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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캇트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자의 왕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루이캇트
작품등록일 :
2019.01.16 14:24
최근연재일 :
2019.04.0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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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2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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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철의 거인

DUMMY

“ 조만간 저 개자식 대가리에 구멍을 뚫어주고 말겠어. 되도록 큰 걸로. ”

돌아가는 길 비포장도로에 정신없이 흔들리는 마차 짐칸에서 새 술병을 따며 올리비에 중령은 씩씩거렸다.

“ 관두세요. 저번에 왕창 겁준 걸로 이미 충분히 대비하고 있을 겁니다. 거기에다 의심받는 건 바로 우리라고요. 그보다 병사들 분배할 술 좀 그만 드세요. 그러다 병사들에게 총 맞는 건 대대장님이 먼저일 거라고요. ”

“ 젠장. 세상사는 낙도 없는데 뭐 어때서 그래. 쏘라고 해. 맘대로. 홀가분하게 몇 방 맞아주지. 그리고 땅에 흘린 피 대신 이 술로 가득 채우는 거지. 어때? 낭만적이지 않아? ”

“ 옛날 해적들이나 호기부리며 할 법한 대사네요. 그건 그렇고 저 공주님 때문에 괜히 피곤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우리로선 이렇게 대치하며 시간 까먹는 게 제일인데 괜히 공격명령 내려오면 부대원의 절반이 또 바뀔 수도 있어요. 이제 이름을 외워가는 중인데. ”

“ 쯧. 명령하라면 하라지. 용병의 태업이 뭔지 진짜 어이가 없는 게 뭔지 이번에 본때를 보여줄 테니. ”

올리비에 중령은 주정뱅이치곤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낮게 말을 이어갔다.

“ 애초에 정규군도 아닌 우릴 다짜고짜 최전선 참호에 처박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거니까. 정히 밀릴 때는 조공 역할로 공격할 수는 있어도 이렇게 정규군 취급하면 안 되지. 하여간 공화국 놈들이란 짜증이 나. ”

“ 며칠 전하곤 얘기가 틀리네요. 그때는 공화국이 주변 왕국들에게 홀대를 당하는 것처럼 말씀하셨잖습니까? ”

그러자 중령은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이런 순진한 친구. 그때는 고용주니까 의리를 지켜 그런 거고 만약 왕국 중 하나가 우리 물주였다면 공화국을 씹었겠지. ”

“ 중령님도 참 여간하시네요. ”

“ 흥. 자네도 어차피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겠지. 어때? ”

“ ” 글쎄요. 대체로 왕국이란 그 나라에 소속된 왕족이 자기 잘 난 맛에 산다고 치면 공화국은 여러 사회 엘리트들이 서로 자신이 가장 옳다는 확신에 차 상대방을 너무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부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거겠지요. “

“ 흠. 내 감상과 비슷하군. 아주 명석한 분석이야. 역시나 자넨 무척 똑똑한 친구 같아. ”

“ 아부하셔봤자 더 이상 보급상자의 술을 축내는 건 안 됩니다. 이러다 반란을 일으킨 병사들에게 목 매달리는 건 절대 사양이에요. 걔네들이 밥은 굶어도 중령님 이상으로 술과 담배가 끊어지면 못 참는 거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

“ 에휴. 먹고 싶은 것도 맘대로 못 먹는 이 신세. 처량하다. ”

올리비에 중령과 잡담을 나누는 사이 대대 본부에 도착한 우리는 그새 왕국군의 중포 사격으로 무너져 내린 폐허를 발견하고 망연자실했다.

“ 아이구야. 이대로 계속 있었다면 생매장됐겠군. 이번만큼은 여단장 놈한테 감사해야겠는걸. ”

“ 글쎄요. 되로 주고 말로 받아갈지 아직 모르죠. ”

“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긴 한데. 이제부터 어디서 지내지? 염병할. 하필 이런 추운 날에 맞추고 지랄이야. ”

초겨울의 찬바람이 지상을 스치고 지나가자 몸을 부르르 떤 올리비에 중령이 팔짱을 끼며 투덜거렸다. 다행히 저번 포격으로 배식추진 지원 나갔던 대대 본부 인원이 한꺼번에 폭사하는 바람에 이번에 생매장 당하는 인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게 과연 다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죽음의 순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는 게 내 지론이다. 고통이 길어봤자 하등 좋을 게 없으니 말이다.

“ 어쨌든 머물 곳을 찾아보자고. ”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올리비에 중령이 추위에 진저리를 치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도 옷깃을 여미며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이곳 스라카 전선은 상당히 복잡한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었다. 그 말인 즉은 관련국 전부가 이 땅에 탐을 냈던지 역으로 아무도 이 땅에 관심이 없었던 둘 중의 하나다. 스라카는 후자의 경우였다.

이 돌투성이 언덕구릉이 파도처럼 이어지는 메마른 땅은 농지로는 전혀 쓸모가 없었고 인구밀도도 원래 터를 잡고 방목하며 살던 소수민족 이외에는 극도로 희박했다.

그나마 5개국의 접경지대여서 서로 방어에 유리한 지역을 점거하며 이제껏 태평하게 지내왔다.

하지만 어느 고고학자의 탐사 결과 대형 용맥 광산이 발견되면서 과거 아무래도 좋던 이야기는 전혀 양상이 달라졌다. 용맥이란 옛 고대생물의 유해가 무더기로 출토되는 곳인데 사람들은 과거에 흔히 혼동했던 대로 그저 드래곤의 무덤이라고도 불렀다.

그저 옛 고대 동물의 유해만 나온다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나 그곳에는 반드시라 해도 좋을 정도로 함께 출토되는 게 있었다.

호사가들로부터 고대 드래곤의 심장이라는 해괴한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구형의 반투명한 돌이었는데 정식 명칭은 광맥이 끊긴 가장 흡사한 보석의 이름을 따서 문스톤으로 불려졌다. 이 돌은 처음에는 옛 문스톤의 대용품인 장신구 용도로 장장 천년 이상 전부터 사용되어왔다.

하지만 세상의 어느 한가한 연금술사가 이 돌에 막대한 에너지가 깃들어 있다는 비밀을 알아내고는 그 에너지를 인간의 이로움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독자적으로 연구했다. 물론 주로 군사용 용도였다.

하지만 혼자서는 자금 면으로나 인력으로 한계가 있었고 죽을 때가 다 된 노년의 연금술사는 자신의 귀중한 연구결과를 대륙 7웅의 하나인 에프탈 왕가에 비싼 값에 팔아넘겼다.

그 이후 왕가에서 집단 고용한 저명한 학자들이 고민 끝에 연구의 근간으로 찾아낸 방법은 어느 폐광된 용맥 동굴에서 길 잃은 목동에게 발견된 원형의 석판에 그려진 복잡한 회로도였다.

물론 회로도라 생각한 건 전기가 일상화된 극히 최근의 일이고 그때는 단순히 선대 인류의 심심풀이 낙서쯤으로 치부했다.

처음에는 서로 아무 연관도 없어 보였지만 연구에 중대한 난관에 부딪친 학자들은 돌파구를 찾아 별의 별 실험을 다 해보던 중 문스톤에 회로도에 그려진 대로 금과 은으로 정교히 선을 따서 넣은 결과 그 안에 깃든 에너지를 인간이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물론 초기에는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 그 실험 과정에서 아까운 인명피해를 수없이 감수해야 했다.

이후 수십 년 간 국가적으로 엄청난 자금을 투입한 비밀 실험과정을 거쳐 당시 군사력의 중핵이던 기사단의 전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

그 전력의 상승이란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자면 약간 엽기적인데 무덤에서 출토된 드래곤의 무덤에는 뼈와 껍질이 다량 남아 있었다. 바로 그 뼈와 껍질을 가공해 기사단원의 갑주를 만들었다. 물론 인체의 형태를 갖췄지만 덩치는 상당히 커질 수밖에 없었다. 뼈는 갑옷의 골조가 되고 껍질은 갑주의 표면을 이뤘다.

왕가의 팔라딘이란 이름이 명명된 완성품은 그냥 아무 지식 없이 보면 섣불리 다가가기 두려울 정도로 큰데다 무겁고 기괴한 인상의 갑주에 불과했다.

물론 그냥 아무나 들어가 움직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신만의 기동키를 가진 주인이 들어가 키를 꽂으면 그때부터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움직이게 된다.

처음 전장에 팔라딘이 등장했을 무렵 태평하게 나타난 적대국의 기사단에게 발휘한 그 무시무시한 위력은 기존 기사단의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뒤바꿀 정도였다.

그 이후로 무려 팔백 년 가까운 기나긴 전쟁의 역사를 무적으로 군림하며 총포로 대변되는 화약병기가 출현할 때까지 아니 제대로 써먹을 만해진 근래에 와서야 기사단 만능주의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지금은 군사 박물관에나 넣을까 고민하는 수준까지 전락했지만 사람들은 곧 문스톤의 새로운 용도를 찾아냈다.

“ 장갑전차다. ”

전방 참호 곳곳에서 비명에 가까운 고함성이 솟구쳐 올랐다. 지역분쟁이라 약간은 안심하고 있었는데 왕국들의 인내심이 그리 길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나와 올리비에 대령 그리고 물건을 어깨에 짊어지고 질퍽한 진창길을 피해 따라오던 병사들이 허겁지겁 인근 참호로 뛰어들었다.

멀리서 재차 포격이 시작되고 연기가 참호 앞을 온통 희뿌옇게 가렸다. 그리고 그 화약연기로 만들어진 인공 안개 너머로 길쭉한 탑처럼 생긴 사물의 그림자가 희끗희끗 엿보이기 시작했다.

“ 지랄 맞은 날이네. 정말. 이러다 오늘 초상 치르는 거 아냐? ”

헉헉대는 와중에도 올리비에 중령은 군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참호 너머로 슬쩍 고개를 내밀고 탐색했다. 머리에는 주변에 널브러진 모래주머니 하나를 얹은 채로 적의 이목을 끌지 않도록 조심스레 주변에 눈을 돌렸다.

“ 자네 참 왕국군 장교 출신치고는 꼴불견인 일도 가리질 않는구만. ”

나는 전방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 그런 건 제 이력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상실했으니까요. 이젠 무조건 살고 봐야 하거든요. 남쪽나라 따뜻한 휴양지 비슷한 섬에서 새로운 인생을 꾸려나가기 전까지는요. ”

“ 그거 참 듣기 좋구만. 일단 여기서 머리통이 멀쩡하게 살아나간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

“ 그야 물론이죠. ”

“ 하지만 장갑전차가 자네 머리통을 무사히 놔둘지는 의문이군. 높이 18미터나 되는 저 녀석은 위에서 내려다보며 병사들을 학살하길 무척이나 즐기니 말이야. ”

“ 그보다 아군 후방 포격은 왜 안 하는 거죠? ”

“ 그야 모르지. 언제나 보급이 딸리니까 또 포탄이 떨어졌는가 싶군. 벌써 우린 열흘 째 적에게 대항포격을 하지 않았으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지. 그러니 저 놈들도 저걸 투입할 생각을 했을 테고. 우리 앞에 왕국군의 장갑전차가 나타난 걸 아는지나 의문이긴 하지만. ”

“ 망조네요. ”

“ 망조지. 우리 편이라는 게 문제지만. ”

그러는 사이 장갑전차가 으스스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천천히 참호선 가까이 다가왔다. 육각형 2연장 총탑에 거대한 철제 바퀴 두 개를 연결한 신장 18미터의 거체. 멀리서 보면 직각으로 세운 육각 볼트 양 옆에 바퀴 두 개를 달아놓은 양 신통찮아 보이지만 실제 전장에선 철의 거인이라 불러도 좋을 놈의 좌우로는 투지에 넘치는 왕국군 보병들이 낮은 자세로 개미떼처럼 몰려왔다.

“ 오늘은 토그람 군이네요. ”

아직도 신형 카키색 군복에 흰색 크로스벨트를 착용하는 시대착오적인 짓을 저지르는지라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 번갈아 오니까 이번에 쟤들 차례 맞지. 그런데 갑자기 공주님이 보고 싶군. ”

“ 금발 어린애가 취향이었어요? ”

“ 아니. 정확히는 공주님이 데려온 용병 연대에 관심이 있거든. 걔네들이 대신 몸빵해 주는 동안 우리는 도망치는 거지. 어때? 그럴싸하지 않아? ”

“ 계획 자체야 그리 나쁘진 않지만 그렇게 이타적으로 보이진 않던데요. 그 얼음 공주님. ”

“ 쩝. 그냥 말이 그렇단 거지. 공주님의 기사들이 우리 같은 용병 나부랭이를 구하러 백마 타고 나타나 줄 리도 없고. ”

지면을 한바탕 세차게 훑는 바람에 소용돌이치며 흩날리는 화약안개 속에서 차가운 철제 총탑이 드러났다. 그리고 지면 아래를 향해 맹렬한 기총 소사를 시작했다. 육면에 하나씩 달린 총구 당 두 정의 기관총이 탑재되어 알보병 상대로는 기가 막힌 위력을 자랑하는 무기였다.

그야말로 보병의 사신이라 할 만 했다. 먼저 공화국 군이 겁을 집어먹고 일제히 참호선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전개는 늘 그렇듯 사격자세로 기다리던 토그람 보병의 일제사격에 노출되어 등판이 총알에 뚫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갔다.

도망치던 공화국 군이 개죽음 당하는 동안 우리 용병대대는 모두 자리를 지키며 적이 더 근접하길 기다렸다. 어차피 저 장갑전차는 구조 상 참호나 포탄 구덩이를 도하할 수 없기에 이대로 적 보병을 물리치면 알아서 돌아갈 것이었다.

대부분 비슷하지만 우리 용병대대는 각 중대장들이 개별적으로 병력을 모아 대대장에게 배속되는 형태라 따로 대대본부에서 지휘명령은 내리지 않는다. 즉 중대장들이 독립된 지휘관을 겸한 별개의 용병사업주인 셈이었다.

최하급 하청업자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까. 하여간 그들은 나름 병력을 통솔하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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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혹한의 땅 윌로나에 도착하다 +10 19.04.09 686 25 17쪽
14 시피르 공주 +4 19.02.24 676 28 13쪽
13 옛 인연 +5 19.02.21 669 30 14쪽
12 에프탈로 향하다 +6 19.02.02 862 36 13쪽
11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다 +8 19.01.31 832 32 13쪽
10 팔라딘 +2 19.01.29 883 30 12쪽
9 야간전 +1 19.01.28 842 33 13쪽
8 첫 전투의 승전보 +4 19.01.26 1,013 29 14쪽
7 암살자 +2 19.01.26 873 30 12쪽
6 참호에 갇히다 +6 19.01.25 962 23 11쪽
5 장군의 역습 +2 19.01.24 1,094 23 12쪽
» 철의 거인 +1 19.01.23 1,154 35 13쪽
3 에프탈의 공주 +1 19.01.22 1,425 36 13쪽
2 최전방 +7 19.01.18 2,219 41 14쪽
1 프롤로그 +11 19.01.16 3,523 4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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