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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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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최근연재일 :
2023.05.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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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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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장. 회상: 우르 사냥(11)

DUMMY

6.

유로파에서의 체류 기간이 끝나기 한 달 전, 나는 3개월의 체류 연장 신청을 했다. 미찌코와 같이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서였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연장신청은 거절되었다. 장기체류는 명분이 있어도 3개월이라는 애매한 기한의 특별한 예외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이 대학과 유로파 기지 모두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나를 보낸 대학은 아예 1년 연장을 제안했다. 우르의 생태에 대해 연구할 일이 산처럼 쌓여있었기에 대학의 제안은 타당한 것이었다. 학자라면 1년이 아니라 10년이라도 남아 있겠다고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외계 생물을 잡은 최초의 인간이었다. 온 지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구에서 직접 보고 싶어요.」

「팬 사인회는 언제 할 거예요?」

「카페 회원들과 만나 줄 거죠?」


내가 받는 메일이나 동영상에 달린 댓글은 온통 이런 글뿐이었다. 유로파를 떠나기 전인데도 인터뷰와 방송출연 요청이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이 극한의 환경과 거친 얼음의 세상에 내가 연구해야 할 것이 무궁무진 있다고 해도, 그때만큼은 지구로 돌아가 박수를 받고 싶었다.


나는 귀환 우주선을 탔다. 지구까지의 3개월 내내, 마음 구석에서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후회가 꿈틀댔지만, 나는 유로파에 다시 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학자의 본능을 눌렀다. 3개월의 비행 후, 우주선은 달에 도착했고 달에서 지구행 소형 우주선을 갈아탔다. 그리고 지구에 내리는 순간 나는 거대한 무리의 기자들에게 에워 쌓였다. 지구의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는 수많은 댓글과 화상 인터뷰 요청으로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기자들과 환영인파에 둘러싸이는 기분은 7억km 떨어진 거리에서 영상으로 접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나는 거의 한 달 내내 예능 방송과 토크쇼에 불려 다니며 구름 속을 떠다녔다. 주로 TV와 신문 같은 공영 매체에 나왔던 한 달이 지나자 단체나 지자체에서 강연 요청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세계를 돌아다녔다.


어느 곳이나 환호와 칭찬 세례였다. 그렇게 두 달을 보내는 동안 어느 사인인가 나는 했던 얘기를 또 하고 있었다. 매체와 대중은 재빨리 그것을 간파했다. 하지만 내게 무슨 새로운 이야기가 있겠는가? 나는 했던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차츰차츰 방송에 나가는 횟수가, 나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논문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당초 우르를 진정시키는 주파수 조건을 주제로 잡으려 했으나 박사급으로는 내용이 빈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나는 거기에 생식 조건까지 덧붙여 주파수와 생식 관계로 주제를 확장했다. 실험 범위는 넓어지고 실험계획은 한층 복잡해졌다. 내가 가져온 우르의 샘플과 유로파의 바닷물로 추가적인 실험을 수많이 실시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실험실보다는 마이크 앞에 서는 일이 많았다. 결국 지도 교수님으로 부터 논문에 집중하라는 주의를 받을 정도까지 되었다. 나는 가까스로 박사 학위 논문 제출 기한을 지켰다.


6개월 후 미찌코도 지구로 돌아 왔다. 유로파에서 밤을 새워 가며 분리해 낸 네 종류의 효소가, 정확히 말하자면 효소라고 부를 수 있는 단백질이, 미찌코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때는 그 물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외계 생물에서 분리해낸 새로운 구조와 성분의 단백질구조체라고만 생각했다. 오직 한국의 의사이자 의학자인 김철수만이 미찌코가 발견한 새로운 단백질에 주목했다.


나는 남아시아의 어느 대학에서 강연을 하고 일부러 도쿄에 들러 미찌코를 만났다. 미찌코는 우주여행의 여독으로 초췌하고 파리한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났다. 반가운 포옹과 인사를 주고받고 즐거운 대화의 끝에 미찌코가 물었다.


“논문은 잘 돼가?”


나는 뜨끔 했지만 그럴수록 더 자신감있게 말했다.


“응. 우르의 생태에 대한 깜짝 놀라만한 논문이 나올 거야.”


“그럼 조만간 김영하 박사님이시네.”


미찌코는 기쁜 듯 웃었다.


“그건 미찌코도 마찬가지지. 새로운 단백질을 분리하는 데 성공해 논문은 쓰기만 하면 된다며? 그럼 가와무라 미찌코 박사님이지.”


“분리해 낸 게 새로운 구조이기는 하지만, 그게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몰라. 그런데, 어느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근무할 예정이야?”


“글쎄. 일단 학위를 받은 다음에 찾아봐야지.”


사실 나에게 오라는 대학이나 연구기관은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다. 지구의 어느 대학, 어느 학생도 우르를 사냥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배울 필요가 없었다. 유로파는 멀리 있었고, 우르는 다른 세상의 괴물이었다. 우르가 아니라 인류에게 해를 주는 모기나 메뚜기를 연구했다면 자리 얻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르 그 자체는 나의 사냥으로 인해 우주의 신비로운 비밀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인간에게 해부되는 처지가 된 우르는 그냥 유기화합물을 일종이었고 그것도 우주선으로 석 달을 가야하는 얼음 덩어리 별에 사는 동물이었다. 주파수 조건은 이미 확정되어 누군가라도 우르를 잡을 수 있었다.


나는 미찌코에게 그런 사정을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찌코는 그 사정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미래에 관한 질문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도쿄를 거닐고 저녁을 먹고 밤을 같이 보냈다. 중력은 걷기에 안정적이었고 무거운 우주복에 산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산책이었다. 우리는 손을 잡을 수도, 상대의 눈을 헬멧의 유리창이 아니라, 직접 마주보며 걸을 수도 있었다. 압도적인 얼음바위도, 기를 죽게 하는 얼음기둥도, 천길이 넘을 것 같은 크레바스도 우리 앞에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날이 미찌코와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 뒤로도 우리는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다. 3개월 뒤 나는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찌코도 박사 논문이 통과되었다. 계획보다 2년이나 빠른 학위취득이었다. 미찌코가 대학 부설 연구소의 정식 연구원이 되었다고 알려 왔을 때, 나는 교수 면접을 보러간다고 말했다.


나는 여러 대학에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본 끝에 한 대학에 특임 교수자리를 간신히 얻었다. 신입생의 관심을 끌 유명인사가 필요했던 대학과 자리가 절박했던 나의 사정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하지만 특임교수라는 게 말 그대로 특임이었다.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이었고 복지는 종이자락만큼도 없었다. 내가 미찌코에게 특임교수가 되었다고 했을 때 미찌코는 되물었다.


“조교수나 부교수가 아니고, 특임이라고?”


“응···특임이라는 게···”


“아- 나도 알아. 축하해.”


미찌코의 어투는 굳어 있었다.


“방학이 되면 도코로 와.”


연휴도 아니고 방학이라··· 미찌코가 나에게 실망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챘다.


“응 방학이 되면 갈 게.”


내게서도 부드럽지만 시쿵둥한 응답이 나왔다. 사실 방학 밖에 시간이 없었다. 나는 얇은 호주머니를 메우고자 노인 복지 센터의 교양강좌나 어린이 과학 교실 같은 곳에서도 강의를 해야 했다.


강의 때마다 요란한 박수가 끝나고 내가 받는 첫 질문은 한결 같았다.


“우르를 처음 봤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우르를 사냥했을 때의 기분은요?”


나는 내 머릿속에 녹음기를 만들었다. 그 질문이 나올 때마다 나는 머릿속 녹음기를 틀었다.


“엄청난 크기로 우주의 검은 하늘을 보고 서있는 걸 보며 압도당했죠. 그렇습니다. 그건 정말 압도였습니다.”


“내가 이겼다는, 내가 옮았다는데서 오는 뿌듯함이었어요.”


나는 똑같은 대답을 하며 남에서 북으로, 동에서 서로 뛰어다녔다. 그러는 만큼 우르를 연구할 수 있는 기회는 멀어졌다. 그러나 내가 강의에서 한 말은 유로파에서 우르를 봤을 때의 감정을 십분의 일로 살리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그런 말재주가, 묘사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다. 얼음 기둥이 빼곡히 들어찬 리네아 안에 우뚝 서있는 우르는 바로 ‘생명’이었고, ‘존재’였다. 그리고 소용돌이치는 현란한 대기의 목성은 ‘신’이였다. 그렇다. 신과 생명. 그것이 목성과 우르였다.


미찌코가 갔던 길은 나와 차원이 달랐다. 김철수가 미찌코가 찾아낸 효소를 이용해 유벤타를 분리해낸 날부터 미찌코는 유명해졌다. 미찌코는 한없이 중요한 생화학자가 되어버렸다. 내가 1학년생에게 교양 생물을 강의하고 기업이 사원과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강좌를 돌아다니는 동안 신디케이트가 만들어 졌다. 유로파에 가고, 우르를 잡아 유벤타를 제조하고, 판매 할 때까지 집어넣어야 할 돈을 생각하면 한 개 나라의 일개 제약회사가 하기에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찌코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김철수와 함께 신디케이트의 핵심 멤버가 되었다. 우리의 만남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 되었고, 통화는 특별한 것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우르 사냥은 내가 처음 했을 때와 같이 너무도 쉽고 단순한 일로 남아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미찌코와의 관계는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변했다. 이별은 너무나 빤하고 정당한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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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3장. 우주 정거장에서(7) +2 22.06.15 852 40 10쪽
22 3장. 우주 정거장에서(6) +2 22.06.15 840 4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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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3장. 우주 정거장에서(2) +2 22.06.14 905 39 9쪽
17 3장. 우주 정거장에서(1) 22.06.14 947 39 10쪽
» 2장. 회상: 우르 사냥(11) +2 22.06.14 903 43 10쪽
15 2장. 회상: 우르 사냥(10) +2 22.06.13 927 41 10쪽
14 2장. 회상: 우르 사냥(9) 22.06.13 966 42 9쪽
13 2장. 회상: 우르 사냥(8) +1 22.06.13 986 46 10쪽
12 2장. 회상: 우르 사냥(7) +2 22.06.12 1,005 45 10쪽
11 2장. 회상: 우르 사냥(6) 22.06.12 1,053 46 11쪽
10 2장. 회상: 우르 사냥(5) +2 22.06.12 1,085 47 10쪽
9 2장. 회상: 우르 사냥(4) +2 22.06.11 1,130 46 10쪽
8 2장. 회상: 우르 사냥(3) 22.06.11 1,198 51 10쪽
7 2장. 회상: 우르 사냥(2) +2 22.06.11 1,377 51 14쪽
6 2장. 회상: 우르 사냥(1) +3 22.06.11 1,528 4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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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장. 다시 유로파에(1) +7 22.06.10 3,260 7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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