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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남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양파지
작품등록일 :
2022.09.16 11:07
최근연재일 :
2022.10.1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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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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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1화

DUMMY

대재앙이 시작된 이래, 하늘에서 생성되는 게이트는 많았다.

초창기, 자살 특공 고블린이 주요 시설마다 대가리를 꽂아 넣을 때도 하늘에서 폭격의 형태로 떨어지곤 했다.

하지만 정말 하늘에 어울리는, 자유롭게 비행하면서 기존 재래식 무기의 화력마저 무시하여 제공권을 강탈한 괴물이 등장한 건 비교적 최근이었다.

동북아에서는 하늘섬이 대표적인데, 특이하게도 게이트 내 지형이 지구상에 나타난 케이스였다.

하늘섬은 하피라는 반인반조가 서식했고, 놈들은 철새 마냥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국, 중국, 일본을 돌아다니며 분뇨를 싸질렀다.


“···이번에 나타난 와이번이 그래서 의미가 있는 거야.”


이차연이 보고서를 넘기며 말했다.


“와이번은 하피보다 숫자는 적지만, 그들의 포식자로 분류되고 있어. 이미 많은 숫자의 하피가 잡아먹히는 게 관측되기도 했고.”

“괴물이 괴물 잡아먹어서 머릿수 줄여주면 좋은 거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게 좀 복잡해. 하피는 거슬리지만 그리 위험도가 높은 괴물은 아니야. 몰려다니면서 분뇨를 지리기는 하는데 막상 전투력 자체는 낮으니까. 그냥 제공권을 상실했다 뿐이지 그 외의 유의미한 타격은 없다시피 해.”


그래서 하늘섬을 굳이 토벌하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보통의 전개상, 특정 게이트를 없애고 빠르게 안전지대를 설치하지 않으면 변종이나 상위종이 나타났다. 지상이 아닌 하늘에서는 어떤 식으로 안전지대가 설치될지 모르는 일이기에, 한국은 차라리 하늘섬을 방치해 안정성을 택했다.

문제는 대륙의 기상, 중국이었다.


“이번 와이번 사태는 중국 측에서 하피를 대규모로 죽이고, 하늘섬 일부를 파괴한 여파로 보고 있어. 그 자체로 게이트인 하늘섬이 축소되면서 그 틈새로 와이번 게이트가 생겨났다고 보는 거지.”

“아하.”

“와이번이 하피들 다 죽이고 하늘섬이 더 작아지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그러니까 빨리 와이번을 처리하려는 건데.”


이차연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김상남은?”

“조선 천지에 남자가 여자 기다리는 법도는 없다고 먼저···.”

“···.”


********


김상남은 불꽃 날개를 펄럭이며 게이트에 진입했다. 그의 뒤로는 피막이 모조리 녹아버린 와이번들이 비명 지르며 추락하고 있었다.


“연약한 날개를 가진 새의 비애로군.”


와이번은 조류가 아니다.


“둥지로 진입!”


게이트를 완전히 벗어나자 거센 바람이 얼굴을 덮쳐왔다. 김상남은 까마득한 높이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활강?’


아니, 남자는 줄 없이도 번지 점프를 하며 스릴을 즐겨야 하는 법.


“낭마아안!”


쿵!


김상남은 짧은 하강 후에 머리부터 박았다. 바닥은 부드러웠다. 나뭇가지와 낙엽 따위를 모아 엮은 둥지였다.


“흠···?”


김상남이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상반신만 한 알이 여덟 개 있었다. 그중 두 개는 금방이라도 깰 듯 금이 가 있었다.


“새 생명 탄생의 순간인가.”


김상남은 알로 다가갔다. ‘끄으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 작은 생명을 도와주기로 했다.


쾅쾅!


손바닥으로 샷건!


“꾸엑.”


알 속의 새끼가 어딘가 답답한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녀석은 알을 깨고 세상과 마주했다.


“감동스러운 순간이군. 이 녀석, 내가 너의 탄생을 도왔다. 날 부모로 여겨라.”

“끼에에엒!”


김상남 눈에는 참 배은망덕하게도, 막 태어난 새끼 와이번은 부리로 그를 쪼았다. 태어나기 직전, 누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했는지 알아채는 영리함!


“흠··· 미물의 본성은 어쩔 수 없나.”


김상남은 사나운 녀석의 부리를 잡아채 열을 가했다. 알맞게 구워진 와이번 통구이.


“야들야들하구나!”


갓 태어나서 그런지 비들조차 부드러웠다.

김상남은 1호 도시락을 까먹은 후, 다른 알로 다가갔다. 이것도 금방 깨질 듯 흔들리고 있었다.


“선제 타격으로 배은망덕 차단.”


김상남은 알째로 놈을 구워 먹었다. 든든히 배를 채우자 나머지 알들이 보였다. 녀석들은 아직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그때, 멀리서 바람이 휘몰아쳤다.

김상남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곳을 주시했다. 다른 와이번보다 몇 배는 큰 개체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비비며 날아오고 있었다. 아마 부부인 것 같았다.


‘느껴지는 기운은··· 사나이 점수 상上.’


그중 한 마리는 암컷일 텐데도 강함이 느껴졌다. 수라장을 겪어온 괴물이 분명했다.


“진정한 전략가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김상남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전략가적인 그의 신산귀모는···.


“뻐꾸기 메타로 간다.”


뻐꾸기는 자신의 알을 다른 새의 둥지에 까는 교활한 조류. 그 유전자가 얼마나 악독한지, 깨어난 새끼조차 본성이 글러 먹었다. 양부모가 힘들여 구해온 식량을 얻어먹는 건 물론이요, 생존의 경쟁자인 다른 새끼들을 떨어뜨려 죽이기 일쑤였다.


“준비 완료.”


날개뼈에서 불꽃 날개가 펄럭였다.

준비를 끝낸 김상남은 위를 올려다봤다. 파충류의 세로 동공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희미하게 떠오른 의구심을 읽어내며, 김상남이 울었다.


“뻐꾹.”


********


수컷 와이번은 약간 당황했다. 이때쯤 새끼가 태어날까 싶어 먹이를 구해왔는데··· 녀석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끼익?”


와이번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가갔다. 분명 녀석에게선 알에서 풍기는 냄새가 났는데,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 그렇지만 또 날개는 있고···.


“끽!”


와이번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둥지에 유독 이질적인 새끼가 끼어있다면, 그 원흉은 명백하지 않은가? 암컷이 다른 경쟁자를 받아들인 것이다!


“끼아아아악!!”

“끼익, 끽.”


남편의 분노에 암컷 와이번은 열심히 해명했다. 그녀로서도 억울한 노릇이었다. 암컷 와이번은 동족 중에 가장 아름다웠고, 덩치도 컸다. 성체가 되기 전부터 무수한 수컷의 구애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구애에도 암컷 와이번은 도도했다. 그녀는 자신의 품격에 맞는 수컷을 원했고, 그것이 지금의 남편이었다. 가장 강한 와이번만이 아름다운 자신을 취할 수 있었다.


“끼루루루룩!”


암컷 와이번은 불화의 씨앗인 새끼를 노려보았다. 쩍 벌린 입에선 화염이 이글거렸다. 단숨에 태워죽일 요량이었다.


화아악!


그리고 다음 순간, 암컷 와이번은 놀라 불길을 멈추었다.


“후르르릅!”


막 태어난 새끼가 그녀의 불을 빨아먹고 있었다.


“끼이익?”


잔뜩 의심하던 수컷 와이번이 암컷을 밀쳤다. 새끼에게 다가간 수컷 와이번이 그 몸을 자세히 살폈다. 동족의 불을 먹었는데도 이상이 없었다.


“끼이···.”


수컷 와이번은 끙끙 앓으며 고민했다. 생김새는 아주 다르지만, 동족의 불은 모든 사냥감을 없애버리는 가장 날카로운 발톱이다. 동족이 아니고선 받아들일 수 없다.


“···끼아아아!”


고민 끝에, 수컷 와이번은 이 새끼를 자식으로 인정했다. 그가 날개 끝에 달린 손으로 새끼를 들어올렸다. 왕의 포효가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


“끼아아.”

“끼아아아-!”

“끼룩!”


곳곳에서 화답이 돌아왔다. 강력한 왕은 흉포하고 잔인했다. 심기에 거슬리면 사냥감이 아닌 동족도 찢어 죽이곤 했다.

그런 폭군의 자식이 태어났으니 응당 환호가 이어져야 했다. 그 환호는 오래도록 이어졌고, 왕은 새끼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방금 알에서 깬 동족은 약하다. 자칫하다간 사냥감에게도 죽는 경우가 있었다.


“끽.”


수컷 와이번이 아내에게 고갯짓했다. 암컷 와이번은 위장에 저장해온 먹잇감을 토해냈다. 새끼가 먹기 쉽도록 반쯤 익은 먹이였다.


“···.”


그런데 새끼가 이상했다. 녀석은 갓 태어난 와이번이라면 당장 달려들어야 할 식사에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끼룩···?”

“끼이익···?”


옆에서 툭툭 밀치고, 직접 먹는 모습까지 보여주자 새끼가 비로소 움직였다. 녀석은 기특하게도 방금 먹어 삼킨 불을 다시 뿜어내는 재주를 보이며 부모를 기쁘게 했다. 불을 자연스럽게 다루는 걸 보니 미래가 밝았다.


“뻐꾹뻐꾹.”


비록 울음소리는 이상했지만, 한번 굳은 믿음은 공고했다.

수컷 와이번은 종종 의구심을 표하는 동족을 짓밟으며 열심히 선포했다. 저 아이는 내 새끼다! 누구든 의심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 열정적인 비호가 이어지던 나날, 다른 알도 부화의 시기가 다가왔다.

여섯 개나 되는 알이다 보니 부부는 다시 바빠졌다. 새끼들을 먹이려면 열심히 사냥감을 보충해야 했다. 그리고 그 근면성실함은,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다.


“···뻐꾹.”


내민 손에 닿은 알의 표면이 미지근해지더니, 안으로 열기가 투사되었다. 조금 달그락거리던 알이 잠잠해졌다. 한 생명이 빛조차 보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죽었다.


“뻐꾹꾹꾹!”


은밀하게 일을 끝낸 그림자가 둥지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엿새···.


“끄우우우욱-!!”


왕과 왕비는 새끼 잃은 슬픔에 비통하게 울었다. 깨어날 시기가 됐음에도 알이 깨지 않자, 직접 알을 깬 그들은 그 안에서 죽어버린 새끼를 발견했다. 지독한 슬픔이 냉혈한 파충류의 눈에서 물기를 뽑아내었다.


“뻐꾹···.”


유일한 위안은 아직도 건강한 새끼였다. 녀석은 구해오는 모든 먹잇감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면서, 나날이 날개를 키웠다. 몸집은 그대로라도 불을 다루는 능력이 탁월했다.


“끼익.”


수컷 와이번은 소중하게 새끼를 품었다. 암컷 사이에서 낳은 새끼는 이제 이 녀석이 유일했다. 그는 모든 것을 바쳐 이 새끼를 지킬 것이었다.

···둥지 안만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새끼만 지켜보던 어느 날. 새끼가 날갯짓으로 활강하는 모습에 기꺼워하던 수컷 와이번은, 한 신하가 황급히 달려옴에 고개를 틀었다.


“끼익?”

“끼에에에! 끼에에에에-!!”


신하는 왕의 부성애가 거짓되었노라고 간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물어온 먹잇감을 내밀었다.


“···!!”


그 먹잇감은, 놀랍게도 왕의 새끼와 흡사했다. 너무나도 닮은 생김새였다.


“끼엑···?”


순간 생각이 정지했다. 새끼와 함께해온 모든 순간이 뇌리를 스쳤다. 맛있게 식사하고, 기분이 좋으면 불을 뿜어내며 놀고, 이따금 다가와 아랫배에 기대어 잠드는 그 사랑스러운 모습들···.

그 모든 순간은 거짓되었나? 매일 느껴온 행복이 정녕 일그러진 것이었나? 반드시 이 새끼만은 지키겠다는 결심은···.


···와득!


왕은 충직한 신하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당황한 신하가 발버둥 치며 도망가려 하자, 불까지 뿜어내며 놈의 숨통을 끊었다.

죽어버린 사체를 절벽 밑으로 밀어내고, 왕은 자신의 둥지로 돌아갔다.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새끼가 작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빤한 시선에 왕이 목을 떨었다.


“···끼끄.”


어설프게 새끼의 울음을 따라 하며, 왕이 끼르르르 웃었다.

결심과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새끼를 지킬 것이고, 그 성장을 도울 것이다. 마음으로 받아들인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하리라.

···그것이 설령, 잔혹한 배신으로 돌아오더라도.


“한낱 조류에게도 진심은 있는가.”


왕은 자신의 배를 파고든 손을 보았다. 뜨거운 불이 깃든, 평소 그조차 감탄하곤 하던 새끼의 세심한 재주가 내장을 훑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내가 인간이었음이 한스럽도다. 만일 영장이 아닌 미물이었다면 그대로 안주하였을지도 모를 노릇.”


왕의 부성은 갸륵했다. 광기의 대변자 김상남조차 몇 번이고 결행일을 미루었다.

···그러나 김상남은 조직을 이끄는 리더. 자식과도 같은 부하를 위한 책임감은 막중했다. 가짜 부모의 행복보다 진짜 가족의 안녕을 바랐다.


“끼룩이, 너를 잊지 않겠다.”


불길이 치솟았다. 내장이 녹아내리고도 살아남는 생명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왕은 조금 괴로웠고, 많이 슬펐다.


“뻐꾹.”


그는 새끼가 고하는 작별 인사에 화답할 수 없었다.


“···꺽.”


제대로 마음조차 전해주지 못하고, 고작 이 정도가 한계였다···.


********


왕이 죽었다. 모든 와이번 둥지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올라왔다.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혹은 맹목적인 충동에 홀려 거대한 균열을 빠져나갔던 동족들도 모두 귀환했다.


“끼아아아아아아아-!!!”


목적은 단 하나.

왕의 새끼이되 새끼가 아닌 존재를 죽이는 것.


“와라!”


김상남이 굳건하게 섰다.

모든 것은 전략의 기획부터 각오한 일.

왕이 사라진 와이번들은 위태로울지언정, 위협적이지 않다.

그리고.


“야아아아아아! 혼자 설-치고 난리야아아아!”

“날갯짓 어떻게 하는으어어어엉!”

“야! 괜찮아?! 게이트 안은 시간도 빨리 가는데, 벌써 며칠 지났을 거 아냐! 어디 다친 건 아니지?!”


그의 동족 또한 도착하였으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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