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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남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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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지
작품등록일 :
2022.09.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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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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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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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DUMMY

한강의 프로그맨 게이트는 이제까지 숱한 공략 시도가 있었다.

한국에 있어 한강이 역사,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안보 때문이었다.

프로그맨은 수륙양용의 괴물로, 특히나 물가에서는 엄청난 속도와 번식력을 자랑했다. 가만히 놔두면 육지에까지 번질 게 뻔했다.

그리하여 이차연과 고주만이 연합, 진입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한강의 프로그맨 게이트 중 가장 소규모인 곳에 들어갔음에도 다대한 피해를 입은 것이다.

그들은 게이트 정보 공개를 줄기차게 요구받았음에도 완강히 거부했는데, 그 이유가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끈적끈적하군.”


프로그맨 게이트는 온통 늪지대였다. 이 칙칙한 습지는 썩어가고 있었고, 코가 마비될 것 같은 악취를 풍겼다. 피부조차 가려웠다.


‘근성 빠진 여자들은 싸우기도 전에 자지러졌겠어.’


다른 게이트가 모두 이런 환경이 아닐 수도 있지만, 보통 괴물은 같은 종이라면 흡사한 환경에서 지냈다. 아직 한강 프로그맨 외에 다른 변화종은 나타나지 않았다.

김상남은 점점 빠져드는 늪에서 발을 빼보았다. 제법 힘을 주어야 발이 조금씩 움직였다. 온몸을 빼내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내 열정은 이까짓 물기에 지지 않는다.”


김상남이 열감을 피워냈다.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메마른 불순물만 몸에 묻어났다. 그렇게 운신의 자유를 얻어낸 순간이었다.


피잉···!


마치 화살이 쏘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나 빠른지 김상남조차 대응하지 못하고 타격을 허용했다.


철썩.


스팽킹하듯 날카로운 소리. 쏘아져 온 그것은 날아올 때만큼이나 재빠르게 되돌아갔다. 축축한 액체만 김상남의 대흉근에 남았다.


“이 느낌은···!”


김상남은 인상을 찌푸렸다. 대흉근에서 올라오는 꿉꿉한 냄새··· 방금 개구리를 구워 먹을 때, 볼살에서 느껴지던 그것과 흡사했다.


“한 끼 도시락 놈들이 내 가슴살에 침을 발라?”


전자렌지 들어간 편의점 도시락의 제육볶음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양념을 튀기는 기분!

김상남은 껄껄 웃으며 늪을 헤쳐나갔다. 이쯤 되면 맛나게 먹어줄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교태로운 녀석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갔음에도, 깜찍한 도시락은 보이지 않았다. 인간을 향한 본능적인 적의를 불태워야 할 괴물답지 않은 태도였다.

그러나 인내한다고 영원히 참을 수 있다면, 진작 놈들에게는 ‘영장’의 칭호가 부여됐을 것이다.


“오, 개구리알. 아주 크리미한 맛이지.”


김상남이 늪 근처에서 자생하는 수풀 틈새, 아직 올챙이조차 되지 못한 알을 마구 씹어먹자 놈들의 절제력은 한계를 맞이했다.


“고로로록-!!”


프로그맨이 감춰두었던 자태를 드러냈다. 놈은 타고난 사냥꾼으로 매복의 달인이지만, 자신이 직접 낳고 정을 뿌린 알이 무참히 잡아먹히자 참지 못하고 나섰다.

안정을 위해 분쟁을 회피하는 모성애만 있었다면 살았겠지만··· 안타깝게도 프로그맨은 부성애도 갖춘 자웅동체의 괴물. 들끓는 부성애는 복수를 부르짖었다.


“이것이 오야코동(모자덮밥)?”


김상남은 단숨에 놈을 잡아채 익혔다. 고기와 알을 함께 씹자 쫄깃하고 크리미한 식감이 입안에 맴돌았다. 썩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둑한 늪지대 속, 붉은 안광이 하나씩 떠올랐다. 하나를 넘어 둘, 셋, ···이윽고 수백.

수백 쌍의 개구리 인간이 공명하며 김상남을 응시했다. 놈들은 고록고록 울면서 유선형으로 헤엄쳤다. 완벽하게 조직된 포위망.


“···흠.”


김상남은 놈들이 몰려들고 난 이후, 몸이 무거워진 기분이 들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그의 체온은 여전히 뜨거웠으나, 늪지대가 축축해지는 게 더 빨랐다. 거의 민물처럼 스멀스멀 수위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의 돌격은 천장을 뚫는다!”


김상남은 위로 솟구쳤다. 남자는 바닥보다는 위를 바라보며 향상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김상남은 자신의 허리를 잡아채 휙 끌어가는 힘을 느꼈다. 그것은 바싹 메마르고 꼬인 밧줄이었다. 확실한 문명의 증거.


“저 자식들, 어지간히도 화가 났군! 대체 뭔 짓을 저지른 거야? 놈들의 알이라도 먹었나?!”


걸걸한 목소리였다. 김상남이 끌려가는 와중에 쳐다보니, 근육질의 백발 노인이 앙상한 나무 사이사이를 가볍게 뛰어넘고 있었다.


“노인장은 누구십니까?”

“이준범! 아이고, 힘들어라. 이놈아! 정신 차렸으면 네 발로 좀 걸어라. 노인네 죽겠네!”

“어차피 곧 자연사할 연배처럼 보이는데요.”

“이 자식이?”


노인 이준범은 정말로 곧 죽어버릴 것처럼 얼굴이 시뻘게졌다. 김상남은 노인의 혈압이 걱정됐다.


“혹시 자식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쇼. 제가 대신 유언 전해드리겠습니다.”

“집어치워! 싸가지 없는 자식, 뒈질 뻔한 놈 구해줬더니 못 하는 말이 없어!”


이준범은 크게 코웃음 치곤 익숙하게 바위산을 올랐다. 정상에는 노인이 피워놓은 것으로 보이는 모닥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자연인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군.’


김상남은 주위를 둘러봤다. 간단하게 지은 움막과 넝쿨 따위를 엮어 만든 밧줄, 기초적인 형태의 진흙 그릇이 눈에 띄었다. 원시시대에 준하는 생활상이었다.


“어르신···.”


김상남은 절로 탄식이 나왔다.


“설마 고려장 당해버린 겁니까?”


흔히들 고려장은 제국 시절, 일본이 통치를 위해 만들어낸 일화라고들 한다. 원조가 되는 설화는 우바스테야마, 할머니를 버리는 산. 토양이 척박한 일본은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을 산에 내던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김상남이 생각해볼 때, 산업화가 진행된 대한민국은 도리어 없던 고려장이 생겨난 듯했다. 다들 생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부모를 양로원에 내던지지 않는가? 그 서글픈 신세가 된 노인들조차 단돈 수십만 원 나오는 연금을 들고 양로원에 틀어박히는 비정한 현실.

어쩌면 노인 이준범은 사라진 양로원 대신 게이트에 던져진 게 아닐까?


“···남의 새끼를 후레자식으로 만드는 것 좀 보게나. 내 아들, 딸내미들은 내가 여기 들어오는 걸 극구 반대했다. 손녀도 말렸고.”

“그럼 자의로 여기 계신단 말입니까?”

“그래.”

“음.”


김상남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상남자를 자처하는 그조차도 이런 늪지대에서 지내는 취향은 없었다.


‘과연 산업화의 역군···.’


그 시절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무지막지한 사람이 만들어진 걸까?


“난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여기서 지내는 거다. 어쭙잖게 게이토를 닫아보겠답시고 들어왔다가 죽어 나가기엔 아까운 청춘들이지. 살날 얼마 안 남은 노인네 목숨이야 아까울 것도 없고.”

“저런. 묫자리는 저 움막으로···.”

“아주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라!”


이준범은 투덜거리면서도 웃음기가 돌았다.


“흠, 뭐. 그래도 말로만 오래 사세요 하는 것보단 낫구만. 여기서 나 죽으면 제사도 지내주나?”

“저 기독교 신잡니다.”

“말뽄새만 보면 골수 유교인데?”

“모친께서 독실하게 믿으셔서.”

“···음, 그럴 수 있지.”


김상남과 이준범은 잠시 잡담을 나눴다. 약간의 내적 친밀감이 쌓이자 이준범이 말했다.


“아무튼, 저놈들 왜 저리 화났나? 내가 여기 게이트에 들어오고 나서 저렇게 화난 건 처음 보는군.”

“아, 좀스럽게 도망 다니길래 도발 겸 배 채울 겸 해서···.”


김상남은 자신의 오야코동 레시피를 말해주었다. 쫄깃하고 고소한 개구리 구이와 느끼하지만 크리미한 알의 조합. 이 게이트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억··· 어억?!”

“하하, 어르신께서도 기대가 되나 봅니다? 제가 한번 만들어 드리죠. 이게 약간의 역함만 참으면 곧잘 들어갑니다.”

“알을··· 먹었다고?”


이준범의 주름이 확 깊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며 머리카락을 살포시 잡았다. 한창 모근이 약할 나이, 당황한 와중에도 손놀림은 신중했다.


“이거 큰일이군. 난리가 나겠어.”

“왜 그러시는지?”

“저 개구리들은 완전한 의미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 놈들이야. 어느 한 마리 빠질 것 없이 모든 개체가 번식과 양육에 힘쓰지. 그만큼 동족애가 각별하다는 뜻이야.”

“계집애 같은 습성이군요.”


우글우글 몰려다니는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야. 알을 건드리고, 심지어 다 보는 앞에서 동족까지 구워 먹었다면··· 어쩌면 그 녀석이 나설지도 몰라.”

“그 녀석이 누굽니까?”

“이 게이트의 보스.”


이준범이 심각한 얼굴을 했다.


“대왕 올챙이.”

“?”


김상남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르신, 치매 검사는 언제 받으셨습니까?”

“4년 전에. 그건 왜 묻나?”

“개구리는 올챙이가 성장한 결과물 아닙니까. 그건 상식인데요.”

“자네, 괴물이 돼봤나?”

“아뇨.”

“그럼 말을 말게. 자네가 괴물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드나?”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어쨌든 만약 그 대왕 올챙이가 나섰다면···.”


우르릉···!


그때 바위산이 울렸다.

김상남은 미세한 감각을 통해, 비단 바위산만 흔들리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늪지 전체가 출렁이고 있었다.


“···녀석이 분노했군.”


이준범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조심스레 움막 뒤편으로 향해 동태를 살폈다. 얼마 후, 늪지 중앙이 갈라지는 듯하며 거대한 형체가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 끄오오오옹!


마치 고래가 우는 것처럼 웅장하고 높은 데시벨.

광택이 흐르는 검은 등과 내장이 드러나는 투명한 배, 집채만 한 눈망울, 짧게 돋아난 다리들. 그리고 넓고 얇게 펼쳐진 꼬리.

크기가 심각하게 큰 것만 제외하면 영락없는 올챙이의 모습이었다.


“···대왕 올챙이가 맞군요.”

“그렇지?”


김상남과 이준범은 잠시 말이 없었다.


‘좀 크긴 하군.’


녀석이 솟아나자 늪지대가 꽉 들어찬 듯했다. 꽤나 차올랐던 수위도 죄다 빠져서 언뜻 바닥이 보이는 곳도 있을 지경이었다. 크기만으로도 위협적인 수준이었다.


“영감님, 여기 계신 이유가 게이트에 잘못 들어온 젊은이들 빼내 주려는 목적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이준범이 한숨 쉬었다.


“나만큼 게이트에 오래 지내본 사람만 아는 건데··· 괴물들이 우리 세계로 나갈 때, 놈들도 게이트를 열지. 그때 어떻게든 섞여서 넘는 방법이야. 무식하고 위험하지만 확실하지. 적어도 저런 놈을 잡는 것보다는 말이야.”

“그럼···.”

“하지만 이번만큼은 쓸 수 없는 방식이야.”

“어째섭니까?”

“저놈이 화났으니까. 저 화가 풀리기 전까지는 죽어도 게이트를 안 열더라고.”


저놈을 잡거나, 혹은 잡히거나. 방법은 둘뿐.


“좀 길더라도 기다리면 언젠가는 화가 풀릴 거야. 그전까지는 이 바위산에 숨어서···.”

“어찌4 대장부가 돼서 산 뒤에 숨겠습니까?”


김상남은 만류하는 이준범을 밀치고 나섰다. 바쁘게 휙휙 돌아가던 대왕 올챙이의 커다란 눈이 김상남을 포착했다.


- 끄아아앙!!


놈은 네 다리로 부지런히 헤엄치며 짓쳐 들었다. 워낙 덩치가 커서 극히 비효율적인 움직임인데도 속도가 빨랐다.


“와라!”


김상남은 팬티 밴드를 꺼내 들고 앞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온몸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쏙.


대왕 올챙이는 김상남을 꿀꺽 삼켰다. 우당탕 뒹굴거리며 긴 터널을 지난 김상남이 눈을 떴다. 불투명한 외벽이 눈앞에 있었다. 소화액이 찰랑이는 올챙이의 배 속.


“···?”


그리고 마주한 광경에, 김상남은 잠시간 입을 다물었다.


[ 살ㄹㅕ주세요 ]

[ 할아ㅂㅓ지 어ㄷ ]

[ 발이 녹고 있ㅇㅓㅇ ]

[ 도망쳐 ]


덜 녹은 잔해물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옷가지였고, 조잡한 갑옷이었으며, 부식되어 가는 무기였다.

그 모든 흔적의 위에는 유서가 적혔다. 믿음과 배신, 그리고 죽음에 대한 단말마.

괴물의 소화액조차 지우지 못한 그 현장 앞에서, 김상남은 직감했다.


‘이준범은 일부러 이 게이트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부역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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