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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남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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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지
작품등록일 :
2022.09.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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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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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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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DUMMY

김상남이 꼽는 최고의 고전 문학은 단연 삼국지다.

낭만을 좇는 삼형제의 고난과 역경, 달콤한 성공, 그리고 가슴 미어지는 실패···.

비록 유비의 마지막은 복수를 위해 자기 기반을 싹 다 긁어모아 비벼버리는 비빔밥 정신이었지만··· 그조차도 의동생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

삼국지를 동경하는 김상남은 줄곧 그런 의동생을 바라왔다.

그렇기에 혈육인 이하남이 사나이 정신을 보여도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친형제는 낭만이 없으니까···!


“지금 내게 당신 밑으로 들어오라, 이거요?”


김덕만이 눈을 부릅떴다. 김상남이 턱을 치켜들며 긍정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소.”

“한낱 복수가 쌍방울보다 소중하다는 건가?”

“나 혼자 당하는 거야 상관없지. 하지만 내가 당신 밑으로 들어가게 되면, 내 동생들도 그쪽 시다가 되는 거 아닌가! 동생들더러 그따위 모욕을 참게 하란 거냐?”


김덕오도 수긍했다. 그의 눈빛도 형형했다. 식구를 챙기는 마음이 갸륵했다.


“사나이 점수 합격.”


김상남이 근엄하게 말했다. 만약 저들이 냉큼 의형제를 받아들였다면, 그 계집애다운 변절에 실망했을 것이다. 계집애는 결코 형제가 될 수 없는 법.


“매번 나를 감동케 하는군···. 합격! 합격이다! 너희에게 선택지는 없다! 쌍방울을 남겨둔 채로 내 동생으로 만들어주지!”


선택지는 변경됐다.


“모두, 내 동생들의 선택을 돕도록.”

“끼기기.”

“남자··· 남자다. 남자!”


사내단이 충혈된 눈으로 다가섰다. 다부진 손에 그러쥔 무기는 하나같이 녹이 슬어 있었다. 그들은 괴물을 베지 않고 찢어 죽인다.

형제의 식구들은 둔기를 단단히 잡았다. 게이트가 발생하기 전부터 패싸움에는 이골이 났다. 실전 경험까지 두루 갖춘 지금은 군대가 아니면 모두 상대할 수 있다고 여겼다.

···매일 고문에 가까운 훈련을 받는 미친놈들이 상대인 게 불행이었다.


“제압해서 포획해라! 우린 후배가 모자라다!”

“돌겨어어억!”


건달들이 둔기를 휘둘렀으나 사내단은 조금도 움찔하지 않았다. 도리어 웃으며 그 팔다리를 뱀처럼 휘어잡았다. 이어지는 관절기.


“으악!”

“녀석··· 아직 땀 냄새가 감미롭군. 테스토스테론이 모자라.”

“히익···!”

“걱정하지 마라. 너도 일주일이면 우리와 같은 향취를 풍길 테니!”


여기저기서 예비 신입들을 품평하는 행위가 이어졌다. 건달들의 연약한 비명이 드높았다.


“···그만. 그만!”

“개새끼야, 멈춰!”


형제가 악을 썼으나 중과부적. 김상남은 꿈쩍도 하지 않고 그들을 옭아맸다. 오주창 때부터 유서 깊은 제압 기술!


“대체··· 우리 형제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딴 건 없다.”


사나이는 원한을 담아두지 않는다. 그때그때 해소하여 언제나 청량한 가슴을 유지한다.


“그럼 왜···.”

“내 꿈이니까!”


도원결의 참아? 못 참아!


“결정해! 머뭇거릴수록 사내단 인원만 늘어날 것이다!”


교묘하게 목을 조르며 강요하는 대답.

조여드는 숨통과 뿌예지는 시야, 무너져가는 동생들. 김덕만은 힘겹게 입을 뗐다.


“나는···.”


********


사흘 후.

박준오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가 우려하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채 포위망이 완성되기도 전, 김상남은 갑작스러운 기동으로 적의 한 축을 무너뜨렸다.


‘여포··· 아니, 항우인가.’


불리한 대전략을 전술적 움직임으로 박살 내버리는 호쾌함. 굉장히 감명 깊었다. 정치적인 계산으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쾌거였다.


“···비록 우리는 다른 날에 태어났지만, 한 날 한 시에 죽을 것이며···.”


파레트를 쌓아 만든 연단 위에서 김상남이 하늘에 고했다.

그의 뒤로는 덕만, 덕오 형제가 체념한 얼굴로 얌전히 서 있었다.

아니, 강제로 개명당해 상만, 상오 형제가 된 그들.

조상의 영향인지 김상남은 개명을 좋아했다.


“···사나이다운 밤꽃나무 밑에서 엄숙히 고한다.”

“고합니다.”

“···고합니다.”


김상남은 흡족한 얼굴로 입술에 바른 고추장을 핥았다.

원래 고사대로라면 백마의 피를 묻히거나 술잔을 들어야 하지만, 이곳은 한국.

모든 의식은 현지화가 따르는 법이다.


“하하하! 우리 삼형제가 오늘 뜻을 모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그, 그렇습니다.”

“정말 좋은 날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김상남이 두 동생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오늘 보니 동생들 식구들이 근성이 모자라더군. 형이 교정해주마.”

“···!”


상만과 상오가 눈빛을 교환했다.


‘주면 좆된다.’

‘동생들 다 떠날 거야.’


전국의 한국인이 한마음으로 지켜낸 전기와 통신망.

그 기적적인 정보 교류 덕분에, 사내단의 실상도 사방파방 까발려진지 오래였다.

옷을 벗기고, 머리를 밀어버리고, 화상에 흉터, 규율을 위반하면 고추 떼기···.

간혹 괴물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는 한국의 성공 사례에 주목하던 외신 기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처음 한국인의 조직적인 저항에 감탄하다가, 유독 괴물들의 어그로가 끌리는 지역을 발견했다.

그리고 괴물보다 더한 인권 유린의 현장에 경악했다. 남과 북을 막론하고, 코리아는 어디서든 독재자가 튀어나온다며.

이미 수십 년도 전에 끝난 남한 독재자의 계보를 잇노라고 평가받는 게 김상남이다.

그런데 삼청교육대보다 더하다는 사내단에 동생을 들여보내?


‘칼 맞을 일 있나.’

‘무조건 밑에서 댈 거야. 맞달 말고도 까마득한 후배들까지 싹 다.’


상만과 상오는 오랫동안 합을 맞춰왔다. 그들은 눈빛만으로도 얼추 생각이 통하는 사이였다.


“저, 형님. 그래도 저희가 성인이지 않습니까. 마냥 형에게만 기댄다는 게 좀.”

“둘째 형님 말씀이 옳습니다. 해보고 안 되면 연장자께 도움 청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냐···.”


김상남은 실망한 표정이었다.

상만이 다급히 덧붙였다.


“하지만 저희가 고쳐 쓰지 못하는 놈도 분명 있습니다. 형님이라면 그놈들도 교화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예. 어디나 말썽꾸러기는 있지 않습니까?”

“흠.”


김상남은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듬직한 동생들이 그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이 기분··· 나쁘지 않다.


‘이래서 돈 좀 번 노인들이 봉사를 다니는 거군.’


물질적인 것으론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김상남은 흡족하게 웃고는 달마다 사내단에 보낼 인원을 정했다.

상만과 상오는 인신매매하듯 머릿수를 맞추겠다고 다짐한 뒤,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항복하기 전, 사내단에게 사로잡힌 동생들은 구해내지 못했다. 그들은 이미 정신 재무장이 끝나가고 있었다.


“명절마다 올라오너라! 오지 않으면 잡으러 간다!”

“예, 옙···!”


등골이 오싹해진 두 형제가 떠나고.


‘마음이 허전하다.’


김상남은 호젓해진 마음에 한숨 쉬었다.

방금 생긴 동생들을 떠나보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따라갈까?’


그들이 들으면 기겁할 생각이었다.


“야, 김상남!!”


다행히도, 김상남을 막아서는 존재가 있었으니.


“흠, 공명.”


김상남은 감상을 털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사나운 얼굴의 이차연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우린 지금 전쟁 중이다. 아무리 나와 사내단이 그리워도 사적으로 찾아오는 건 곤란해.”

“뭔 개소리래. 매일 그 시뻘건 얼굴 안 봐서 좋기만 한데. 그것보다 시장실로 와.”

“어째서?”

“신종 괴물 떴어.”

“!”


모두가 잊고 있었지만, 이 세계는 괴물이 등장한다.


“인류의 숙적··· 바로 가지.”


********


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사실 상남특별시의 시장은 김상남이 아니다.

김상남은 많은 시간을 ‘어떻게 해야 남자다울 수 있을까?’라는 사색에 빠지는 인간이고, 그에게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행정 업무는 쥐약이었다.

그리하여 사내단을 제외한 시민들이 민주적으로 투표한 결과···.


“오, 오랜만입니다. 대, 대장님.”


과거, 난민들을 대표해 삼국지 독서자로 김상남과 대면했던 오타쿠 청년.

이서훈이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그 당선에는 한 가지 이유가 크게 작용했는데, 바로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 흔치 않은 삼국지 완독자라는 것이었다.

미쳐 날뛰는 김상남도 삼국지 얘기를 들으면 조금은 진정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람들은 평온을 바랐다.


“제가 분수에 맞지 않은 자리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괄목상대의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믿어준 분들께 실망은 드리지 않으려고요.”

“괄목상대?”

“아, 여몽의 이야기입니다.”

“음. 능력치 이벤트인가.”

“그런 거죠.”


김상남은 삼국지를 좋아하지만 만화로만 읽었다.


“그래, 새로 등장한 괴물은 어디에?”

“지금 북쪽에서 여성단이 맞서고 있습니다. 특이하게, 한 마리밖에 나오지 않았다는군요.”

“여자들이 위험하게 괴물을 상대해? 사내단은 뭘 하고 있었나!”


김상남의 호통에 이차연이 나섰다.


“여자라고 괴물 상대를 왜 못해? 걔네도 얼마 전까지 빠루 들고 고블린 눈깔 후벼파던 애들이야.”

“여자가 회의에 참석을?!”

“···야, 팬티끈 뽑아. 오늘 끝장을 보자!”


후끈해지는 분위기에 이서훈이 손뼉을 쳤다.


“여전히 사이가 좋으십니다. 하지만 이 열기, 괴물에게 풀면 더 좋지 않을까요? 대장님. 여성분들에게 맡겨놓기 꺼려진다면 직접 가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 팀장님도요. 아무래도 대장님만 가면 그림이 좀 그렇죠?”


김상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라면 대의를 우선하는 법··· 그 중재에 따르겠다.”

“내가 언제부터 이 멍청이랑 같이 엮이게 됐지···.”


둘은 시장실 창문을 깨부수며 시장실을 나섰다.

얼마 안 가 도착한 북쪽의 격전지.

안전지대임을 표시하는 반투명한 빛 너머, 여성들이 웬 거대한 핑크빛 괴물과 대치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여성단이 기를 쓰고 상처를 입혀도, 핑크 괴물의 푸짐한 살덩이가 꾸물거리며 금방 재생됐다.


“트롤이네.”

“학명인가?”

“아니, 클리셰상. 보통 재생 능력 좋으면 트롤이라고 해.”


이차연이 말하다 말고 확 앞서 나갔다. 트롤의 거대한 손이 한 여성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서걱.


깔끔한 소리와 함께 손목에서부터 손이 잘려 나갔다. 구함받은 여성이 햇빛을 등진 이차연을 올려다봤다. 마치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언냐···!”

“다 좋은데, 멀쩡한 호칭 두고 왜 그따위로··· 흡.”


이차연은 머리로 드리우는 그림자에 황급히 피했다. 방금 잘려 나갔던 손, 그 손이 순식간에 돋아나 그녀를 위협했다.


‘사기적인데.’


재생 능력이 이해의 범주를 벗어났다.

이차연의 등골로 식은땀이 흘렀다. 어쩌면 이제까지의 괴물은 워밍업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진짜 재앙을 맞이한 기분이다.


“핑크··· 탐스러운 색이다.”


김상남이 중얼거리며 이차연을 지나쳤다. 트롤의 깨끗한 핑크빛 피부는 묘하게 돼지고기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핑크는 맛봐야지!”


김상남이 자세를 낮춰 달렸다. 순식간에 트롤의 아랫배까지 닿은 그가 입을 벌렸다.


와구.


“끄오오!”


야들야들한 아랫배를 물어뜯긴 트롤이 요동쳤다.

김상남은 개의치 않고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그대로 우물우물 씹자 육향이 입안 가득 번졌다. 중증 육식 중독자인 김상남은 가끔 특식으로 생고기를 먹는다.


“음··· 고소한 삼겹살의 맛!”

“끄워어!”


투웅!


화가 난 트롤이 김상남을 후려쳤다. 어느새 아랫배는 재생이 끝난 상태였다.


‘위장이 딱히 부글거리거나 하진 않는군.’


김상남은 자신의 몸 상태를 진단했다. 그가 섭취한 고기는 특별한 징후 없이 위장으로 넘어가 소화되기 시작했다. 평범한 고기였다.


착.


김상남은 가볍게 이차연 옆으로 착지했다. 이차연이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공략법을 찾았다.”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제발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주라.”


이차연은 아직 김상남의 존엄성을 믿었다. 최소한 비위는 있으리라고.


“먹어서 해치운다.”


믿음은 금물.

김상남은 각성조차 고블린의 목살을 먹고 이뤄낸 몸.


“사내단-! 전원 헤쳐 모여!!”


오늘은 회식, 고기 파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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