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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캇트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자의 왕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루이캇트
작품등록일 :
2019.01.16 14:24
최근연재일 :
2019.04.09 23:27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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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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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
글자수 :
85,951

작성
19.01.2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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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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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팔라딘

DUMMY

제 2제파의 선두에는 황금사자 깃발이 우뚝 서 있었다. 분명 토그람의 황태자가 직접 나선 것이 분명했다. 토그람 진영에서 일제히 조명탄이 솟아올랐다. 은밀한 야간기습작전은 이미 물 건너간 터에 아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일까.

그야말로 하늘의 초승달을 대신할 기세로 끊임없이 쏘아대고 있었다. 그 덕분에 적의 진영에 엄청난 양의 연기가 발생했고 토그람 군은 흡사 지옥의 안개 속에서 앞 다투어 쏟아져 나온 괴수들처럼 덤벼들었다.

머리위로 쏟아지는 총탄을 두려워않는 그들의 왕성한 전의는 황태자가 자신들과 함께 한다는 사기진작요소와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소명의식에 따른 것이리라.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엉긴 잿더미에 요술을 부려 일으킨 듯 그들은 끊임없이 재생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죽어나간 병사가 계속 대체되기에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만 전율스러운 광경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대로는 전멸이다 확신이 들었을 때 덤으로 아군의 기관총 진지가 적의 정확한 포격 유도로 박살이 나고 말았다. 물론 제대로 된 좌표로 유도되기 전까지 자국군 머리 위로 더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이제껏 대군의 전진을 가로막던 가장 큰 장애물이 하나 사라진 셈이어서 토그람 군대의 진군속도는 무척 빨라졌다.

그냥 혼자 몰래 도망쳐야 할까? 은밀한 유혹에 끊임없이 부표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고 나는 돌격해오는 적진을 노려보며 계속 본대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 등 뒤에는 묵묵히 만프레드와 얀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이 들까. 승산 없는 전투에 나서서 개죽음하는 것보다 그냥 빈 말인 척 한 번 건네는 게 나을까. 무시라면 다행이지 지독하게 혐오 당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게 과연 죽음보다 더 두려울까.

귀청을 찢는 듯한 포성과 총소리가 오가는 가운데 온갖 잡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 맙소사. 작전관님. 저길 보세요!! ”

지근거리에 떨어진 포탄 파편을 피하느라 토벽에 기댄 내게 얀이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우리가 가려던 방향 훨씬 앞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 형체가 지근에 떨어지는 총탄에 전혀 겁먹은 기색 없이 마치 거목처럼 버티고 있었다.

“ 저건 팔라딘이 아닌가? 무슨 배짱으로 전면에 나선 거지? ”

짧지 않은 내 군인생활 중 직접 실물로 팔라딘을 본 것은 군사박물관에 갔을 때 정도였다. 나머지는 거의 귀족들이 개인적으로 소장한 것으로 실질적으로는 옛 선조들의 정취가 묻어나는 골동품 정도 취급이었다.

그만큼 팔라딘은 족히 두 물은 간 구닥다리 병기 취급이었고 보병용 소총의 철갑탄에도 맥없이 뚫리는 물장갑을 자랑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나타난 팔라딘은 일전에 본 박물관의 폐품과는 분명 뭔가 달랐다. 검은 망토로 치장한 강철의 괴인은 머리 위에 북두칠성처럼 번쩍이는 조명탄을 조명삼아 만천하에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망토에는 토그람의 상징인 황금사자가, 팔라딘의 흉갑 정면에는 새하얀 해골이 눈에 띄게 마킹되어 있었다.

“ 설마 참호로 뛰어들어 육박전에 돌입하면 저 팔라딘이 종횡무진 전장을 휩쓸 거라고 예상했나? ”

“ 그거 가능하긴 한 겁니까? ”

얀이 물었다.

“ 혹시 모르지. 갑주를 좀 더 효과적으로 보강했다면 참호선 내부에 돌입 순간 무적이 될 수도 있을 거야. ”

이번 대 참호전 용 병기로 동원된 팔라딘이 총 12기. 참호전에 앞서 겁을 주려는 심산이라면 정확했다. 우리 측 참호선 전체에 움찔하는 기운이 내게까지 전해졌으니.

팔라딘의 등장으로 인해 완전히 이쪽의 기세는 붕괴 일보 직전에까지 몰렸다. 옛 기사의 전유물인 팔라딘이란 일반 보병들의 뇌리 속에 구전설화 속 대항할 수 없는 괴수와도 같은 포지션에 있었다.

물론 소총의 철갑탄으로 약점을 잘만 노리면 격파가능하다는 건 귀동냥으로 얼추 알지만 막상 실물을 직접 보면 그런 부질없는 기대 따윈 어딘가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무엇보다 정예병도 아닌 하루살이 용병에 그런 고도의 기예를 기대하는 것부터가 잘못됐다. 게다가 철갑탄을 지급받지도 않은 맨 손으로 팔라딘을 격파하라는 건 그냥 팔라딘의 킬 수를 올리기 위해 너부터 나가 죽으란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팔라딘이 점프했다. 순간 허를 찔린 나머지 멍하니 그 격동적인 움직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참호선 안 병사들이 가득한 교통로에 어렵잖게 안착한 팔라딘은 검은 색 곡도를 꺼냈다. 마치 무력한 개미떼 앞에 나타난 천적과도 같은 위압감을 사방에 전염시키며 팔라딘은 곡도를 휘둘러 참호 안을 흠뻑 적실 피보라를 일으켰다.

그것은 무력함이었다. 절망 그 자체였다. 괴성을 지르며 병사들이 소총의 방아쇠를 연신 당겼지만 단순한 총알로는 갑주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 으아아악. 죽기 싫어. ”

갑주의 견고함에 질려버린 병사들은 소총을 내던지고 제각기 도망치려 했지만 나란히 뻗은 좁은 교통로에서는 갈 길이란 어차피 뻔하다. 팔라딘은 그저 일방통행이나 다름없이 전속으로 몸을 던져 도망치는 병사들의 등에 부딪쳤다.

마치 돌격하는 것처럼 근육질의 팔을 가슴에 붙인 채 묵직하게 밀어붙였고 마침내 멈췄을 때는 그저 질척한 핏덩어리 이외에 생기가 붙은 것이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 으아아아아!!! ”

비명은 어느새 뚝 끊겼다. 이제는 공포에 질려 흐느낌조차 흘러나오지 않는다. 마침내 저항을 포기한 병사들은 하나둘 총을 버린 채 손을 들었다. 하지만 팔라딘에게서는 차가운 조소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 항복하고 싶어? ”

치켜든 병사들의 손이 두려움에 덜덜 떨렸다.

“ 내게는 무리야. 비겁자들아. ”

곡도가 허공에 선을 긋자 항복을 위해 든 병사들의 손이 무더기로 뭉텅 잘려나갔다. 끄아악 필설을 다 할 수 없는 격통에 병사들은 혀를 고기처럼 씹으며 서로 뒤섞여 더러운 진탕을 굴렀다.

“ 마치 버러지 같구나. 너희들이여. 쿠후후. ”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잔악성을 모두 집약한 면모의 팔라딘은 그런 무력한 병사들을 밟아 으깨버렸다.

간만에 살육의 열망을 충족코자 곡도는 연신 허공을 베었다. 그 허공에 수많은 생목숨이 하염없이 휘둘렸다. 죽은 자의 생명과 산 자의 비명을 기쁘게 삼키며 팔라딘은 사방에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광소했다. 이제 피와 살점은 너무 흔해졌다. 팔라딘의 탑승자는 더욱 더 많은 즐거움을 원했다. 나에게 더 큰 쾌락을 줄 자는 어디에 있는가?

“ 목적을 잊지 마라. 공주를 먼저 찾아. ”

누군가 참호 위에서 팔라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참호선을 따라 망토는 쉴 새 없이 바람에 부대끼고 팔라딘은 목표를 찾아 매의 눈으로 움직였다.

“ 어엇!!! ”

참호선 교통로를 제 세상처럼 질주하던 팔라딘 한 기가 마치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붙잡힌 듯 덜컥 멈춰버렸다. 급가속을 하던 중이라 내부의 충격이 보통을 넘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기사라 그런지 금세 정신을 차려 자신을 옥죄는 것을 찾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 철사줄? 에잇. 나를 우습게 보느냐? 고작 이런 것으로 나를 묶으려 들다니 ”

팔라딘은 힘주어 끊으려 했지만 포격에 견디도록 제작된 특제 철조망용 고장력 철사는 그저 길게 늘어날 뿐 좀체 끊어지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 풀기 어렵게 엉켜들었다.

그가 풀려나려 사력을 다해 애쓰는 사이 머리 위로 그물이 이리저리 날아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눈앞에 작은 기름통이 굴러와 닿자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했는지 몸부림은 더욱 더 사나워졌다.

“ 이 하찮은 버러지 놈들이 감히. 모두 죽이겠다. 너희 모두 깡그리 부숴버리겠어. ”

하지만 미리 기름통 상면에 붙인 폭약이 폭발하자 그런 협박도 뚝 그쳤다. 대신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처절한 비명과 저주 속에서 팔라딘은 서서히 죽음의 늪으로 잠겼다.

직접 놈에게 기름통을 굴린 만프레드와 얀이 하얗게 탈색된 표정으로 천천히 주저앉아 불길 속에서 타오르며 여태 발악하는 팔라딘을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 미친.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아직 살아 있잖아. ”

“ 생명력이 강해봤자 죽을 때 저처럼 더 고통 받는군. 당연한 응보이긴 하지만. ”

주변을 경계하던 내가 둘에게 말했다..

“ 둘 다 빨리 움직여. 놈들의 동료가 낌새를 채고 곧 온다. 바로 다음 함정으로 이동해. 어서. ”

“ 아. 예. 아이구. 맙소사. 깜빡했네. ”

그제야 다른 팔라딘에 생각이 미쳤는지 얀과 만프레드 둘은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내 예상은 정확했다. 팔라딘은 자신의 동료와 어떤 식의 네트워크가 연결됐는지 몰라도 금세 이쪽 상황을 눈치챈 것이었다.

곧 3기의 팔라딘이 세 방향을 포위하듯 좁혀 들어왔다. 이번에는 참호선 내 교통로를 따라 오는 게 아니라 지면 위로 달리듯이 추격해왔다. 이미 자신들 위치가 노출되어도 무사할 거라는 자신감으로 충만해보였다.

교통로를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하는 우리로선 이미 코앞까지 적을 맞닥뜨린 상황이었다.

“ 이 자식들이!!! ”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한 팔라딘이 우리 앞에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뭉개버릴 듯이 전력으로 덤벼왔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안타깝게도 우리가 친 철조망이 있었다. 분노에 찬 그가 너무나 전력을 다한 탓에 목에 걸린 철사는 그로 하여금 뒤로 벌렁 자빠지게 만들었다.

생전 처음 느끼는 굴욕감에 팔라딘은 벌떡 몸을 일으키며 고통보다 더한 오묘한 감각에 사지를 부들부들 떨었다.

“ 너희들 절대 용서치 않는다. 각오해라. 손가락부터 차근차근 으깨주마. ”

우리는 대답하지 않고 도망쳤다. 팔라딘은 재차 성난 멧돼지처럼 덤벼왔다. 그러다 갑작스레 멈췄는데 자기 진로 앞에 철사줄이 쳐진 것을 발견했던 것이었다.

“ 이런. 이런. 또 이런 치졸한 속임수라니. 바보가 아닌 이상 또 걸리겠냐? 후후후. ”

그는 발을 번쩍 들어 철사줄 위로 간단히 타고 넘었다. 하지만 그게 함정이었다. 철사줄 바로 앞에 위장된 구덩이를 파놓은 덕분에 그는 깊게 한 발을 빠진 채 균형을 잃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등에 접근해 폭약을 붙였다. 물론 도화선에 불을 붙인 채였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며 외쳤다.

“ 어이. 기사 양반. 등에 폭탄이 있으니 재주껏 제거해 보라고. ”

“ 뭐라? 으어어어. ”

허망한 외침도 잠시 큰 폭음과 함께 잠잠해졌다. 팔라딘 갑주를 입은 상태로는 절대로 등 한복판에 손을 댈 수 없는 기능상의 약점을 절묘하게 노린 것이었다. 물론 이 방법은 이전 군사박물관 관장이 우스갯소리로 생도들에게 소개하는 흔한 레퍼토리에서 힌트를 얻은 것에 불과했지만 효과는 발군이었다.

“ 이제 둘인가? ”

어둠 속 어디선가 뭔가 날아들었다. 때마침 우연히 발치의 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다면 내 머리통을 박살낸 게 뭔지 몰랐을 것이었다. 그 정체는 큼지막한 돌이었다. 우리 정면에서 돌을 든 팔라딘이 나타났다.

그리고 후방의 퇴로를 막듯이 또 하나의 팔라딘이 전투용 도끼를 든 채로 반쯤 모습을 드러냈다.

“ 잘도 쥐새끼처럼 도망친다 싶더니 둘이나 해치웠나. 제법 잔재주를 피울 줄 아는 놈이었군. 이거 졸병들 보다 훨씬 괴롭히며 죽일 맛이 나겠는걸. 어이. 뒤를 잘 지켜라. 이 놈들 제법 맛난 먹잇감이니 놓치면 가만 안 둬. ”

대단한 살기를 뿜어내는 정면의 팔라딘은 만만치 않아 보였다. 후방의 팔라딘은 그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우리가 무슨 허튼 짓을 하든 좌시하지 않겠다는 기운이 엿보였다.

앞뒤로 외통수에 걸린 우리는 그저 가만히 멈춰선 채 침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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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3 HolyGrou..
    작성일
    19.02.03 18:57
    No. 1

    뭐랄까. 너무 작위적인 설정이랄까요. 팔리딘이라는 병기가 있는데 그걸 개선하려고저 안한다니.. 팔리딘용 중화기만 있어도 개사기로 보이는데 정말 느리고. 지형에 따라 기동도 힘들고 바퀴 부시면 돈좌하는 전차가 대체를 한다는게 아이러니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양마루
    작성일
    19.02.05 03:40
    N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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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혹한의 땅 윌로나에 도착하다 +10 19.04.09 686 25 17쪽
14 시피르 공주 +4 19.02.24 676 28 13쪽
13 옛 인연 +5 19.02.21 669 30 14쪽
12 에프탈로 향하다 +6 19.02.02 862 36 13쪽
11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다 +8 19.01.31 832 32 13쪽
» 팔라딘 +2 19.01.29 882 30 12쪽
9 야간전 +1 19.01.28 842 33 13쪽
8 첫 전투의 승전보 +4 19.01.26 1,013 29 14쪽
7 암살자 +2 19.01.26 873 30 12쪽
6 참호에 갇히다 +6 19.01.25 962 23 11쪽
5 장군의 역습 +2 19.01.24 1,094 23 12쪽
4 철의 거인 +1 19.01.23 1,153 35 13쪽
3 에프탈의 공주 +1 19.01.22 1,425 36 13쪽
2 최전방 +7 19.01.18 2,219 41 14쪽
1 프롤로그 +11 19.01.16 3,523 4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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