가둔 도심지를 검은 차가 쌩하고 지나쳤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핸드폰이나 서류를 보기에 여념 없어 보였다. 골목길에 주저앉은 노숙자들도 있었다. 밤중에 잘곳을 찾느라 그랬는지 쥐 한 마리가 그들을 지나쳤지만 깨어냘 기미는 없었다.


박쥐처럼 밤에 나올 이들은 자기 집에서 잠결에 배나 긁적일 테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싸우고, 짓밟고, 올라타려 할 것이다. 총성 따위가 나도 어느 누구도 감히 그곳을 들여다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체청소부들이 벌레처럼 끓어 자리를 깨끗하게 치울 것이다.


그렇게 로마도 하루를 지낼 것이다.

평범한 하루를.


작가의말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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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p2. Crimson diamond(1) +2 21.02.24 54 0 9쪽
» ep1. 악덕의 소굴(完) +2 21.02.21 76 0 21쪽
3 ep1. 악덕의 소굴(3) 21.02.20 77 0 11쪽
2 ep1. 악덕의 소굴(2) +2 21.02.18 138 0 8쪽
1 ep1. 악덕의 소굴 +2 21.02.17 270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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