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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cea 님의 서재입니다.

세티아 왕국의 작은 영주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렌시아a
작품등록일 :
2020.05.11 22:43
최근연재일 :
2020.05.27 21:0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3,744
추천수 :
73
글자수 :
303,156

작성
20.05.11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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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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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20쪽

Ep 1. 미운오리새끼(4)

DUMMY

“최근 도련님은 너무 제멋대로세요.”


불평을 내뱉는 헬레나에 세영은 “그래?” 시치미를 때며 볼을 긁적였다.

제피란의 방. 세영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방안 침대에 앉아 헬레나의 안마를 받고 있었다. 무리한 아침훈련으로 근육이 뭉친 까닭이다.


“정말이에요. 도련님, 어제부터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니까요.”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제피란의 시중을 든 지 이제 달포가량 지난 하녀는 예리하게 지적하였다. 그 하녀의 불평에 세영은 어설프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세영이 제피란으로 눈을 뜬지 어느덧 하루가 지났다. 헬레나의 말에 이제서 찬찬히 생각해보니 상당히 스펙터클한 어제를 보낸 것 같다. 투신자살 후 다른 사람으로 일어나고, 결투신청, 묘소 방문 등 도저히 하루 동안 일어난 일 같지가 않았다. 도대체 어디의 판타지냐! 이젠 외칠 기운조차 없는 세영은 양 어깨를 축 늘이며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상당히 피곤해 보였는지 헬레나는 “거봐요, 아침부터 무리하시니까 지치잖아요.” 핀잔을 주었다. 한숨을 내쉰 의미는 달랐지만 뻐근한 어깨에 세영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몸으로 어떻게 결투 하시려고 그래요?”


“괜찮아. 어차피 싸움이란 게 오래 걸리는 게 아니거든.”


헬레나의 물음에 세영은 웃으며 대답했다.

대체로 싸움은 단발로 끝난다. 먼저 주도권을 쥐게 된다면 그 싸움을 뒤집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움에서 선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친절히 싸움에 대해 설명하는 세영의 모습에 헬레나는 고개를 갸웃.


“도련님, 싸움 해보신적 없잖아요?”


“···라고 예전 군사학 수업에서 배웠어.”


간신히 둘러대는 세영의 대답에 헬레나는 그제야 “아하!” 납득했다.

휴우, 세영은 서늘해진 간담에 다시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도련님. 식사 가져왔습니다.”


백작가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인 제피란은 언제나 자기 방에서 혼자 식사를 했다. 어제같이 세실리아나 백작과 함께한 식사는 제피란으로서 매우 드문 경우였다. “정말 스펙터클한 어제구나.” 내심 실감한 세영은 작게 중얼거리곤 한숨 쉬었다.


“들어와.”


세영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 밖의 어린 하녀는 방문을 열고 천천히 식사거리를 담은 카트를 밀며 들어왔다. 본래라면 제피란의 전속하녀인 헬레나의 역할이었지만 헬레나는 지금 세영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세영은 다른 고용인에게 식사를 부탁한 것이다.


“식사는 어디에 둘까요?”


“아, 그냥 책상위에 올려둬. 위에 있는 것들은 적당히 치워두고.”


그건 그렇고, 세영은 이 저택의 하녀 기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았다. 그도 그럴게 눈앞에서 카트를 밀고 들어온 하녀는 이제 십 대 초 중반쯤 될 법한 어린 소녀인 까닭이다. 저런 어린 소녀가 과연 궂은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보다 걱정이 앞섰다. 물론 그런 그녀에게 식사를 부탁한건 자신이지만, 아침 훈련 등으로 정신이 없어서 근처에 있던 어린 하녀에게 대충 부탁한 것을 설마 그 본인이 직접 올 줄은 몰랐다.

그런 세영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하녀는 꾸벅, 고개를 숙여 “알겠습니다.” 대답하곤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작은 키로 까치발을 들어 책들과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는 소녀의 모습에 세영은 괜스레 그녀에게 미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책상을 치우는 하녀의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불안한 모습에 세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와주려 하였으나, 그 순간 어째선지 어깨를 풀어주던 헬레나의 손길이 점점 우악스러워졌다.


“저, 저기, 헬레나? 아픈데 말이지······.”


“이 정도는 참으세요.”


“······.”


어째선지 차가워진 그녀의 반응에 세영은 입을 다물었다. ···라기 보단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뭐야, 무슨 여자 악력이 이렇게 쌔?! 내가 무슨 잘 못이라도 했나? 세영은 생각해 봤지만 짐작 가는 곳이 전혀 없었다. 점점 어깨를 죄여오는 통증이 강렬해지자 세영은 억! 짧은 외마디 비명을 흘렸다.


“······?”


그런 세영의 신음에 책상을 정리하던 하녀가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갸웃, 다시 정리정돈에 집중한다.


“저, 저기, 헬레나······?”


“······.”


어깨 너머로 돌아본 헬레나의 표정이 무섭다. 분명 웃고 있는 입가는 어째선지 입 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흡사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는 것 같다.

세영은 점점 강해지는 헬레나의 악력에 도망치듯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어깨를 짓누르는 헬레나의 손은 그런 세영을 다시 침대위로 가라앉혔다.


“바, 밥, 먹어야지. 식사 왔잖아?”


“······.”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헬레나는 돌아보는 세영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곤 어깨에서 손을 때었다. 세영은 통증의 여운에 어설프게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조금 과장 덧붙여서, 뼈와 살이 나눠지는 줄 알았다.

휴우, 안도의 숨을 내쉬며 세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마침 책상정리를 마친 어린 하녀는 빠르게 식사를 차렸다.


“수고했어. 바쁠 텐데 도와줘서 고마워.”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는 하녀에게 세영은 자상하게 웃으며 하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겉으론 이제 갓 열 살인 세영이지만 세영의 나이 만 19세다. 세영으로선 자신을 도와준 어린 소녀가 기특하고 귀여워 자연스레 머리를 쓰다듬은 것이지만······.

흠칫!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는 세영의 손길에 소녀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그제야 세영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곤 “아, 미안······.” 작게 사과해 보지만, 어린 하녀는 고개를 숙인 채 방 밖으로 도망치듯 뛰쳐나가버렸다.

쾅! 방문이 요란하게 닫혔다.


“······저기, 내가 뭐 잘 못 했나?”


물론 열 살 밖에 안 된 어린애가 자기보다 연상인 여성의 머리를 만진다는 것 자체가 버릇 없는 행위지만, 상대는 하녀고 세영은 귀족이다. 저렇게까지 싫어하는걸 보면 분명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 세영은 뒤돌아보며 의문을 던졌다.

그러나 거기에는 왠지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몸을 꼬고 있는 하녀가 한 명······.


“도련님. 너무 대범하세요!”


“······뭐?”


“여자아이의 머리를 거리낌 없이 만지시다니, 어쩜! 난 몰라?!”


꺄아! 유쾌한 비명을 지르며 붉게 띈 홍조를 가리듯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헬레나.


“······.”


뭐지? 뭐야? 뭐냐고 대체?! 머리를 만진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의미인거야? 부끄러워하는 헬레나의 모습에 세영은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린 제피란의 기억을 뒤져 보아도 머리를 쓰다듬는 일에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세영으로선 그런 헬레나의 모습이 불안하게만 다가왔다.


“···머리를 만지는 게, 그렇게, 특별한 의미야?”


세영은 견딜 수 없는 불안함에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물었다. 그러자 그런 세영의 질문에 헬레나는 발끈, “당연하죠!” 언성을 높였다. 그러면서 아까까지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경멸을 담은 눈빛으로 세영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마치 세영에게는 ‘사람이 어쩜 그럴 수 있냐?’ 며 책망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이 어쩜 그럴 수 있어요?”


···랄까, 정확했다.

세영은 헬레나의 책망에 머쓱해져 그녀의 시선을 피하곤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세영의 모습을 반성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헬레나는 하아,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자아이의 머리를 만지는 건 말이죠.”


헬레나의 대답에 세영은 귀를 쫑긋거렸다. 그 모습이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헬레나는 흠! 흠! 몇 번 헛기침을 하고는 이어 말했다.


“그 여자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결혼해 주세요. 예요.”


“······뭐?”


“왜 있잖아요? 머리는 여자의 생명이라고. 그만큼 여성의 머리는 중요한 거예요.”


“······말도 안 돼.”


19년 평생 살아오면서 머리 좀 쓰다듬었다고 사랑고백이라니? 결혼이라니?! 세영으로선 듣도 보도 못 한 풍습이다!

자신을 믿지 못 하는 세영에 발끈했는지 헬레나는 다시금 버럭 언성을 높였다.


“거짓말 아니에요! 대륙에서 여성의 머리를 만질 수 있는 남자는 아빠 아니면 배우자뿐이라고요!”


“······.”


“어쩜 그런 것도 모르고 태연하게 여성의 머리를 만질 수 있죠? 정말 도련님도 무책임 하세요!”


“······.”


헬레나의 야유에도 세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말을 하고 자시고 세영으로선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 터질 것만 같았다.

뭐야? 그럼, 나는 난데없이 식사를 가져다 준 하녀에게 프러포즈 했다는 거야?! 그것도 열 살 남짓 꼬마에게?! 혼란스러워하는 세영의 모습에 헬레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번 일은 사고였으니 나중에 만나면 잘 달래주셔야 돼요.”


“······.”


딱딱하게 굳어진 세영은 헬레나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충격에 헤어 나오지 못했는지 초점 없는 시선에 오히려 그녀의 충고를 제대로 들었는지조차 의문이다.

그때였을까? 딸깍 방문이 살짝 열렸다. 거기에는 아까 방문을 뛰쳐나갔던 어린 하녀가 새빨갛게 볼을 물들인 채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방안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곤 “저기······.” 행동만큼이나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도련님께서 부탁하신 물건, 가져왔습니다.”


조심스레 방안으로 들어온 어린 하녀는 레이피어 한 자루와 보따리를 세영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젖살이 채 빠지지도 않은 양 볼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이 금방이라도 삐익! 하고 하얀 김을 뿜어낼 것만 같았다.


“···응? 아, 고, 고마워.”


헬레나의 설명 때문일까? 아까의 실수가 필요 이상으로 의식된 세영은 홍조가 올라온 볼을 긁적였다.

세영은 자신의 자각 없는 실수에 쑥스러워 볼을 붉힌 거지만, 제 3자가 보는 입장은 또 다른 법이다. 어째선지 서로 어색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하녀가 한 명······.

그런 헬레나의 능글맞은 미소에 발끈한 세영은 항의를 하려 했지만.


“저, 그럼 도련님.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으, 으응. 잘 가······.”


하녀의 서먹한 인사에 세영은 서먹하게 배웅을 해주었다.

꾸벅, 푹 숙인 고개를 한층 더 숙여 인사한 하녀는 아까처럼 도망치듯 방을 뛰쳐나갔다. 그러면서 살짝 열린 방문 틈으로 다시 한 번 새빨간 얼굴을 빼꼼 내밀곤, “결투, 힘내세요!” 작게 응원하고는 이번에야 말로 진짜로 방을 나섰다.


“······.”


세영은 그런 하녀를 눈으로 배웅하고는 이내 하아,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한숨을 쉬고 그래요?! 여자아이에게 실례잖아요!”


그런 세영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지 헬레나는 곧바로 핀잔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눈가는 웃고 있는 것이 분명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그 증거로 헬레나는 어딘가 즐거운 목소리로 세영을 콕 찔러보았다.


“확실히 말하지 않으신걸 보면 도련님도 마음이 있는 거 아니에요?”


“무슨!”


말도 안 돼는 소리를! 상대는 이제 열 살 남짓 어린애라고? 이제 내 나이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아이라고?!

겉으로 보기에 이제 열 살배기인 청년은 반박하고 싶은 마음에 헛바람을 들이쉬었다.


“왜 제법 귀여웠잖아요? 그 아이, 분명 크면 엄청난 미인이 될 거예요.”


“키워서 잡아먹으라고?! 누굴 변태 페도필리아로 보는 거냐!!”


결국 이성을 잃은 세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말에 헬레나는 고개를 갸웃, “도련님보다 연상인데요?” 세영은 무너져 내렸다.

하아, 잔뜩 피곤해진 세영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여기서 눈을 뜨고 한숨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만 같다. 그 모습에 헬레나는 이상하다는 듯 연방 고개를 갸웃거리며 세영에게 물었다.


“전에 듣기로 도련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아이라고 생각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당연하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세영은 중얼거리듯 답했다.

물론 어린 하녀가 예쁘장하니 귀엽긴 했지만 세영에게는 그뿐이다. 십대 초반이라니, 어려도 너무 어리지 않은가? 그러나 그 하녀보다 더 어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럼 도련님이 생각하시는 이상형은 어떻게 되는데요?”


“내, 이상형···?”


지친 마음에 넋이라도 나간 것일까? 세영은 초점 없는 눈으로 헬레나를 올려다보곤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자신과 동년배에 큰 키와 단정히 묶은 머리. 그리고 예쁘장한 얼굴과 잘록한 허리, 아담한 가슴, 마지막으로 언제나 활발하고 자신을 걱정해주는 상냥한 마음씨······.

“네? 네?” 재촉하는 헬레나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세영은 다시 한 번 홍조로 빨갛게 익어갔다.


“네? 어서요. 도련님의 이상형은 어떻게 되는데요?”


가까워지는 헬레나에 세영은 빨갛게 익은 얼굴을 홱! 돌리며 “시, 시끄러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죽어도 말할까 보냐.”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헬레나의 추궁을 얼버무리곤 세영은 도망치듯 아침식사가 놓인 책상으로 향했다. 그 모습이 못마땅한 헬레나는 칫! 혀를 찼다. 그러나 이내 포기했는지 헬레나는 침대위에 놓인 레이피어와 넓적한 보따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헬레나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일까? 세영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 이건 뭐죠?”


“아, 별건 아니고 결투에서 사용하려고.”


세영은 근처에 있는 작은 서랍장을 밀면서 별것 아니라는 듯 대꾸하였다. 세영의 가슴께 오는 그 서랍장은 세영의 체형으로 옮기기 버거운 감이 있었지만 아래 바퀴라도 달려있는지 드륵, 작은 마찰음을 내며 부드럽게 굴러갔다.

그 순간 “도련님!” 우레와 같은 고함에 화들짝 놀란 세영은 헬레나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잔뜩 성이 난 헬레나가 쌍심지를 켜고 세영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이 칼, 아무리 봐도 진검이잖아요? 목검으로 결투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성을 내는 헬레나는 칼을 살짝 뽑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스릉, 날카로운 칼날만큼이나 서슬 퍼런 소리가 등골에 울린다.


“뭐, 아직 교수에게서 아무런 말이 없었으니까······.”


막상 결투에 들어가면 목검으로 대체 될 테니까, 일단 준비용으로······. 불같이 성을 내는 헬레나를 납득시키기 위해 세영은 이런 말, 저런 말 죄다 끌어다 와 간신히 설득하였다. 그런 세영의 간절함이 통한 것일까? 헬레나는 “흐음······.” 작은 비음을 흘리곤 칼을 내려놓았다. 그러면서도 아직 의심이 가시지 않은 건지 미심적인 눈은 여전했지만······.


“그럼 이쪽은요?”


헬레나는 무언가 못 마땅한 듯 퉁명스레 보자기를 가리켰다. 한차례 진땀을 뺀 탓일까? 세영은 휴우 한숨을 내쉬곤 헬레나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결투에서 사용할 방패랑 옷가지 등 몇 개를 부탁했어.”


그러자 헬레나는 의외인 듯 살짝 놀라며 되물었다.


“방패요? 결투에 방패도 사용하나요?”


어쩐지 아침에 만난 윌리엄과 같은 반응이었다. 확실히 여기서는 결투에서 방패의 착용은 암묵적으로 금기시 되는 것 같다.


“난 소중하니까?”


여유를 되찾은 것일까? 세영은 농담을 던지며 도중에 밀던 서랍장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덧 책상 앞에 서랍장을 옮겨놓은 세영은 읏쌰! 그 서랍장 위로 올라가 걸터앉았다. 그러곤 책상위의 식기를 집어 드는 세영.


“······?”


헬레나는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게 왜 멀쩡한 의자를 놔두고 일부러 서랍장을 끌고 와 그 위에 앉는 걸까?

그 의문에 대답하듯 세영이 헬레나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뭐해?”


“네?”


“식사해야지.”


“······.”


연방 고개를 갸웃거리는 헬레나를 향해 세영은 재차 뭐하냐고 물었다. 그런 세영의 말을 간신히 이해한 것일까? 헬레나는 살짝 충격을 받은 듯 “도련님, 설마······.” 중얼거리더니 무언가 각오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제피란의 나이 이제 열 살이다. 옷을 갈아입히는 것과 목욕은 그렇다 쳐도(왜?) 식사를 도운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음식을 잘게 썰어 포크로 찍어 다정하게 먹여준다던지, 뜨거운 스프를 떠서 호호 불어 조심스럽게 먹여준다던지, 헬레나로서도 그것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아무리 무신경한 헬레나였지만 그런 그녀 역시 연인들이나 할 법한 부끄러운 상상에 볼이 붉어졌다.


“저기, 뭐하고 있어?”


무언가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잔뜩 기합을 넣는 헬레나를 보고 불안해진 세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세영의 질문에 헬레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


“먹여달라는 거 아니었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버럭! 새빨간 홍조가 폭발하듯 소리쳤다. 가득이나 이상형을 물어오는 그녀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헬레나를 민감하게 의식하게 된 세영이다.


‘어, 어떻게 식사를 먹여줄 생각을······.’


여자 사람 친구 하나 없던 세영으로선 그것만으로도 볼이 붉어질 만큼 자극이 강한 상상이었다.

······그래도, 그것 나름 좋을지도.


“······!”


세영은 머릿속을 가득 매우는 번뇌를 떨쳐버리듯 세차게 도리질 쳤다. 그러곤 이내 머쓱함에 “흠, 크흠.” 작게 헛기침을 하며 평정을 되찾는다. 그러나 안쓰럽게도 귓불까지 빨갛게 익은 소년의 홍조는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같이 식사하자고.”


“······네?”


세영의 권유가 전혀 예상 밖이어서 일까? 헬레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헬레나도 식사 안했을 것 아니야. 아까 부탁할 때 2인분으로 부탁했으니까······.”


세영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식기가 2개씩 놓여 있었다. 또 그런 권유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식사거리 앞에 놓인 의자 역시 비어있었다. 그 광경에 헬레나는 얼떨떨한 자세로 굳어버렸다.

헬레나의 그런 모습이 어쩐지 부자연스러워 세영은 ‘내가 또 뭘 잘 못했나?’ 생각했지만 이내 작게 도리질, 당당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건 단순하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식사 권유일 뿐이다. 아까처럼 결코 좋아한다거나, 결혼이라던가, 그런 터무니없는 이벤트가 아니다.

···아닐 것이다.

···아니, 겠지?

세영은 헬레나의 침묵이 길어지자 점점 불안해졌다.


“저기, 헬레나······?”


물론 귀족과 고용인이 한 식탁에서 같이 식사한다는 이야기는 세영 역시 들어본 적 없다. 제피란의 기억 역시 그런 상황은 전혀 들어본 적 없지만, 그게 그렇게 충격적인 일인가?

길어지는 헬레나의 침묵에 점점 분위기가 서먹해지자 세영은 머쓱함에 볼을 긁적였다.


“죄, 죄송해요.”


“···응?”


“저, 동료들과 식사 약속을 잡아놓아서······.”


간신히 대답한 헬레나는 세영의 권유를 거절한 미안함 때문인지 난감하게 웃어보였다.


“···선약이라면 어쩔 수 없지.”


세영은 아쉬움을 담아 말했다. 그런 세영에게 헬레나는 꾸벅 머리 숙여 인사하곤 빠른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방문을 나서는 그녀를 보던 세영은 무안함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먹여줄 생각이었으면 계속 붙어있을 생각이었나?”


약속시간을 잡아놓고 먹여줄 생각을 하는 하녀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한 세영은 이내 돌아앉아 식사거리를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3인분 같은 2인분이다.

세영은 혼자 먹기에는 과도할 정도로 차려진 아침식사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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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p 1. 미운오리새끼(5) 20.05.11 162 4 22쪽
» Ep 1. 미운오리새끼(4) 20.05.11 160 3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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