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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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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행성케이투
작품등록일 :
2022.06.0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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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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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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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2장. 회상: 우르 사냥(1)

DUMMY

1.

15년 전, 내가 도착한 제임스 기지는 북새통이었다. 단층 건물 십여 채에 상주하는 80여 명 중 50명이 우르 때문에 온 생물학자들이었다. 세계 유수 대학과 연구소가 자존심과 기대를 걸고 파견한 젊은 천재들이 득실거렸다.


그들은 유로파를 돌아다니며 얼음 대지의 바닥에서 얼음 기둥 꼭대기까지 각가지 측정기를 설치했다. 그들은 우르를 찾아 유로파의 바다 밑으로도 스스럼없이 들어갔다. 그 중 몇몇은 다시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도 탐사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그렇게 시간을 아껴야 할 이유는 있었다. 개인이 유로파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간은 1년이었다. 지구와 유로파의 왕복 이동 기간 6개월을 제외하면 실제 유로파에서의 시간은 6개월뿐이었다. 더 많은 학자에게 기회를 주자는 목적으로 대학과 연구소의 연합체가 만든 규칙이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어떡하든 성과를 내야 했다.


나도 그 규칙의 대상자였다. 6개월 내에 나는 박사 학위 논문을 완성하거나 논문에 쓸 데이터라도 손에 넣어야 했다. 그런 압박 속에 제임스 기지의 연구원들은 분석기기와 장비를 놓고 치열한 순서 다툼을 벌였다. 내가 온 후 일주일 사이 궤도차 사용 시간을 두고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던 일도 두 번이나 있었다.


거친 얼음의 땅을 미끄러지지 않고, 얼음 바위들을 넘어가며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무한궤도를 단 차량이 필수였다. 그런 만큼 나 같은 박사과정 애송이가 기지에 비치된 기기를 사용하고 궤도차를 몰아 우르를 찾으러 나갈 기회는 자투리 시간이라도 잡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나는 궤도차 사용 신청을 했다. 유로파 탐사 프로젝터에는 한국 정부도 자금을 냈다. 나는 한국의 정식 연구원으로 궤도차를 사용할 권리가 있었다. 나는 메일로 궤도차를 신청했다. 리펑이라는 중국 출신의 연구 관리자가 차량 배정을 담당했다. 리펑은 깐깐하고 소심했다. 리펑이 메일을 읽고는 안됐다고 답장을 보냈다. 내가 몇 번이나 더 신청 메일을 보내자 결국 나를 불렀다.


“궤도차 1량을 신청했던데요.”


“예. 내일부터 3일 동안요.”


“안돼요. 어림도 없어요.”


“그럼 언제부터 되는데요?”


“한 달 뒤요.”


한 달을 그냥 날린다고 생각하자 한숨이 나왔다.


“그건 안돼요. 내 시간은 육분의 일을 날린다고요.”


“이봐요. 연구용 궤도차는 10대뿐인데 그걸 사용하겠다고 줄 선 사람이 40명이 넘어요.”


“모두가 다 멀리 나가는 건 아니잖아요? 같은 방향으로 가는 연구원들도 있을 거고요. 그런 사람을 잘 분별해서 차량을 배분하면 어떻겠어요.”


리펑이 얼굴을 찡그렸다.


“신청 순서대로 배분하는 게 내일이에요. 조정은 연구원들이 알아서해야죠.”


“차량은 적은데, 쓸 사람이 많으니까 그런 역할을 해 달라는 거죠. 신청서에 어디로 간다는 목적지가 적혀 있지 않아요? 그걸 보고 조정해 달라는 겁니다.”


나는 리펑과 30분 넘게 입씨름을 벌렸다. 지나던 연구원들이 궤도차에 관련된 일임을 알자 하나씩 모여들었고 나와 같이 리펑을 성토했다. 결국 리펑이 졌다. 리펑은 씩씩거리며 받은 메일을 확인하고 연구원들과 무선 통화를 하며 일정을 조정했다.


그덕에 나에게는 열흘 뒤 5시간이 주어졌다. 대기시간이 한달에서 열흘로 줄었지만 6개월 180일 중 17일을 날리고 얻는 5시간이었다. 그 시간 내에 우르를 꼭 본다는 확신도 없었다. 나는 풀이 죽어 내방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궤도차 없이도 유로파를 돌아다닐 수는 있었다. 하지만 예비 산소통 하나를 가지고 간데도 귀환 시간을 감안하면 다닐 수 있는 범위는 4㎞ 정도에 한정 지워졌다. 우르는커녕 단세포 동물도 없는 얼음 대지를 마냥 걷다 돌아오는 것이 다였다.


나도 산소통을 메고 제임스 기지에서 우주선 착륙장까지 2㎞의 얼음 땅을 둥실둥실 걸은 적이 있었다. 신입 연구원 아홉 명이 한명의 인솔자를 따라 열 지어 걸어갔다 돌아오는 환영식이자 훈련이었다. 그 뿐이었다.


제임스 기지는 지구와의 통신 관계로 태양에 면한 쪽에 있어 유로파의 주인인 목성은 보이지도 않았다. 애당초 얼음 기둥과 바위들이 적은 지형에 기지와 착륙장을 지었고, 그나마 있었던 얼음 기둥과 바위들을 제거한 얼음 땅 위를 걷는 밋밋한 산책이었다. 그 정도는 지구의 남극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 뒤로도 두 차례 더 밖으로 나가 가장 가까운 리네아(Lineae: 유로파의 얼음 대지가 길게 갈라진 틈. 라틴어로 선을 의미한다.)를 둘러봤지만 완전히 얼어붙어 있어 우르가 나타날 리 없는 곳이었다. 실상을 접하자 초조함에 입이 말라 들어갔다.


그런 와중에 문건한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나보다 6개월 일찍 온 엔지니어로 깡마르고 파리한 얼굴에 큼직한 눈이 지적인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그는 생물학자가 아니라 엔지니어로 와 순수 체류 기간만 1년이었다.


“우르를 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는 내게 물으며 냉소적인 웃음 지었다. 그의 웃음은 자신의 제안에 응낙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를 향한 작은 예의였다.


“당연히 보고 싶죠. 하지만 열흘 뒤에나 궤도차를 쓸 수 있다고 해서···”


“우르를 보는 것만이 목표라면 방법이 있어요.”


“어떤 방법인데요?”


“건설 중인 포스트 A에 물자를 나르는 팀에 합류하는 거죠.”


“예?, 난 생물학자로 왔는데···”


“상관없어요. 장거리는 항상 2인 1조로 움직여야 한다는 규칙을 따르는 것뿐이에요. 차량 운전은 내가 할 거니까 그냥 옆에 앉아있으면 돼요.”


“포스트 A까지 오가는 데 며칠이나 걸리는데요?”


“편도로만 다섯 시간 정도죠. 하지만 그곳에 3일을 머물 겁니다. 돌아올 때는 복귀 팀을 태우고 와야 해서요.”


문건한의 설명은 이랬다. 내가 왔던 우주선에 실려 온 자재와 기계는 이미 포스트 A 공사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소형 원자로에 들어가는 부품 중 몇 가지를 빠뜨리고 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번에 많은 물품들을 싣고 내리니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했다.


“그 부품들을 가지러 궤도차 한 대가 먼저 돌아왔어요. 그런데 궤도차를 몰고 온 엔지니어 두 명이 다시 가기 싫다며 나보고 대신 갈 수 없겠냐고 의사 타진을 해 왔죠.”

“왜 가기 싫어하죠?”


문건한이 싱긋 웃었다.


“원래 공사장이란 곳이 환경이 열악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이곳과는 다르죠. 거기에다···”


문건한이 의미심장은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우연히 근처의 카드모스 리네아에 나타난 우르를 보고 질려버렸답니다. 그 둘은 모두 엔지니어라 굳이 우르에 집착할 이유도 없고요.”


나는 우르라면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우르를 보고 질렸다고요?”


“예. 그들은 감동보다 공포가 더 컸던 모양이지요.”


우르를 볼 수 있다면 열악한 환경이다 뭐다 따질 필요가 없었다.


“가죠. 반드시 가겠습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유로파에서의 8일째 날, 나는 포스트 A로 가는 궤도차의 조수석에 올랐다. 우주복을 입고 헬멧까지 완전하게 쓴 상태였다. 궤도차는 밀폐가 되어 산소공급이 가능했지만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우주복과 헬멧을 착용하는 게 규칙이었다. 궤도차는 병력수송용 장갑차처럼 생겼는데 열 명의 인원과 5톤 정도의 자재를 실을 수 있었다.


탑승자는 문건한과 나, 둘 뿐이었고 날라야 하는 부품도 1m 높이의 박스 두 개와 2m 높이의 박스 하나가 다였다. 거기에 공사 담당자들이 부탁한 개인 물품 몇 박스가 덧붙여졌다. 그러니까 궤도차는 거의 빈차나 다름없었다. 궤도차는 포스트 A까지는 시속 40~50㎞로 다섯 시간을 달려야했다. 말만 들어도 지겨워졌다. 나는 문건한에게 물었다.


“유로파에는 우주선이 없나요?”


“우주 정거장이나 원거리 우주선을 오갈 때는 쓰는 우주선이 2대 있기는 하죠.”


“그럼 왜 그 우주선을 띠우지 않죠?”


“이런 짧은 거리에서는 이온엔진을 가동할 수 없어요. 결국 화학연료를 써야하는데, 지구에서 실어 와야 해요. 그러니까 돈이 많이 들죠. 그래서 꼭 필요한 연료만 두었다가 비상시에만 가동해요.”


대기가 거의 없는 유로파에서는 비행기를 띠울 수 없었다. 수백 킬로의 거리라도 차량으로 이동해야 했다. 대기의 고마움이 새삼스러웠다.


“속도가 너무 느리군요.”


앞 유리창으로 지형을 보면서도 나는 계속 불만이었다. 문건한은 내 마음을 아는지 불평만 하는 나를 탓하지 않았다.


“궤도차라는 게 원래 속도가 느린 차량이죠. 앞으로 직접 운전해 보면 알겠지만 유로파의 얼음은 평탄하지 않아요.”


사실 그랬다. 목성과 다른 위성의 중력을 받아 얼음 대지가 비틀어지고 갈라져 곳곳이 크레바스였다. 거기에 바닷물이 분출되며 만들어진 얼음 기둥과 바위로 얼음 대지는 거대한 장애물 경기장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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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3장. 우주 정거장에서(8) +2 22.06.16 842 38 10쪽
23 3장. 우주 정거장에서(7) +2 22.06.15 853 40 10쪽
22 3장. 우주 정거장에서(6) +2 22.06.15 840 4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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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3장. 우주 정거장에서(2) +2 22.06.14 905 39 9쪽
17 3장. 우주 정거장에서(1) 22.06.14 947 39 10쪽
16 2장. 회상: 우르 사냥(11) +2 22.06.14 903 43 10쪽
15 2장. 회상: 우르 사냥(10) +2 22.06.13 927 4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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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장. 회상: 우르 사냥(8) +1 22.06.13 987 4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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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장. 회상: 우르 사냥(5) +2 22.06.12 1,085 47 10쪽
9 2장. 회상: 우르 사냥(4) +2 22.06.11 1,130 46 10쪽
8 2장. 회상: 우르 사냥(3) 22.06.11 1,198 51 10쪽
7 2장. 회상: 우르 사냥(2) +2 22.06.11 1,377 51 14쪽
» 2장. 회상: 우르 사냥(1) +3 22.06.11 1,529 48 9쪽
5 1장. 다시 유로파에(5) +2 22.06.11 1,605 5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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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장. 다시 유로파에(2) +4 22.06.10 2,081 74 10쪽
1 1장. 다시 유로파에(1) +7 22.06.10 3,260 7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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