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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cea 님의 서재입니다.

세티아 왕국의 작은 영주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렌시아a
작품등록일 :
2020.05.11 22:43
최근연재일 :
2020.05.27 21: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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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2
추천수 :
73
글자수 :
303,156

작성
20.05.1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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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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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Ep 1. 미운오리새끼(1)

DUMMY

1.


그것은 작년 여름방학 때 일이었다.

8월말, 성수기도 끝날쯤 세영의 가족들은 가족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피서라기에는 늦은 감이 있지만, 그편이 경비가 조금이나마 절약되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그 사실에 불평했을 법하건만, 세영은 그런 부모님의 선택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올해로 대학교에 입학한 세영은 뒤늦게나마 가정형편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히잉! 오늘부터 추워지잖아······.”


그러나 올해로 중학교에 들어가는 어린 동생은 울상인 얼굴로 잔뜩 불평했다. 실망감에 잔뜩 찡그린 얼굴. 그러나 그녀의 등 뒤로 맨 배낭은 피서지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듯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세영은 그런 여동생의 모습이 귀여워 방긋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악! 뭐 하는 거야?! 머리 헝클어지잖아!!”


그런 그녀는 세영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앙칼지게 소리쳤다.


“아영아! 오빠에게 무슨 말버릇이니?!”


반항적인 여동생에게 어머니께서 주의를 시키며 부엌에서 나오셨다.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자 아영이는 “히잉.” 울먹이며 거실 구석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울상인 얼굴로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모습이 아마도 잔뜩 토라진 모양이다.

그런 딸의 모습에 어머니께서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세영을 돌아보았다.


“정말 같이 갈 수 없니?”


“죄송해요. 오늘도 아르바이트가 있어요.”


1년에 한 번뿐인 가족여행이지만 등록금에 시달리는 세영으로선 아르바이트를 빼먹을 수 없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간신히 턱걸이로 들어간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학비 부담을 줄여보고자 1학기 휴학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지만······.


“미안하구나.”


“뭘요. 이제 성인이니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죠.”


세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쓴웃음을 짓는 것이 내심 함께 가지 못한 게 아쉬운 모양이다.


“점심밥 만들어 놓았으니 일하기 전에 꼭 먹고 가거라.”


“감사합니다.”


“밥 꼬박꼬박 챙겨 먹고, 열쇠는 안방 2번째 서랍에 있으니까, 아! 그리고 생활비는 식탁 위에 올려뒀다.”


“어머니···.”


겨우 1박 2일 여행인데 생활비는 좀 아니지 않나?

어머니의 지나친 걱정에 세영은 남몰래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로 스무 살이건만, 어머니의 눈에는 아직도 어린아이로 보이시는가 보다.


“짜잔!”


그때였을까? 때마침 촌스러운 소리와 함께 안방 문을 벌컥 열고 나오신 아버지. 거칠게 방문을 박차고 나오신 아버지의 모습에 세영과 가족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도 그럴게 아버지의 모습이 벌써 피서지의 도착한 사람과 같았기 때문이다. 푸른 선글라스와 밀짚모자를 쓰시고 새하얀 반바지와 단추 하나 채우지 않은 파란 물방울무늬 난방, 그 사이로 보이는 구릿빛 복근과 그 옆으로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서핑보드까지······.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슬리퍼를 끄시며 거실로 나오신 아버지는 “어떠냐? 멋지지 않니?”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패션쇼를 하듯 거실 중앙에서 한 바퀴 빙글, 이내 보디빌더와 같이 구릿빛 이두 근육을 과시했다.

그 모습이 너무 당당해서 어쩐지 하얀 거실 바닥이 마치 피서지의 백사장으로 보일 정도다.


“우와아! 아빠 멋지다~! 잘생겼다~!”


“하핫! 우리 아영이도 프리티~!”


그런 아버지를 향해 잔뜩 토라져 있던 아영이는 쪼르르 달려가 안겼다.

자신을 반겨주는 딸에 감격한 것일까? 아버지는 눈가를 훔치곤 이내 크게 웃으며 아영이를 안아 올렸다. 그러자 툭,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핑보드가 바닥에 떨어졌다.


“······.”


그러고 보면 저 서핑보드 대체 어디서 난거지? 작년만 해도 피서지에서 빌려 타시지 않았나? 세영은 소박한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여보! 이거 어디서 난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앙칼진 목소리로 추궁에 나섰다.

그런 어머니의 박력 때문일까? 아버지의 몸이 흠칫! 크게 떨린다.


“아니, 이건, 그러니까, 그, 치, 친구가 빌려줬어······.”


어째선지 떨리는 몸만큼이나 떨리는 목소리셨다.


“아버지, 가격표 붙어있어요.”


“······.”


“당신 정말!!”


앙칼진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파트에 쩌렁쩌렁 울렸다. 올해 역시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잔소리로 시작되는 가족여행에 세영은 웃음이 나왔다.

비록 이번에는 같이 갈 수 없었지만, 내년이 있고 그 후년이 있다. 다음 학기에는 좀 더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노려보자. 작은 다짐을 하며 세영은 가족들을 배웅했다.

분명 이번에도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언제나처럼 아버지는 서핑보드를 탈 것이며, 어머니는 일광욕을 즐기시겠지, 아영이 역시 튜브를 끼며 물장구를 칠 것이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그것은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내일이 되면 즐겁게 웃으며 돌아올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세영은 힘차게 하루를 시작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세영 씨, 되십니까?]


수화기에서 들려온 소리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가족들을 대신해 돌아온 그 목소리는 마치 낮은 기계음을 듣는 것 같았다.


[세영씨의 가족분들께서 전부 교통사고로······.]


“······.”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전화 속 남자의 목소리에 세영은 머릿속이 뒤죽박죽 뒤섞여버렸다. 그 흔한 교통사고란 단어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조차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반대편 차가 중앙선을 넘어······.]


뭐야, 뭐야? 뭐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언제나처럼 웃으며 떠났던 사람들이라고! 언제나처럼 즐겁게 놀다 올 사람들이라고! 그런데, 그런데 뭐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장난 전화치곤 질이 너무 나쁘다. 하필이면 이런 날 사고라니, 틀림없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학생일 거다.


[뚜, 뚜, 뚜······.]


장난 전화인데, 장난 전화임을 알고 있는데, 분명 그럴 텐데······.

세영은 반복적인 기계음이 흘러나오는 수화기를 한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무슨 꿈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눈가와 머리맡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것이, 무척 슬픈 꿈을 꾼 것 같다.

세영은 머리맡의 축축한 불쾌함에 짜증을 내며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


스르륵, 몸을 덮고 있던 담요가 미끄러지듯 침대 위로 흐트러진다. 창살 사이로 스며든 아침 햇살과 함께,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살랑 불어 드는 봄바람의 여파에 하얀 커튼이 작게 물결쳤다. 마치 봄기운에 녹아내리는 눈뭉치마냥 뺨을 간질이는 아침 햇살에 잠기운이 사르르 가셨다.


“···여긴?”


몽롱했던 정신이 맑아지자 세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선 풍경. 누런 천장과 고풍스러운 벽지, 제법 넓은 방안은 전부 원목 가구로 채워져 있었다. 세영은 자기 몸의 네다섯 배나 될 법한 침대 위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처음 보는 곳이다.

세영은 한참 동안 넋 놓은 사람마냥 멍하니 침대 위에 있었다. 낯선 방안, 다시금 불어오는 바람에 커튼만 찰랑일 뿐이다.


“나는······.”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고, 살아있는 건가?

50미터 높이에서 아스팔트 위로 자유낙하. 그 높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기적이고 뭐고, 기적조차 일어나지 못할 가능성 제로의 이야기.


“···죽은, 건가?”


차츰 투신자살을 실감이라도 한 것일까? 목소리가 떨렸고 그에 따라 작은 어깨가 떨려왔다.

세영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작지만 부드러운, 상처하나 찾아볼 수 없는 고운 손가락들이 꼬물거렸다.

살아있다. 그 높이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영은 분명 살아있었다.

작은 한숨이 새어 나오고 이어 떨림이 진정되었다.


“······.”


그 사실에 세영은 미간을 좁혔다.

가족들을 따라 자살을 결심했건만, 자살에 실패하고 그것을 안도하는 자신이 있었다. 세영으로선 불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여긴 어디지?”


불쾌함을 떨쳐내듯 세영은 거칠게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방안을 훑어보았다. 고풍스러운 벽지와 가구, 아무리 보아도 병원으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어느 서양식 저택 같은 분위기다.


“···그럴 리가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연관성이 없다. 그도 그럴게 고층빌딩에서 투신한 뒤 이런 방에서 일어나다니, 이 모든 것이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세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곤 생각하는 걸 관뒀다. 귀찮기도 하지만 혼자 생각해 본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몸을 움직여 이곳저곳 들쑤셔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세영은 필요 이상으로 넓은 침대에 짜증을 내며 몸을 기어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


“읏!”


그런 세영은 뜻밖의 침대 높이에 숨을 삼켰다. 분명 크다고 생각했던 침대지만 설마 이 정도로 클 줄은 몰랐기에 발을 헛디딘 까닭이다. 그도 그럴게 보통 무릎 언저리 위치했던 침대가 설마하니 허리께까지 와 있었기 때문이다.


“뭐 이리 무식하게 커······.”


간신히 넘어지지 않은 세영은 불평을 늘어놓으며 중심을 바로 잡았다.

침대에서 내려와 보니 방안은 생각보다 더 넓었다. 아니, 방안뿐 아니라 가구 전체가 비정상적으로 컸다. 가슴께 오는 의자와 머리께 오는 책상. 심지어 창틀은 세영의 머리보다 위에 있어 밖을 내다볼 수조차 없다.

마치 거인의 방에 들어온 난쟁이가 된 기분이다.


“뭐야, 여긴···.”


세영은 이상할 정도로 큰 방안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도대체 누가 사용하는 방이기에 이렇게 큰 거야?”


‘내가 사용하는 객실.’


“···응?”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사용하는 객실이라고? 세상에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애초에 세영은 처음 보는 방안 풍경이다. 더군다나 세영이 사용하기에 가구들의 크기가 너무 컸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부정하듯 실소하며 세영은 방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가 어딘지 방 밖으로 나가 확인해 볼 심산이었다.

그때 또다시 머릿속에서


‘알펜시아 백작가 별관 2층 객실.’


“······.”


아까처럼 갑자기 떠올랐다.

알펜시아 백작가? 무슨 서양 귀족 이름인가? 아니 그 전에 알펜시아는 뭐야? 알프스 지역의 백작이란 건가?


“······.”


세영으로선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당연하게도 세영은 해외여행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또한, 알고 지낸 외국인 친구 하나 없는 자신이 어떻게 유럽 백작가를 알고 있단 말인가? 아니 그 이전에 고층빌딩에서 투신하고 백작가 저택 객실에서 눈을 뜬 상황은 대체 어떤 경우란 말인가?!


“···잠깐!”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세영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뭔가, 중요한, 그리고 매우 이상한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세영은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떨리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하얗고 작은, 상처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앙증맞은 손. 도저히 50미터 높이에서 아스팔트로 떨어졌다고 볼 수 없는 깨끗한 손. 그런 자신의 손이······.


“···이렇게 작았었나?!”


아무리 봐도 성장기가 되지 않은, 어린아이로 보이는 손에 세영은 혼란스러운 머리를 거세게 도지질 쳤다. 그리고 이내 빠른 발걸음으로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거울, 거울은 어디에 있지?


‘첫 번째 서랍 안.’


거울을 찾는 세영에게 답변이라도 하듯 머릿속에서 거울이 있는 위치가 떠올랐다. 세영은 그 생각에 의심조차 하지 못하고 거칠게 서랍을 열려고 했으나······.


“···자물쇠.”


몇 번이나 당겨 보았지만, 서랍장은 크게 흔들릴 뿐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어째선지 몰라도 서랍장 자체를 열쇠로 잠가 두었나 보다.


‘같이 일기를 넣어두었기 때문, 열쇠는 침대 밑 주머니 안.’


다시 한번 떠오른 생각에 세영은 눈살을 찡그렸다. 분명 모를 터인 사실을 어떻게 자신은 처음부터 알고 있다는 듯 떠올리는 거지? 그 불쾌함에 세영은 투덜거리며 이내 침대 밑에서 작은 보따리 하나를 찾아 꺼냈다.

제법 먼지가 쌓인 주머니를 털어내며 안에서 작은 열쇠를 꺼냈다. 설마 하며 서랍장에 꽂아보자 열쇠는 역시나 딱 맞물리며 철컥 자물쇠가 열렸다.


“뭐야, 정말······.”


세영은 믿기 어려운 상황에 한숨을 내쉬곤 서랍장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 예고도 없이 방문을 벌컥 열리고 “도련님!” 느닷없이 들이닥친 불청객은 큰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넓은 방 안에 쩌렁쩌렁 울리며 메아리 칠 정도다. 세영은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히끅!” 딸꾹질하였고 또한 손에 들고 있던 손거울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어, 도련님 일어나 계셨네요?”


놀란 토끼 눈으로 방문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하녀 옷을 입은 여성이 한 명······. 세영으로선 낯선, 그러면서도 익숙한 하녀의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헬, 레나······?”


“전 또 오늘도 늦잠 자시는 줄 알았죠.”


헬레나, 알펜시아 백작가의 하녀로 내 전속 하녀로 배정된 여성이다. 나이는 20대 초반으로 나름대로 성안의 남정네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여성. 그 성격이 덜렁거리고 거친 면이 있지만 출중한 외모로 다른 귀족들의 시중을 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 라니! 어떻게 내가 이런 걸 알고 있는 거야?! 아니, 그 이전에 전속 하녀라니? 자신이 언제부터 유럽 백작가의 하녀를 전속으로 들였단 말인가?!

세영은 혼란스러운 머리에 다시 한번 고개를 거세게 도리질 쳤다. 그런 세영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헬레나는 “아 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손바닥을 치고는 세영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어서 준비하세요. 오늘도 늦으면 세실리아 여사께 또 혼나고 말아요!”


“내가 아니라, 네 이야기겠지······.”


헬레나의 재촉에 세영은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대꾸했다. 마치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사이마냥······.

그 사실을 깨닫고 세영은 당혹감에 재빨리 말을 멈췄지만 헬레나는 “너무해요오~!” 울상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능숙하게 방 밖에서 전신거울을 혼자서 솜씨 좋게 가지고 들어와 세영의 눈앞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게, 나, 라고?”


“네? 무슨 말씀이세요?”


전신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중얼거리는 세영을 향해 헬레나가 물었지만 세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전혀 본 적 없는 낯선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머리모양이나 옷차림이 다른 정도가 아니다. 투신자살로 인해 골격이 변하고 얼굴을 못 알아 볼 수준이 아니다. 그곳에는 완전히 다른 인종, 다른 연령의 소년이 있었다.

새하얀 피부와 금발 벽안의 모습은 흡사 서양 켈트인을 보는 것 같다. 더군다나 아직 젖살이 채 빠지지도 않은 얼굴과 기껏해야 120 될까 말까한 작은 키는 아직 앳된 소년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봐도 세영 자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믿을 수 없는 거울 속 모습에 세영은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거울 속 백인 소년 역시 양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더듬는다.


“······말도 안 돼.”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야?! 복잡한 연산에 기계가 과부하라도 걸린 것 마냥 세영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그러나 그 충격보다 더 한 충격이 세영을 덮쳤다.

등 뒤의 헬레나가 갑자기 세영의 바지를 벗겨 내린 것이다.


“자, 잠깐! 지금 뭐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세영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재빨리 잠옷 바지를 끌어올리곤 흡사 비명을 지르듯 물었다. 그러자 헬레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계속 잠옷을 입고 계시면 옷을 못 갈아입잖아요.”


“자, 잠깐만, 그러니까, 옷을, 갈아입으라고?”


“당연하죠! 언제까지 주무실 생각이세요?!”


너무나도 태연하게 대답하는 모습이 어쩐지 순진무구해 보일 정도다.

예상치 못 한 사태에 진정을 되찾기 위해 세영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윽고 간신히 진정된 세영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헬레나에게 지시했다.


“그러니까, 옷은 내가 갈아입을 태니, 헬레나는 나가서 기다려.”


현재 외모는 어린아이일지 몰라도 세영은 갓 스무 살 된 건장한 청년이다. 동년배 여성 앞에서 태연히 옷을 갈아입을 만큼 강심장이 아니다. 더군다나 여성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는 모태솔로인 그이기에 더더욱!

일단 그녀를 보내고 재빨리 옷을 갈아입자. 그러한 계획은 예상외의 난적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싫어요.”


“······네?”


“그러면서 또 도망칠 생각이시죠? 안돼요. 오늘은 백작님께서도 기다리시는 걸요.”


단호하게 말하며 세영이 주섬주섬 주워 올렸던 바지를 붙잡는 헬레나. 도대체 평소 어떻게 행동했으면 이렇게까지 불신을 할까?

그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세영의 머릿속에서 다양한 도주로가 떠올랐다.


“잠깐 기다려! 그러니까 혼자 할 수 있대도!”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세요? 언제나 제가 옷 갈아입혀 드렸잖아요? 어제는 같이 목욕까지 했으면서.”


“뭣!”


그런 아쉬운! ··· 이 아니라. 무슨 말이야 그게!!

혼란스러운 머릿속에서 하나, 둘, 영상이 떠오른다. 언제나 손수 옷을 갈아입혀준 헬레나와 어젯밤 욕실에서······.


“자, 잠깐!!”


그 이상 생각하지 마!

무정히 떠오르는 자극적인 기억을 애써 부인하듯 세영은 머리를 거세게 도리질 쳤다. 그러나 건장한 청년인 세영의 기분을 뒤로한 채 매우 자연스럽게 반응해버린 남성이란 이름의 욕망.

이 상태에서 바지가 벗겨진다면······?


“그것만은 안 돼!”


흡사 비명과 같은 절규와 함께 있는 힘껏 헬레나를 밀어냈다. 그러나 그녀를 떨쳐내기는커녕 바지를 붙잡은 헬레나의 손길이 더욱 우악스러워졌다. 애초에 어린아이의 힘으로 성인 여성을 밀쳐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어서요! 이러다가 늦는다니까요?!” 당돌한 하녀는 바지자락을 있는 힘껏 내릴 것이다.


“싫어어어어엇!”


세영의 비명이 메아리치며, 그의 바지는 무정하게 벗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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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p 1. 미운오리새끼(5) 20.05.11 162 4 22쪽
5 Ep 1. 미운오리새끼(4) 20.05.11 159 3 20쪽
4 Ep 1. 미운오리새끼(3) 20.05.11 199 5 23쪽
3 Ep 1. 미운오리새끼(2) +4 20.05.11 289 7 24쪽
» Ep 1. 미운오리새끼(1) 20.05.11 448 1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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