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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님의 서재입니다.

0층 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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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최근연재일 :
2024.07.02 21:00
연재수 :
125 회
조회수 :
7,597
추천수 :
84
글자수 :
709,517

작성
24.01.24 16:00
조회
484
추천
6
글자
12쪽

3화

DUMMY

아침이 되었습니다. 철수(가명)은 고개를 들어주세요.


서늘한 새벽의 바람에 으슬으슬 떨다 잠에서 깨어난다. 주변은, 딱히, 변한 것이 없다. 꿈이 아니었구나. 애초에 그런 아프고 무서운 것이 꿈일 리가······.


멍한 눈으로, 바닥에 엎어진 물통을 집어 안에 얼마 남지 않은 물을 한 모금 들이킨다. 지금 이게 내가 가진 유일한 수분 보충 수단이었다. 다음은 또다시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젠장.


······그리고 난, 그저, 무언가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로비의 문을 열고 나가 본다. 어제 보았던 그게, 아직도 있을까 싶어서.



“없네.”



아무것도 없었다. 어제 보았던 그 끔찍한 생물들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밤이 되면 다시 나타나겠지? 저기, 저, 세계수의 범위 바깥에서 계속? 히히, 히히히, 히히히히히.


그래서 난 오늘, 다시 계단을 오른다. 2층에서 뭐 필요한 거라도 가지고 오게. 음, 간단한, 침구라거나, 옷이나, 먹을 것들.


아, 그런데. 이거 좀 큰일이다. 어제 조금 계단 좀 올랐다고 다리가 아프다. 아니 물론, 조금이라고 하기엔 계단만 오르내리다 밤이 되긴 했지만 하여튼 그렇다.



“아, 앞으로 어쩌지.”



나갈 수 없음을 알게 된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진짜 뒤질 것 같은 기분인데 어떻게 해야 좋을까! 누군가! 내게 정답을! 누구라도! 제발시발! 제발!!


이라고, 계단을 오르며, 혼자서, 외롭게, 쓸쓸하게, 아주 의미도 없게! 아주 그냥! 어?! 무의미하게! 어?!!


생각을 해봅니다.



“······앞으로 이 계단을 얼마나 올라야 하는 걸까. 앞으로, 대체 얼마나. 무섭다.”



헉헉거리며 시장에 도착. 내가 난장판을 쳐두었던 시장도 역시나 그대, 로오? 어? 여긴 왜 그대로가 아니지? 어?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솔직히 말해 무서웠다. 어제 내가 그 깽판을 쳤는데 왜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 같지? 왜지? 어? 뭐임?


좀, 좀 너무, 무서워져서. 정말 필요해 보이는 것들만 간단하게 가방에 넣고 얼른 계단을 내려갈 준비를 한다. 여기 오래 있고 싶지 않다.


일단, 일단 오늘 하루는 버틸 정도의 먹을 것들을 가지고 내려가자.



“······.”



와장창!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좌판을 엎어버렸다. 내일도 또 올라왔는데 또 처음 모습으로 돌아와 있으면 그땐 안 건드릴 생각이다.


아니 그런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가 정리하는 건가? 아니면, 그래 저거지. 저 모습 자체가 하나의, 그, 신체인 거야. 그래서 내가 깽판을 친 건 상처를 입은 것처럼 되어서, 시간이 지나 치유가 된 거지.


그래그래,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 덜 무섭다. 다른 의미로 좀 무섭기도 한데, 그냥 지금 내 상태가 공포 그 자체라 어떻게든 무서운 부분을 찾으려 애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기자. 무섭다. 아니야! 무섭다고 그만해! 알아들어?!



“······.”



1층으로 내려가던 중 힘들어서 잠시 앉아 쉬는 중 문득, 3층과 4층이 궁금해졌다. 3층의 공방과, 4층의 성당. 꼭대기의 호수까지도. 진짜, 아무도 없는 걸까?


음, 그렇다면, 정말로 올라가 볼까. 혹시 모르잖아. 공방 지역에 저 괴물들을 물리칠 뭔가 어마어마한 무기 같은 것이 있을지도?


시장 지역에 다시 들어가 물을 충분히 챙기고, 올라가다 쓰러질 수도 있으니 침낭도 챙기자. 아, 그래 옷도 몇 벌 챙겨두자. 좋아.



“······하아, 진짜. 이거 뭐, 계단 오르기 시뮬레이션 뭐 그런 것도 아니고 진짜. 사람 미치겠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내 눈에 보이는 건 점점 멀어져 가는 시장 지역과, 점점 가까워지는 천장. 그리고 가끔가끔 창문이 있어서 보이는, 음, 아무것도 없는 평야. 하, 밤에 올라오면 볼거리는 많겠네.



“······.”



바, 밤에는 절대 올라오지 말아야지. 무서워······.


어쨌든. 이번에도 쉬었다 오르기를 반복하면 3층에 도착. 진짜 사람 미칠 정도로 많은 계단을 올랐다. 짐을 너무 많이 챙기는 바람에, 도중에 다 버리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만.


그래도 미치지 않은 것은 계단이 계단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계단을 오르는 것은 계단계단, 어? 뭐?


······아. 계단의 수를 세어볼까 싶기도 했는데, 한 200개 이상부터는 안 셌다. 체감상, 2층과 3층을 합치면 1층 높이가 나올 것 같다. 1층은 진짜 오르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수준이었다.


시계를 봤더니 한 3시간 정도가 흘러가 있는 것을 보아서, 그때부턴 그냥 시계를 벗어 던졌는데, 그 이후로 똑같은 시간을 반복해서 2층에 올랐다.


즉, 1층에서 2층까지 오르는 데에만 6시간을 소비했다. 난 지금 대체 무슨 산을 오르고 있는 걸까. 오늘 잠은 3층에서 자야겠어.



“오오, 공방. 여기도 영상으로만 봤는데.”



2층의 시장 지역이 그래도 좀 밟고 탁 트인 느낌에 천장에 하늘도 구현해줘서 뭔가 턱턱 막힌다는 느낌이 없는 편인데 여긴 아무래도 컨셉이 사이버펑크 뭐 이런 것인 모양이다.


어둡고 컴컴하고, 천장도 꽉 막혀 있고, 위아래를 가로지르는 높은 빌딩이 가득해서 올려다보기엔 목이 아프다.


이게, 참, 웃긴 게. 원래는 이곳의 건물들이 그리 높지 않다. 기껏해야 2~3층 정도의 높인데, 지금 여긴, 와아, 대체 몇층일까? 끝이 안 보이는데?


어어, 어쨌거나. 갑자기 펑크틱한 빌딩 숲에 들어오게 되어서 조금 당황스럽긴 한데, 여기저기 간판들 덕분에 가게 찾기가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것 같다. 잘 됐지 뭐.


덜컹! 덜커덕!



“안 열리네~!”



히히! 안 열린당! 히히히!


쾅! 쾅쾅쾅쾅쾅!!!


이 문도, 저 문도, 저어어어 문도. 하여튼 뭐 하나 제대로 열리는 문이 없다. 히히히히히! 장난? 장~난? 헤헷!



“어휴 시발.”



흘러나오는 한숨에 짜증을 흘려보낸다. 아니 뭐, 그래 뭐, 시장에도 무기나 방어구는 있지. 엄청 다 기본적인 것들이라 정작 쓰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점만 빼면 거기서도 뭐, 얻을 건 있어.


그래! 비록 그 무기들이! 탑의 가장 약한 몬스터나 죽이라고 만들어낸 무기랑 그런 놈들이랑 싸우다 돌연사하지 말라고 입혀주는 방어구라도 말이야! 하!


그래, 그런 무기랑 방어구가 있다면! 어?! 빌딩만한 눈깔괴물이나! 어?! 뭐, 뭐 하여튼 어젯밤에 봤던 그 괴물들도 쉽게 이기고 집에 갈 수 있지~! 어! 당연하지!!


덜컥, 끼이이익.



“미치겠네, 술집만 문이 열리네.”



한숨을 쉬면서도 오늘은 이곳에서 잘 수밖에 없으니 안으로 들어간다. 어제처럼 바깥에서 자기엔, 이곳은 또 너무, 너무 야외 느낌을 강하게 줘서. 술 퍼먹고 취해서 도로에 쓰러진 사회초년생처럼 잘 생각은 없다.


술집에 들어가서 안에 있는 꼬치나, 과일 같은 것들을 적당히 먹으며 배를 채우고, 진열되어 있던 술을 하나하나 따서 한 잔씩만 마시고 바닥에 집어 던졌다. 보니까 이 건물 전체가 술집이던데 뭐, 위층으로 올라가니 똑같은 술집이 또 하나 더 있더라.


웃긴 건 이 건물이 건물과 건물 사이에 끼인 건물이라 되게 좁다는 거? 기껏해야 10평 남짓한 넓이인데 높이는 무슨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도 한 수 접어줘야 할 것 같아.


그러니까! 오늘은! 사치를 부릴 거야! 하하! 기분도 울적하고! 우울하고! 쓸쓸하고! 무섭고! 외롭고! 공허하니까! 하하하!



“어우 그런데, 나 그래도 여기서 계단도 많이 오르고 뭐, 이거저거 했는데 스텟이 어째 하나도 안 오르냐. 이거 그냥 장식인가? 쯧.”



탑에는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강해질 수 있다! 네 삶의 모든 것이 스테이터스에 반영된다! 물론! 일반적인 경험은 딱 그 정도의 성장밖에 줄 수 없을 테지만!


이라는, 어느 한 유명한 탑험가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이곳에서 한 경험이라고 해봐야 깽판 치는 거랑 계단 오르기 뿐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 그런데, 계단 오르기도 6시간 정도 했으면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그 왜, 운동 기구 중에서도 계단을 오르는 거랑 비슷한 느낌의 운동을 하게 하는, 그, 뭐, 스텝퍼? 그렇게 부르는 것 같던데.


그래, 솔직히! 어? 딴 건 몰라도 지구력이나 뭐, 그런 쪽은 좀, 발달해도 되지 않나?!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계단 올라서 레벨업 하는 걸로 그 괴물들을 뭘 어쩔 건데······에잇! 주인장! 여기 술! 가장 비싼 걸로! ······네~지금 갑니다~! 술잔으로 피라미드 쌓아놓고 술 종류별로 부어야지~”



미쳐버리기 전에 뭔가 수를 써야겠다. 혼잣말하다 사람이 미쳐버릴 게 분명해. 어디, 뭐, 인형이라도 하나 두고 친구인 척이라도 할까. 혼자는, 너무 쓸쓸해.


아니, 그, 원래 혼자여도 크게 문제없이 살았는데. 어제 그런 걸 보니까 이게 참, 쉽지 않네. 혼자서는 도저히 버티기 어려운 광경이었어.



“오 가격표 있네. 흐어~이게, 이게 얼마야? 아니 숫자 단위가, 세상에, 비싼 술은 몇백도 한다더니 얘는 한술 더 뜨네. 이건 버리지 말고 온전히 다 마셔야겠네. 버리지 마세요, 내 몸에 양보하세요~! 으아아아! 이 술로 샤워할 거야~!!!”



술로 몸의 안과 밖을 빠짐없이 적신다. 이게 재벌의 삶인가. 사치와 향락, 그 끝은 광기로다.



“술값이요? 아~외상요~! 이름? 김! 철수! 카하! 아하! 크히히······히히, 엄마······.”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그저 다음 날, 온몸에서 풍기는 알콜 냄새에 구토하며 일어날 뿐. 술 취해서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내가 원망스럽다.



“······.”



가게 안에 직원용 샤워실이 있어서, 뜨끈한 물로 느긋하게 샤워했다. 느긋, 하게?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숙취 때문에 너무 아파서 뭘 빠르게 할 엄두가 안 났다.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가게는 깨끗했다. 내가 그 난리를 피웠는데도. 그저 내가 게워낸 토사물과 내가 어젯밤 술통에 담가버린 가방만이 이 가게의 어제와 다른 점일 것이다. 다 버리고 오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챙긴 건데.



“히히 병신.”



술통에 들어가 버린 가방은, 뭘 어쩔 수가 없으니 그냥 꺼내서 버리고. 갈아입을 옷도, 가게 안에서 찾은 바텐더 옷을 입는다. 몸에 안 맞아서 헐렁하다. 꽤 멋진 옷인데. 역시 옷걸이가, 아니다.



“토한 건, 내일 되면 없어지겠지? 어······담에 또 오겠슴다~”



히히, 히. 술을 너무 먹어서 숙취로 머리가 아프고 속이 뒤집어지는 지금도 다음에 또 술을 마셔야지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지. 히히히.


그래도 오늘 난,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내 숙취를 온전히 나 혼자서 감당하고 해결해야 하는 지금, 그마저도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지금. 술은 마셔선 안 되겠다는 것을.


아니 그런데 이거, 이런 삶이라면 앞으로도 꽤 괜찮을지도? 천천히 해볼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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