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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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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크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3
최근연재일 :
2020.09.16 13:52
연재수 :
1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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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6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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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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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 6 장 기다려오던 신관 (13)

DUMMY

“그래서 나에게 더 숨기는 것은 없느냐?”


녹슨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디엘에게 물었다. 둘은 지크를 방에다 혼자 두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디엘은 빙긋 웃었다.


“제가 숨길게 뭐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흥. 내가 오늘 네 놈한테 두 번이나 뒤통수를 맞았거늘 웃음이 나오느냐? 하여간 고얀 것. 넌 왜 그리 필요 없는 것까지 네 아비를 닮았느냐?”


녹슨은 인상을 찡그리며 디엘을 타일렀다.


“아버지도 이러신가요?”

“아니. 하지만 뒤통수는 잘 치지.”


이번만큼은 디엘도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 때문에 고생하는 건 자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저 방을 빌리고 싶다고? 남자가 쓰기엔 좀 뭐한 방인데.”

“쓰려는 건 여자애가 맞습니다. 지금 병원에서 수술이 끝나면 안식을 취할 곳이 필요한데, 여기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물론 아버지께서도 여기 계신다는 전제하였지만 말입니다.”

“부자간에 그런 건 좀 일찍 일찍 말하고 살지 그러냐. 네 아비 잡는 게 이 나라 국왕 잡는 것보다 어려울 거다.”


녹슨은 거기까지 말하다 걸음을 멈추고 디엘을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녹슨도 인정하기 엄청 힘들었지만 디엘은 그가 알고 있는 백마법사 중에서도 가장 실력 있는 마법사였다.


“그런데 수술이라니. 네 힘으로도 안 되던 거냐? 거기다가 수술까지 했을 정도면 병원에 있어야지 왜 여기로 데려오냐?”


하지만 디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 녹슨은 알겠다는 듯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네 힘으로도 엘레마를 병원에 묵게 할 수는 없나보구나. 쓰도록 하거라. 대신 집주인에겐 비밀이다.”

“감사합니다.”


디엘은 정말 고맙다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에 녹슨은 그를 힐끔 쳐다보더니 물었다.


“애인이냐?”

“전 백마법사입니다만.”

“백마법사라고 애인 없으라는 법 있나. 힘이 준다는 거지 사귀는 건 상관없지 않느냐? 세상엔 장가가서 가정 키우는 백마법사들도 많다고.”

“그건 그것대로 귀찮습니다.”


디엘은 솔직하게 대답했으나 녹슨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호오. 말하는 걸 보니 마음에 둔 여자 정도는 있나보구나. 나도 아는 아이냐?”

“딱히 하고 싶은 얘기는 아닙니다만.”


말을 돌릴 생각도 없이 딱 잘라 말하는 디엘의 모습에 녹슨은 혀를 찼다.


“허 참. 재미없는 녀석, 늙은이를 즐겁게 해주는 방법도 모르는구먼.”

“오늘 많이 재미있게 해드리지 않았습니까.”

“뭐, 솔직히 나쁘진 않았구나.”


디엘의 말에 수긍하듯 녹슨이 대답했다. 점심시간 때부터 새로운 소식에 녹슨은 지금도 약간 흥분된 상태였다. 그리고 저 방에 남기고 온 아이도.


녹슨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드레이커 저택으로 갔다면서?”

“예.”

“그럼 드레이커 공작도 이 사실을 알고 있겠구나. 그래서 뜨끔 없이 수배장도 날린 거였어.”


녹슨은 말끝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까마득하게 멀어졌던 옛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이 지나쳤다. 그런 그를 잠시 보던 디엘이 입을 열었다.


“아무 말씀도 해드리지 않아서 속상하신 겁니까?”


디엘의 질문에 녹슨이 그를 힐끔 쳐다보더니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다.


“속상하기는. 그저 그 아이가 마음을 놓고 믿을 수 있었던 사람이 그 남자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야.”


지금도 생각하곤 한다. 만일 그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져줬더라면, 조금이라도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었다면, 빗나가고만 그 아이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지크가 방밖으로 나온 건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다시 본 그의 두 눈은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호스트를 맡게 된 알렌이 그와 디엘을 2층의 프레쟌느 테이블로 안내해 주었다. 애초에 테이블을 하루 종일 예약한 게 디엘이었기 때문에 문제 될 건 없었다. 알렌은 지크에게 찬물을 주곤 주문을 받자 바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진정은 좀 되셨습니까?”

“예.”


디엘의 질문에 지크가 낮게 대답했다. 방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처음 봤을 때 매우 당화하고 긴장하던 그의 모습이 이젠 상당히 지쳐보였다.


“티나 얘긴 없던 걸로 하죠. 지금은 스스로의 문제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다 알고 있었던 걸요.”


지크의 대답에 디엘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다...알고 계셨다 그러셨습니까?”

“예. 그야 왕족이란 건 최근 알게 되었지만, 제 아버지가 양아버지란 것도, 제가 평민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어렸을 때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디엘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설마 장본인이 모두 다 알고 있었을 줄이야. 예상 밖이었다. 티나는 전혀 모르고 있던데. 가르쳐주지 않은 건가?


“그렇다면 어째서 여태껏 조용히...”

“그게 안의 소원이었으니까요.”

“예?”


지크의 간단한 대답에 디엘이 당황하며 물었다. 왜 아네스 공주가 그런 소원을 빌었느냐는 것도, 고작 그런 단순한 이유로 왕족이나 되는 사람이 평민으로서의 삶을 선택했냐는 고차원적인 의문이 아니라, 어떻게 지크가 아네스 공주를, 그것도 왕궁과 가까운 친척만 아는 공주님의 애칭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르고 있냐는 아주 기본적인 문제부터 의아해했다.


그러다 디엘은 흠칫했다. 이제야 생각이 났다. 지크를 봤을 당시 그의 곁에 누가 있었는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의식조차 못 하고 있었다. 아네스 공주와 후노스의 곁에 지크도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아네스 공주님은 그럼 처음부터 지크를 알고 있었던 건가. 그가 자신의 쌍둥이라는 것도. 그렇다면 과연 언제부터... 전하조차 모르시던 사실을 그들은 어떻게...


하지만 디엘은 묻지 않았다. 그렇게 따진다면 자기와 티나의 관계가 더 복잡했고, 쌍둥이의 관계를 알게 된다면 그의 성격에 티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오늘 하루 그녀를 상처 줄만큼 상처 줬기 때문에 그 이상은 하고 싶지 않았다.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흐르는 동안 알렌이 차를 가져왔다. 지크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실론티 덕분에 머리가 한 층 더 맑아지는 것 같았다. 하늘을 바라보니 해가 어느덧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하루를 워낙 바쁘게 보내다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도 아니었다.


“티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지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홀로 병원에 두고 왔는데...솔직히 그녀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를 돌이켜보면 지금도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 어머니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보다, 시선을 외면하며 병원에 들어간 그녀의 옆모습이 그를 더욱 괴롭혔다.


아이가...있었구나. 그건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에게 새로운 충격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남편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럼 둘 사이에 애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마음 속 한구석이 착잡했다. 저번처럼 화는 나지 않았지만, 가슴이 쓰려오는 이유는 왜일까. 너무 쓰라린 나머지 그는 자신이 유리잔을 얼마나 세게 쥐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지크의 손을 잠시 말없이 쳐다본 디엘이 입을 열었다.


“신관이라는 의무를 최소한이라도 자각하고 있다면 지금처럼 지크님 곁에서 여행을 계속 하겠죠.”

“하지만 아이가...!”

“그건 더 이상 아이가 아닙니다.”


지크의 외침에 디엘이 잘라 말했다. 처음으로 그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죄책감을 껴안고서. 미안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테이블을 건너 지크한테까지 전해졌다.


“죽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어미의 뱃속에서 제거해야할 핏덩어리에 불과하죠.”


지크는 등살이 오싹해 지는 걸 느꼈다. 죽었다니. 언제부터? 설마 그날인가? 아니, 걸리는 사건들이 너무 많아서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티나는 그 정도의 사실을 계속 감추고 있었던 건가?


“2년 전에 자살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남편이 곁에 있었기에 목숨은 건졌지만 몸은 전처럼 돌아오지 않았죠. 처음부터 안 되는 거였습니다.”


지크는 갑자기 너무나 많은 내용에 감당이 되지 않았다. 자살이라니.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어째서. 왜. 무엇 때문에. 무얼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될지 갈필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디엘은 그에게 최소한의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티나는 신관으로 어울리지 않는 아이입니다. 신관이 되기 전에 너무 많을 것을 보았고, 경험하고, 잃었죠. 그걸 너무 어린 나이에 깨닫는 바람에 삶에 대한 욕심도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남편 덕분에 더 이상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은 안한다는 거죠.”


단 3년이었다. 그 전엔 그녀도 또래 아이들 못지않게 밝고 명랑한 소녀였다. 누나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씩씩하게 두 발로 서있을 수 있던 아이였다. 그런 그녀의 세계가 3년 전부터 무너져갔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수차례로...하나 둘씩 그녀의 손에 잡히겠다 하면 모두 떨어져버렸다.


[전 한 번도 부탁한 적 없어요! 이렇게 매번 소중한 것들을 빼앗기는데 더 이상 뭐가 남았다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를 그가 아니다. 그녀의 말보다 그녀의 마음이 더 선명하게 들리는 그니까. 하지만 해줄 수 있는 건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전 모든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살기도를 했을 때도 전 수도에 있었죠.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어째서죠?”


어쩌면 굉장히 건방진 질문일지도 몰랐다. 그에게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하지만 지크는 그걸 따질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맑지 못했다. 디엘의 다음 답조차 담지 못 할 정도로 이미 그의 머리는 수많은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디엘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제가 신관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크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디엘은 모든 설명을 다 했다는 듯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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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제 6 장 기다려오던 신관 (11) +2 20.06.17 13 2 11쪽
86 제 6 장 기다려오던 신관 (10) 20.06.17 11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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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제 6 장 기다려오던 신관 (7) 20.06.16 11 2 13쪽
82 제 6 장 기다려오던 신관 (6) 20.06.16 12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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