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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 님의 서재입니다.

독행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류청
작품등록일 :
2018.04.06 14:07
최근연재일 :
2020.10.22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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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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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310

작성
20.05.02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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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악마의 이름

DUMMY

그녀의 절박함부터 알려야 고통을 덜 받을 것이다! 상대방의 약한 고리를 슬쩍 건드려, 반응의 정도에 따라 밀고 당기다보면, 살 수 있는 기회를 엿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돈 카펠리오는 류사가 필요로 하는 먹이를 던졌다. 류사는 의혹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 그믐날이 아닌가?”


“ 그 이전에! 성녀의 자리에 앉기 전에! 그녀의 혼을 승천시켜야지!”


돈 카펠리오는 승천시킨다는 표현을 썼다.


“ 승천이 무언가?”


류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조급해졌다는 표시였다. 돈 카펠리오는 정확히 그 마음을 읽어내었다.


“ 모든 기억을 지우는 거야! 그리고 욕망만 남기는 거지!”


“ 욕망만?”


류사가 되풀이했다.


“ 그래! 그게 바로 성스런 영이지!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 무언지 아나?”


류사가 답했다.


“ 그건 도일세!”


“ 웃기는 소리!”


돈 카펠리오가 코웃음을 쳤다.


“ 도라고 하는 욕망은 없어! 그것은 욕망을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질서가 만들어낸 허상이지! 욕망이란 바로 모든 사물을 만들어 내는 힘이며 질서야! 그 근원적 욕망은 파괴라네!”


도 야장이 돈 카펠리오의 몸을 발로 찼다. 그가 포승에 감긴 채로 나뒹굴었다가, 다시 일어났다. 붕대를 감은 어깨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류 사가 혈도를 눌러 지혈했다.


“ 우리를 가르치려고 하지마라! 양귀(洋鬼)야! 너는 군주를 구할 수 있는 길만 말하라!”


류사 역시 논쟁하고 싶지 않아 돈 카펠리오 앞의 의자 에 앉았다.


“ 나를 시험하려 하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 한마디씩 대답한다! 알겠는가?”


돈 카펠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 내가 답해주면 살려 주겠는가?”


류사가 냉혹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 가서 되돌아오지 마라! 약속한다면 살려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직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살려줄 수 없다.”


돈 카펠리오는 마주 류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 너의 말을 믿겠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물어라!”


류 사는 그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단어를 끊었다.


“ 지금 주 군주는 어디에 있나?”


돈 카펠리오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 양척(陽尺) 산!”


돈 카펠리오가 호흡을 가다듬고 류 사의 눈치를 살폈다. 류 사는 그의 얼굴에 눈을 고정하고 가만히 기다렸다.


“ 양척 산 일주향이 있는 절벽에 동굴이 나있다. 그 안에 주 군주가 있다.”


도 야장이 류사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 양척 산은 가인 촌으로 가는 방향에서 동편에 있는 산이오. 여기서 하루면 됩니다!”


“ 그 곳에 누가 있느냐?”


류사가 다시 물었다.


“ 매 서명! 그리고 수사들이 있다! 그 밖에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른다!”


“ 주술은 누가 시행하느냐?”


“ 정확히는 모른다! 수사가 할지 또 다른 누군가가 할지?”


“ 그녀는 손 요삼의 금정 사녀였는데 왜 갑자기 성녀가 되느냐?”


이번에는 돈 카펠리오가 대답하지 못했다.


“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나는 다만 매 서명을 도와주러 왔을 뿐 그를 지휘하는 사람이 아니다!”


류 사가 묵묵히 있자 겁이 난 돈 카펠리오가 말을 덧붙였다.


“ 그 곳은 겉은 평온해 보이지만 가는 길에 살수들이 숨어 있다! 쉽게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구하러 가서 소란스러워 진다면 다른 곳으로 숨을 수도 있겠지!”


도 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의 말이 맞을 것이오! 류 대협이 주 군주를 구하려면 은밀해야 할 것입니다.”


류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도 야장에게 돈 카펠리오의 치료를 부탁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 나를 풀어주지 않느냐?”


돈 카펠리오가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류사의 뒤를 쫓았다. 류 사가 냉랭하게 말을 흘렸다.


“ 주 군주를 구하고 풀어주지!”


바깥은 봄기운이 돌았다. 따스한 대지의 기운이 지상에서 올라왔다. 별채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갈리에르 신부가 다시 퇴마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류사가 별채 문을 밀고 들어가니 촌장과 하인 몇이 마당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퇴마의식은 막바지에 도달한 것 같았다. 촌장은 얼굴색이 꺼멓게 죽어 있었다. 무남독녀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가 달려와서 류사의 손을 잡았다.


“ 우리 딸이 죽지는 않겠지요?”


묻기는 했지만 그는 확신을 가지고 싶을 뿐이었다. 류사가 그의 손을 가만히 덮었다.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주는 일이 최선이었다. 촌장이 어깨를 구부린 채 한 동안 서 있다가 류사의 앞을 비켜섰다. 방안에서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촌장이 손으로 방을 가리켰다. 들어가 보아 달라는 뜻이었다. 류사가 방문 계단 앞에 서자 소란이 멈췄다. 갈리에르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들어오게!”


문을 여니 방안이 폭파라도 당한 듯 가재도구가 마구 방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맞은 편 침상에 긴 머리를 양 어깨에 내린 처녀가 흉포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류사를 노려보았다. 갈리에르 신부는 기도문을 외우며 카인의 십자가를 성경과 함께 내밀었다. 처녀는 공포의 눈으로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십자가는 그대로 따라갔다.


“ 우웨액!”


처녀가 혀를 길게 내밀었다. 인간의 몸에 있는 혀가 저렇게 길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가슴까지 늘어졌다. 갈리에르가 소리쳤다.


“ 그만 포기하라!”


류사가 거들었다.


“ 적그리스도는 죽었다! 너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처녀가 얼굴을 실룩거리며 류사를 바라보았다.


“ 너는 누구냐?”


“ 나는 적그리스도를 다스리는 귀곡의 후예이다!”


“ 킬킬킬! 웃기는군! 그런 말은 들어 본적 없다.”


처녀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자, 카인의 십자가가 다시 빛을 내었다. 황금빛이었다.


“ 하느님의 빛이 너를 비추니! 물러나라 악마야!”


처녀의 이마가 불에 덴 듯 십자 모양으로 갈라졌다가 서서히 아물어졌다.


“ 아버지! 살려주세요!”


처녀의 입에서 아버지를 찾았다. 성수가 뿌려졌다. 불에 탄듯 연기를 내던 처녀의 옷이 축축해졌다.


“ 악마야! 나에게 오너라! 가엾은 처녀의 몸에서 나오라!”


갈리에르 신부가 처녀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러자 선명한 B자가 그녀의 얼굴 전체를 덮었다.


“ 바알이군!”


갈리에르 신부가 소리쳤다. 처녀는 축 늘어졌다.


“ 나를 치게!”


갈리에르 신부가 류사를 향해 소리쳤다. 검은 연기와 같은 것이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갈리에르 신부에게 덮쳤다.


“ 어서 치게!”


갈리에르 신부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무릎 끓었다. 그가 류사를 돌아보는 순간 음침한 미소를 흘리며 사악한 얼굴로 변하였다.


“ 빨리! 늦으면 안 돼 !”


갈리에르 신부가 방바닥으로 몸을 숙이며 등을 구부렸다. 류사는 결심하고 신부의 등을 오른 손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내력을 실지 않아 치명상을 줄 수는 없었지만 큰 타격은 줄 수 있었다. 신부가 방바닥을 굴렀다.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처녀는 의식을 잃고 침상에 누워 있었다. 류사가 갈리에르 신부의 상태를 살피려 접근하자 신부는 한 쪽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 기다려 !”


신부가 한 쪽 손을 뒤로 뻗어 류사의 접근을 막았다. 향 한 자루 태울 시간이 지나자 갈리에르 신부가 돌아섰다. 그때 류사는 얼핏 보았다. 검고 삐죽한 광대뼈와 세모꼴로 흘겨 뜨는 변형된 악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갈리에르 신부가 햇빛 속에 몇 걸음 걸어 나왔을 때에는 다시 원래의 평온한 모습으로 회복하였다.


“ 어떻게 된 것입니까?”


류사가 묻자, 갈리에르 신부가 씨익 웃음을 날렸다.


“ 바알(BAAL)이었어!”


“ 바알이라니요?” 그게 무엇인데요? “


“ 그건 악마의 이름이야! 악마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 하나지!”


“ 우리로 치면 야차 같은 거로군요!”


“ 그 비슷한 거지!”


갈리에르는 수긍했다.


“ 그놈까지 내 몸에 들어와 사니, 나도 참 관리하기가 어려워지는군!”


류사가 눈을 크게 떴다.


“ 그럼 좀 전에 보았던 그놈이 신부님의 몸속으로 들어갔단 말입니까?”


갈리에르가 류사를 쳐다보았다.


“ 자네도 보지 않았나! 바알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걸!”


연기 같은 것을 보긴 했지만, 그거야 몸에서 나오는 기운일 수도 있는 것이고 사람 몸을 옮겨 다니는 악마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류사가 피식 웃으니까, 갈리에르가 심각한 표정으로 우겼다.


“ 악마도 내보낼 자리를 보고 쫓아내야 한다네. 그렇지 않으면 숙주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 나오지 않아 ! 그 애들도 다 삶의 애착은 있거든!”


하고 정색을 했다. 그렇게 까지 나오니 류사도 웃을 수만은 없었다.


“ 그럼 이제까지 악마들과 같이 사시는 군요!”


“ 그런셈이지!”


갈리에르가 쉽게 수긍했다.


“ 지금 들어온 바알까지 치면 열일곱 놈과 사는 거야! 바알을 만난 건 참 오랜만이야!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난 놈은 지나에 오기전 스스로 나갔어! 도서관에서 만난 사서가 마음에 든다고 이사 간다더군. 인사까지 했어.”


류사는 갈리에르의 말을 들으며 황당하였지만, 세상의 일을 자신이 아는 지식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엉터리없는 짓인지 알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갈리에르는 촌장을 불러 처녀의 몸을 씻기게 하고, 약초 이름이 적힌 처방전을 불러 주었다. 그리고도 저녁까지 분주하게 움직여서 처녀의 몸을 돌보았다.

그 날 저녁 식사 때 쯤 되어서야, 류사는 갈리에르 신부를 만날 수가 있었다. 촌장이 닭을 잡아 밥상에 올렸다. 그는 갈리에르에게 여러 번 절을 하고 류사와 도야장에게도 고마움의 표시로 은자를 넣은 주머니를 주었다. 아마! 갈리에르 신부에게는 별도의 인사가 있었을 것이다.

투명한 물방울 같은 고량주를 류사와 도야장의 잔에 따라주며 갈리에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 아버지의 사랑이 과했던 것이야! 처녀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키우려고 하였으니, 마음이 허 해진게지!”


류사와 도야장 두 사람은 묵묵히 들었다.


“ 사람은 다 자기만의 집이 있지! 그 집에 맞도록 살림살이가 자리 잡혀야 하는 법일세. 과해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되지!”


그 정도는 다 알아듣는다.


“ 악마라고 하는 건 말이야! 그 넘치고 모자라는 틈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거든! 그것을 유식한 말로 욕망의 변이(變異)라고 하는 게야!”


하고는 화제를 돌려 도 야장에게 돈 카펠리오를 어떻게 처리하였는지를 물었다.


“ 지금은 헛간에 가두어 두었고, 그믐이 지나면 방면하려고 합니다!”


갈리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를 살려주도록 하게! 그는 여자 때문에 바티칸에서 파문당하였고 어쩔 수 없이 적그리스도에 투신한 사람일세!”


도야장이 물었다.


“ 신부님이 그를 아십니까?”


“ 그를 알지!”


하고 한숨을 푹 쉬고는 처연한 안색으로.


“ 그는 원래 에스파냐 왕국의 기사였다네! 믿음이 독실한 천주교의 신자였고 유능한 영주이기도 했어! 그런데 안도라 공국의 왕비를 사랑하다가 그만 파문당하였다네! 그 왕비는 마녀로서 불에 태워졌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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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39 어가빙
    작성일
    20.11.13 11:42
    No. 1

    잘 봤습니다. 인제 보니 갈리에르가 능력자였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5 류청
    작성일
    20.11.13 12:27
    No. 2

    예 ! 환타지를 가미하려다 보니 적 그리스도가 나오고 갈리에르가 비중이 커졌습니다. 이것저것 재미를 섞다보니 정통에서 약간 벗어났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9 어가빙
    작성일
    20.11.13 12:34
    No. 3

    특이해서 나쁠 것은 없죠. 나쁘지 않은 시도입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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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호송출행 +2 20.05.25 532 10 14쪽
66 무환 +2 20.05.23 542 10 12쪽
65 비무초친2 +3 20.05.20 543 11 14쪽
64 비무초친 1 +2 20.05.18 541 10 13쪽
63 동림수장 고번룡 +2 20.05.16 536 10 13쪽
62 하선고의 제자 +2 20.05.13 544 12 12쪽
61 이묘선 +2 20.05.11 537 13 13쪽
60 금룡상단 +4 20.05.09 602 10 12쪽
59 동림당 좌호위사 +3 20.05.06 578 13 13쪽
58 천향표 +3 20.05.04 614 12 12쪽
» 악마의 이름 +3 20.05.02 560 14 11쪽
56 돈 카펠리오 +2 20.04.29 576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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