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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님의 서재입니다.

0층 모험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최근연재일 :
2024.06.30 21:00
연재수 :
124 회
조회수 :
7,544
추천수 :
84
글자수 :
703,814

작성
24.01.24 14:00
조회
602
추천
6
글자
12쪽

2화

DUMMY


-김 철수-


[Lv : 0]

[근력 : 0 지구력 : 0 마력 : 0 지력 : 0 매력 : 0 재능 : ?]



“내가 왜 철수야? 나 철수 아니야! 김 씨도 아니고!”



몇 번을 다시 봐도 같은 캐릭터 상태창. 캐릭터, 상태창. 너무나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들인데도, 지금의 내겐 그저 현실일 뿐인 이 단어들을 몇 번이나 다시 쳐다본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드넓은 평야.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아득해질 정도로 멀리 펼쳐진 평야가 세계수의 입구에 걸터앉은 내 눈에 온전히 다 담기지도 않는다.


등 뒤로는 무식하게 높은 세계수와, 그런 세계수에 어울리는 거대한 문이 보이고.



“아, 머리야. 아아.”



소름이 끼친다. 0층이, 진짜로 존재했던 것들이라고? 진짜로? 왜? 왜 이런 게, 진짜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닐까?!! 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탑이라는 공간 자체가 신비로움 그 자체라지만, 이건, 이건 아니잖아, 이건 너무하잖아! 과해! 과하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도저히 모르겠다. 입구에 앉아서 뚱한 표정으로 멍하니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꼬르르륵.


와아, 조졌네. 이젠 배까지 고프네. 이거 진짜 어떡하냐.



“아, 그래. 2층에 식당이 있다고 했지. 먹을 것도 있, 아?”



2층, 이것저것, 다양하게 판매하는 시장 층에는 당연히 식당도 있다. 먹을 것이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떠올린 거? 굿! 아주 좋아! 나 잘했어! 당분간 굶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그런데 어라? 세계수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정말 미치도록 넓은 로비가 일단 나를 반겨준다. 이렇게 넓은 실내 공간을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라는 인간의 작고 하찮음을 깨닫게 될 정도의 크기라고.


특이한 것은 가구 따위는 또 내 크기에 맞춰져 있다는 것인데, 히히, 히히히, 미칠 것 같아.



“로비, 로비. 탑험가들을 서포트해주는 요정들이 대부분의 민원 따위를 처리해주는 공간. 벽면에는 요정들이 사는 방도 있으나, 들어간 사람은 없다, 였나? 아이! 아는 게 없어!”



확실히. 벽면에 굉장히 많은 수의 방 문이 보인다. 그 문은 나에게도 조금 크다고 느껴지는 정도의 크기인데, 어어어, 저 안에 뭔가 사는 걸까? 조금 무섭다. 영상에선 저 안까지 비춰주지는 않았으니까.


탑의 바깥에서 팔 수 없는 전리품 따위를 매각해주는 창구도 있고, 탑험가들이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벤치도, 정말 너무 많다. 엄청나게 큰 은행에 온 것 같은 느낌도 조금 든다.


잘,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요정이 사는 문은 크다. 저런 창구나 벤치 따위는 내 크기에 맞춰져 있다. 대체 어째서? 왜?


그리고 저기, 저기 계단도 마찬가지다. 이 커다란 세계수의 안에서 사는 무언가 커다란 존재에게 맞춰진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춰져 있다. 엄청, 되게, 폭이 넓긴 하다만.


어쨌든!!! 나는. 나의 편의를 맞춰준 이 알 맞춤의 세계수의, 저, 저 끝도 없는 계단을 다시 한참을! 한참을 올라서! 2층의 식당으로 향해야 한다!


그 식당도, 어쩌면 내게 맞는 크기일 수도 있긴 한데, 솔직히 기대가 안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계수 안의 모든 시설에는 보안 시스템이 달려 있어서 허락 없이는 냉장고 문도 함부로 열어선 안 된다.


어떤 한 유튜버가, 식당에서 몰래 훔쳐 먹기! 같은 컨텐츠를 했던 적이 있다. 평소에 약간 그런 식의, 민폐 짓을 컨텐츠랍시고 하던 유튜버라 다들 그냥 어휴, 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었는데.


몰래 식당에 잠입해 냉장고의 문을 연 바로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나타난 요정 경비대에게 붙잡혀 반년 정도 소식이 두절된 적이 있다.


딱히 뭔가 심한 짓을 당하진 않았지만, ‘이런 짓 하면 안 돼요.’ 의 교육을 반 년 동안 들었다고 한다. 완전 사람이 달라져선 방송 접고 열심히 남을 도우며 살겠다니 어쩌니, 했지.



“어, 그런데 이거. 내가 식당에 가서! 냉장고 문을 열면?! 경비대가 나 붙잡으러 와주는 거 아니야?! 여기서, 여기서 도망갈 수 있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냥 ‘아이 씨, 배고프다고 식당에 들어가면 경비대 나올 건데;;’ 이러고만 있었는데!


맞네! 이게 맞네! 이런 방법이 있었네! 여기서 나갈 방법이 있었던 거야! 야호!


이런 기분이라면 얼마든지! 저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도 올라갈 수 있어!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하, 할 수 없다······나 연약하다······난 아기다······응애······.”



그건 아마, 1층의 계단을 3분의 1정도 올랐을 때, 무릎에서 뭔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을 때의 일이다. 내려가는 것과 올라가는 것의 차이는 현저했다.


한참을 그렇게 물에 젖은 걸레처럼 계단에 엎어져서 무릎과 다리를 주물럭거리다가 다시 다리를 움직여 천천히라도 올라가 본다. 이젠 조금, 쉬어가면서 올라가야겠다.



“오!!”



땀이 나기 시작하니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도중부터는 셔츠를 벗고 계단을 올랐다. 여기에 얼마나 오래 있어야 할 지도 모르겠는데 벌써부터 옷이 땀에 절어서 악취를 풍기는 대참사는 피하고 싶었다.


한참을 1층이 내려다 보이는 계단을 오르고, 다시 또 정말 한참을 2층의 바닥이 너무 두꺼워 벽으로만 느껴져, 벽과 벽으로 가둬진 답답한 계단을 한참을 오르고 나서야, 드디어 식당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 이 세계수는 바닥의 두께도 진짜 어마어마하다. 한 7층 정도의 높이는 되는 것 같다. 뒤지겠네 정말.


바닥을 기다시피 기어 올라갔다. 계단을 더 오르기 싫었다. 온몸에 닿는 바닥 타일의 차가운 느낌이 정말 싫지만, 계단을 더 오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좋다.



“······이제, 가볼까?”



조금 쉰 다음.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억지로 일어나서 털레털레 시장의 안으로 향한다. 매번 영상으로만 보던 시장을 맨눈으로 보게 되니 기분이 또 새롭다.


이런저런 무기나 갑옷이 전시되어있기도 하고, 먹을 것도! 있네? 에이 뭐야, 식당까지 찾아갈 필요도 없겠네?


바로 근처의 맛있어 보이는 사과 하나를 집어 바로 입에 넣고 와구와구 씹어먹는다. 탑에서 먹는 것들은 다 뭔가 맛이 다르다더니, 바깥과 별로 다르지 않은 맛이다. 그냥 헛소리였구나.


사과를 한 입 먹고 바닥에 버리고, 귤도 좀 까먹고, 괜찮아 보이는 검을 들고 괜히 몇 번 휘둘러보기도 하고.


························.



“왜, 왜 안 와?”



이상하다? 와야 하는데? 그, 뭐, 경비대? 와야, 하는데? 왜 조용해? 왜, 왜 이래? 지금 뭐, 뭐 하자는 거야! 야! 이거 태업이야! 열심히 일하란 말이야! 제발!



“으아아!!”



와장창!


주변의 좌판 같은 것을 걷어차 쓰러뜨리고 엎어버리고 괜히 과일 같은 것들을 바닥에 집어던져 보기도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역시나 없었다.



“허억! 허억!”



아니, 그, 저거······와아아아!!! 미치겠네 진짜!!


세계수를 나가서 어디 평야를 돌아다니다 보면 출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처음 든 생각은 당연히 그거였고, 당연히 저 넓은 평야를 뒤져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내 머리에는 0층 영상의 마지막에! 주인공을 덮치던 괴생명체가 떠오른단 말이야! 무섭단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 여기서 지랄하는 걸로 결정한 건데!


그럼, 그러면, 뭐, 나더러 뭐, 저기로 나가라고? 뭐가 있을지 모르는 곳으로 나가라고? 진짜라고? 그게 진짜란 말이야? 와아, 진짜, 거짓말 하지 마!!!



“······.”



한참을 시장바닥에서 버둥거리다가, 그것도 지쳐서 또 헉헉대다가, 몸을 일으켜도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와아, 무서워라.


머리가 조금 복잡해졌다.


여기서 벗어나야 해! 그런데 무서워. 그럼, 여기서 살아야 하나? 아니 그걸 고민하는 게 맞아? 나갈 생각부터 해야지! 그런데 여기서 오래 살려면 먹을 것들을 좀, 챙겨둬야 하나? 아이 씨, 과일 왜 던졌지. 벌써부터 여기 둥지 틀 생각부터 하네 레전드ㅋㅋㅋ. ㅋㅋㅋㅋ그러면 뭐, 진짜 나가? 나가자고? 여기 내려가면 뭐, 뭘 할 수 있는데! 저기에 뭐가 있는데!


······그래도 일단 가보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아, 가방도, 있겠지?”



여기저기 없는 게 없는 창고가 되어버린 시장을 뒤져서, 가방과 필요한 물건들, 먹을 것을 조금 챙겨 내려갈 준비를 한다.


후우, 내려가는 것도 일이네 진짜.


느긋하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본다. 혹시라도 뭐 무서운 게 나올까 봐 검도 한 자루 들었더니 내려가는 길이 더 힘들고 피곤하다.


난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난 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혼란스럽다. 게임 켰는데 아무런 이정표도 없어서 혼란스러워지는 기분이다. 누가 나 좀 살려줘. 여기 뉴비 있으니까 누가 좀 주워가주세요. 제발.


그러고 보니 탑이 세계 이곳저곳에 나타나게 된 이후로 게임 판타지 같은 게 많이 줄었지.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 되어버려서.


음, 사회가 한 번 박살이 났던 까닭도 있겠지만, 그것도 이젠 꽤 옛날 일이니 괜히 떠올리고 싶진 않다.



“······아이, 아! 진짜? 진짜 가?”



대답이 없다. 아무리 봐도 ㅈ된 듯하다. ㅋㅋ웃기넼ㅋㅋ아니 진짜ㅋㅋ


그래, 뭐, 가보자. 음, 벌써 시간은 밤이지만, 어차피 아무것도 없는 평야인데 뭐 어때. 0층 그 괴담 영상에서 나왔던 그 괴물? 애초에! 지금 상황이 그 영상이랑 다른데 뭐! 됐어 됐어! 넘어가!


또 어찌어찌, 1층, 로비까지 내려와서 바깥에서 들어오는 푸른 달빛을 바라본다. 푸른, 달빛. 세상에. 진짜 푸른색이다. 와아. 되게 예뻐.


아, 뭐, 어쨌든.



“후우! 그래! 나가보자! 가는 거야! 까짓거! 어?! 뭐! 뭐 있겠어?!”



로비의 문을 열고! 힘차게 나아간다! 난! 이곳을 벗어나겠어!


퉁!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나를 바라보는 커다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심장이 멈추며 그런 소리가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을 열자마자, 문을 열자마자 보였다. 거대한 괴물이. 끔찍하고 기괴한, 고어한 괴물들. 저 넓은 평야를 가득 채운 저 괴물들.


어째선지 세계수의 범위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고 있지만, 나를 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그 순간 저 많은 괴물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고, 그 눈도 하나둘 점점 늘어나고 있다.


끼이이이······쿵.


문을 닫았다. 그리고 로비의 벤치에 앉아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을 바닥에 내려 안에서 먹을 것을 찾아 적당히 입에 넣는다.


우물우물, 씹어먹는 이게 지금 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입 안에 들어간 것이 먹는 것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뚝.


땅에 떨어진 건 아마 내 이마에서 흘러 떨어졌거나, 내 눈에서 흘러 떨어진 땀이거나 눈물이겠지. 물, 물. 물이라도 마실까.


텅! 땡그랑!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는 가벼운 물통 하나 잡는 것도 버거웠다. 허허, 허허허.


조용히. 벤치에 눕는다. 덜덜 떨리는 몸을 웅크리고 누워 억지로 눈을 감고 조금 전의 그것들을 잊으려 애 써본다.


자자, 제발 자자. 잠들자. 자서 잊자. 죽더라도 자다 죽을래. 아픈 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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