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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 님의 서재입니다.

독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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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
작품등록일 :
2018.04.0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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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2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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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310

작성
20.06.08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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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사이렌

DUMMY

돌계단이 휘어져 내려가며 물소리가 들려왔다. 물소리는 습기에 젖은 바람처럼 무거웠다. 어두움은 곤두박질치듯 아래로 떨어졌는데 그 사이로 주황의 불빛이 거슬러 올라왔다. 경사가 완만해지며 돌계단이 끝났다. 계단 옆에 작은 정자가 있었다.


이묘선이 차를 마셨다는 정자였다. 그 앞으로 누런 자갈밭이 보이고 검은 기름 같은 물들이 짐승처럼 굽이쳤다. 물가에 높다란 기둥이 있고 기름등잔이 아래 위에 걸려 있어 환하게 타올랐다. 그 옆에 나룻배가 매어진 선착장이 있었다. 배는 오래된 목선으로서, 때에 절어 번질거렸다. 야위고 볼이 홀쭉한 늙은 사공이 보였다.


누런 베잠방이에 아래에는 떨어진 무명바지를 걸치고 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장죽을 물고 있었다. 몽롱한 연기가 흔들거리며 피워 올랐다. 맞은편의 상류 쪽으로 끝이 뾰족하게 솟은 탑이 보였다. 탑 주위에는 안개가 낮게 흘렀다. 석순과 종류석이 기둥처럼 솟고 내려왔다. 음침했다. 저승의 풍경이었다. 류사가 뱃사공에게 다가갔다.


“ 이보시오! 강을 건너려 하니 배를 내어주시오!”


류사가 두 번 말하자 뱃사공이 느린 동작으로 몸을 돌렸다. 담배 연기가 코에서 뿜어졌다.

류사가 재차 말하였다. 사공이 앉은 자세로 대답하였다.


“ 이 강을 건너면 되돌아오지 못하니 다시 생각해보게.”


“ 다시 오고자 하지 않으니 배를 내어주시오!”


사공이 일어나 저벅저벅 걸어 배위로 올라갔다.


“ 배 삯은 은자 두 냥이니 선불로 주게나.”


류사가 두말없이 은자를 꺼내주고 갈리에르 신부와 같이 탔다. 물결이 출렁이며 파고가 높았다. 배는 느리게 앞으로 나아갔다. 물의 저항이 심했는데 뱃전을 쳐도 포말이 되지 않고 기름처럼 엉겼다. 사공이 노를 저으며 갈리에르를 쳐다보았다.


“ 갈리에르! 그 먼 제노아에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왔는가?”


갈리에르가 그를 바라보았다. 짙은 주름과 백발 사이로 그의 얼굴이 보였다


「제노아 신학교!」 오래된 기억이 났다.


“ 하데스 교수님?”


의아하게 묻자 그가 킬킬 웃었다.


“ 여기서는 하덕수라고 부르지.”


“ 어떻게 여기까지?”


“ 흐흐흐! ”


그는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통곡에 가까웠다. 곧 그쳤다.


“ 내가 이단으로 몰린 건 자네도 알지 않나?”


“교수님의 학설이 진취적이긴 했지요!”


“ 자네가 졸업한 뒤에 나는 파문당했지! 그건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그 뒤 나는 동양으로 왔네!”


하덕수는 입을 다물고 그 일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았다. 한참 있다가 한마디 더했다.


“ 조심해서 살아남도록 하게! ”


학생 갈리에르에게 줄 수 있는 교수로서의 온정이었다. 이 때 뱃전을 탕탕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간드러진 여인의 교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요! 내려와서 우리와 놀아요!”


어느 사이인가 뱃전에 붉은 머리의 여인이 붙어서 배를 흔들었다. 눈빛이 날카롭고 얼굴은 요염했다.


‘까르르!’


웃음소리를 내면서 류사의 다리를 붙잡으려 하였다. 하덕수가 노로 막았다.


“ 이 손님은 너희들의 상대가 아니니 그만 가거라!”


물 아래에서 또 여인 몇이 솟구쳐 올라왔다. 모두 불타는 듯 붉은 머리에 희고 매끄러운 피부, 봉긋한 젖가슴을 수면 위에 드러내었다. 아름다웠다. 군살하나 없는 화려한 얼굴과 흰 몸이었다.


“ 하데스 아저씨! 저분들은 어디서 오신 분들이죠?”


“ 교주님의 손님이니 너희들이 나설 분들이 아니다.”


“ 피이!”


여자들이 입술을 비죽 내밀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장구를 치면서 앞으로 헤엄쳐 나갔다. 물고기처럼 속도가 빨랐다.


“ 저 여자들은 누구요?‘


류사가 묻자 갈리에르가 먼저 대답했다.


“ 그들은 사이렌이야. 물의 요정들이지. 지나에서는 인어라고 불린다네!”


그러면서 행랑을 주섬주섬 뒤져 찢어진 천 조각을 류사에게 건넸다.


“ 이걸로 귀를 막게!”


하덕수는 그들을 간섭하지 않았다. 묵묵히 노를 저으며 파도를 넘었다.


“ 사이렌은 특별한 노래를 부른다네! 그 노래는 음양이 처음 나누어질 때의 신비한 소리라고 하네만 아무도 들은 자는 없지. 듣게 되면 그녀들의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져 죽게 된다네! 이 물은 늪과 같아 사람이 빠지면 헤어 나올 길이 없어!”


그러면서 갈리에르가 천으로 자신의 귀를 막고 배 바닥에 단정히 앉아 운공의 자세를 취하였다. 류사는 천을 받아들고 망설였다.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소리가 퍼지지 않고, 화살같이 선명하게 직선으로 날아왔다. 이십여 보 앞에 바위가 솟구쳐 있었다.


그 바위에 걸터앉아 긴 머리를 빗질하며 여인들이 노래를 불렀다. 바람소리처럼 ‘휘잉’ 울리다가, 비파를 뜯듯이 애절하게 소리가 울었다. 차차 높아졌다. 이백의 장간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첩의 머리카락 처음으로 이마를 덮을 무렵

꽃 꺾으며 문 앞에서 놀았지요


낭군께서는 죽마를 타고 와

우물 난간 빙빙 돌며 매실 갖고 놀았어요


장간리에서 함께 살면서

두 사람 어릴 때는 미움도 시기도 없었어요


열네 살에 그대의 아내가 되어

부끄러움에 얼굴 한 번 펴본 일 없어요


고개 숙이고 어두운 벽 향한 채로

천 번을 불러도 한 번 돌아보지 않았지요 .....」


장간행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녀간의 그리움을 부르는 노래인 듯 했다. 소리는 류사의 감정 폭을 넓히면서 흔들기 시작했다. 물결이 뱃전에 부딪치면서 허공에 물보라를 뿌렸다. 물보라가 희미하게 펼쳐지면서 주요연의 모습이 나타났다.


“ 낭군!”


그녀가 흐느꼈다.


“오직 바라옵기는 낭군과 함께 아침에 함께 들에 나가고, 저녁에 손잡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바느질 하는 것이 저의 소망이옵니다. 이제 그 소망도 아침 안개와 같으니 다만 세상의 모진 인심을 원망할 뿐이옵니다.”


류사는 가슴이 떨려왔다.


“ 세상은 나에게 왜 이리 야박한가?”


그는 흐느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이 세상의 잔혹함이 빼앗아갔다. 그리고 이제 겨우 시작되는 풀잎 같은 그의 사랑도 사라지려한다. 도라고 하는 것은 결국 삶의 길이다. 삶이란 사랑을 지켜나가는 길이니 이 사랑을 나는 지키리라!


가는 길을 물이 막아서면 넘어가고 불이 막아서면 바람으로 재우리라! 악이여! 네가 나를 친다면 목을 베고, 네가 나를 찌른다면 나는 너를 양단하리라!


주요연이 두 팔을 가득 벌리며 류사의 앞으로 달려왔다. 류사는 그녀를 안았으나, 그녀는 그대로 지나쳐 연기처럼 배 밖으로 빠져 나갔다. 물결이 용머리처럼 솟구쳐 그녀를 받쳐 올렸다. 희미함 속에 그녀가 손짓했다.


노래 소리가 사방을 휘잉 돌았다. 그것은 태초의 소리, 음양이 갈라지는 소리였다. 무한한 애상과 무한한 희열이 엄청난 힘으로 공간을 가득 메우며 류사에게 압박해 들어왔다. 갈리에르는 입적한 선승처럼 제 자리에 앉아 꼼짝 못하고 있었다. 하덕수는 묵묵히 고개를 수그리고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누구도 이 천지의 변화에 저항 할 수 없었다. 물이 솟아오르며 성벽처럼 배를 에워쌌다. 주요연이 물살의 가운데에 우뚝 섰다.


“ 어서! 낭군!”


그녀가 손짓했다. 사이렌들이 물의 벽을 뚫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들의 노래 소리가 염불처럼 울렸다. 류사는 주요연이 내민 손을 붙잡으려 앞으로 나아갔다. 류사가 다가가면 그녀가 물러갔다.


“ 아아!”


주요연이 슬픈 비명을 질렀다.


“ 이게 꿈인가? 마법인가?”


류사는 비명했다.


“ 꿈이라면 깨지 말고. 마법이라면 그대로 있으라! ”


류사는 몸을 날려 주요연의 손목을 붙잡았다. 허전했다. 사이렌의 웃음소리와 함께 성벽이 무너졌다. 물살은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류사는 물속으로 내려갔다. 물살이 잔잔해지며 편안해졌다. 푸르고 노란 물풀들이 흐느적대고 바위들이 정원 석처럼 여기저기 서 있었다.


그 옆으로 인어들이 지나갔다. 사이렌이었다. 온 몸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붉은 머리카락이 물살에 흩어져서 나부끼며 금빛의 꼬리가 좌우로 흔들렸다.


“ 류사! ”


눈이 파랗고 얼굴이 백옥처럼 흰 사이렌이 물살을 가르며 류사에게 다가왔다. 숨이 가빠왔다. 의식이 흐릿해지며 거품이 입에서 솟아올랐다.


“아아!”


저항 할 수 없는 기운이 류사의 온몸을 꽁꽁 동여매며 류사의 몸이 옆으로 누웠다. 사이렌이 다가왔다.


“ 오호호!”


그녀가 웃었다. 노래 소리와 달리 거친 숨소리가 났다. 그녀가 입을 벌렸다. 얼굴의 반이 넘는 거대한 입이 벌어졌다. 톱날 같은 이빨이 촘촘히 서있었다. 사이렌의 입이 류사의 목 근처로 다가왔다. 그녀가 류사를 ‘콱’ 물려는 순간 누군가의 얼굴이 물 안으로 들어와 사이렌을 응시했다.


“ 호호호!”


웃음소리에 실린 내력이 물결을 떨게 했다. 가공할 힘이었다.


“ 흐흥! 사이렌! 누구의 명을 받고 이런 짓을 하지! ”


사이렌이 놀라 물러서며 위를 바라보았다.


“ 이 장주!”


백요경이었다. 사이렌이 떠듬떠듬 말을 했다.


“ 소녀는 교주님의 명을 받고!”


“ 흐흥! 삼장주가 갈수록 세를 믿고 방자하구나! 다른 이는 다 건드려도 좋으나 류사는 손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건만!”


“ 소녀는 그러한 명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 괘씸한 놈! 감히 양이의 세력을 믿고 나를 농락하려해!”


백요경이 눈을 흘겨 뜨자 사이렌이 몸을 움츠렸다.


“ 어서 류사를 바위에 끌어 올리고 너희들은 물러가라!”


사이렌들이 거역하지 못하고 류사를 배와 멀리 떨어진 바위위로 올려놓고 사라졌다. 백요경은 허공에 떠올랐다. 그녀의 주위로 까마귀와 박쥐들이 둘러쌌다. 물살은 잔잔해져서 배는 고요히 제 자리에 떠 있었다.


갈리에르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덕수가 아래에서 두 손을 모아 백요경에게 예를 올렸다. 백요경은 오만하게 굽어보았다. 그러더니 류사가 누운 바위로 날아가 그의 곁에 앉았다. 귀를 류사의 심장에 갖다 대더니 다시 두 손으로 류사의 가슴을 압박했다.


‘쿨럭쿨럭’


류사가 물을 게워내며 두 눈을 떴다. 입술을 빨갛게 칠하고 분을 눈처럼 하얗게 칠한 요염한 여인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낭군!”


그녀가 불렀다.


‘ 요연!“


류사가 무의식중에 답했다. 그녀가 샐쭉했다.


“ 첩을 못 알아보고 누구를 찾으십니까?”


류사가 기겁했다.


“ 백요경!”


“ 흑흑!”


그녀가 돌아서며 눈물을 짰다.


“ 월하 빙인을 증인으로 두고 하늘에 맹세한 일을 잊으셨습니까? ‘


류사는 어이가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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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9 어가빙
    작성일
    20.11.18 11:58
    No. 1

    잘 봤습니다. 백요경의 일편단심...류사가 어이 없어할 만 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5 류청
    작성일
    20.11.18 12:30
    No. 2

    그런데 백요경도 은근 매력있습니다! ㅎㅎ 동바불패의 임청하 같기도 하구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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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호송출행 +2 20.05.25 531 10 14쪽
66 무환 +2 20.05.23 542 10 12쪽
65 비무초친2 +3 20.05.20 543 11 14쪽
64 비무초친 1 +2 20.05.18 540 10 13쪽
63 동림수장 고번룡 +2 20.05.16 536 10 13쪽
62 하선고의 제자 +2 20.05.13 544 12 12쪽
61 이묘선 +2 20.05.11 537 13 13쪽
60 금룡상단 +4 20.05.09 601 10 12쪽
59 동림당 좌호위사 +3 20.05.06 578 13 13쪽
58 천향표 +3 20.05.04 614 12 12쪽
57 악마의 이름 +3 20.05.02 559 14 11쪽
56 돈 카펠리오 +2 20.04.29 576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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