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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남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양파지
작품등록일 :
2022.09.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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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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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DUMMY

김상남은 손을 탁탁 털었다. 그의 앞에는 진정한 성 정체성을 되찾은 비겁자들이 신음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박 반장은 자신의 사타구니를 더듬거렸다. 지켜보던 그의 모골이 송연해질 지경이었다.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세력 과시를 하는 건 여자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남자라면 고독을 곱씹으며 단단해져야 하는 법.

김상남은 무력화된 이들에게서 눈을 돌렸다. 남성성을 잃은 자는 그의 관심사 밖이었다.


“경찰도 굉장히 뿌듯한 일이군요. 역시 제1지망 진로답습니다.”

“경찰을 준비했습니까?”

“예. 안타깝게도 사나이의 길을 걷는 사람은 할 수 없다더군요.”

“오, 그거 참··· 크흠.”


다행이라고 말하려던 박 반장이 헛기침으로 화제를 돌렸다.


“적성이 맞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음. 그럼 당분간 힘써주리라 믿습니다.”

“그러죠.”


치안, 질서 유지.

언젠가 김상남이 꿈꾸던 일이었다.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며, 고되더라도 보람 있는 삶!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맡겨만 주십시오.”


김상남은 씩 웃었다. 하얀 건치가 드러났다.


“음···.”


박 반장은 어딘가 불안해졌다. 워낙 손이 모자라고, 눈치도 없는 것이 이쪽 일의 적임자 같아서 맡기긴 하는데··· 이게 잘하는 짓일까?


‘모르겠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박 반장에게도 처음이었다.

이게 나라냐, 문제가 많다, 불평은 허다했으나 그걸 체감하는 순간이 오리라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슬슬 인터넷도 오락가락해.’


게이트의 우선순위는 이제 통신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다행히 통신이 살아있는 지금, 군대가 통신망 보호를 최우선으로 작전을 펼친다고는 하지만 어찌 될지는 모를 일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지금 박 반장의 최선은 사람들을 규합하고, 또한 지키는 것.

이 지역을 넘어 국가까지 바라보기엔 벅찬 일이었다.


“그대 남자들이여! 사나이가 되어라!”


···그 최선이 저 기괴한 남자라는 건, 조금 착잡했다.


********


김상남의 보직은 정확히 명칭되었다.

박 반장 휘하 자율방범대장.

뜻하지 않게 직책을 맡았어도 부담감은 없었다.

이 영예로운 사나이의 조직엔 오직 김상남만 소속된 까닭이었다.


“이 고독감··· 남자와 어울리는 조직이다.”


일이 많지도 않았다.

김상남은 어떤 소요 사태가 발생하면 진정시키는 업무를 맡았다.

예를 들어···.


“저기요, 아저씨! 줄 이렇게 서 있는데 왜 새치기예요?”

“뭐? 이 아줌마가 돌았나··· 내가 먼저 먹겠다는데 뭐! 아직도 살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 같냐? 이게 처맞을라고.”


남자가 손을 치켜올렸다. 평소 얌전한 대학생이던 오주창은 예전에 가면을 벗어던졌다. 활자로 읽으며 상상만 하던 웹소설의 주인공이 마치 자신 같았다.


‘내 종합 능력치는 50이 넘어.’


상태창을 볼 때마다 가슴이 뻐근했다. 너무나 황홀한 나머지 부정맥이 올 것만 같았다.


‘마력은 무려 16!’


게이트 사태 초기, 그는 마력 스탯에 주목했다.

보통 소설의 전개를 보면 이런 능력치에 어드밴티지가 있기 마련이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오주창도 박 반장처럼 마력의 실체화가 가능해졌다. 모두가 혼란스러워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두드러지는 강점이다.


‘마력은 예를 들자면 관통뎀이지.’


상대의 방어력을 무시하고 딜을 꽂아 넣는 용도.

마력이 높을수록 그 수치가 올라가는데, 특히나 괴물에게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인간에게도.’


오주창이 입가를 씰룩였다. 이미 두 차례 실험을 통해 입증된 정보였다. 그는 법과 윤리의 편견에서 벗어나 선각자가 되었다.


‘흐흐. 다음엔 누굴···.’


그가 저지른 짓은 천막촌의 누구도 모른다. 오주창은 멍청한 건달들처럼 노골적으로 패악질을 부리지 않았다. 더 강해졌을 때, 천막촌의 모두가 달려들어도 짓밟을 힘을 지녔을 때.

오주창은 비로소 웹소설 주인공이 되리라.


‘그러고 보니 이 아줌마도 와꾸는 반반한데.’


오주창이 쌍심지를 켠 아줌마를 훑어봤다. 평소 관리를 잘했는지 삼십 대 중반이 꺾였는데도 피부에 탄력이 있었다. 하기야 그간 잘 살았으니 아직도 사태 파악 못 하고 설치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교육을···.’


오주창이 기꺼운 마음으로 나서려던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씹, 누구야?!”


돌아보자 웬 헐벗은 남자가 벽처럼 서 있었다. ‘자율 방법’이라고 적힌 노란 완장은 두꺼운 팔뚝에 단단히 고정된 채였다.


“자율 방범대에서 나왔습니다. 선생님, 새치기하셨다고요?”


자율 방범대? 동네 중년인들 친목 모임이 갑자기 왜 튀어나오나?

오주창은 눈살을 찌푸렸으나 이내 웃음기를 띄웠다.


‘방범대면 적어도 박 반장이나 그 밑의 형사한테 허가받았다는 거겠지. 그쪽은 아직이야.’


박 반장과 형사들은 워낙 피지컬이 훌륭하고 팀워크도 좋아서 사람들에게 인망이 있었다.

더구나 게이트 사태 초기부터 사냥에 열심히라 능력치도 뛰어났다. 거기에 늘 상비하는 권총까지. 인간이 아무리 강해져도 총탄 앞에서는 무력했다.


“아니, 밖에 나가서 괴물들 족치고 왔는데 밥 좀 빨리 먹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이 안전한 곳에 처박혀서 밥만 축내는 아줌씨가 뭘 잘했다고, 어! 안 그래요? 당신도 같은 남자면 알 거 아냐!”


오주창은 억울함을 토로했다. 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가.”


팬티남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통했나?’


오주창이 더욱 미소를 짓고 있는데, 팬티남이 말을 이었다.


“개인의 억울함,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 질서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형벌의 집행이지.”


팬티남이 팬티를 뒤적거려 수갑을 꺼냈다. 구불거리는 털이 몇 가닥 붙어 있었다.


“폭력범. 널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순순히 수갑을 차라.”

“씨발, 진짜 가지가지하네··· 야! 완장 좀 찼다고 봐주려니까 지랄이야?!”


오주창도 더는 참지 않았다. 이 거점을 떠나더라도 이놈은 묵사발을 내줄 생각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순순히···.”

“아가리 닫으라고!”


퍽!


오주창이 팬티남의 얼굴을 후려쳤다. 손맛이 묵직했다. 고블린이었다면 이빨이 모조리 털렸을 것이다.


“···협조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런데, 팬티남은 주먹이 얼굴에 닿은 채로 따박따박 말을 이어갔다.


“불응 시, 공무집행방해로 추가 죄목이 더해진다. 이상.”

“어···?”


오주창이 당황했다. 힘을 덜 줬나 싶어 다시 한번 후려쳤다. 이번에도 팬티남은 멀쩡했다.


‘아.’


오주창은 뒤늦게 팬티남의 행색을 제대로 살펴봤다.


‘고인물 패션···.’


퍽!


오주창이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진상을 응징한 공권력이 주먹을 번쩍 들었다.


“진상을 제압했노라-!”


공적을 널리 알리는 것은 예로부터 확립된 전통.

김상남이 소리치자 배식장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


“멋집니다, 경찰관님!”

“나쁜 놈들 다 잡아가 주세요!”


얼마 만에 듣는 찬사인가.

김상남은 눈을 지그시 감고 희열에 떨었다.

사나이가 되기 시작한 이래, 언제나 그의 곁에는 몰이해뿐이었다.

피를 나눈 혈육도, 나라의 부름으로 만난 운명적인 직장 동료도, 길 가는 행인까지.

모두가 김상남의 길을 손가락질했다. 혹은 무시했고, 때때로 조소했다.

그러나 보라.

진정한 의(義)는 통하기 마련.

먼 길을 돌아간 끝에, 김상남은 정도(正道)에 닿았다.


‘그렇군. 내겐 명분이 없었던 거다.’


김상남은 깨달음을 얻었다.

돌이켜 보면, 그의 전도는 강압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달라.’


기절한 오주창을 바라본다. 남성성을 잃고 힘없는 아녀자를 핍박하려던 그는, 정의로운 진짜 사나이를 만나 홍콩으로 갔다.

나중에 깨어나더라도 오주창은 여전히 하남자일 것이다. 알량한 힘에 취해 타인을 괴롭히고, 그로써 저열한 우월감을 느낄 터다.

하지만 여기에 올바른 계도가 들어간다면?


“그래, 아직 넌 제대로 된 멘토(師傅)를 만나지 못했을 뿐···.”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김상남이 책임지고 이 하남자를 상남자고 바꿀 테니.


번쩍.


김상남은 오주창을 들쳐 멨다. 그는 자율방범대 숙소에서 개념을 탑재하고, 알맞은 삶의 태도를 배울 것이다.


“반장님.”


물론, 그에 앞서 보고는 필수.

김상남은 현장 발견과 그에 따른 집행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오···! 역시! 자넨 내가 기대한 인재가 맞았네!”


박 반장은 위계상 김상남의 상사가 되며 말을 놓았다.


“딱 이런 그림을 원했지! 남의 눈치 안 보고, 세력 간 이해관계는 눈곱만치도 관심 없는 심성! 캬, 맥주 마렵네.”

“감사합니다.”

“그래, 그 친구는 자율방범대에 넣겠다고?”

“예. 아직 주먹은 따가운 수준이긴 한데, 자세는 제대로라 키우면 쓸모 있겠지 싶어서요.”

“그래, 그래. 맘대로 하게.”


상사의 흔쾌한 허락도 받았겠다, 김상남은 곧장 숙소로 갔다.

자율방범대 숙소는 컨테이너 원룸.

본래 조폭 김덕수가 쓰던 곳인데, 그를 응징한 김상남이 소유권을 인계받았다.


“사내는 때때로 뻐꾸기가 돼야지.”


김상남은 오주창을 내려놓고 문을 잠갔다. 창문은 철창으로 되어 도주 염려가 없었다.

그리고 약 세 시간.

오주창은 신음하며 깨어났다. 마치 오함마로 얻어맞은 것처럼 골이 울렸다. 미약한 뇌진탕 증세였다.


“여긴··· 어디···.”


게슴츠레 뜬 시야로는 주위의 모습이 온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질 낮은 마루 장판과 가스 난로, 낡은 환풍기. 그리고 낡은 팬티에 뚫린 구멍과 그 틈새로 보이는 심연···


“으아아앆!”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주창이 몸을 빙글빙글 굴려 구석에 기댔다. 그가 숨을 헐떡거렸다.


“뭐야! 씹, 여기 어디야!”

“이곳은 자율방범대 숙소··· 앞으로 네가 지낼 곳이다.”

“뭐? 지랄하지 마! 차라리 형사한테 데려다 줘!”

“그럴 순 없다.”


김상남이 가스 난로에 담배를 가져다 댔다. 그대로 빨아들이자 가스맛이 나는 듯했다.


“후우우. 넌 이미 자율방범대 소속이기 때문이지.”

“난 그런 적···.”

“두 시간 전에 이미 가입했어. 네 손으로.”


김상남은 오주창이 잠든 동안 작성한 근로 계약서를 흔들었다. (갑) 서명란에는 김상남의 지문이, (을) 서명란에는 오주창의 지문이 찍혀 있었다.


“뭔··· 그딴 거론 법적 효력 없어.”

“안다.”

“···?”

“계약서는 내 심리적 안정을 위한 도구일 뿐. 네가 사나이로 다시 태어나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


김상남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오주창의 옷을 찢어발겼다. 그가 저항하지만 의복은 남아나지 않았다.


“으아악!”

“진짜 사나이의 길에 의복은 사치다! 이딴 거에 신경 쓸 바에 끓는 물 한 번을 더 끼얹어!”

“난, 난 그런 거 안 할 거야···!”

“해!”


이후로 교육이 이어졌다.

참혹한 일주일··· 오주창은 점점 변해갔다.

음험하던 눈매는 뾰족 솟으며 사나워졌고, 잔근육은 점차 비대해졌다. 옷을 입은 것보다 벗은 게 더 익숙했다. 탈출을 시도하며 빠졌던 손톱 발톱이 돋아나기 시작할 때쯤, 오주창은 수료를 앞뒀다.


“훈련병.”

“···악.”

“오늘이 수료일이다. 기분이 어떤가.”

“좆같습니다.”


김상남이 흐뭇하게 웃었다. 솔직함은 사나이의 미덕이다.


“이제 사회로 나아갈 준비가 끝났다. 넌 이미 훌륭한 사나이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오주창은 환희에 젖었다가, 문득 허탈함이 치밀었다.

그는 이제 옷을 입으면 전신이 가려웠다. 머리카락이 3cm를 넘으면 눈알이 핑핑 돌았으며, 빼빼 마른 남자를 볼 때면 증오마저 느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 정신 개조를 벗어나기 싫다는 마음이 단단하게 자리 잡은 것이었다.

폭언과 폭력으로 완성된 사나이의 정신은 굳건했다.


‘하지만··· 내게도 이 증오를 풀 길이 있다.’


김상남은 논외다. 저 새낀 진짜 괴물이었다. 아무리 마력을 퍼부어도 어찌나 내구도가 높은지 흠집도 안 갔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나만 당할 순 없지···!”


한순간만 졸렬해져라. 그리하면 동지가 생길 것이다.

오주창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예비 동지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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